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페코로스 시리즈 1
오카노 유이치 지음, 양윤옥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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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 쯤, 출판사 라이팅하우스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책 한 권을 드리고싶은데 아무 조건은 없이, 그저 이 책을 읽고 느낀 감동을 주위에 나누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말과 함께. 출판사로부터 책을 보내주겠다는 연락은 자주 받지만 그때마다 책을 받은 대가로 서평을 써야하니 부담스러운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이 메일엔 기분좋게 답장을 보냈다. '그럼 감사히 읽겠습니다!' 라고. 

신기하게도, 오카노 유이치의 이 만화에 대한 내용을 SBS 스페셜이었나.. TV 프로그램에서 잠깐 다루었던걸 보고 읽어보고싶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선물을 받게되니 어찌나 반가웠던지. 블로그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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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코로스'는 일본어로 '작은 양파'라는 말이라고 한다. 작가인 오카노 유이치의 별명이라고 하니 이 만화는 작가의 실제 이야기를 그린 걸 알 수 있다. 60대인 아들이 치매에 걸린 엄마를 보며 그린 이야기. 항상 나에게 가르침을 주던 부모님이 어느순간 나보다 어린아이가 되어 내가 사소한 것 하나하나 알려줘야 한다는게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지 가까이에서, 엄마와 외할머니를 보며 알게 되었다.  

오카노 유이치는 이렇게 마음이 아플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그만의 방식으로 미소가 지어지는 상황으로 표현해낸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를 옆에 있는것처럼 말하는 어머니를 보며 어머니가 치매이기 때문에 그리운 아버지를 다시 볼 수 있다는거라면 치매가 그리 나쁜게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하고, 다 잊어도 좋으니 곁에서 오래오래 살아계셔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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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요즘 정말 애정하고 있는 TV 프로그램인 <비밀 독서단> 에서도 이 책을 소개한 바 있다. 패널들이 어찌나 책 소개를 감질나게 해주시는지 그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책은 꼭 읽고싶어지는데, 지금 포스팅을 읽고계시는 분들이라면 <비밀 독서단>에서 이 책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영상도 찾아보셨으면 좋겠다. 말주변이 없는 나보다 더! 더! 멋지게 이 책을 소개해주고 있으니.  


부모님 이라는 존재는 태어날때부터 내 곁에서 항상 나를 지켜봐주셨기 때문에 당연하게 느껴 행동이나 말투에 조심스러움을 잊은적이 많다. 이 만화를 읽고 엄마, 아빠에게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고백을 했다. 정말 언젠가는 내가 아무리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싶어도 그 말을 전하지 못할 때가 올테니.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말해도 들리지 않는 '부모님께 효도해야해!'라는 말. 이 잔잔한 만화는 책장을 넘기는 순간 순간마다 당장에 부모님에게 내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표현하고, 당장에 부모님께 효도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게하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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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문학 - 하루가 더 행복해지는 30초 습관
플랜투비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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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1년 전만 하더라도 이렇게 무미건조하진 않았는데, 요즘은 내 삶에 말랑말랑함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내가 적어두었던 많은 글들을 다시 읽으며 새삼 깨닫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남겼던 포스팅을 읽을땐 코끝이 찡해졌다. 난 저렇게 말랑말랑한 사람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딱딱해져버렸을까, 무미건조해져버렸을까.

사람을 만나면 행복한 이야기보다 신세한탄이나 걱정들을 꺼내놓을 때가 많아져 집에 돌아오는길에 찬찬히 생각하면 내가 내뱉었던 말들에 후회가 많이 남는다. 이럴때일수록 옆에서 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으련만 내 옆에 있는 사람들도 다 같이 딱딱해져만 간다. 그럴 시기인가보다 지금은. (그래도 최근 이틀, 여행을 떠났다는 친구의 사진을 받고선 진심으로 행복했다. 오늘 아침에 에쿠니 가오리의 책과 일출 사진을 찍어서 보내준건 정말 최고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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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을 잡고 있기가 힘들 때 딱 좋은 책을 만나 소개해주고 싶었다. 

《1도씨 인문학》!! 행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냈던 아이디어들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잠깐, 잠들기 전 잠깐, 친구를 기다리며 잠깐. 이렇게 잠깐잠깐 펼쳐 읽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짤막한 글과 사진들인데 이 '잠깐'은 하루종일 미소를 머금게하는 행복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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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다 무심코 지나쳐버리고 마는 옥외광고판. 이 광고판의 유휴공간을 이용에 노숙자들에게 따뜻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준다는 마음 따스해지는 '그레고리 프로젝트' 이야기도 알 수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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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으로 인해 학업의 기회를 받기 어려운 우간다 여성들을 위해 샌들을 만들어 판매하게 하고, 그 수익으로 대학을 갈 수 있도록 하자는. 어쩌면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아이디어였지만 이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긴 소녀 '리즈 보하논'의 이야기도 알 수 있었다. 

이 글을 읽고 알게된 세코 샌들은 알아보니 정말 우간다 여성들에게 큰 희망이 되어주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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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이렇게 세상을 행복하게 만든 장본인(?)들의 인터뷰도 볼 수 있어 그들의 생각을 한층 더 깊게 엿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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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전보다 더 '좋은 글귀', '좋은 사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빨리빨리'를 강요받는 사회에서 여유를 가지고 긴 글을 통해 딱딱해진 마음을 말랑하게 만들기엔 부담스러운 사람이 많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계속 딱딱해진 마음을 딱딱한 그 상태로 방치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물론 요샌 하도 인터넷으로 좋은 글귀, 좋은 사진들을 접하기 쉽지만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보단 가방 속에서 책 한권을 꺼내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내며 좋은 글귀, 사진을 보는게 더 말랑말랑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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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9
앙드레 지드 지음, 오현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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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꾸역꾸역 의미를 찾아내려는 버릇이 있다. 때로는 그저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음에 기뻐하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만난 것에 만족해하고, 그냥 좋았던 책으로 기억에 남기는 것도 의미있는 일인데말이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그런 책이었다. 대단한 의미를 담고 있을 것 같아 아무것도 모를때 읽기는 싫어 계속 책장에 놓여있던 책, 그러다 바쁜 아침에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닐 가벼운 책을 찾다 집어든 책. 그래서였을까 그저 책의 마지막장을 덮게 되었음에 기뻤고, 그와중에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만나 만족했고, 그냥 좋았던 책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에 대한 명성 때문이었을까. 무언가 대단한 의미를 담고있을 것만 같은데, 그 의미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건 아닐까 싶어 쉽게 이 책에 대한 글을 남길 수가 없었다. 책을 다 읽고 기록 없이 그냥 넘기는건 뭔가가 많이 찝찝한 기분이라 불편하게 계속 책상 위에 던져둔채 시간이 갔다.


시험기간엔 공부 빼고 다 재밌더랬지, 마음에 와닿았던 문장들에 붙여놓은 포스트잇이 삐죽삐죽 튀어나와있는걸 보고 다시 들어 읽었는데 알리사의 말이 내가 연애를 하며 두려워하던 그것을 (하지만 두려워하던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가 없어 표현이 어려웠던 그것을!) 어찌나 속시원하게 말해주던지. 그것만으로도 괜히 좋아서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러왔다.


그랬다. 굳이 책의 대단한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저 책을 읽으며 좋았다면 그 뿐. 그저 그 순간의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을 챙겨담을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잘했다. 잘한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p, 23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니?"

그녀는 대뜸 말했다.

"넌 지금 어떤 환영(幻影)에 대한 사랑에 빠져 있는 거야."

"아니야. 결코 환영에 대해서가 아니야, 알리사."

"상상적인 어떤 인물과……." 

"아! 내가 그런 걸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냐. 알리사는 내 애인이었어. 그녀를 기억하고 있어. 알리사! 알리사! 너는 내가 사랑하던 여자였단 말야. 너는 그때의 너를 어떻게 해버린 거지? 무엇이 돼버린 거냔 말야?"

그녀는 얼마 동안 아무 대꾸 없이 가만히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한 송이의 꽃잎을 천천히 뜯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롬, 왜 그전보다 나를 덜 사랑한다고 아주 솔직히 말하지 않는 거니?"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라고 나는 격분하여 소리쳤다.

"내가 이보다 더 널 사랑한 적은 없으니까."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하지만 너는 예전의 나를 그리워하고 있어."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고 하면서, 살짝 어깨를 들어올리면서 그녀는 말했다.

"나는 내 사랑을 과거에다 놓을 수는 없어."

발밑에서 대지가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에나 매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은 그 나머지 모든 것과 더불어 흘러가버리지 않을 수 없는 거야."

"내 사랑은 죽는 날까지 나와 함께 있을 거야."

"그것도 차츰 스러져갈 거야. 제롬이 지금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그 알리사는 이미, 이젠 제롬의 추억 속에만 있을 뿐이야. 언젠가 알리사를 사랑한 적이 있었지, 하는 기억밖에 남지 않을 그런 날이 올 거야."

"너는 마치 무언가가 내 가슴속에서 알리사에 대치될 수 있다거나 내 마음이 이젠 더 사랑해서는 안 되게 되었다는 투로 말하는구나. 네 자신이 나를 사랑해왔다는 것은 이젠 더 생각나지도 않니? 그렇지 않고서야 나를 괴롭히는 게 이렇게 기꺼운 듯이 보일 수 있을까?"

나는 그녀의 핏기 없는 입술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보았다.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그녀는 중얼거렸다.

"아냐 아냐, 알리사의 마음은 변치 않았어."

"아니 그럼,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잖아?" 하고 나는 그녀의 팔을 꼭 잡으며 말했다.

그녀는 더 자신 있게 말을 이었다.

"한 마디면 모든 게 다 설명될 거야. 왜 터놓고 말 못하니?"

"무슨 말?"

"내가 나이가 많다는 것."

"그만둬……."

나는 곧장 나 또한 그녀 못지않게 나이를 먹었고, 우리 두 사람의 나이 차는 예전이나 다름없다고 항의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진정이 되어 있었다. 유일한 기회는 이렇게 해서 지나가버렸다. 나는 말다툼에 말려듦으로써, 유리했던 점을 완전히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틀 후에 나는 퐁그즈마르를 떠났다. 그녀와 나 자신에 불만을 품고서, 또 내가 그때까지 '미덕'이라고 부르던 것에 대해 막연한 증오감과 내 마음속에 늘 자리하고 있는 집념에 대해 원한을 품고서. 그 마지막 해후에서, 나는 내 사랑의 과장, 바로 그것 때문에 나는 내 모든 열정을 다 소진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에 내가 반대해보려던 알리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항변이 끝나버린 다음에도 여전히 생생하고 의기양양하게 내 마음속에 머물러있는 것이었다. 그래, 분명코 그녀가 옳았어! 나는 하나의 환영만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지금도 내가 사랑하고 있는 알리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 분명코 우리는 나이를 먹었다! 내 가슴을 온통 얼어붙게 한 소름 끼치는 그녀의 멋없는 변화도, 결국 따지고 보면 본래의 상태로 돌아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내가 조금씩 그녀를 한층 더 높이 떠올리고,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으로 장식해 하나의 우상으로 만들었다고 한들, 그러한 내 수고에서 지금은 피곤 이외의 그 무엇이 남아 있는가? …… 혼자 있도록 내버려두자마자 곧 알리사는 자기의 수준, 그 평범한 수준으로 다시 내려와버렸으며, 나 자신도 그 수준에까지 다시 내려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수준에서는 이미 그녀를 더 사랑하고 있지 않았다. 아!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써 그녀를 올려놓았던 그 높은 곳에서, 다시 그녀와 함께 있으려던 그 미덕에 대한 헌신적인 노력도 이제는 얼마나 어리석고 꿈 같은 것으로 생각되는 것인가? 조금만 긍지가 덜했던들 우리의 사랑은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상을 잃은 사랑에 집착한다는 것은 이제부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고집이 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충실한 것도 아니다. 구태여 충실하다고 말해본듯 무엇에 대한 충실일 것인가? 그것은 하나의 과오에 대한 충실일 따름이다. 가장 현명한 것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인해버리는 게 아닐까? 

-p, 148~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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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마일 클로저
제임스 후퍼 지음, 이정민.박세훈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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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지막으로 삶에 큰 변화를 준게 언제였던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엄청난 모험이나 도전을 했던 적은 까마득하고, 변화를 지양하는 잔잔한(이 글의 분위기에 맞추자면 무미건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구나.

이 책을 읽고 '이렇게 살면 안돼!'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 훌쩍 여행을 떠나거나 사이클을 배운다거나 에베레스트산 정복을 목표로한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못할거란걸 나는 잘 안다. 현실은 일단, 내년에 있을 시험을 생각하며 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한껏 꾸미고 나가고 싶은 마음도 꾹 누르고 책상 앞에 앉아야하지만 엄마한테 통보를 해두었다. "엄마! 나 시험 끝나자마자 유럽여행 갈거야!"






 





제임스 후퍼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권했던 첫번째 단계는 이 책을 던져버리고 인생이라는 모험에 뛰어들라는 것이었다. 이렇게나 모험과 도전, 직접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것을 중시하는 남자였던 것이다 그는.

생활을 뒷전으로 하고 모험을 하며 살아도 괜찮을만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비슷한 걱정을 하고, 그럼에도 도전을 하는 그의 모습에 반했다. 항상 완벽한 성공을 이루어낸게 아니라 끊임없이 실패를 하고 그 실패를 발돋움하여 다시 도전하는 그의 모습에 반했다. 위험천만한 모험을 함께 하던 친구의 죽음을 통해 살아가면서 후회하는 일을 남겨놓지 않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거나 엄마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성전환수술을 하는 걸 지켜보며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을 깨닫는 그의 모습에 반했다. 특히 그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정말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워서 반했다. 이 책을 읽는동안 이렇게나 수없이 그에게 반해버렸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제임스 후퍼가 모험적인 삶을 살게 되었을 때 이후의 그의 행보, 가치관에 대해 쓰여진 글이지만 책 제목이 《원 마일 클로저》라고 지어진 이유가 있을 터, '원 마일 클로저'는 그의 친구 롭의 죽음 이후 그 친구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제임스 후퍼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뜻깊은 도전을 하고 모인 기부금을 (롭이 생전에 중요시했던 교육을 위해) 우간다의 중학교에 기부하는 캠페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 책을 읽는 내내 사고를 당해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에게 헌정하는 느낌이 들었다. '원 마일 클로저' 캠페인에 최근에는 그가 출연했던 프로그램인 '비정상회담' 출연자들까지 이 캠페인에 참여했다고하니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알면 알수록 더 괜찮은 사람인 '제임스 후퍼'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이었고, 무미건조한 삶에 변화를 주고싶어지는 책이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목표를 세우고 성취하는 것을 마치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으로 여기는 것은, 그 벽 바로 아래 서서 위를 쳐다보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벽은 어찌나 견고하고 높게만 보이는지, 벽을 이룬 벽돌 하나하나가 '네가 왜 이 목표를 이룰 수 없는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만약 모두가 원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마법처럼 그 돌담 위에 올라섰다고 생각해보자. 내려갈 길도 없는 높다란 벽 위에 서 있는 기분은, 글쎄…… 난 오히려 무섭고 불안해질 것 같다.

그 벽 위에 올라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그리고 올라선 이후에도 안심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벽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시작하는 것, 또한 차근차근 계단을 만들어 한 계단, 한 계단씩 높여가는 것이다. 계단 한 개 정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고, 두렵지도 않다. 그저 작고 즐거운 도전들이다. 계단 하나를 만든 후에는 그 위에 올라서서 스스로가 이뤄낸 것을 충분히 대견해하고 즐기는 것이다. 그 이후에 다음 계단을 만들기 위한 고민을 시작하면 된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런 식으로 벽을 향해 다가갈수록 벽이 낮아진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계단을 놓았을 때 벽을 넘어서는 일은 어렵지도 않고,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더 좋은 것은 내가 어떻게 거기에 올라왔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차곡차곡 쌓은 계단 덕분에 정상에 서 있어도 위태롭지 않고, 내려갈 마음이 들었을 때도 두렵지 않다. 최종 목표가 오히려 '베이스캠프'가 되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이제는 정상을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은 벽을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상에서만 볼 수 있는 또 다른 목표들이 있기 때문이다. -p, 46~47


위험은 어디든지 존재한다. 그리고 이 사실 때문에 겁을 먹는 것은 쉽다. 두려움이 우리를 가로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우리가 위험요소를 받아들이고 도전하는 것으로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위험요소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대비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고, 피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그렇게 위험요소를 제거하면서 최종적으로 우리는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아무 두려움 없이. -p, 81


실패라는 것은 우리가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실제 삶 속에서 실패가 마지막을 의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떤 일을 하는 과정이나 그 일이 끝날 때 실패를 겪기도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그 일을 계속 해나가는 데 필요한 능력을 완전히 앗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단기적으로는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이 완전한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지 이번에 왜 실패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다음 시도에 성공할 확률을 높이면 된다. 이렇게 보면 실패는 끝이 아니다. 그저 '실패'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 때까지 계속 겪어야 하는 성공을 향한 배움의 과정이다. -p, 135~136


나는 갈림길의 연속인 삶 속에서 적극적인 결정을 내리며 살기를 원한다. 주변의 기대치에 맞추려고 시간을 낭비하지도, 물질적인 것을 좇다가 인생을 낭비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고 싶은 길과 가야만 하는 길 사이에 타협점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다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생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죽는 순간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을 시도조차 안 했다'는 생각이 드는 일은 더욱 끔찍하지 않을까. 결국 이 삶을 다 살고 난 뒤 남는 것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당신이 살면서 해온 일들 말고 무엇이 더 있을까.

누구에게나 딱 한 번뿐인 삶이다. -p, 183


아직도 존오가 내게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가끔씩 우리는 변화 자체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삶에 변화를 줘야 할 때가 있어."
그리고 그는 말을 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단조로운 삶의 테두리에 갇혀서 하루, 몇 달, 다시 몇 년을 보내. 정체된 채, 자신의 존재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 같아.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변화를 포용하고 즐길 수 있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어." 

당시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참 시간이 흘러 가장 친한 친구가 내 곁을 떠난 후, 그리하여 내 인생의 방향을 못 잡고 방황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는 변화를 통해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기회는 현재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또 자신이 무엇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이루고 싶어 하는지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사람은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을 만났을 때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된다. 또한 진정한 자아를 찾고, 가진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우리는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변화를 피하는 쪽을 선택하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발견하고, 배우고, 잠재력을 꺼내려면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 도전이라는 말이 거창할 수 있지만, 그저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새로운 장소로 떠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특히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뭔가 옳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고 자신의 미래가 암흑 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더더욱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새로운 결정이 자신을 어디로 이끌고 갈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우리에게 붙잡을 만한 기회와 고무적인 일들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지금 무슨 일을 하건, 과거에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건 간에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는 늘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준다. 물론 과거의 경험이 미래를 만들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데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절대로 과거의 덫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 과거에만 머문다는 것은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잠재능력과 기회를 거부하는 일이 될 테니까. -p, 215~217


추억은 우리의 우정을 더욱 단단하게 엮어주고,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회상에 잠겨 함께했던 특별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웃음짓게 만들어준다. '이렇게 함께한 기억이 없다면 내가 가진 관계들에 무엇이 남을까'라는 생각을 하다보면, 가까운 이들과 추억을 만들어가는 일이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상대방과 교류를 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계속해서 친구나 가족들과 기억할 만한 순간들을 만드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기억들은 그냥 흩어져버리고 순간들은 지나간 일 중 하나로 흐릿하게 잊혀질 것이다.

물론 살아가면서 별다른 노력 없이도 기억할 만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기도 한다. 그것은 다가오는 것조차 전혀 알아챌 수 없지만 영원히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 새겨진다. 우리는 그 순간들을 절대 잊을 수 없으며, 그 장소나 함께한 사람들까지도 영원히 뇌리에 남아 있게 된다. 그 반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순간들을 특별하게 만들지,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을지 직접 결정할 수도 있다. 바로 그런 순간들이 우리 스스로의 삶을 풍부한 경험들로 채울 수 있는 기회이며, 그 순간을 나누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견고하게 다져나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p, 289~290


인생이란 만들어가기 나름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출발선에 서 있고, 서로 다른 능력과 재주, 성공의 정의를 갖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기량을 발휘하여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마치 개개인이 가진 지문만큼이나 다양하고 고유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당신의 꿈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 의해 세워진 목표는 당신의 내면에서 스스로 찾아낸 동기와 영감의 힘을 따라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 자신을 다른 어떤 이와 비교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고 오히려 자신의 인생에 해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왜 나에게는 없을까'라고 한탄하기보다 자신이 가진 강점을 찾아내는 데 집중하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입니다. 결코 다른 사람을 무시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모두 고유한 인격체이기 때문에 굳이 자신을 비교하는 척도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주위의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하지만 당신 자신은 아닙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확신을 가지세요. 바로 그 능력이 당신이 선택한 꿈을 이루는 길로 이끌 테니까요. -p, 29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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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정호승, 법륜, 박완서, 정운찬 외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생애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글귀 1.JPG


 








어른이 되어갈 준비를 할수록 세상엔 어른다운 어른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간다. 나이듦이 어른이라는 말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건 '어른스러움'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다. 무엇이 '어른스러움'일까. 최근에 본 영화 <인턴> 속,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했던 '벤'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스러움의 표본이 아닐까. 그와 이야기를 한 후 앤 해서웨이가 "어른과 어른다운 대화를 해서 좋았어요." 라고 했던 것처럼 나도 어른과 어른다운 대화를 하고 싶어 꺼내든 책이 《생애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었다.

적어도 나보다 30년 이상은 더 살아온 이분들이 해주는 이야기는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맞닥뜨리게 될 여러 문제들 앞에서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이 책은 그들이 했던 연설, 주례사, 편지 등을 엮은 글들이라 뚜렷한 독자의 층(?)이 정해져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자고로 난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읽어나가야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니라면, 나와 관계 없는 이야기를 읽고 있다보면 시간을 버리는 기분이 들어 언짢아지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부분이 많아 아쉬웠다.



    


 

 

생애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글귀 2.JPG


 

 








이 많은 이야기들 중 내가 건진 이야기는 바로 이 부분. '사랑을 시작하는 후배에게 시인 도종환 님이 보내는 편지_풀잎 하나를 사랑하는 일도 괴로움입니다' 였는데 연애 2년차로 편해져버린 관계에 투덜대는 나에게 던지는 일침같았다.


그러나 열정이 조금씩 가라앉고 사랑도 생활이 되는 시간도 찾아오겠지요. 열정이 사라진 뒤에도 사랑해야 하는 날도 오겠지요.

뜨겁기만 하던 때는 돌아볼 겨를 없던 자신들의 헝클어진 모습을 바라보며 바람이 허허로운 것도 느끼겠지요. 아름다운 색조가 지워진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 있는 그대로 보이기도 하겠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차 안에서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 묻게 되는 시간도 생가기겠지요. 사랑 때문에 책임져야 하는 고통도 조금씩 피부에 저며 오고, 사랑의 불꽃 때문에 잘 보이지 않던 미운 구석도 보이게 되겠지요.

저는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까지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부분만이 아니라 아름답지 않은 곳까지도, 마음에 드는 구석만이 아니라 마음에 맞지 않는 부분까지도 말입니다. 행복한 시간만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시간까지도 함께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사랑을 맹세하며 두 마음을 포갰을 때 우리는 고통스러운 나날까지 함께하리라 다짐했어야 합니다. 아니 사랑은 본래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전제하면서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내 쪽에서 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랑으로 시작하지만, 우리가 이루어 가는 사랑은 서로의 자리에서 서로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람은 본래 지나치게 주관적인 존재여서 자기 쪽의 처지를 먼저 생각하고 자기의 관점에서만 사실을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고통스러워 할 때 상대방도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참고 있을 때 상대방도 참고 있는 것이지요. 내가 나 자신을 먼저 용서하고 싶을 때가 많지요. 상대방도 자기 자신이 먼저 용서받을 만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늦게 들어오는 사람을 기다려 보면 내가 늦게 들어올 때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게 되는 게 아닙니까. 두 사람 사이에 화해의 가능성은 사실은 상대방의 처지에 서서 생각하면 언제나 열려 있는 것이지요.

내 표현 중의 불만족스러운 그늘이 상대방의 침묵으로 이어집니다. 상대방의 얼굴에 다가갈 수 없는 벽이 느껴질 때 내 얼굴도 굳어지게 됩니다. 상대방의 얼굴이 그늘져 있으면 내가 오랫동안 무관심, 무표정한 얼굴로 내 마음을 나타내 온 건 아닌가 살펴볼 필요가 있지요.

-p, 65~66

 



아직은 많이 어리지만, 앞으로 내가 살아갈 '오늘'들은 어떤 멋진 하루하루가 되어 나를 멋진 어른으로 만들어줄지 기대가 된다. 내가 살아온 인생, 살아갈 인생이 누군가에게는 '듣고 싶은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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