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월드
기리노 나쓰오 지음, 윤혜원 옮김 / 마루&마야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현실 세계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리얼 월드라... 그럼 우린 버추얼 월드에 살고 있다는 얘기인가. 기리노 나츠오는 제목에서부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파고든다.

 

옆집에서 쨍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유리창이 깨지는 듯한. 호기심은 일었지만 남의 집 일이라 상관하지 않았던 도시코는 학원을 가려고 나서다 옆집 남학생, 평소에 미미즈라고 놀리던 동갑내기를 만나지만 모른척한다. 하지만 미미즈는 자신의 엄마를 살해하고 도시코의 휴대폰과 자전거를 훔쳐서 도망을 가버린다. 왜 도시코는 그 아이가 자신의 휴대폰과 자전거를 훔쳤다고 경찰에게 말하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도시코가 호리닌나라는 가명을 쓰고 아이라고 귀찮게 이용만 하려는 어른들을 불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자신도 엄마가 혹은 아빠가 죽어버렸음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런 이유뿐이었다. 그 도시코의 휴대폰에는 도시코와 같이 다니던 친구 나머지 세 명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미미즈는 그들 세 명 모두에게 전화를 건다. 그의 전화가 도화선이 되어 그들은 자신만의 리얼 월드를 공개한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리얼 월드를 친구들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고 드러내면 친구들에게 멸시당하거나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것을 잘 숨기고 버추얼 월드에서 친구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런 그들의 고민을 알고 있다.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절대 말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것이 리얼 월드이고 어떤 것이 버추얼 월드일까.

 

데라우치는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란 미미즈가 벌인 존속 살인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쪽으로 가버리는 일이다. 한번 그 길로 들어서면 다시는 되돌아 나올 수 없다. 그것은 끝이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도, 이해받을 수도 없는 모순 속에 빠져 계속 허우적댈 수밖에 없고 자기혐오와 타협한다는 것은 자아의 상실, 자기 소멸을 뜻하기 때문이다. 소멸된 인간에게 돌아나 올 길은 분명 없지 않을 까.

 

잔잔했던 호수에, 아니 잔잔하다고 생각했던 호수에 어느 날 누군가 돌멩이 하나를 던졌다. 돌멩이가 날아든 호수에 끝없이 동심원이 그려지며 퍼진다. 하나씩 동심원이 생길 때마다 하나의 리얼 월드와 버추얼 월드가 충돌한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파괴된다. 그래도 여전히 호수는 그대로 있다. 과연 호수가 네 명의 친구일까? 아니면 단지 동심원 네 개로만 존재했던 것이 그들이었을까? 분명 돌멩이는 밖에서 들어와 그들의 세계를 드러내게 만든 미미즈다. 리얼 월드가 호수일까? 버추얼 월드가 호수일까? 기리노 나츠오의 작품 속에서의 네 친구들은 어떤 세상이 진짜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허상과 실상에 대한 구분이 쉽지 않고 그것을 잘 알 수 없는 진지한 아이들의 마음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미미즈가 도망다니며 자신을 필리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맞던 일본 병사와 동일시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지금 일본의 극우적 상황에 대한 작가의 생각의 반영일까?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뀐 상황, 자신들을 피해자로만 인식하는 일본인들의 유아적 생각에 대한 일침인지 궁금하다. 작가는 글로 자신의 사상을 드러내는 존재들이므로.

 

<아웃>의 여고생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미숙하고 어리석고 한심해보이지만 그들 나름으로는 진지하고 학생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같은 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기리노 나츠오와 온다 리쿠는 이렇게 다르다. 너무 환상적으로 좋은 쪽만을 보여주려고 하는 온다 리쿠의 학원물이 질리게 할 때도 있는 반면 기리노 나츠오의 4인 구도는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에 질릴 틈이 없다. 이미 첫 장부터 기가 죽고 들어가게 되는 작품이니까. 아무튼 어떤 작품이든 기리노 나츠오의 작품에는 마력이 있다. 삶을 다시 보게 만드는, 관점을 새롭게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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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07-05-29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웃>이 브리핑에서 안 보여요. ^^; 이 책 사놓고 아직 못 읽었는데, 기대되네요. 기리노 나쓰오의 책은 아무래도 중독성이 있는 거 같아요.

물만두 2007-05-2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밤님 아웃이 안보여요? 제목이요~ <>때문이겠죠. 기리노 나츠오에겐 마력이 있죠^^

2007-05-29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ika 2007-05-29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는 일부러 하신것이었담마림까? ;;;;

비로그인 2007-05-29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임소리마마 를 그냥 그렇게 봐서...
근데 리뷰는 땡기는데요 :)

물만두 2007-05-29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저는 기리노 나츠오를 좋아하니까요^^;;;
치카 일부러가 아니라 리뷰 중에서 빼온거얌~
체셔고양2님 제가 기리노 나츠오를 일본 작가중에 제일 좋아합니다^^

paviana 2007-05-2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리뷰] 의 여고생판! - 물만두  새창에서 보기

요렇게 브리핑에 떠서 궁금해서 왔어요.새로운 호객행위인가요? ㅋㅋ=3=3=3


물만두 2007-05-29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 ㅋㅋㅋ 그렇군요^^;;;

세실 2007-06-08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축하드립니다. 역시 추리소설 이군요~~~

물만두 2007-06-08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늘 추리소설입니다^^

홍수맘 2007-06-12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축하드려요. 이제야 봤어요. ^ ^;;;

물만두 2007-06-12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왕 뒷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