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9
앙드레 지드 지음, 오현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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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지드 좁은문.JPG


 













책을 읽고 꾸역꾸역 의미를 찾아내려는 버릇이 있다. 때로는 그저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음에 기뻐하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만난 것에 만족해하고, 그냥 좋았던 책으로 기억에 남기는 것도 의미있는 일인데말이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그런 책이었다. 대단한 의미를 담고 있을 것 같아 아무것도 모를때 읽기는 싫어 계속 책장에 놓여있던 책, 그러다 바쁜 아침에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닐 가벼운 책을 찾다 집어든 책. 그래서였을까 그저 책의 마지막장을 덮게 되었음에 기뻤고, 그와중에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만나 만족했고, 그냥 좋았던 책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에 대한 명성 때문이었을까. 무언가 대단한 의미를 담고있을 것만 같은데, 그 의미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건 아닐까 싶어 쉽게 이 책에 대한 글을 남길 수가 없었다. 책을 다 읽고 기록 없이 그냥 넘기는건 뭔가가 많이 찝찝한 기분이라 불편하게 계속 책상 위에 던져둔채 시간이 갔다.


시험기간엔 공부 빼고 다 재밌더랬지, 마음에 와닿았던 문장들에 붙여놓은 포스트잇이 삐죽삐죽 튀어나와있는걸 보고 다시 들어 읽었는데 알리사의 말이 내가 연애를 하며 두려워하던 그것을 (하지만 두려워하던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가 없어 표현이 어려웠던 그것을!) 어찌나 속시원하게 말해주던지. 그것만으로도 괜히 좋아서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러왔다.


그랬다. 굳이 책의 대단한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저 책을 읽으며 좋았다면 그 뿐. 그저 그 순간의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을 챙겨담을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잘했다. 잘한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p, 23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니?"

그녀는 대뜸 말했다.

"넌 지금 어떤 환영(幻影)에 대한 사랑에 빠져 있는 거야."

"아니야. 결코 환영에 대해서가 아니야, 알리사."

"상상적인 어떤 인물과……." 

"아! 내가 그런 걸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냐. 알리사는 내 애인이었어. 그녀를 기억하고 있어. 알리사! 알리사! 너는 내가 사랑하던 여자였단 말야. 너는 그때의 너를 어떻게 해버린 거지? 무엇이 돼버린 거냔 말야?"

그녀는 얼마 동안 아무 대꾸 없이 가만히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한 송이의 꽃잎을 천천히 뜯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롬, 왜 그전보다 나를 덜 사랑한다고 아주 솔직히 말하지 않는 거니?"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라고 나는 격분하여 소리쳤다.

"내가 이보다 더 널 사랑한 적은 없으니까."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하지만 너는 예전의 나를 그리워하고 있어."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고 하면서, 살짝 어깨를 들어올리면서 그녀는 말했다.

"나는 내 사랑을 과거에다 놓을 수는 없어."

발밑에서 대지가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에나 매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은 그 나머지 모든 것과 더불어 흘러가버리지 않을 수 없는 거야."

"내 사랑은 죽는 날까지 나와 함께 있을 거야."

"그것도 차츰 스러져갈 거야. 제롬이 지금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그 알리사는 이미, 이젠 제롬의 추억 속에만 있을 뿐이야. 언젠가 알리사를 사랑한 적이 있었지, 하는 기억밖에 남지 않을 그런 날이 올 거야."

"너는 마치 무언가가 내 가슴속에서 알리사에 대치될 수 있다거나 내 마음이 이젠 더 사랑해서는 안 되게 되었다는 투로 말하는구나. 네 자신이 나를 사랑해왔다는 것은 이젠 더 생각나지도 않니? 그렇지 않고서야 나를 괴롭히는 게 이렇게 기꺼운 듯이 보일 수 있을까?"

나는 그녀의 핏기 없는 입술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보았다.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그녀는 중얼거렸다.

"아냐 아냐, 알리사의 마음은 변치 않았어."

"아니 그럼,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잖아?" 하고 나는 그녀의 팔을 꼭 잡으며 말했다.

그녀는 더 자신 있게 말을 이었다.

"한 마디면 모든 게 다 설명될 거야. 왜 터놓고 말 못하니?"

"무슨 말?"

"내가 나이가 많다는 것."

"그만둬……."

나는 곧장 나 또한 그녀 못지않게 나이를 먹었고, 우리 두 사람의 나이 차는 예전이나 다름없다고 항의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진정이 되어 있었다. 유일한 기회는 이렇게 해서 지나가버렸다. 나는 말다툼에 말려듦으로써, 유리했던 점을 완전히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틀 후에 나는 퐁그즈마르를 떠났다. 그녀와 나 자신에 불만을 품고서, 또 내가 그때까지 '미덕'이라고 부르던 것에 대해 막연한 증오감과 내 마음속에 늘 자리하고 있는 집념에 대해 원한을 품고서. 그 마지막 해후에서, 나는 내 사랑의 과장, 바로 그것 때문에 나는 내 모든 열정을 다 소진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에 내가 반대해보려던 알리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항변이 끝나버린 다음에도 여전히 생생하고 의기양양하게 내 마음속에 머물러있는 것이었다. 그래, 분명코 그녀가 옳았어! 나는 하나의 환영만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지금도 내가 사랑하고 있는 알리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 분명코 우리는 나이를 먹었다! 내 가슴을 온통 얼어붙게 한 소름 끼치는 그녀의 멋없는 변화도, 결국 따지고 보면 본래의 상태로 돌아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내가 조금씩 그녀를 한층 더 높이 떠올리고,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으로 장식해 하나의 우상으로 만들었다고 한들, 그러한 내 수고에서 지금은 피곤 이외의 그 무엇이 남아 있는가? …… 혼자 있도록 내버려두자마자 곧 알리사는 자기의 수준, 그 평범한 수준으로 다시 내려와버렸으며, 나 자신도 그 수준에까지 다시 내려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수준에서는 이미 그녀를 더 사랑하고 있지 않았다. 아!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써 그녀를 올려놓았던 그 높은 곳에서, 다시 그녀와 함께 있으려던 그 미덕에 대한 헌신적인 노력도 이제는 얼마나 어리석고 꿈 같은 것으로 생각되는 것인가? 조금만 긍지가 덜했던들 우리의 사랑은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상을 잃은 사랑에 집착한다는 것은 이제부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고집이 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충실한 것도 아니다. 구태여 충실하다고 말해본듯 무엇에 대한 충실일 것인가? 그것은 하나의 과오에 대한 충실일 따름이다. 가장 현명한 것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인해버리는 게 아닐까? 

-p, 148~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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