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 없는 날 동화 보물창고 3
A. 노르덴 지음, 정진희 그림, 배정희 옮김 / 보물창고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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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소원을 하나 들어줄게. 너의 소원은 뭐니?"

 "잔소리 없는 날이요!"

 

 라고 답하고 싶은 사람은 모두 이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정말로 잔소리 없는 날이 시작되었으니까. 물론, 단 하루지만. 훗, 하루라서 아쉽다는 아이들 혹은 어른들(아이들은 모르지만 어른들도 잔소리에서 해방되고 싶어한다!) 은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 읽고 나면 이런 부탁을 할지도 모른다. 잔소리 없는 날은 반나절로 줄여주세요! 라고.

 

 전 세계의 모든 아이들을 대표하는 푸셀은(즉, 푸셀도 어린이라는 것이다^^;;;) 일주일동안 내내 잔소리를 하시는(어른에게는 별로 하지 않은 것 같은 잔소리가 아이에게는 일주일 내내가 될 수 있음은 언제나 신비로운 일이다.) 부모님께 엄마 아빠의 간섭이 없는 날이 딱 하루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투정을 부린다.

 

 보통의 부모님이었다면 꿀밤과 함께 더 많은 잔소리를 들어야 겠지만 푸셀의 부모님은 푸셀에게 월요일 하루동안 잔소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신다. 단 한가지 조건을 걸고. 그 조건은 "위험한 일 하지 않기." 푸셀은 일요일 밤부터 가슴이 두근거려 잠이 오지 않는다. 위험한 일만 안하면 내 세상이 되는 일인데 어찌 소풍에 비하겠는가.

 

 드디어 월요일 아침!

푸셀은 늘 하던 양치질도 빼먹고 자두쨈도 두 숟가락이나 퍼먹고는 행복해 한다. 부모님이 잔소리 하지 않는 세상이 꿀처럼 달달하다는 것을 느끼며. 푸셀이 행복을 느낄 때마다 부모님의 입이 열리려고 하지만 푸셀은 오늘은 잔소리가 없는 날이라는 것을 알려드리며 기분 좋게 학교를 향한다.

 

 학교도 마음대로 조퇴한 푸셀은 여러가지 신나는 파티 계획을 세우지만 성공지수는 0%를 겨우 넘길듯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푸셀의 잔소리 없는 날은 어떻게 마무리가 될까? 푸셀은 정말 잔소리 없는 날이 좋았을까?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펼쳐 드시라.

 

 아이의 나이에서 멀어질수록 어른의 나이에는 가까워질수록 세상은 참 다른 것을 요구하고 그 요구에 허덕이게 된다. 하지만 아이부터 어른까지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잔소리는 참기 힘들다는 것." 이다. 며칠 전에도 엄마의 잔소리에 엄마와 크게 싸우면서 이럴 때면 난 하나도 자라지 않았구나를 느끼지만 엄마의 똑같은 잔소리를 들을 때면 전의 반성은 하늘로 도망가 버리고 또 다시 나도 목소리를 높이는 못된 딸이 되고 만다. 내일은 엄마한테 화내지 말아야지라고 혼자 마음으로 훌쩍이는 밤이 되서야 엄마의 사랑을 느낄때면 어렸을 때 나에게도 잔소리 없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소리에 담긴 사랑과 관심을 보았을텐데......

 

 잔소리에 담겨 있는 것이 사랑인지를 모르는 나이도 아닌 나조차도 이러는데 잔소리를 밥 먹듯 먹고 사는 아이야 두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푸셀처럼 "잔소리 없는 날" 을 갖고 싶어하겠는가.

 

 책을 보며 아이들에게 말로 설득을 시키는 것보다는 아이들이 상상하는 세상을 직접 체험하게 해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스로 느낄 수 있다는 것만큼 귀중한 것이 또 있을까.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님 마음이 조마조마 하겠지만 아이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위험한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이모네 아들 주원이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 한다면 이모가 나를 미워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지만 주원이가 꼭 잔소리 없는 날을 갖게 되길 빌며 책을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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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걷는 악어 우뚝이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52
레오 리오니 글 그림, 엄혜숙 옮김 / 마루벌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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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악어의 이름은 우뚝이. 이름에서 느껴지듯 우뚝이는 정말 두 발로 땅을 딛고 우뚝 서서 걷는다. 마치, 사람처럼.
 

 두 알에서 태어난 악어들 중 왜 우뚝이만이 걷게 되었을까? 계기는 간단했다. 우뚝이는 다른 악어들처럼 쑥쑥 자라 키도 커지고 힘도 세지자 서서 걷는 연습을 하게 된 것이다. 우뚝이라고 처음부터 걸을 수는 없었다. 그저 더 멀리 보고 싶었으며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기에 우뚝이는 쉼없이 연습에 연습을 했고 우뚝 서서 걸을 수 있었다.

 

 우뚝이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나는 저 멀리 덤불 너머를 볼 수 있어."

하지만 다른 악어들은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라며 우뚝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듯이 행동했어요.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마음이 아픈 우뚝이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자신이 태어난 강가를 떠나 길을 가다 원숭이를 만난다. 원숭이에게 물구나무서기 재주도 배우고 거꾸로 매달리기도 배우며 우뚝이는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으며 무엇이든 열심히 노력하며 배워 나갔다. 새로운 것을 잔뜩 배운 우뚝이는 친구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강가로 돌아 온다. 친구들과 더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 우뚝이와 우뚝이를 이상하게 생각하던 친구 악어들 사이에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데......(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직접 읽으세요^^~~)

 

 우뚝이를 보며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외롭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것은 포기하면 안 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시작이란 단어는 설레이지만 그만큼 두렵기도 하다. 내가 그 전에 보지 못한 방식으로 봐야하고, 전에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걸어야 하기에 넘어지고 다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뚝이는 도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그 자체를 즐기며 생활한다. 새로움을 즐기는 우뚝이를 누가 당할 수가 있겠는가.

 

 아이들과 함께 자신만의 재주나 특기를 이야기 하면서 우뚝이를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천천히 하지만 한걸음씩 앞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또한 친구가 자신보다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고 해도 비난을 하기 보다는 격려를 하거나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는 것을 알려주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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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 비룡소의 그림동화 7
존 버닝햄 지음,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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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없는 기러기라니 독특한 제목의 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존 버닝햄 아저씨의 책을 발견하고 좋아하는 것도 잠시 표지 속의 기러기는 정말 제목처럼 깃털이 없이 이상한 회색 줄무늬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며 웃음이 먼저 나왔다. 기러기가 깃털이 없다니, 깃털빠진 닭이 생각나면서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저 기러기에게 무슨 재밌는 일이 생긴걸까라는 마음으로 첫장을 펼친다. 그리고 내 웃음은 그쳤다.  

 

플럼스터 기러기부부에게 자식이 생겼어요. 조심스럽게 알을 낳는 부인을 지켜주느라 플럼스터씨는 분주했고, 플럼스터부인은 알들을 따스하게 품어주느라 엉덩이를 알에서 땔 시간도 없었어요. 그렇게 다섯마리 기러기들이 태어났지요. 새끼기러기들에게 플럼스터씨와 부인은 뽀뽀를 해주며 건강한가를 확인했어요. 첫째도 괜찮고, 둘째도 괜찮았고, 셋째, 넷째도 건강했어요. 그런데 이 다섯째가 세상에 깃털이 하나도 정말 하나도 없이 태어났네요. 이 기러기의 이름은 보르카였어요.

 

플럼스터 부부는 보르카가 아프기라도 한걸까 걱정을 하며 의사선생님을 모셔왔지요. 진찰을 마친 의사선생님은 아주 드문 경우지만 이상은 없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플럼스터 부인에게 보르카에게 추위로부터 지켜줄 털옷을 짜라고 했지요. 보드카는 솔직히 깃털이 없어서 약한 추위에도 덜덜 떨고 있었답니다. 아직은 어리니까요. 이제 보르카는 깃털대신 깃털과 색은 비슷하지만 깃털은 아닌 회색 털옷을 입게되었어요.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던 보드카는 언니 오빠들에게 자랑을 하러갔지만 다들 보드카를 무시했어요. 보르카는 너무 슬펐답니다. 그래도 용기를 잃지 않는 씩씩한 보드카였어요.

 

그러나 어쩌죠? 보르카는 기러기잖아요. 기러기는 철새랍니다. 기러기 무리들은 더 추워지기 전에 그곳을 떠나서 따뜻한 곳으로 가기로 했어요. 기러기들은 아시다시피 기러기들은 하늘 위를 높이 날아서 떼를 지어 이동한답니다. 그러니 보드카는 갈 수 없어요. 깃털이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모두 떠나느라 바빠서 보르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대열에서 빠진 것도 몰랐답니다. 그렇게 보르카는 홀로 여행을 시작했어요.

 

추위를 피하기 위해 올라탄 배에서 놀랄만한 일이 보드카를 기다리고 있어요!!

 

웃을수가 없었다. 웃었던 사실조차 보르카에게 미안해졌다.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 달랐던 보르카의 외모는 동화임에도 아프게 전해졌다. 존 버닝햄은 신기하도록 현실적인 문제를 동화 속에 녹아들게 한다. 전에 나는 동화는 현실과 동떨어진 어린이가 읽는 꿈의 세계라고 생각해왔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을 받으며 어린이 코너에 가서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읽으며 이렇게 알기 쉽게 현실을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린이들에게 이런 책이 읽혀진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지기까지 했다. 어린이때는 현실을 모르고 예쁜 현실에서 살아야한다며 말씀하시는 부모님들을 뵐 때면 속으로 대답하게 된다. 그 어린이가 자라나 현실을 모르고 자신만의 성에 갇힌 어른이 되어버린다고.

 

내 어린시절에 읽었던 <미운 오리새끼>와는 비슷한 소재였지만 전혀 다른 구성에 이 책이 어린이들에게, 어른에게 <미운 오리새끼>와 함께 읽혀져야 된다고 생각했다. 미운 오리새끼는 다른 형제들과는 다른 오리였다. 오리의 세계에서 미운 오리는 장애아였던 것이다. 그러나 미운 오리새끼는 오리가 아니라 아름다운 백조였다. 이건 현실 속에서 절대 있음직한 일이 아니다. 장애아동이 어느날 갑자기 멋있게 변신해 다른 세계로 날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장애아동에게, 그리고 장애인과 함께 공유하며 사는 세상에 사는 아이들에게 언젠가는 백조가 될거라는 동화보다는 장애인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해주어야 하는 건가를 생각해보는 책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보르카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외모만 달랐을 뿐인 보르카를 부모님은 처음에는 품어주며 털실 옷을 입혀주기도 했지만 보르카가 털실 옷을 입고도 보통 기러기와는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홀로 남아있는 보드카를 데리고 떠나지 않는다. 보르카를 데려가기에는 기러기사회가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장애는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르카를 받아준 건 가족이 아니라 사회였다. 장애를 받아주어야 할 건 가족을 떠나 사회여야 한다. 사회가 장애를 품어주며 어루만져줄 수 있어야 장애아를 둔 가정도 그 아이를 맘껏 사랑해주며 품어줄 수 있다.

 

이렇게 아이들에게 들려주고픈 책을 발견할 때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하나씩 아이들은 현실을 품는 법을 배울 것이며 이 아이들이 자라나 어른이 된다는 생각을 하며 미소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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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2-15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티새님, 좋은 리뷰 잘 읽었어요. 축하합니다!
 
하늘을 달리는 아이
제리 스피넬리 지음, 김율희 옮김 / 다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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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이 세상 끝까지

달려라 하니

난 있잖아 슬픈 모습 보이는 게 정말 싫어 약해지니까 외로워 눈물나면 달릴거야

-'달려라 하니' 만화영화 주제가 中

 

 눈물이 날 것 같은 힘든 날이면 달리는 아이가 있다.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땀으로 흘려내기 위해 달리는 아이가 있다. 그럼에도 그렇게 달렸음에도 가슴 속 눈물의 우물이 말라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 더욱 빨리 달리고자 하는 아이가 있다. 신발 밑창이 너덜너덜 해지더라도, 앙상한 몸이 될 정도로 잘 먹지 못하더라도 달리기를 포기 할 수 없는 아이가 있다. 내 기억 속 하니와 닮은 아이, 제프리 매기.

 

 

  사람들은 말한다. 매니악* 매기에 대해서.

(*매니악-원래 거칠게 행동하는 사람이나, 열광적인 사람을 뜻하는 말로 이 책에서는 무엇이든지 다 해낼 만큼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옮긴이)

매니악 매기 그를 처음 본 사람들이 입을 연 순간부터 그 아이는 전설이 되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이 매니악 매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의 실제 이름은 제프리 매기였고 모두들 그가 쓰레기 더미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제프리는 평범한 집에서 평범한 부모님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 평범한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는데 높은 철교를 건너는 기차가 물로 빠지는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열차에 제프리의 부모님이 타고 계셨고 제프리는 고아가 되었다. 세 살에.

 

 고아가 된 제프리는 도트 숙모와 댄 숙부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그건 아주 불행한 일이었다. 도트 숙모와 댄 숙부는 사이가 더이상 안 좋아질 때까지 싸웠으며 서로를 미워하고 있었기에 말도 하지 않았으며 물건도 따로 갖고 있었고 제프리 역시 할 수만 있다면 둘로 나눌려고 했다. 그런 집에서 제프리는 12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 침묵으로 답하며 미움으로만 가득찬 집에서. 12살 학교 행사 무대에서 큰 목소리로 제프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앉은 숙모와 숙부에게 소리쳤다.

 

 "말해요, 말해! 서로 말해요! 말해."

 

 그 때부터 제프리는 화장실이 두 개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며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도 않았고 오로지 달리기만 했다. 지금부터 제프리 매기가 왜 매니악 매기가 되었는지 그 여행이 시작된다.

 

 달리기를 하려는 아이일수록 가슴에는 눈물 항아리를 여러개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프리는 목적도 없이 달렸으며 그저 달리고 농장에 들어가서 잠을 잤고 들소의 먹이를 함께 나눠먹으며 앞으로 조금 더 앞으로 달려 나간다. 그리고 절대 울지 않았다. 그저 달릴 뿐.

 

 제프리가 1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전에 살던 홀리데이스버그에서 320킬로미터는 먼 거리에 있는 투밀즈였다. (물론 제프리는 달리기로 그 거리를 이동해왔다.) 투밀즈는 동쪽과 서쪽으로 백인과 흑인 마을이 분명한 선을 긋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 선은 마음의 선. 서로가 서로를 몰라 무서워하면서 미워하고 경멸하면서. 그곳은 멀리서 보면 마치 전에 살던 숙부의 집과 같았다. 숙부의 집 보다 조금 더 큰 집일 뿐. 그곳을 도망치지 않는 제프리. 제프리는 그곳에서 자신도 모르게 흑인과 백인 사이에 놓인 담을 싼 벽돌을 하나씩 치우기 시작한다.

 

 흑인과 백인이란 인종을 부르는 이름이 왜 생겨났는지 이해할 수 없는 제프리. 제프리에게는 누구나 다 같은 사람일 뿐이다. 제프리를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주는 좋은 사람들 뿐이다. 그곳에서 제프리는 가족을 얻게 된다. 흑인 가족 아만다 가족과 백인 가족 그레이슨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제프리는 처음으로 가족이 주는 행복과 따뜻함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제프리는 늘 불안하고 어딘지 모르게 언제 어디서든 달리기 할 수 있도록 준비된 자세로 살고 있다.

 

 마음을 열 수 없는 아이 제프리. 그 아이를 보며 왜 내가 슬픈 걸까? 제프리는 울지도 않고 그저 달리기만 하는데 왜 내 마음에 슬픔이 가득차는 걸까? 그 아이는 울지 않기 위해, 스스로 슬픔에 빠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며 달리는 걸까? 숨이 턱 끝에 찰 때까지, 보고픈 이가 있는 세상에 도달할 수 있을만큼의 속도로 달리며 아무생각 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이 참아내고 있는 걸까?

 

 성장동화를 좋아하는 내게 제프리는 색다른 주인공으로 다가 왔다. 슬퍼도 울지 않는 아이, 자신의 불행에도 타인을 위한 배려와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아이, 사랑 받지 못했음에도 가슴 속에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 사랑이 넘치는 아이. 그런 제프리의 가슴 속에 들어있는 사랑을 왜 숙부와 숙모는 몰랐을까? 자신들 가슴에 가득한 미움을 챙기느라 제프리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그 어른들에게 화가 나기 시작한다.

 

 제발 어린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늘로 휙 던져버렸으면 좋겠다. 여기 제프리를 보라. 제프리는 아무것도 모르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다. 마을 사람들이 입이 쩍 벌어질만한 일을 수도 없이 해내면서 '매니악 매기'라고 불리지 않는가. 에리히 캐스트너의 말처럼 아이의 눈물과 어른의 눈물의 무게는 같다. 슬픔과 기쁨 역시 그 깊이는 같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니악 매기, 너를 만나서 행운이었어. 네가 가진 그 모든 재주와 능력이 없다해도 널 사랑할거야. 그러니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지는 말아줘. 넌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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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의 전화박스 아이북클럽 7
도다 가즈요 글, 다카스 가즈미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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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세상에서 알고있는 가장 아름다운 여우는 누구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난 <여우의 전화박스>에 나오는 엄마 여우라고 말할 것이다, 주저없이. 어린왕자의 여우도, 노란 양동이의 여돌이도 잠시 뒤로 하고 마음을 촉촉히 적셔주는 엄마 여우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어릴 때는 영악하고 얌체 같은 동물이라고 언제부터인가 여우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들을 보며 여우가 사랑스러워지고 귀여워지기 시작했다. 노란 양동이의 여돌이를 보며 귀여운 여우를 알게 되고, 어린왕자의 여우를 만나며 현명한 생각과 맑은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 책의 엄마 여우를 보며 밤하늘의 보름달처럼 너무 밝지는 않지만 곱고 은은한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깨닫게 된다.

 

 잠시 이야기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고요하고 한적한 어느 산기슭에 아주아주 오래된 전화박스 하나가 서 있었어요. 한적한 곳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어 전화박스는 늘 혼자였지만 해질 무렵이면, 전화박스 안에는 불빛이 깜박 켜져 전화박스의 친구가 되어주었죠. 그리고 그 산 속에는 털빛이 고운 아기 여우와 엄마 여우가 살고 있었어요. 아빠 여우의 죽음도 엄마 여우는 아기 여우의 재롱을 보며 이겨내었답니다. 그만큼 아기 여우는 귀여웠고 엄마 여우의 삶을 지켜주었죠. 아기 여우는 엄마 여우가 자신을 지키는 것인지 알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아기 여우는 아프기 시작했고 결국 아기 여우는 엄마 여우를 두고 떠나고 말았어요. 실의에 빠진 엄마 여우는 날마다 울기만 했지요. 그렇게 눈물로 온몸이 흠뻑 젖던 날들이 가고 해질 녘, 엄마 여우는 아기 여우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길을 걷던 중 산기슭의 공중전화를 발견했죠. 은은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전화박스를요.

 

 그 전화박스로 한 아이가 들어가 수화기를 들며 "엄마"라고 외쳤어요. 고요한 밤길에 갑자기 퉁겨 나온 낭랑한 목소리에 엄마 여우는 아기 여우가 떠올라 가슴이 뛰었답니다.

 

 해질녁이 되면 산기슭에는 불빛이 은은한 전화박스와 엄마 여우 그리고 아이가 함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달빛을 닮은 기적이 시작되려 한답니다.

 

 다카스 가즈미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인해 책을 읽는 동안 눈 앞에 애니메이션이 펼쳐진 듯도 하고 ,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아기 여우가 되어 보기도 아이가 되어보기도 하며 엄마 여우의 주위를 맴도는 이가 되려 한다.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눈 것임을, 엄마의 기적을 나도 보았음을 전화박스의 기적 역시 보았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 아름다운 기적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 것일지도.

 

 저녁 무렵 길을 걸을 때면 홀로 불이 켜진 전화박스가 보일 때마다 엄마 여우가 생각 난다. 나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불빛을 밝혀 준 적이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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