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애 번역본 <그림 동화>에 대해서 또 뭔가 아는 척 끄적끄적하고 나서 알라딘을 이리저리 해파리처럼 방황하고 있자니 첫화면에 나온 신간 중에 표지 디자인 비스무리한 것이 있어서 뭔가 하고 살펴보니 무려 스티븐 킹의 시간인데 제목이 <페어리테일>이다.


처음에는 제목 그대로 "우리 시대의 동화"를 제임스 서버 식으로 써 놓았나 궁금해서 미리보기를 클릭해 보았는데, 구구절절한 묘사와 함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을 보니 장편인 듯하다. 프랭클린 이야기만 해도 막 공포스러워지는 작가이니 우화는 무리일까.


그나저나 맨 앞의 헌사를 보니 REH, ERB, HPL이라는 이니셜이 등장하기에 뭘까 생각해 보니, 첫 번째와 세 번째는 알겠는데 두 번째는 누군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고민 끝에 결국 구글링해 보았더니 나처럼 궁금해 한 독자들이 많았는지 이미 답변이 나와 있다.


내가 못 맞힌 사람은 바로 <타잔>과 <펠루시다>의 작가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였다. 나머지 두 사람은 로버트 E. 하워드와 H. P. 러브크래프트인데, 로버트 실버버그의 "지옥의 길가메시"에서도 그랬듯이 종종 세트로 붙어 다니니 금방 딱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나저나 러브크래프트의 인기인지 유행인지는 솔직히 무엇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콜린 윌슨의 말마따나 독창적이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뭔가 허술한 느낌도 없지 않은데, 바로 그런 저렴한 재미 때문에 사람들이 더 열광하는 것인지 다른 이유가 더 있는지.


러브크래프트와 관련해서는 비교적 최근에야 그에 대한 언급이 들뢰즈/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에 나온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그 두꺼운 책을 뒤적여 보았던 기억이 난다. 저자는 철학자라면서 웬 코스믹 호러를 언급하나 싶어서 의아하고 또 신기했었다고 할까.


들뢰즈/가타리가 러브크래프트를 언급한 대목은 타자니 의태니 하는 개념과 연관지어서였던 것 같은데, 그 전후 맥락만 살펴본 것이어서 정확한 의미까지는 역시나 불명이었다. 핑크 팬더도 나오던데 그게 영화인지 만화 캐릭터인지 영화 속 보석인지도 애매했고.


가만 보면 철학자인 저자들은 영화나 소설에서 가져온 사례를 이용해서 개념을 설명하는데, 독자나 연구자는 오히려 실제보다 더 심오한 의미인 것으로 오해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라이너스의 담요를 굳이 라이너스 폴링의 담요로 오역한 실제 사례처럼.


물론 들뢰즈/가타리를 숙독했다고 해서 러브크래프트가 더 재미있어질 리야 없겠지만, 러브크래프트를 숙독한 사람이라면 들뢰즈/가타리를 읽으면서 좀 더 잘 이해할 만한 대목이 몇 개쯤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양쪽을 다 본 사람이 흔치야 않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