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이석원 지음 / 그책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들어도좋은말 1.jpg

 








어려서는 별 대가 없이도 넘치도록 주어지던 설렘과 기대 같은 것들이 어른이 되면 좀처럼 가져보기 힘든 이유는 모든 게 결정되어버린 삶을 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 벌 수 있는 돈,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 등이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으면 대개 정해져 버린다. 장차 여행은 몇 나라나 더 가볼 수 있고 몇 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으며 내 힘으로 마련할 수 있는 집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지가 점점 계산 가능한 수치로 뚜렷해지는 것이다. 남은 생이 보인다고 할까. 허나 아무리 어른의 삶이 그런 것이라고는 해도 모든 것이 예상 가능한 채로 몇십 년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가혹하다, 고 생각하기에 나는 노력하기로 했다. 너무 빨리 결정지어진 채로 살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남은 생에서도 한두 번쯤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생기길 바라며 살고 싶다. 자고 일어나서 눈을 떴을 때 또다시 맞을 하루가 버겁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자신을 가꾸는 일이 소중한 이유는 그 일을 함으로써 나와 내 삶이 아직 결론나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믿고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는 게 앞으로 가는 건지는 몰라도, 맞는 길로 가고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느낌. 그런 느낌을 가질 수만 있다면 하다못해 살이라도 몇 킬로 빼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게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 해도, 그런 작은 변화의 여지라도 있어 내 남은 생이, 내 몸과 마음이 이대로 정해져 버리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나는 노력할 거다. 언제까지고 결정되지 않을 삶을 위하여.
-p, 149

  














이 책을 읽고 문장들을 정리해둔건 해가 바뀌기 전, 12월 즈음이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하는 행동은 그동안 어렴풋이 느끼던 감정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내 상태를 명확하게 드러내주고 있는 문장들을 뽑아내는 것. 그래서 아마도 한겨울에 뽑아낸 이 문장들을 개나리가 만개할 정도로 따뜻해진 지금, 다시 읽어본다면 공감이 가지 않는 문장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 찬찬히 이 문장들을 다시 읽어보면서 똑같이 공감했던 문장은 이거였다. 


"사실인진 모르겠지만,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얘기가 안 끊어진대요."


그럼, 내가 평생 읽을 책 같은 사람을 만나면 되는 건가?

-p, 125


난 이 문장을 읽으면서 '평생 읽을 책 같은 사람'을 '만난다'기 보단 '평생 읽을 책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싶은,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만나고나면 후련해지는, 기분전환이 되어 밤에 푹 잠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평생 읽을 책 같은 사람이.









 

언제들어도좋은말 2.jpg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했던가. 사실은 슬픔은 나누면 나에게는 반이 되지만 내 슬픔을 나눠가진 사람에겐 배가 되는게 아닐까. 


이 사실을 알고있으면서도 요즘의 난 내 슬픔을 반으로 줄이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에 (요즘 얼굴을 마주하는 몇 안되는 사람들인)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주고받는 몇 안되는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불안함을, 내가 느끼는 자책을, 혹시라도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서 준비해놓은 여러가지 핑계들을, 내 상황이 얼마나 답답하고 못났는지에 대한 넋두리를, 그렇게 죽는 소리들만을 늘어놓고 있었다.


얼마 전, 내 생일을 축하해주겠다며 멀리서 시간을 내 찾아와준 친구를 만나 모자만 푹 눌러쓴 채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에 갔다. 유일하게 민낯을 보여줄 수 있는 친구였음에도 예쁘게 화장을 한 친구 앞에서 모자를 푹 눌러쓴, 꾸미지 않은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 이런저런 불평만 늘어놓다 왔던 것 같다. 25살이면 멋진 여자가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한 우리 신세를 한탄하다가 그럼에도 긍정적인 친구 앞에서 한숨만 푹푹 내쉬다, 내가 들려줄 수 있는 나의 이야기는 '매일 책만 쳐다본, 강의만 쳐다본 그저그런 일상들', 다른 이야기로 돌려보겠다고 꺼낸 이야기들은 '잘 된 친구들에 대한 못마땅한 이야기들'. 집 근처의 동네 카페라 우리밖에 없던 그 작은 카페에서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를 태우고 가는 택시의 뒤꽁무니를 쳐다보며 참 많이 씁쓸해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친구가 주고 간 선물과 편지를 보며 코가 시큰해졌다.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지? 누가 이 세상에서 공부가 가장 쉬운거래! 오랜 시간 한 자리에 앉아서 집중하는게 얼마나 힘든건데! 그치? 그런 의미에서 그렇게 마음 꾹 붙잡고 공부하고 있는 너도 진짜 대단한거야. 잘 하고 있어! 뭐, 나도 그렇지만 우리 지금 이 시기가 많이 불안하지? 그 마음 나도 너무 잘 알고있어서 니가 얼마나 기분 우울하고 다운되어있을지 상상이 가. 그래서 가끔은 내가 내 일을 남일처럼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한다!


근데 내 인생, 너의 인생이니까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까, 그냥 우리 견디자! 

견디면, 그렇게 시간 보내다보면 어느새 지난 줄도 모르게 다 끝나 있을거야!


그리고 물론 그동안 우리 할일도 열심히 할거구, 잘 할거란 것도 알아~ 뭐 좀 못하면 어때! 우린 아직 젊고 할 일은 많다는데, 난 너처럼 한명만 괜찮다고 응원해줘도 힘날 것 같아.


이 향 맡고 봄을 느끼렴. 우아하게 향기를 풍기며 공부하자. 공부하는동안 향초 때문에 가끔은 기분 좋았으면 좋겠다!"




너는 내가 널 만나서 불안한 이야기들을, 내 우울하고 다운되어있을 모습을 내내 내비칠 것을 알고 있었구나. 그럼에도 넌 내 이야기를 들어주러 온거였구나. 


여전히 내 마음을 컨트롤하기에 버거운 날들이다. 이야기를 주고받다보면 어느새 내 슬픔을 반으로 나누고 싶어할거라는 걸 잘 알기에 생각없이 주고받던 연락을 잠시 멈추고, 입도 다물기로 했다. 내 부정적인 모습마저 평생 읽을 책처럼 차분하게 들어주는 이들이 있어 미안하면서도 고맙지만 내 슬픔을 나눠가지게 한, 그 후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건 싫다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께도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처음엔 나 혼자 기록하는 공간이라 여기고 썼던 글들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고, 찾아와주니 좋았지만 그만큼 내 진심을 담은 생각을 집어넣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역시, 지금은 이 공간에서는 이기적이고 싶다. 내 친구처럼 내 이야기를 들어주러 기꺼이 찾아와 준 사람이니까! (제목에 속아 책에 대한 이야기인줄 알고 왔다가 책에 대한 이야기보단 내 이야기가 더 많은 내 일기같은 글을 읽고계신 분들께는 정말로 죄송하다...)


친구의 말처럼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느새 지난 줄도 모르게 다 끝나 있을거니까'. 그리고 '내 주변사람들에게 난 평생 읽을 책 같은 사람이 되고싶다'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시간을 잘 보내려 한다. 아자!  








 


언제들어도좋은말 3.jpg



언제들어도좋은말 4.jpg



언제들어도좋은말 5.jpg



언제들어도좋은말 6.jpg



언제들어도좋은말 7.jpg



언제들어도좋은말 8.jpg



언제들어도좋은말 9.jpg



언제들어도좋은말 10.jpg

   
 

 


   








▼ 간직하고 싶은 문장들


하지만 만남이란 건 원래 어떤식으로든 어긋남을 동반하기 마련 아닌가. 언제 인연이 내가 맞이할 준비가 되었을 때 찾아온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나는 언제나 내가 좀 더 성숙했을 때,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보다 안정되어 있을 때, 좀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아무튼 내가 조금은 더 잘나가고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일 때 누군가를 만나길 바랐지만, 나는 결코 그런 사람이 되어본 적 없었고, 여전히 이렇게 상대를 앞에 두고 또 아쉬워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난 언제까지 상대의 완벽함을 통해 내 결핍을 보상받으려는 노력을 되풀이해야 할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나라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불완전한 존재일 것임을 알고, 그렇게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한 상태에서 누구든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 모든 모자람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사랑이 아닐까?

-p, 108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나이기에

사람을 만나는 일이 힘들 때면

슬프다.

그게 소중한 사람일 땐 더더욱.

-p, 108



"사실인진 모르겠지만,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얘기가 안 끊어진대요."


그럼, 내가 평생 읽을 책 같은 사람을 만나면 되는 건가?

-p, 125



"난 니가 좋은 게 좋아."

"어쩌죠. 저도 당신이 좋은 게 좋은데."

-p, 221



보자. 사랑하니까 이해하게 되는 것인가, 이해를 주고받다 보니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인가.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건 정말 중요한 게 아니다. 단지 사랑에 있어서 이해라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 나를 명동 중앙극장으로 이끌어 함께 「렛미인」을 보았던 사람은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당시 막 사랑을 나누기 시작하던 참이었는데, 그때부터 헤어지던 날까지 우리가 주고받았던 것은 결국 서로에게 자신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끝없는 과정들의 연속 외에 다른 게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은 열렬하였으나, 어리고(?) 서툴렀던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서로에게 자신에 대한 이해만을 구하다 결국엔 서로 또 다른, 더 새롭고 더 깊은 이해를 찾아 떠나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아, 우리가 상대를 이해하는 연습이 조금만 더 잘 되어 있는 상태에서 만났더라면. 조금만 더 성숙했을 때 서로를 알았더라면.


사랑과 이해는 어째서 한 몸이 아니던가.

헤어지고 나서야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일은 왜 그렇게 많았던가.

내 목숨보다도 더 사랑한다던 너를 이해하는 일만은 어째서 그토록 어려웠던가.

가끔은 사랑보다 이해가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가끔이 아니라 자주.

-p, 224~2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쨌든 연애는 이기적이다 - 나를 위해 연애할 것
후쿠다 가즈야 지음, 박현미 옮김 / MY(흐름출판)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가 하는 말이, 이기적인 상태가 바람직하다거나 제멋대로 굴어도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어느 누구와도 진지하게 사귈 수 없습니다. 제아무리 이기적인 사람이라도 사귀는 상대에게는 최소한의 배려를 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법입니다. 저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친절, 다양한 형태의 헌신도 전부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 바로 이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연애에 존재하는 것은 의식적인 이기심과 무의식적인 이기심이라고.

연애에서 우리가 벌이는 모든 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헌신적이며 희생을 동반하는 것일지라도 이기적입니다. 그런 행위는 자신을 기분 좋게 만들 뿐입니다.

상대방에게 선물을 주거나 상대방을 근사한 장소에 초대하면, 상대를 기쁘게 만들기 전에 먼저 스스로가 즐겁지 않은가요?

이런 행위에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게 만들고, 상대방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고, 감사의 마음을 갖게 만들어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행위는 이기적입니다.

저는 이기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기적인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유의해야 할 점은 자신의 이기심에 눈을 감고, 자신의 희생에 도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배려나 노력을 상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서 연애의, 그리고 대인관계의 모든 기만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구제불능일 정도로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

그 점을 인식하고 항상 의식할 것.

그것이 제가 말하는 연애의 첫 번째 계율입니다.

-p, 7~10









 

12818956_1741361252742008_1677450_n.jpg


 






 

이기적인 연애를 하고 있다거나 혹은 반대로 이기적인 연애를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연애라는 주제는 언제나 매혹적인 것이어서, 《어쨌든 연애는 이기적이다》라는 제목에 끌려 밤마다 야금야금 읽어갔다. 감정에 끌려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정신없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어린 연애'가 아닌, 감정을 절제하고 머리를 쓰고 이 관계 내에서 전략적으로 힘겨루기를 하기도 하며, 이로 인해 함께 성숙해질 수 있는 '어른스러운 연애'에 관한 이야기였다.


후쿠다 가즈야의 이전 작품인 《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과 《나 홀로 미식수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책에서 느껴지는 그의 직설적이고도 단호한, 까칠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모습을 마주하니 그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는' 평가에 대해 백 번 이해가 간다. '그저 서로가 좋아서 시작한 연애에 이렇게까지 따지고 들어야해?' 라고 생각할 독자들도 분명 있겠지만 그 질문에 나는 그의 편에 바짝 붙어서서 'Yes!'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저 서로가 좋아서 시작된 그 연애'를 '그저 그런 연애'로 끝내고 싶지 않다면, 그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애정으로 가득 찬 연애, 서로가 성숙해지고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가는 연애, 서로의 스토리를 공유할 수 있는 연애'를 켜켜이 쌓아가고 싶다면 이 책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좋겠다.   


 





 





이 책을 읽는동안 우리의 연애를 떠올렸다. 


연애를 하는 동안 흘러가는 날(사귄지 100일, 200일 등)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지만, 이 숫자에 따라 그려지는 우리 두 사람의 이미지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그것처럼 참 평범했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조심스럽고 어렵고 설렘이 있었다면 만난지 2년이 지난 지금은 익숙하고 편안하면서도 권태롭고 단조롭다. 


분명한 건, 우리가 만나며 100일, 200일…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만큼 우리도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2살이던 나는 어느새 25살이 되었고, 28살이던 오빠는 어느새 31살이 되었으니 우리가 이렇게 긴 시간 만나는 동안 여전히 22살, 28살 그 자리에 머물러있지 않는 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고 함께하는 자리에서 참 많은 성장을 한 것이다.


지금도 물론 사소한 일에 서운함을 느끼고, 토라지고, 의심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 할 때도 많지만 그때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이런 문제를 두고 전략적으로 싸우고, 타협하고 한 단계씩 위로 올라간다.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를 지나며 전보다 서로를 잘 알게 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적이지만 따뜻한 대화를 하고, 당연하게 안부를 묻고, 서로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 장소를 얻고, 상대방의 취향을 알게되고, 이렇게 하나하나 쌓이는 추억들을 얻게 되는 것도 하나의 묘미이다. 이 연애라는 게임에서 중간에 지게 될지, 아니면 끝까지 잘 싸워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 모든 행위가 이 사람과 잘 해보고 싶다는 '나를 위한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일단은 될 수 있는 한 더, 더, 더 이런 이기적인 연애를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반대로 말하면, 만약 애정을 원한다면 혹은 애정으로 가득 찬 관계를 원한다면 사랑을 지상 최대의 어떤 것이나 절대적인 무엇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해 사랑이나 연애를 신격화하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연애는 일상 속에서 켜켜이 쌓이는 풍성한 대화와 배려, 그리고 밥을 먹거나 놀러 가거나 하는 사사로운 일들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헛된 생각에 마구 휘둘리지 않도록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하지요.

그런 일상의 축적이 너무 멀게만 느껴지고 귀찮다고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이 지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 중에서는 상당히 재미있고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p, 38~39



잘츠부르크라는 이름 자체가 독일어로 소금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잘츠부르크 근방에는 암염 광산이 많이 있었습니다. 암염 채굴장에 나뭇가지를 던져놓은 후 반년쯤 지나 꺼내보면, 나뭇가지에 붙은 염분이 미량의 습기와 엉겨 나뭇가지는 눈부신 소금 결정으로 뒤덮이고 마치 한 덩어리의 보석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스탕달은 짝사랑이 그 대상을 얼마나 미화하는지를 이 광산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비유해 '결정 작용'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사랑에 빠진 인간의 감정이란 거대한 암염 동굴과 같습니다.

그곳에 사랑하는 사람, 즉 짝사랑의 대상인 상대를 나뭇가지처럼 던집니다. 그러면 마른 나뭇가지에 지나지 않았던 상대방이 자신의 연정에서 분비된 엑기스에 의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결정으로 자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탕달은 이 이야기로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요?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상대방을 미화하기 쉬우니 상대방의 가치를 과대평가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물론 미화한다는 것에 대해 다소의 의식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스탕달의 논점은 그 반대입니다. 보잘것없는 나뭇가지에 그렇게 수많은 결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랑의, 인간 정신의 초능력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은 멋진 것이죠.

어쩌면 당신은 그것이 단순한 미화이자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에서의 진실은 연애안에서만 존재한다는 진리도 있습니다.

연애 혹은 결혼생활은 제3자가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객관적 사실과는 별도로 연애 안에서의 사실이 있습니다.

연애를 하면서 단순한 나뭇가지가 아니고 결정화된 상대를 좇는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행복하지 않을까요?

아니 오히려 사랑하는 것, 애태우는 것의 묘미는 짝사랑에만 존재합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당신의 생각이 결정화된 것처럼 상대방 역시 실제로 그만큼 찬란해집니다. 당신의 생각에 보답이라도 하듯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갑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고마운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p, 73~75



연애가 여행이 되고 연애로 인해 성숙해진다는 말은, 연애의 과정 속에서 두 사람이 변화해서 그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간다는 말입니다.

인식의 전환이 생기거나 견해와 감각이 바뀌고, 혹은 생활권이나 인생의 비전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런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연애의 묘미이자 핵심입니다. 동시에 두 사람의 인연을 아주 단단하게 맺어주는 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이런 변화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주고받으며 지배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변화를 의식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서로 주도권을 쥐고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해 싸우는 것. 그 싸움을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변화해갑니다.


서로를 지배하기 위해 힘쓴다는 말은 연애라는 아름다운 행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연애가 어느 정도 충실한 형태를 갖추려면 싸울 필요가 있습니다.

싸움만이 조화를 만들고 성장을 낳습니다.

지배하는 것, 지배당하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지배권을 얻기 위해 싸우는 것이 연애관계에 긴장감을 가져옵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은 눈살을 찌푸리실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바로 연애에서의 증여력이 지배력의 효능입니다.

-p, 166~167



원래 이런 이미지 관리란 약간 섬세하면서도 지적인 행위입니다. 실제로 인생 자체가 지루함으로 가득 차있으니 그런 지루함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어떻게 맞설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른이 되기 위한 테마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대화를 즐길 수 있는 자극적인 관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우선 스스로가 지루한 인간이 되지 않을 것, 상대방에게 늘 자극적인 존재로 있을 것. 요컨대 일과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입니다.

평범해 보이지만 역시 그것이 정답입니다.


당신이 성장을 거듭하는 한 상대방은 당신에게 지루함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이 먼저 질려버릴 수는 있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상대방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새로운 파트너를 찾으십시오. 너무 매정한 말인가요?

어쨌든 이런 것들이 바로 스토리를 만든다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창작한 스토리와 상대방이 만든 스토리가 일치하는 일은, 당연한 말이지만 일어날 리가 없습니다.

다만 한쪽은 천천히 다가가는 연애를 그리고, 다른 한편은 격정적인 연애를 그리고 있지만 그런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한다. 이런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니 가지와라 잇키 원작에 미쓰하시 지카코(따뜻하고 부드러운 화풍의 순정만화 작가-옮긴이)가 그린 만화 같네요. 그런데 과연 이런 연애가 끝까지 성립할 수 있느냐 하면 역시 어렵겠지요.

근본적으로 연애는 상대방과 이야기하고 싶다, 상대방을 만지고 싶다는 욕망에서 발생합니다. 그러니 교제를 시작하면 현실에서는 지배의 게임, 즉 어느 쪽 스토리가 우위에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서로의 스토리가 일치할 수는 없다는 말은, 반대로 말하면 정말로 함께하고 싶은 상대라면 상대방이 만든 스토리에 편승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진중해 보이는 남성이 길거리에서 발랄한 분위기의 젊은 여성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캐릭터가 그려진 커플룩을 입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녀들의 스토리에 편승해준 것입니다. 만약 이런 행위를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주 쉽게 연인을 만족시키는 좋은 방법입니다.

만약 그러기 싫다면 상대방을 자신의 스토리에 편승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에 상대방의 성향을 파악해야 합니다. 제 친구 중에는 조폭 영화를 좋아하는 여자만 사귄다고 허풍을 떠는 녀석이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군요.

함께 영화를 보거나 같은 책을 읽는 것은 스토리를 공유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측정하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p, 199~2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콜릿 우체국 - 황경신의 한뼘이야기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앉아볼까, 그때처럼." 나는 그가 가리키는 곳에 풀썩 주저앉는다. "내가 이쯤, 그리고 내 왼쪽에 네가 있었어."

내 왼쪽에 자리를 잡으며 그가 묻는다.

"거리는? 이 정도?"

손을 뻗으면 닿을 수도 있는 거리. 그와 나 사이를 미세하게 떠돌던 먼지, 스물세 살의 어느 날, 우리는 여기 있었다. 나의 무심한 행동을 지켜보던 그가 농담을 던졌고 그래서 같이 웃었다. 그 순간 빛의 입자들이 한꺼번에 터진 듯 눈부시고 따뜻한 에너지가 공간을 감사 안았다.

만약 행복의 밀도나 무게를 잴 수 있는 저울이 있다면 그때의 에너지를 달아보고 싶을 정도로, 그래서 한 천 년 동안 잊고 싶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행복의 느낌이 가득 차올랐다. 불순물은 티끌만큼도 없는 백 퍼센트의 충만함이었다.


-p, 251 



"이것으로 괜찮겠어?"

그의 걱정스러운 손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응, 충분해." 내 심장은 만족한 듯 조그맣게 두근거린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을 때의 에너지가 필요했던 것뿐이야."

감은 눈 너머로, 조금 슬픈 듯 그가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나는 느낀다. 이 에너지는 앞으로 십 년쯤 나를 살게 할 거라는 믿음이 마음을 휘감는다. 충분해, 충분해, 중얼거리며 나는 숨을 삼킨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물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늦게 시작하기 위해.

-p, 252 


(추억의 에너지 中) 







 


1.jpg








피터팬, 팅커벨, 빨강머리의 앤, 플란다스의 개 등 어릴 적 보던 동화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미니엽서를 잔뜩 샀다. 미니엽서가 들어있던 작은 틴케이스를 보며 여기엔 무얼 담을까 하는 '별 생각없이 하는, 아무 의미없는 고민'을 해본다. 팬시점에 가면 쭉 진열되어 있는 스티커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손에 든 스티커 여러 장을 들고 계산대로 간다. 그렇게 쓸데없는 물건들이 방 여기저기에 늘어져있는 모습을 보고 엄마는 항상 '어린애도 아니고 이런걸 왜 사~' 하고 놀리곤하는데, 그럴때마다 난 '어른답지 않은 귀여운 소비'를 한 것에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내 앞에 스스로 선택해야 할 문제들이 많아질수록, 내 어깨에 기꺼이 책임져야 할 존재들이 많아질수록, 어리광으로는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갈수록, 시간의 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가기 버겁다고 느끼는 날이 잦아질수록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을 때의 에너지(p, 252)'를 찾곤한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을 때의 에너지'가 필요할 때마다 어른답지 않은 귀여운 소비를 하기도 하고, 과자와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군것질거리를 입에 잔뜩 문 채 아이처럼 정신없이 새콤, 달콤하고 짭쪼름한 자극적인 맛에 취해보기도 하는데 이런 행위들로 충전된 에너지는 하루를, 이틀을, 일주일을, 한달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2.jpg



3.jpg








황경신 작가의 쾌활하면서도 순수한, 이 짧은 글들을 읽고 '어른답지 않은 소비'와 '군것질'을 한동안 미뤄두어도 좋을 만큼 순수한 에너지를 받았다. 

그녀의 글을 통해 '우리가 어른이 된 후 버려진 세발자전거가 살아갈 세상', '쓸모없어진 인형들이 밤새 노는 작은 바', '크리스마스의 빨간 양말', '산타클로스', '밤이면 돌아다니는 동물원의 동물들' 등 어린 시절 머릿 속에서 그려보았던 동화같은 존재들을 만나다보니 한동안은 이 현실이 동화처럼 느껴져서 힘들지 않을 것만 같다. 아이로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어른이라는 세상으로 가는 발걸음을 조금이라도 더 늦게 내딛고 싶은 '어른'을 위해 쓰여진 동화책을 찾는다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나는 어른이 되어버렸기에 내 몫인 일인분의 인생을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인생을 책임지며 살아가야 한다. 여전히 아이처럼 여리고 순수하고 철 들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 나와 아직은 무섭고 너무 커다란, 그럼에도 잘 살아내야 하는 현실 속의 내가 부딪힐 때마다 《초콜릿 우체국》처럼 세상을 동화처럼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이나 때로는 어른답지 않은 소비, 입안 가득 문 군것질 등의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을 때의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것들을 기꺼이 찾아내며 살아내야겠다.     




    

4.jpg



5.jpg

 







+

이처럼 순수한 언어로, 순수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는 이야기 속에서도 어른의 모습을 찾고, 어른의 감정으로 공감하곤 했지만 분명한 건, 이 책을 읽고나니 그런 어른의 시선마저 동화같이 느껴졌다는 것.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삶…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호랑이 우리를 지나가는데, 문득 저 호랑이가 정말 저 우리를 빠져나오지 못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호랑이는 우리가 보지 않을 때, 사람들이 하나도 없을 때, 그러니까 이를테면 이런 깊은 밤… 빠져나와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돌아다니다가… 그러다가 새벽에 다시 우리로 돌아오는 게 아닐까… 밤새 돌아다니느라 너무 피곤해서, 낮에는 저러고 있는 게 아닐까…"

"왜 돌아오지요?"

남자가 묻는다.

"갈 곳이 없으니까요. 시멘트 바닥에다가 딱딱한 건물들… 그리고 야생을 잃어버린 동물들이 사냥할 수 있는 곳도… 그걸 알면서도 매일 밤 나가보고, 또 돌아오고…"

"갈 곳이 없는 건 사실입니다. 아프리카도 북극도 너무 멀지요. 바다에 이르는 강은 댐으로 막혀 있고, 산에는 어린 나무들뿐입니다. 새들은 날아다니기도 하지만… 뭐 어쨌든 우린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입니다. 귀하니까 가둬놓고 보는 거지요. 그만큼 바깥에서는 잡힐 위험이 높은 거고. 재수가 나쁘면 잡히는 과정에서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습니다. 밀렵군에 의해 박제가 되기도 해요. 우린 죄다 겁쟁이가 됐습니다. 그게 동물원에서 배운 거지요."

가슴 끝에서 기묘한 통증이 느껴진다. 두렵지만, 그건 인간으로서 교육받은 두려움이라고, 나의 본능이 나를 향해 소리치고 있다. 나는 가까스로 침묵을 지킨다.

"매일이 힘들고 실망스럽지요. 하지만 오늘 밤에는 혹시라도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동물원을 떠납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도 될 거라고 기대하면서. 그러나 새벽이 되면 지친 몸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니 우리가 당신 앞에서 뛰어다니지 않는다 해도 너무 원망하지 말아요. 좌우지간 당신은 철장 밖에 있고, 우리는 철장 안에 있으니까. 그리고 이제 잠을 좀 자두도록 해요."

남자는 말을 마치고,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곧 사라진다.

-p, 45~47 (한밤의 동물원 中)



어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오로지 나를 통해 가치 있는 무엇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음을 알게 될 때, 나의 가치가 그로 인해 빛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시작되는 사랑이 있다. 한번 시작된 사랑은 모든 종류의 의심 속에서도 자라날 수밖에 없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무엇과 비할 바가 없어진다. 나의 자아는 점점 더 성장하여 그의 습관, 그의 의식, 그의 독특한 문체를 습득하기 시작했다. 오 년이 지나자 그의 시를 모방할 수 있게 되었고, 십 년이 지났을 때는 그의 시 속으로 침투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나 외의 다른 것으로 시를 쓸 수 없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p, 70 (거기 아무도 없나요 中)



감정을 숨기기에는 너무 오래된 존재가 있다. 언제나 나를 향해 정면으로 걸어오는, 부딪치면 상처를 받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존재. 나는 그에게 그런 존재였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힘겨운 무엇이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기에는 너무 긴 세월이었다.

-p, 72 (거기 아무도 없나요 中)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누군가가 자신을 믿는 것이 두려운 거야."

달의 유령이 빙긋, 웃었습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의 웃는 입매를 본 것 같았어요.

"절망의 친구는 절망, 희망의 친구는 희망… 그리고 가끔은 절망과 희망이 사랑에 빠지는 거야."

그가 다시 말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죠?"

내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될까?"

그가 말했습니다.

"희망은 사랑하는 절망이 불행하니까 불행할 테고, 절망은 계속 불행할 테고…"

나의 대답에, 그가 다시 한 번 빙긋, 하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 몸은 텅 비어 있어서, 절망이든 희망이든 마음대로 들어왔다 나갈 수 있어. 어느 쪽도 나에겐 상관이 없지. 나는 어차피 비어 있고, 내 속에 무엇이 들어온다 해도 나를 바꿀 수는 없으니까."

"나에게도 상관은 없어요."

내가 대답했습니다.

"나 같은 유령이 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서늘한 바람이 불고, 그는 사라졌습니다. 숲에는 이미 한 조각의 달빛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고, 작은 동물들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세상이 천천히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깊은 숲 속에서,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p, 245~246 (달의 유령 中)



"이것으로 괜찮겠어?"

그의 걱정스러운 손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응, 충분해." 내 심장은 만족한 듯 조그맣게 두근거린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을 때의 에너지가 필요했던 것뿐이야."

감은 눈 너머로, 조금 슬픈 듯 그가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나는 느낀다. 이 에너지는 앞으로 십 년쯤 나를 살게 할 거라는 믿음이 마음을 휘감는다. 충분해, 충분해, 중얼거리며 나는 숨을 삼킨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물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늦게 시작하기 위해.

-p, 252 (추억의 에너지 中)



내가 살아 있어도 괜찮을, 시시하지 않은 이유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던 건지도 몰라, 나는 생각했다. 살아가는 것은, 계속해서 살아 있고 싶은 것은, 사소하고 시시한 이유들 때문인지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거라면, 시시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 이를테면 몇 년 만에 갑자기 그리운 이름을 떠올리며 내일은 전화를 걸어봐야지, 하고 결심하는 일. 올해의 보졸레 누보는 어디서 누구와 마실까, 고민하는 일. 어떤 종류의 절망과 고통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것을 기다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붕어빵 하나를 굽는 데 열중하는 일.

-p, 282~283 (붕어빵 편지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를 빛낸 100명의 위인들 - 초등학생을 위한 초등학생을 위한 100명의 위인들
장현주 지음, 강준구 그림 / 소담주니어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jpg








초등학생이 쉽게 세계의 위인들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책
<초등학생을 위한 세계를 빛낸 100명의 위인들> 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 책장에 쭉 꽂혀있는 어린이 위인전을 참 많이 읽었는데
그때 본 위인들의 이야기가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어요. 

정작 중고등학생 때부터 역사 수업을 통해 배운 위인들에 대해선 기억에 잘 남지 않더라구요.

어릴 때 위인에 대해 미리 많이 알아두는 게 좋겠죠?








2.jpg



3.jpg



4.jpg



5.jpg








화가, 음악가, 동화작가, 과학자, 철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위인을 이 책 한 권으로 알아갈 수 있답니다.







6.jpg








제가 좋아하는 '그림 형제' 를 소개한 부분을 펼쳐봤어요.
'세상을 놀라게 한 용감한 형제'라는 주제로 '그림 형제' 뿐만 아니라 뤼미에르 형제, 라이트 형제도 함께 소개하고 있네요.

먼저 이렇게 각 인물에 대해 이야기 형식으로 생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읽다가 어렵게 느껴질만한 용어는 옆에 따로 풀이해 놓은 점도 아이들을 배려한 느낌이 물씬 풍기네요.







7.jpg







이해를 돕기 위해 이렇게 그림으로 핵심 포인트를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8.jpg







앞에서 소개한 인물과 연관이 있는 인물을 '꼬리를 무는 인물'이라는 코너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림 형제, 뤼미에르 형제, 라이트 형제와 꼬리를 무는 인물로는 '브론테 자매'가 소개되었네요.

여러 인물을 관련있는 주제로 묶어 소개하고 있으니 더 쉽게 기억할 수 있겠죠?







9.jpg



10.jpg








우리가 '위인'이라고 부르는 인물들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평생을 바쳐서 한 분야의 최고가 된 사람들이죠.
그만큼 위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배울 점이 정말 많습니다. 

전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하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초등학생을 위한 세계를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루와 라라의 초콜릿 데이 - 숲 속의 꼬마 파티시에 루루와 라라 시리즈
안비루 야스코 글.그림, 정문주 옮김 / 소담주니어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jpg








'루루와 라라' 시리즈로 아이들에게 달콤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화작가 '안비루 야스코'의 새로운 이야기, 
<루루와 라라의 초콜릿 데이> 입니다.

소개하는 시기가 늦어버렸지만 <루루와 라라의 초콜릿 데이>는 발렌타인 데이를 주제로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어요.




  


2.jpg



3.jpg

 







안비루 야스코의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두 가지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따뜻하면서도 곳곳에 숨어있는 재치가 웃음을 머금게 하고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레시피를 보면서 주인공들이 만드는 과자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답니다.

레시피는 어린이들이 어렵지않게 따라할 수 있도록 귀여운 그림으로 되어있어요.








4.jpg







루루와 라라는 숲 속에 작은 과자 가게를 열고 동물들에게 달콤한 과자를 만들어주는 파티시에 입니다.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인 '초콜릿 데이'가 다가오고 있네요.







5.jpg




6.jpg




7.jpg



 





예쁜 토끼 밀리와 어린 시절 소꿉친구인 티피와 어렸을 때 약혼...을 했나보네요.

'토끼들이 네 잎 클로버를 교환하고 함께 먹으면 약혼식을 올린 거나 다름없대요.' 

벌써부터 작가님의 재치가 느껴지죠?








8.jpg




9.jpg

 







'초콜릿 데이'에 밀리가 티피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루루와 라라가 초콜릿을 만들어주려고 하네요.

소개되어 있는 레시피는 아이들이 충분히 좋아할만큼 아기자기하고 예쁘죠?
물론 설명도 어렵지 않아요.








10.jpg

 







이런, 밀리만 티피를 좋아하는게 아니었네요.
삼각관계도 아니고 사..사각관계..

"쿠키에는 뭐라고 쓸까요?"
루루와 라라가 동시에 둘에게 물었어요. 
"'멋진 티피에게'라고 써 주세요." 
"제 초콜릿에는 '사랑하는 티피에게'라고 써 주세요."

여기서도 또 볼 수 있는 작가님의 재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1.jpg








밀리에게 라이벌이 생긴 걸 안 루루와 라라는 밀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줍니다.
몰래 티피가 받고 싶어하는 초콜릿을 알아본건데요.

티피가 받고 싶은 초콜릿은 가게에서 파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든 '수제 초콜릿'

밀리가 수제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앞치마를 두르고 있네요.







12.jpg









'수제 초콜릿'의 강점은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는거죠. 
밀리는 어렸을 적 티피와 나눠먹었던 네잎클로버를 떠올리고, 네잎클로버 모양으로 초콜릿을 만들었어요.
역시 여자는 이런 센스가 필요해요-







13.jpg









하지만 '초콜릿 데이'에 동생이 아파서 티피를 만나러가지 못한 밀리







14.jpg








역시 중요한 건 '타이밍'이죠.
티피가 밀리를 보러 루루와 라라의 가게로 찾아왔어요. 
들판에서 찾은 네잎클로버를 같이 먹자고 하네요 어머어머어머

여러분은 지금 티피가 밀리에게 프러포즈 하는 장면을 보고 계신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5.jpg









밀리도 티피에게 직접 만든 네잎클로버 초콜릿을 건네고, 
이렇게......해피엔딩♥







16.jpg

 







그리고
밀리와 티피의 사랑이 이어지는데 일등공신 '니키'인데요.
티피에게 어떤 초콜릿을 받고싶냐고 물어봐주었어요. 덕분에 밀리가 '수제 초콜릿'을 만들 수 있었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따뜻하면서도 재치있는 동화책이이었어요.
아이와 함께 읽으며, 책 속의 레시피로 같이 초콜릿을 만들다보면 좋은 추억이 되겠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