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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알 것이다. 그것이 신화든 사실이든 역사든 간에 그것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은 이런 것일 것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이 있다. 이걸 도시로 옮겨 오면 건물이 높으면 그 아래의 그림자는 길다는 뜻이 된다.
바벨탐은 왜 무너졌을까. 그것은 의사소통이 문제였을까? 하느님에 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라고 본다. 바벨탑이 무너진 것은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알지 못하고 물질적 풍요만을 과도하게 믿었기 때문에 무너진 거라고 생각한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탑 속에 산다. 행복할 수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산다. 그렇다면 그 뒤에 일어날 일은 자명하지 않을까. 불행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 무너지지 않는 다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바벨탑이 현대 사회에 주는 교훈은 이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우리도 지금 그것을 망각한 채 또 다른 바벨탑을 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나라 강남이라는 소위 땅값 비싼 곳에 고층 아파트가 생겨났을 때 그 아파트에서 바라다 보이는 곳은 서울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인 빈민촌이었다. 그것의 대비는 단순하게 빈부의 격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격차, 소통의 단절의 격차, 극과 극으로 달리는 나라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가 이 작품을 봐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작품 속에는 그런 우리의 문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전작인 <화차>를 본 독자라면 이 작가가 사회 문제에 대해 추리 형식을 빌려 탁월하게 어필함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부동산이라는 문제, 더 나아가서 고층 아파트라는 부의 상징물에서 벌어지는 우리들의 잔인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가고 있다.
이 작품의 백미는 마지막 단 한 페이지에 있다. 물론 형식이 다큐멘터리, 또는 르포 형식이라는 점도 새롭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도 이 작품을 우리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살인과 범죄가 난무하는 추리 소설로 읽을 수만은 없게 하는 점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걸 알려면 끝까지 읽어야겠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내 아버지도 이런 생각을 하셨을까. 자식에게 좋은 옷, 맛난 음식, 비싼 집에 살게 하시려고 애를 쓰셨을까. 그리고 자식들에게 혹은 멸시 당한다는 느낌을 받으시고 속으로만 삭히시지는 않으셨을까.
행복이 그런 것은 아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물질적인 무엇을 대단하게 요구하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에게 그런 버릇을 들이지 않는 한. 나는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고 그렇게 교육받았다. 요즘은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요즘 아이들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부모의 사랑과 작지만 행복한 가정을 원하는 것이지 물질적 풍요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속담에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그건 뱁새는 뱁새 나름의 행복이 있고 황새는 황새 나름의 행복이 있다는 뜻일 게다. 행복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맞이하는 것이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누군가의 행복을 따라하는 것은 행복이 아니다. 우린 그걸 알기도 하고 또 모르기도 하다.
옛날에는 비가 새는 단칸방에서 새우잠을 자도 행복했었다고 어른들은 말을 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책을 보며 이쯤해서 가정과 행복, 나아가서 우리 사회의 방향 설정을 다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괜히 쓸데없이 부동산에 관련된 책이나 아이 영재로 만드는 책을 읽을 생각이라면 우선 이 책을 먼저 읽어 보고 그 뒤에 그런 책을 보시기 바란다. 그래도 늦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