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까지 두 가지의 고민을 했었다. 하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재밌다고, 좋다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믿음이 안가는 (참으로 이상한 성격이긴 하지만) 무언가가 있었고, 또 하나는 내가 야구의 '야'자도 모른다는 것이다.(심지어 몇명이서 하는 경기인지도 모르며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매한가지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눈여겨 보면서도 선뜻 구입해서 읽지를 못했다. 남들 다 읽었다는 유명한 책 중에서는 나랑 코드가 맞지 않은 책들이 유난히 많았으며 (치즈의 위치 운운하는 책이나 파*포* 같은 혹은 스스로를 귀엽다 생각하는 아해가 쓴 책들이랄지) 이 책 역시 그렇지 않을까 하는 걱정. 그리고 야구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며 알고 싶지도 않은 내가 야구에 관한 책을 읽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하는 의문이 심하게 들었었다. 그런데 나와 가장 친한 친구 이모양이 이 책을 꼭 읽어보라며 추천을 했었다. 이모양으로 말할것 같으면 가끔은 나와 코드가 안맞을때도 있지만 그래도 비교적 그녀가 추천한 영화나 음악, 책 중에서 실패할 확률은 10% 미만이므로 나는 그녀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뭣보다 '야. 야구 몰라도 이거 재밌어'라는 말이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과연. 이 책은 심하게 재밌었다. 한 페이지당 최고 5회에서 최소 1회는 '푸하하' 하고 웃게 만들었으며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질깃질깃하게 웃기는 맛이 있는 것이. 재미에 이 한평생 걸고 사는 나에게는 딱인 책이었다. 내가 쓴 마이리스트 중 웃다가 죽으리 라는 리스트가 있는데 거기에 넣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심하게 재밌고 웃기는 책이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실존했던 프로 야구팀이다. 야구팀하면 삼성 라이온즈, OB 베어스, 한화 이글스, 청보 핀토스 정도만 아는 나에게는 물론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팀이다. (청보 핀토스의 전신이었다고 한다.) 그 팀은 무서울 정도로 야구를 못했으며 기록 또한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93년도에는 한 선수의 노력으로 잠깐 태풍의 눈으로 등장한적이 있었으나 다음해에 역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만연 꼴찌팀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후 삼미 슈퍼스타즈는 사라졌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소년은 인천에 살고 있으며 인천을 연고로 둔 삼미 슈퍼스타즈의 어린이 팬클럽이 된다. 그의 인생은 순탄했으나 삼미 슈퍼스타즈의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팀이 없어지고 야구와는 무관한 인생을 살던 소년은 어른으로 자라고 대학생을 거쳐 직장인이 된다. 어린시절과는 다소 다른 복잡다난한 인생을 살던 그는 실직을 계기로 다시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에 가입한다. 물론 이미 없어진 팀이라서 그의 친구 한명과 삼미 슈퍼스타즈를 숭배하는 일본인 한명. 그리고 대체 왜 가입했는지 모를 떨거지들과 함께. 그들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된다.

뭐든 이겨야 하는 세상. 남보다 반보라도 앞서야만 안심이 되는 세상에서 삼미 슈퍼스타즈와 그 마지막 팬클럽은 어쩌면 이 세상에 농담같은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모든 사람들이 다 선두에 서서 1등 자리를 먹을수는 없다. 누군가가 일등이면 꼴찌도 있어야 하고. 누군가가 열심히 살면 또 누군가는 나무늘보같은 유유자적한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소년은 삼미 슈퍼스타즈와 자신의 인생을 통해 그점을 배운다. 벌서듯 살지 않아도 세상은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떻게 보면 삼미슈퍼스타즈와 그 팬클럽은 나를 닮은것 같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팍팍하게 벌서듯 사는 삶이고 그래서 나는 언제나 1등이나 주류로 부터는 한참 떨어진 삶을 살았다. 중학교때 부터 공부에 손을 놓기 시작해서 고등학교때는 내신성적 15등급이라는 믿을 수 없는 성적을 거두었고 운이 좋게도 수능이라는 제도가 생겨서 나는 간신히 어정쩡한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역시 머리 싸매고 공부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출석만 잘 해도 장학금은 따놓은 당상인 할랑한 과에 들어갔고 교수가 무지하게 봐 줬지만 나는 출석일수가 너무나 턱없이 모자라서 유급생이 되었고 과 최초로 유급생이지만 졸업을 했다. 물론 열심히 다녀서는 아니다. 교수가 불쌍해서 졸업을 시켜 준 것이다. 실제로 나는 과목 하나를 누락하는 바람에 (단 한번도 출석과 시험을 보지 않았다. 그 사실을 졸업할때야 알고 정말 헉겁하는줄 알았다.) 절대로 졸업을 못할 위기에 처해 있었으나 지도교수가 담당 교수님을 만나 사정사정해서 나는 얼치기로 졸업을 했다. (지도교수님은 내 에반게리온 비디오 시리즈를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고 있지만 이러한 이유로 나는 그 교수님을 용서하고 있다.)

이런 나의 할랑한 삶은 어른이 되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친구 따라 갔다가 방송국에 취직을 하고 목소리만 멀쩡하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놀맨놀맨 살았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한가하고도 나른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 힘들고 어려운일은 절대 하지 않으며 오직 편하게 돈을 버는 것 만이 나의 최대 관심사이다. 돈을 더 벌고 힘든일을 할래라고 물으면 나는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건 내가 추구하는 할랑한 삶에서 너무나 벗어난 짓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 대기업에 들어가서 신나게 뺑이 치다가 어느날 갑자기 퇴직을 강요당한 것 처럼. 내가 그런 삶을 견뎌내거나 성공적으로 끌고 나갈 확률은 희박하다. 남들은 몰라도 나는 그 사실을 잘 안다.

이 책에서 단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뭐랄까 주인공의 대학 이전까지는 논픽션 냄새가 나고 상당히 재미가 있는데 대학 시절부터는 픽션이 강하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별로 재미는 없어진다. 이건 아마도 작가의 상상력이 조금은 후달리는 것에서 오는 피할 수 없는 일인것 같다. 실제로 이야기꾼이라 불리우는 작가들 중에서 상당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에 의존한다.(물론 아닌척 한다.)내가 보기에 정말 대단한 작가들은 경험을 재밌게 우려내는 작가들도 물론 그렇지만 그보다 생판 처음부터 모든걸 상상해서 써 대는 작가들이다.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이야기꾼이라 불리울 만 하다. 그러나 나는 재미만 있다면 픽션이건 논픽션이건. 작가의 경험이건 머리속에서 창조된 이야기건 별로 가릴 마음은 없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하지만 다소 주춤거렸던 중후반부와 달리 끝 부분에서 마무리가 아주 깔끔하다. 끝처리가 너저분하면 꼭 단터진 원피스 자락처럼 추한데 이 책은 오버로크로 잘 마무리를 했다. 그래서 다소 재미가 처지던 부분이 쉽사리 용서가 된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아주 훌륭한 책이다. 뭐 지식을 준다던가 뭔가를 깨닳게 하려는 부분 (실제로 작가는 뭔가 전하려고 했지만 나는 별로 느낌이 없었다. 너무 재밌는 탓에 작가의 가르침 으로 재미가 반감되는게 싫었나보다.) 이 크게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재밌다는 것은 얼마나 큰 미덕인가!

세상을 재미로만 살 수는 없다랄지 혹은 재미가 밥 먹여 주느냐 같은 소리를 많이 듣기는 하지만 그래도 재미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인것 같다. 재미 하나로 승부를 걸어서 사람을 이토록이나 유쾌하게 만드는 이 책은 분명 성공한 소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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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4-17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전 이책을 몰랐는데... 꼭읽어야 겠네요...

마냐 2004-04-18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두 야구 룰 하나 몰라도..무진장 즐겁게 읽었고, 개똥 철학도 하나 늘렸죠....단터진 원피스 자락이 아니라..오버로크로 마무리한 책이라니..표현이 죽음임다. 캬캬

RainSmile 2004-04-18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꼭 읽어봐야겠네요.^^

메시지 2004-04-19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진하게 추천합니다. 제 주변사람들에게 벌써 여러번 선물했죠. 작년 말에는 삼미슈퍼스타즈의 후신인 에스케이를 응원했다니까요. 거의 이 책에 대한 중독을 보였였지요. 당시 술자리에서 저를 만난 사람중에서 저에게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못 들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과 저 둘 중 하나가 만취였다고 생각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야구와 인생을 비교해 볼 때 전 많은 교훈과 깨달음도 느꼈답니다. 추천 꾸욱.

비로그인 2004-04-19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쓰신 분 참 진솔하시네요. 책이 막 읽고싶어집니다.

마음의 평화 2004-04-21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