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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5월
평점 :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를 다 읽고 골라 든 책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티티새였다. 이제 막 글씨를 익히기 시작한 4살짜리 조카가 내 방에 와서 이 책의 표지를 보고는 요.시.모.토.바.나.나...... 티.티.새 그다지 명확하지도 않은 발음을 하고 한글짜를 읽어 나가던.. 어제 밤에 읽기 시작한 책은 오늘 오후가 되어서야 책 표지를 덮을 수 있었다. 한편의 순정 만화를 본 듯한 느낌 이랄까?
세상에 대한 불평과 원망으로 자신의 삶을 지탱해 오던 주인공이 진정한 사랑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다는 간결체가 돋보이는 다소 여성적인 소설이었다. 그리 긴 장편은 아니었어도 여러가지 생각을 갖게 만든 책이었다. 아직 정리 되지 않은 머릿속 이야기를 하나씩 그냥 주절주절 얘기해 보련다..
1. 첫인상
'츠구미는 정말이지 밉살스런 여자 애였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을 대면할 때의 첫인상처럼 글을 읽을 때 그 첫문장이 강렬하면 왠지 그 소설에 대한 느낌이 좋다.. 이 첫 문장을 살펴 보면, '츠구미는 밉살스런 여자 애였다'라고 했다. 여자 애이다..라고 하지 않고.. 이미 츠구미는 밉살스럽지 않은 존재인지,, 밉살스러운지 아닌지도 구별할 수 없는 현실세계에는 없는 존재인지.. 그 첫 문장에서 바나나는 이미 소설 전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2. 티티새
티티새는 일본어로는 츠구미, 한국말로는 개똥지빠귀이다. 이 새는 겨울철새로 참새과에 해당하는 새이다. 그러나 소설의 배경은 '한여름'이다. 주인공 츠구미는 왜 겨울 철새의 이름을 가졌을까? 겨울, 그것도 철새 처럼 츠구미의 생명력에는 한계를 가졌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냉정하고 차가운 그녀의 성격이 남이 갖지 못한 인생의 겨울을 날 수 있었던 유일한 방편이었을지도..
3. 인물들의 성격
소설은 내 (마리아)가 바라본 츠구미와 그녀에 둘러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 씀씀이가 넓고 생활에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사람들로 비춰진다. 나 (마리아)는 츠구미의 사촌으로써 첩의 딸로 태어나 20여년간 제대로 된 가정생활을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대해 너그러운 시각을 가졌으며 원만하고 배려 깊은 성격이며, 츠구미의 남자친구 쿄이치는 미남에 서글 서글한 성격에 배려와 사려심이 깊은 청년이다. 그리고, 츠구미의 언니인 요코언니는 성인과 같은 마음 씀씀이와 온화하고 상냥한 성격이 누구에게나 호감 사고 남을만한 존재이다.
그러나 츠구미만은 이런 평범한 등장인물들의 성격에는 다소 거리가 있는 개성적인 존재로 비추어진다. 그녀는 어렸을때부터 몸이 허약해 부모의 과잉 보호로 자라 심술궂고 거칠고 입이 험악하고 제멋대로고 응석 받이고 영악하다. 평화롭고 온화한 사람 속에서 츠구미의 성격은 더욱 더 빛을 발한다. 어둠 속에서 유독 잘 보이는 한줄기 빛과 같은..
4. 20대 초반의 시선
인생의 중반이 되어 버리면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연애 이야기, 죽음의 이야기, 추억 이야기... 소설 <티티새>는 그런 묵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나보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작가의 말에서 가족과 함께 매년 가는 바닷가의 아름다운 모습을 책 속에 담아보고 싶었노라고 했다. 그녀가 그리고 싶은 것은 무게가 있는 고통과 아픔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름다운 잔상들이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등장 인물들이 인생에 대해 어느 정도 타협해 버린 나이여서는 안됐었겠지.. 마리아도, 츠구미도 쿄이치도 요코언니도 20대 초반의 풋풋하고 감수성 예민한 스무살의 시각으로 사랑, 죽음, 추억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