그리스도의 육신론 교부문헌총서 8
이형우 옮김 / 분도출판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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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부 중 터툴리안을 빼고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의 많은 저작중 <그리스도의 육신론>은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데, 초대교회 안에 일어났던 이단들을 정죄하고, 바른 신학을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핵심은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었다.'는 것이다. 이 핵심은 가현설을 주장한 영지주의 이단들을 정죄하고, 올바른 그리스도의 신앙을 갖게 한다.

 

초대교회 이단이었던 말시온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아, 육화된 모든 것을 부정하려고 모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만약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무효가 될 것이며, 신자의 믿음도 헛것이 될 것이다. 바울은 몸의 부활을 언급하며, 그리스도의 육화 즉 성육신을 강조한다. 터툴리안은 만약 그리스도의 육신을 부인한다면 부활까지도 부인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런데 (말시온) 그리스도 안에 어떤 가상적인 육신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분의 탄생이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였다고 조작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래서 동정녀 마리아의 수태와 임신과 출산, 그 후 그 아기에 관한 사건들 모두가 생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분의 육신이 상상에 불과하다고 비웃는 그들은 자기들의 눈과 감각들이 기만당한 셈이다."(89쪽)

 

육체를 영의 감옥으로 생각했던 헬라철학은 구약의 창조주 하나님을 열등하거나 나쁜 하나님으로 평가하게 했고, 신약의 사랑의 하나님, 즉 예수의 삶을 영적으로 것으로 생각했다. 문제는 예수가 육신을 입음으로 피조물이 되는 것에 대한 신학적 난제를 피해야 했다. 그것은 곧 예수의 육신됨 성육신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터툴리안 이러한 이단들의 어리석음을 폭로하고 그리스도의 육신을 입으신 것이야 말로 신앙의 가장 핵심이며, 부활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선언한다.

 

"존재하는 것과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것을 분리시켜 사랑할 수 없다." 105쪽

 

터툴리안의 탁월함은 육신을 입은 연약한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앞부분에는 터툴리안의 생애와 저작들. 이단들에 대해 정리해 놓았고, 본론에 앞서 주요한 논쟁의 흐름을 정리했다. 분도출판사에서 출간된 교부총서는 해제와 더불어 라틴어 원문을 함께 실어 라틴어를 참고할 수 있어 유익하다. 본서는 라틴어식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즉 영어식 터툴리안이 아니라 ‘떼르툴리아누스’이고, ‘말시온’은 ‘마르치온’ 등으로 번역돼 있다. 필자는 영어식에 익숙한 이들을 위해 영어식 발음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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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순간, 그리고 예수
김형국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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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발견이다. 제목만 볼 때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했다. 한 장 한 장 읽어가며 책의 능력을 체득하게 시작한다. 


모두 여섯 명의 성경 속 인물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고통과 슬픔의 심연 가운데 있는 당신 나인성 과부,

영원한 생수를 찾아 헤매는 당신 사마리아 여인,

허망한 성공의 사닥다리 앞에 있는 당신 삭개오,

진리 앞에 텅 빈 내면을 비춰보는 당신 니고데모,

지칠 대로 지친 일상 속의 당신 베드로,

그리고 지금 바로 당신.

 

 

여섯이지만 한 명이고, 한 명이지만 수억의 사람들의 이야기다. 만남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지만 그 만남은 현실을 살아가는 '삶의 현장'(10)이다. 이 책 속의 화자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김형국 목사와는 사뭇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김형국 목사는 이지적이고 논리적인 확신의 얼굴이었다면, 이 책은 서사적이고 상처 입은 치유자의 고뇌와 아픔의 얼굴이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칙칙한 이야기는 하지 말고 희망차고 즐거운 이야기만 하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자지기가 보고 싶은 대로 그저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직시하고 직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22)

 

 

현대 기독교는 긍정주의에 점령당했다. 설교 가운데 노동자나 고통, 슬픔과 눈물 이야기는 그림 속의 이야기지 진짜 삶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예화 속에 화두일 뿐이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직시'하고 '직면'하는 것이다. 예수는 울고 있는 나성의 과부에게 다가가신다. 고통 속으로, 아픔과 상실의 고통 속으로 주님은 들어가신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예수는 또 다른 여인에게 들어가신다. 아무도 오지 않는 정오의 샘물에서 홀로 물을 긷는 사마리아의 여인이다. 그 여인은 남편이 많다. 아니 없다. 성에 차지 않으면 다른 남자로 바꾼다. 그러나 여전히 외롭다. 사랑은 참으로 기이해서 사랑하면 할수록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이 다가온다. 굳이 여기서 '최소 관심의 법칙'이란 어려운 단어나 '애착 이론'을 끌고 와 설명할 이유도 없다. 사람은 늘 외롭다. 그래서 사랑해줄 사람을 찾는다. 사랑해줄 사람을 찾으면 그는 사랑하지 못한다. 여인은 목마르다.

 

 

저자는 예수의 색다른 다가옴에 주목한다. 그것은 '편견을 넘어 섬세하게 다가'(66) 오시는 예수다. 편견, 그것은 참 무섭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으로 무장한 독이 편견이다. 그러나 늘 블랙스완은 있는 법이다. 주님은 편견 없이 역사와 경험을 초월하여 여인에게 다가가셨다. 삭개오에게 예수는 '위험을 무릅쓰고'(111) 찾아갑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는 그 사람에 맞게 찾아가시고, 말씀하시고, 대안을 주신다. 이 문장이 심쿵하다.

 

 

"예수는 생사가 갈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놀랍게도 여리고에서 한 사람을 찾아갑니다."(112)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김형국 목사의 얼굴을 보았다. 아니 그의 음성을 들었다. 아름답고 울림이 큰 묵상이다. 만남, 이것은 기적이고 생명이다. 찾아가시는 하나님은 스스로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중요한 신학적 주제다. 범죄 한 인간들을 징벌하시는 하나님,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지만 가슴 치며 아파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범죄 한 인류와 함께 추방 당하신다. 같이 방황하시고, 배회하시며, 굶주리고 아파하신다. 인간은 에덴동산 밖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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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위독하다 - 삶이 슬프다 사람이 아프다
김겸섭 지음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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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는 자신을 직면할 때 시작된다여행을 떠나서 여행지만 보는 사람은 진정한 여행을 하지 못한 사람이다자신을 내밀하게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 참 여행자다치유는 자신을 들여다볼 때 가능하다김겸섭 목사의 <사랑이 위독하다>는 가짜와 탐욕에 함몰되어 자신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치유서다. 2014년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를 접했을 때 상당히 난감했다산문도 아니고시도 아니었다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심령을 후벼 파는 문장들이 읽는 내내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이번 책은 이전보다 더욱 예리하고 날카로워졌다문장들도 시에 가까워졌다덜어내고 추려내고 적출하여 문장을 날카롭게 벼리고 벼리었다.


크게 두 장으로 구분했다. PART1에서는 사랑은 그 사람의 곁이 되어 주는 것이란 제목으로 인격과 인간관계를 다룬다. PART2에서는 어떤 눈물은 때로 빛보다 눈부시다.‘라는 제목으로 삶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를 풀어낸다저자는 이번 책에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다그는 첫 장 인격은 할인되지 않는다에서 가격에 종속되어 인간을 상품으로 판단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고발한다상품화된 인간은 철저하게 가격으로 가늠된다작금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경제구조와 공부심지어 사랑과 우정까지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저자는 고대와 현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흔적을 찾아 떠난다그곳에서 가격으로 인해 무너져 내린 이야기를 꿰매고 기워 한 벌의 완성된 옷으로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인간은 낙심이 발주(發注하고 실패(失敗)의 소인이 찍한 삶을 살아간다인간 안에는 분노와 좌절우울과 절망이 깊이 스며있다. 3장에서 트롤의 거울은 인간이 누구인가를 보여준다트롤의 거울은 안데르센 동화 <눈의 여왕>에 나오는 거울이다이 거울은 인간의 단점만을 보여준다인간의 악함과 추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후 이 세상,

선을 악으로 보는 왜곡,

귀한 것을 하찮게 여기는 혐오,

진실을 거짓으로 음해하는 이간질,

이런 추한 것들로

가득 찬 판도라의 상자가 되어 버렸다.”


인문학적 통찰로 가득한 저자의 사색의 길은 인간이란 기나긴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다왜곡되고뒤틀리고우울하고분노하고 있는 현재의 인간들의 근원지를 찾아 떠난다흡사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프로도와 같다저자는 끈덕지게 묻고 따진다도대체 인간들은 왜 이렇게 변질되고 왜곡되었는가세상은 왜 이리 악한가트롤의 거울은 카뮈의 작품 <전락속의 끌라망스에게서 발췌한다그는 멈추지 않는다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인 하인츠 헤거의 <핑크 트라이앵글>에서 다시 트롤의 거울을 발견한다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도 트롤의 거울을 발견한다그곳에서 발견한 트롤의 거울은 편견이다.


편견은 그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그대를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트롤의 거울은 불안’(83) ‘생각이 병든 사람’(91), ‘우월감’(93)이다사랑이 위독하다삶이 아프다저자는 계속해서 문제의 기저(基底)를 파헤친다. 1부가 인간의 문제에 천착(穿鑿했다면, 2부는 그 대안을 찾아 나선다사람마다 삶의 정의가 다를 것이다자신의 정의에 따라 치유 대책을 세울 것이다그러나 대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그것은 진정한 치유는 사랑 밖에 없다는 것이다김연수 작가의 말대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사랑은 사람의 일이다.’(180)


여행이 자기를 버림으로 자기를 되찾는 것이라며사랑은 치열한 노동을 통한 삶의 경작이다고대 이집트인들은 청혼할 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그대와 함께 오래집을 짓고 싶습니다.”(175)


관계의 회복은 먼저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한다그러나 그 이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하나님은 자신의 목숨을 다해 사랑하라 하셨고이웃은 내 몸처럼 사랑하라 하셨다사랑의 주체는 여행이 나를 찾는 것이듯사랑은 찾은 나를 발산하는 작업이다자신 안에 발견한 완고함의 돌들을 치우고왜곡과 편견의 쓴 뿌리들을 제거해야 한다평생을 말이다사랑은 일상일 수밖에 없고일상이어야 한다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사랑 그것은,

피와 눈물이 있는 노동이어야 한다.

그래야 균열이 없는 견고를 산다.”(176)


저자의 언어는 단아(端雅하다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장으로 마음을 장악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스토리가 있고논리가 있고성찰이 있다또한 사유의 여백을 둠으로 강요하지 않는다어쩌면 저자의 주장들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들이다인문학의 장점이 바로 그곳에 있다어느 광고처럼 '십 년을 입어도 새 옷인 듯새 옷을 입어도 십 년을 입은 듯'하다무리해서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욕심내어 읽고 다음 날 또 읽어도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는다다만 사색할 시간과 자신을 들여다볼 여유는 있어야 한다읽다가 울컥하는 마음에 한동안 하늘을 바라볼 수도 있다문학의 지층 속에서 치유의 보석들을 캐내어 세공해 두었다그저 읽는 것만으로 충분한 위로가 된다삶에 지치고사랑에 아픈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아픈 사람들이 많다. 이 책은 그 어떤 치료제보다 강한 쉼가 묘약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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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역사
송장유경 지음, 허일범 옮김 / 경서원 / 199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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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장유경의 밀교역사를 읽는데 너무 어렵다. 전문용어만을 사용하다보니 난감하다. 불교 전공자나 아니면 최소한 불교의 역사를 어느정도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읽기 힘든 책이다. 


밀교는 대승불교가 쇠퇴 또는 관념적으로 변하면서 반동으로 일어난 개혁 운동 중의 하나다. 밀교는 철저히 몸의 불교인 셈이다. 


"현시점에서 대승불교에서 밀교에로의 사상적인 전개과정이 명확하게 추정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밀교의 특색은 대승 불교의 사상적인 발전과정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대승불교가 본래 가지고 있던 신비주의적인 경향과 의례적인 요소를 극단적으로 강조하고, 고도로 발달된 대승불교 철학을 독자적인 실천 체계 속에서 구상화 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원시불교에서 부파불교로, 부파불교에서 대승불료로 발전 또는 변화된다. 이때 대승불교과 초기의 실천적인 측면이 약화되고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성향으로 발전하자 개혁하게 된 것이 밀교이다. 밀교는 성교를 통해 통제하는 득오의 과정이다. 


밀교는 일명 탄트라(Tantra)라고 부르는데, 탄트라는 샤크티파의 경전으로 힌두교에서 80년 때부너 일어난 성력 숭배의 일종이다. 밀교는 인도에서 추방되어 다시 티벳으로 넘어 간다. 티벳불교는 밀교였던 것이다. 주술과 신비로움, 샤머님즘 등이 교묘하게 혼합된 것이 발교 밀교인 셈이다. 


책이 어렵다. 아니면 솔직하지 못하고 너무나 답답하게 전개하는 양상이 일반독자들에게는 달갑게 오지 않는다.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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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7-03-21 19: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밀교하면 그저 공작왕 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한참 그 만화에 빠져 있을 땐 밀교=주술 이라는 공식이 비단 저만의 건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낭만인생 2017-03-28 08:57   좋아요 3 | URL
갑자기 공작왕이 보고 싶네요.. 예전에 유명한 영화 였던 것 같은데..

카스피 2017-03-21 22: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저도 밀교하면 공작왕이 떠오르더군요^^

낭만인생 2017-03-28 08:57   좋아요 1 | URL
밀교와 관련 있었군요.. 밀교에서 주문도 중요합니다.
 
금기의 수수께끼 - 성서 속의 금기와 인간의 지혜 호모사피엔스
최창모 지음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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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관련 책이란 말만으로도 이 책은 나에게 충분한 호기심을 유발했다. 오래 전부터 인류학이나 고고학, 문화 등에 유심히 관심이 많이 가는 편이다. 그런데 일반 인류학이 아닌 성서의 금기를 다룬 책이다. 금기를 통한 인간의 지혜를 엿보는 책이라 옳을 것 같다. 기독교인으로서 성서의 금기를 다룬다는 것이 흥분되게 한다. 저자의 머리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서 속에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금기들이 있다. 상식적인 근친상관은 물론이고 월경에 대한 터부도 그렇고, 의상의 유별난 관심, 왼손잡이에 대한 부정적 생각과 문신 등은 성경이 금지한 조항들이다. 그런데 이것뿐 아니라 고기와 치즈를 먹지 말라는 금지와 곡식을 기를 때 섞지 말라는 조항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데 왜 이런 금기 사항이 만들어진 것일까? 저자는 이해할 수 없는 성서의 금기들을 인류학적 관점으로 들여다보고 풀어 나가는 재미를 준다.

 

모두 5장으로 나누었다. 1장에서는 금기가 무엇인지 성격과 기능들을 다룬다. 2.3장은 음식과 성에 관련된 금기를 분석한다. 4장에서는 금기를 통해 지배 원리를, 마지막 5장은 성서 연구과 관련된 연구사를 언급하며 마무리한다. 필자의 견해로 1장은 서론이자 금기가 무엇인지를 다루기 때문에 꼼꼼히 읽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금기를 통해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이다. 이건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논문으로 발표했던 구조인류학적 관점이 아닐까 싶다.

 

 

성서의 금기는 하나님의 거룩과 깊은 연관이 있다. 저자는 터부는 금지와 성스러움이 결합한 이중의 개념’(32)이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한 하나님께 속한 이스라엘은 덩달아 거룩해지는 것이다. 부정한 것들로부터의 접촉은 거룩을 훼손한다. 터부는 거룩과 세속의 중간 지점, 애매모호한 즉 어중간한 중간지대’(33)이다. 어릴 적 문턱에 앉아 있다 할머니에게 혼난 적이 있는데, 이유가 문턱은 안과 밖의 모호한 경계였던 것이다. 그래서 문턱은 영과 속의 문인 셈이다. 성서의 창세기 4:7문지방에 죄가 귀신으로 있다.’는 번역이 특이하다. 2.3장의 많은 금기보다 1장에 나온 금기 신학에서 성서의 금기를 분명히 보여준다. 저자는 히브리 성서의 금기 신학은 창세기와 레위기에 기초한다.’(39)고 언급한다.

 

결국 금기의 원형으로서 에덴동산의 신화는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그로부터 창조된 인간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간격과 차이의 체계로 이루어진 질서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영원히 공전할 수밖에 없는 수수께끼가 된다.”(43)

 

많이 놀랐다. 단지 금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보기에 저자의 통찰은 너무 예리하다. 금기가 대부분 특정 지배계층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전락’(58)하고 있다는 것, ‘전쟁이라는 단어가 빵과 그 어원을 같이하고 있는 것’(65) 등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짚어 준다. 결국 음식은 인간 사회에서 사회적 관계에 대한 하나의 물질적. 경제적 표현이며, 따라서 인간의 본질과 사회.문화적 특성을 설명하는 훌륭한 예’(65).

 

돼지고기 금기에 대한 다양한 해석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 예로 돼지 혐오에서 환경 이론으로 풀어낸다. 고대 지방에서 돼지는 많은 이들에게 해로운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돼지는 반추동물(되새김질하는 동물)처럼 인간이 먹어야할 곡물을 나누어 먹지 않고도 고기와 젖을 제공’(82)할 뿐 아니라, 똥을 제공해 비료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돼지의 음식은 인간과 같아 인간들의 경쟁자가 된다.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지금도 유목민이나 유랑민들은 돼지를 사육하지 않는다. 즉 돼지는 사치품이다.

 

성서를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 이 책은 무척 많은 도전과 통찰을 주었다. 왜 진즉에 몰랐을까 아쉬운 마음까지 든다. 재판된 책으로 만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진다. 많은 이들에게 널리 읽혀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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