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대학교 -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
오찬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햇수로 5년의 휴학을 마치고 돌아온 학교는, 내가 알던 학교가 아니었다. 단지 학교 야구장이 헐린 자리에 주상복합상가가 들어서고, '의료원'이라는 소박한 이름을 가진 병원이 거대 대학병원으로 바뀐 것만이 아니었다. 한 학기 40만원의 저렴한 비용을 치르면 4인 1실 규모의, 건물은 낡고 군대식 위계가 존재하지만 그래도 큰돈 들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기숙사도 변해 있었다. 


  구 기숙사 비용 40만원(4인 1일)과 신축 기숙사 비용 120만원(2인 1실)의 차이는 너무 컸다. 신축된 민자 기숙사는 1인 1실과 2인 1실짜리 방으로 나뉘어졌고 그 두 방 사이의 가격차는 대략 30만원이었다. 물론 1인 1실이 더 비쌌다. 기숙사 구내에는 헬스장과 커피숍 등 온갖 '편의시설'이 들어섰다. 그러나 그런 편의시설은 힘겹게 복학한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복학하면서 원전공으로는 먹고 살기 어려우리라는 막연한 걱정에 선택한 복수전공은 경제학이었다. 새단장한 사회과학대학 건물에서 보냈던 2년은 내게 무척 낯선 것이었다. 비록 학생회와 외부활동으로 그렇게 살갑지만은 않은 학부생활이었지만, 복학 전의 대학생활은 나름 '대학생활'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복학 후에 비하면 낭만적인 것이었다.

  경제학 수업은 경제학과 학생 뿐만 아니라 온갖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이 수강, 청강하러 왔다. 그들은, 아니, 우리는 저마다 취업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보다 취업에 유리하리라는 기대를 품고 경제학 수업을 들었다. 그안에서 이뤄지는 팀 프로젝트는, 상대평가에 따라 성적을 배정받기에 팀과 팀 간의 경쟁만 아니라 팀 내에서의 경쟁도 보여주곤 했다. 교내 취업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이들은 점점 늘었고 경쟁률도 덩달아 높아졌다. 취업이 대학의 지상명제라도 되는 양 모두가 취업을 이야기하거나 준비하거나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공무원시험이나 회계사 시험, 고시를 준비하거나 했다. 

  한편 내가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는 학교 내 비인기학과로 불리는 히브리어학과가 폐지 일보 직전이었다. 복학하기도 전에 이미 다른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지만, 그래도 근근이 배움의 터전을 유지했던 학과였다. 그마저도 학과 정원 감소와 재정 문제라는 이유로 폐지에 내몰렸다. 같은 학교 학생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이 학교 본관 앞에서 폐과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던 이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도 예외일 수 없었다. 

  기숙사를 비롯한 복지시설은 이미 상업화되었고, 학생들은 대학에서부터 치열한 경쟁을 습득하며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한다. 모두가 취업에 목매고 취업준비생인 상태를 불안해한다. 그럼에도 나는 대학 안에 아주 희미하게나마 '배움'의 공간이 있고, 그안에서 성장해나가는 즐거움이 있다고 믿었다. 그나마 학점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논외로 할 때 가능한 생각이기는 하다. 하지만 자기만족을 넘어 새로운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는 한 대학은 대학으로 기능하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사회학자 오찬호의 『진격의 대학교』는 그런 나의 생각이 안일하다는 듯 오늘날 대학의 '현실'을 낱낱이 까발릴 테세로 대학의 '진격'을 상세하게 이야기한다. 이제 더 이상 대학은 그런 배움의 터전이 아니라 철저하게 상업화되고 기업화된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 파편화된 기억이 책을 통해 하나로 꿰어지면서 그 윤곽이 좀더 또렷해졌다. 책 속 가상의 '진격대학교'는 저자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보고 겪었던 일상을 재구성해 놓은 공간이다. 책을 읽다보면 그 진격대가 이른바 '인(in)서울'의 어디인지를 가늠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알만한 대학들, 중앙대, 연세대, 고려대 등등이 행간을 스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책이 보여주는 사례가 특정 대학에 국한된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런 사례들은 보편적인 현상을 다룬다. 

  최근 진격대는 '인성의 향연'이란 강의를 개설했다. 종교 냄새가 나는 진지한 강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잘나가는 유명인사들이 매주 돌아가며 하는 특강이다. 요즘은 진격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대학에서 이런 특강이 대세다. (…) 대학에서는 모든 것이 취업에 맞춰져 있다. 대기업 취업률을 올려 학교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서는 모든 학생들의 목표를 '성공'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일들도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래서 자기계발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는 '젊을 때 목숨을 걸라'는 섬뜩한 주제로, 유명 은행 부행장은 '어떤 사람이 은행에 입사하는가'를 주제로 강의한다. "토익에 너무 목숨 걸지 마세요. 900점 정도 넘기면 남는 시간에 책 읽으면서 소양을 좀 쌓으세요"라는 말에 학생들은 씁쓸한 웃음을 짓기도 한다. 강사의 '900점'이라는 말이 아주 자연스러웠다는 것도, 그 정도만 넘기면 된다는 말이 '인성의 향연'이라는 강의에서 이야기된다는 당혹스러움도 그 웃음의 이유였을 것이다. (38~39쪽)

  진격대 지방캠퍼스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더 현실적(?)이다. 세영이는 '신입생 길잡이' 12주차였던 어느 날의 풍경을 잊지 못한다. "저희 학교 출신 중에서 현재 돈을 가장 많이 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라는 취업정보센터 직원의 소개와 함께 등장한 사람은 유명 '의류 쇼핑몰'을 운영하는 스물일곱 살 여자였다. 그 쇼핑몰의 한 달 매출이 수억 원이라고 했다. (…) 강의는 독설로 마무리된다.
  솔직히 여기 지방대잖아. 사회에서는 '지잡대'라고 불러. 그러니까 죽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평생 그런 '잡것' 취급이나 받고 사는 거야. 목숨 걸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어. 사회가 색안경 쓰고 있다고 투덜거리지 마. 사회는 안 변해. 죽을 각오로 자기계발에 더 매진해! (32쪽)

  여기서 저자는 진격대학교 '본캠'과 '지방캠퍼스'를 함께 다룸으로써 대학의 지상명제가 취업이 되고, 이를 위해 차마 강의라고 할 수 없는 것도 강의의 탈을 쓰고 나타나는 현상이 보편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대학의 보편적인 얼굴로 '영어'에 집착하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다짐을 해도 영어강의는 버겁다. 한국말로 해도 어렵고 지루할 철학 아닌가. 양명학은 'Wang Yangming's Philosophy'로, 지행합일은 'unity of knowledge and acting'으로, 공자는 'Confucius', 맹자는 'Mencius'로 옮겨가며 강의는 말 그대로 '꾸역꾸역' 흘러간다. 그래도 교수는 정확한 문법을 사용했고 비록 억센 발음이었지만 듣기에도 문제가 없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지금 이 공간에서 중요한 것은 영어가 아니라 단연코 '철학'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그렇게 첫 시간이 끝난다. 무림의 고수들은 늘 그래왔듯이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비교하면서 중얼중얼한다. 그 순간, 강의실 구석에서 조용히 잠만 자던 한 무리의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교수가 문을 열고 나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의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교수 발음 정말 구려!" (102쪽)  


  영어교육을 장려한다는 방편으로 전공수업마저 영어로 진행하게 한 결과는 참담하다. 학생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수업의 내용이 아니라 교강사의 '발음'이 얼마나 '네이티브'에 가까운 것인지에 있다. 아닌 사람도 있지만, 영어를 통해 자신과 타인의 '실력'을 가늠하는 데서 나아가 영어실력 미달인 이를 멸시하는 풍토가 만연하다. 


  대학이 이렇게 된 것은 대학 스스로 '경영'이라는 지표로 대학의 성과를 가늠하고 재정건전성과 취업률, 대학순위를 최우선에 두면서 벌어진 일이다. 오늘날의 성상(icon)이라 할 수 있는 CEO를 따라, 대학 총장은 CEO가 되기를 욕망했다. 이제는 아예 CEO가 대학을 인수하고 운영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위계서열이 뚜렷한 기업조직을 그대로 따라가는 현재의 대학에서, 민주주의란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1987년 이후 '민주화'된 대학에서 '민주화'가 '경영화' 내지 '기업화'로 변화함에 따라 교수든 교직원이든 학생이든 대학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점점 꿈 같은 이야기가 되어갔다. 


  이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동안 학생들이 특정한 방향으로 변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노릇이다. 대학 간은 물론 대학 내 학과 간의 위계서열은 더욱 강력해지고, 학생들 간의 경쟁과 질시도 심해진다. 명문대 이름이 새겨진 '과잠'을 자랑스레 입는 학생들과, 그들을 보며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지잡대'라는 구도 안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렇게 무엇이 문제인지는 어렴풋이 알지만 모두가 '먹고사니즘'에서 헤어나지 못하기에, 질주하는 설국열차에서 훌쩍 내리거나 열차를 세울 엄두를 내지 못한다. 내렸다간 낙사할 것 같고 세웠다간 폭사할 것 같다. 때문에 배움은 이제 대학 내부가 아니라 대학 외부에, 길거리 인문학에, 몇몇 뜻 있는 이들이 모인 커뮤니티에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쯤 되면 차라리 '대학 없는 세상'을 바라는 것이 더 나을까? 그러나 '학벌 없는 세상'을 바랐던 교육운동도, 대학 비진학자를 멸시하는 기성 질서에 대항하는 청소년운동도 대학이라는 준거점 내지 대항할 대상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대학을 건드리지 않고 현재의 질서를 바꿀 수는 없다. 


  지금 이순간도 대학에서는 학과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이에 반대하고 대항한 소수는 입이 막히고 쫓겨나고 보복적인 벌금에 시달린다(이제 그들은 '운동권 오타쿠'라 불리고, 운동은 일종의 '취향'으로 격하되었다). 하지만 한국사회 학벌의 정점에 위치해 있으면서 우리 세계의 모순을 응축하고 또 반영하는 이 '작은 사회', 대학을 그대로 두고 본 채 "어쩔 수 없다"며 어깨만 으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찬호의 『진격의 대학교』는 일종의 충격요법이다. 우리의 세계가 이렇게 망가졌다는 걸 직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열차의 노예로 머물러 있으리라는 것이다. '대안'은 그 다음의 일이다. "그러니까 대안이 뭐냐"는 말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이래야 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세계는 이렇게 망가졌다. 멈추려면 그것부터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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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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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더 이상 해방의 기획의 중심이 될 수 없으며, 해방 그 자체가 기만이라는 것. 그에 대한 처방이 아렌트와는 반대로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이라는 점에서 너무나 `철학자적인` 저작이란 생각이 든다. 흥미롭지만 경계해야 할 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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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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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보면 자꾸만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베껴보고 싶은 장을 조금씩 옮겨보았다. 서독부터 루마니아까지, 슈바르츠발트에서 흑해까지, 국경과 지역을 넘나들며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이 엮이며 밝게 빛난다. 그 보잘것없는 것들의 찰나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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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인문학 - 5000년 역사를 만든 동서양 천재들의 사색공부법
이지성 지음 / 차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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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법이 자주 보인다는 것은, 끝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울 만큼 우리 삶이 어려워졌음을 반증하는 듯하다. 이지성은 배고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책, 특히 인문고전이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공부는 투쟁이다. 때론 이런 방법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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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 버리고, 세우고, 지키기
이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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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세우고 지킨다는 원칙은 어디에 어떻게 적용하든지 유효할 것이라 기대된다. 삶의 원칙으로서, 또 조직의 원칙으로서 얼마나 이 원칙을 고수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원칙은 단순하고, 흥미진진한 사례를 통해 또 언론인다운 명쾌한 필체를 통해 풀어내고 있어 책이 잘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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