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초월적 측면과 사람이 쓴 글이라는 인간적 측면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에 성경의 권위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실제 해석 과정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활용하는지 정확하게 드러내는 것은 보다 진솔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노력의 일부이며 이는 성경을 제대로 읽을 때 가능한 것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제대로 된 성경읽기의 핵심은 복음이 드러내는 비틀린 일상에 대한 거부감이라는 내면적 방해물을 발견하고 제거함으로써 성경을 마주하는 나 자신을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족보나 바울의 행적 등을 살펴보면 서로 모순되거나 일치하지 않는 내용들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성경의 인간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사례의 일부이다. 또한 성경은 길고 복잡한 정경화 과정을 거쳤으며 현재 원문은 존재하지 않고 필사에 의한 전승 과정을 거치며 변형된 사본들만 남아 있을 뿐이다. 게다가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모르는 대다수 한국 교인들은 한글 번역이라는 또 한 번의 변형과정을 거친 성경을 읽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우리가 현재 읽는 성경은 인간적 한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데 이러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하려면 그 해석 과정이 투명하게 해명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읽는 과정에서 일부 구절만 따로 떼어내 선택적으로 읽거나 글의 형식과 구조, 논리적 연결 등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주관적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선택적이고 주관적인 성경읽기는 내게 불편한 메세지는 해소해 버리고 말씀의 권위를 빌어 나 자신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된다. 이처럼 성경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끊임없이 우리 삶을 방어하고 타인의 삶을 공격하는 부정적 도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철저한 검증과 비평이 필요하다. 해석에 대한 검증과 비평은 말씀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택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에 빠지는 것을 막음으로써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고백을 더욱 확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선택적 주관적 해석의 유혹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익숙하고 편리한 일상의 논리와 어긋나는 것을 마주할 때 우리는 불편함을 느낀다. 복음이 전하는 하나님 나라는 익숙한 우리 일상을 배경으로 그 익숙함 속에 숨겨져 있던 비틀림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예수는 양과 목자, 품꾼과 포도원 주인 등과 같은 평범한 일상에 하나님 나라를 비유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한 마리 양을 찾으려고 아흔아홉을 버려두는 목자와 일한 시간에 관계없이 모두 똑같은 품삯을 주는 포도원 주인이라는 일상의 논리와 어긋나는 비틀린 결말을 보여준다. 이러한 비틀림에서 일상과 하나님 나라의 차이가 부각되고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 드러나며 이제 우리는 일상과 하나님 나라 중에서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 하는 불편한 갈등을 겪게 된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늘 똑같은 익숙함 속에서는 구원의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진정으로 구원을 바란다면 익숙한 일상의 논리를 버리고 낯선 하나님 나라의 논리를 따라야 한다. 오늘날 한국의 주류 개신교는 CEO 출신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하고 이른바 ‘고소영 내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비즈니스 프랜들리’와 ‘부자감세’를 경제정책으로 추진하며 노동착취와 복지감소를 익숙한 일상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은 비틀린 일상을 드러내는 제대로 된 성경읽기가 왜 필요한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키아벨리는 “고대사에 대한 꾸준한 공부를 통해서 배운 위대한 인물들의 행위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군주의 통치를 논하고 그것에 관한 지침을 제시”한다. 군주는 “운명(fortuna)”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역량(virtu)”을 발휘하여 “무장한 예언자”가 됨으로써 새로운 국가를 설립하고 권력의 확고한 토대를 유지할 수 있다. 이때 군주에게 필요한 것은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해야 한다고 고집하는”것이 아니라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서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번영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마키아벨리는 “과장된 구절이나 고상하고 화려한 단어, 그리고 그 어떤 다른 수식이나 외양상의 장식을 하지 않”고 마치 “국가의 지도를 그리는 자들”처럼 객관적인 관점에서 <<군주론>>을 기술한다. 그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현실 속에 결코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이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해 왔”음을 지적하면서 고대사상과의 단절을 시도한다. 그리고 현실 속의 “인간은 거의 항상 선인(先人)들의 행적을 따르며 모방을 통해서 행동하기 때문”에 성공한 군주가 되는 방법에 관한 실제적인 논의를 위해 역사에 기록된 “위대한 인물들의 사례를 인용한다”.

 

그가 인용하는 위대한 인물들의 사례는 “모세, 키로스, 로물루스, 테세우스”로 이들은 모두 “행운 또는 타인의 호의가 아니라 자신의 역량에 의해서 군주가 된 인물들”이다. 이들이 국가를 세우고 “각자 자신이 만든 새로운 정치질서를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에게 “믿지 않았던 자들에게 믿게끔 할 뿐만 아니라 …… 믿었던 자들의 지지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수단은 무력과 설득력이라는 군주의 역량으로 군주가 이 두 가지 역량을 모두 갖추고 “무장한 예언자”가 되면 “강력하고 확고하며 존중받는 성공한 지도자로 남아 있게” 된다.

 

“무장한 예언자”가 된 군주는 전통적으로 미덕이라고 여겨져 온 “모든 성품을 실제로 갖출 필요는 없지만, 갖춘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실제적인 상황에 따라 외양상 미덕으로 보이는 군주의 행동이 공동체 전체에 해를 끼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가 현명한 군주라면 “그 자신이 미움을 받거나 경멸을 받는 일은 무엇이든지 삼가야”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안정을 위해서는 군주가 자신의 권력을 확고하게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따라서 “악덕 없이는 권력을 보존하기가 어려운 때에는 그 악덕으로 인해 악명을 떨치는 것도 개의치 말아야”한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전통적인 관점을 버리고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실제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탐구하여 <<군주론>>이라는 새로운 정치 매뉴얼을 작성한다. 국가를 설립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매뉴얼에 의하면 정치에서는 도덕이 더 이상 목적이 될 수 없으며 단지 목표달성에 필요한 효과적인 수단일 뿐이다. 도덕마저 수단으로 이용할 것을 권고하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당대에는 물론 오늘날에도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사실상 이것이 고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정치라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대한 정확한 반영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문 고전 강의》는 공자의 “이 문화”, 즉 “사문(斯文)"이라 할 수 있다. 공자의 사문은 "물려받은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그것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대한 통찰을 덧붙여 새로운 문화전통으로 발전시키고 그것을 하나의 전통으로 만들어 물려주는 것"이다. 사문을 갈고 닦는 것은 군자, 오늘날로 말하면 지식인이 부여받은 사명이며, 이는 "고전을 스승으로 삼"아 "스승의 말에 귀 기울이듯이 읽는 것"에서 시작된다.

고전은 "인간과 세계를 근원적이고 총체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는 텍스트이다. 《인문 고전 강의》에서 읽는 10여 권의 고전들은 "인간과 세계를 분리된 것으로 보지않"던 시대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다가 “결국 인간성을 벗어난 것, 즉 기계가 되고 만” 근현대에 이르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힘의 약진과 그것의 파멸을 목격"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삶과 사회의 "최종근거"를 어디에 두어야 이 파멸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실마리를 얻기 위해 마지막으로 《논어》를 읽는다.

"공자의 최종근거는 ‘인(仁)’"으로서, 이는 "특별히 정해진 상태가 아"니라 ”'의(義)'를 기준으로 삼아 자기를 끊임없이 이겨내고 '예(禮)'로 돌아가는 활동"이다. 기준으로 삼는 '의'는 “올바름, 공정함, 정당한 이치를 말"하며 "외부에서 주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옛 전거를 찾아 오늘날의 상황과 대조해서 연구하는 것"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이와 같이 "물려받은 것에 변화된 세계에 대한 통찰을 덧붙"여서 "질적으로 변화된 사문"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새로운 기준으로 제시하는 사람이 "군자, 사대부, 지식인"이다.

군자는 "현실의 역사에 자기 행위의 최종적인 준거를 놓"고 "전수받은 당위를 기준으로 삼아” 자기관조를 행하여 “눈앞에 보이는 물질적인 탐욕, 감각적인 것 등을 끊어"내고 '의'가 "몸으로 스며들어 그의 태도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앎과 삶을 일치시킨 사람"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자기관조를 촉구하고, 관조할 때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당위(문화)를 제시하는 것"이 오늘날 지식인의 역할이다. "그러려면 항상 스스로를 경계해야"하며, 고전을 읽음으로써 "올바름, 공정함, 정당한 이치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배워야” 한다.

대학에서조차 인문학과 고전이 외면당하고 있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인문 고전 강의》가 “40주 동안 매주 2시간씩”, “여러 세대와 직업을 가진 이들이 함께 모여서” 행한 고전 강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고전의 지혜가 가장 지혜롭"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여기고 더 높은 것을 향해 나아가"려는 태도로 열심히 고전을 읽는 것이 "가장 인간답고 나답게 공들여 사는 길이라는 것"이 전혀 "상투적인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고전과 더불어 스승으로 삼아 '雖不敏 請事斯語矣'할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전쟁에 의한 희생자는 전선의 군인들보다 후방의 민간인들이 더 많았는데, 그 원인 중 하나로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을 꼽을 수 있다. 마을의 작은 전쟁에서 희생자가 많이 발생하게 된 바탕에는 오랜 세월 쌓여온 “마을 주민들 간의 갈등구조”가 자리잡고 있었다. 한국전쟁 이전에 시작된 이러한 갈등구조는 전쟁으로 인해 일시에 극단적으로 폭발했고, 전쟁은 끝났지만, “그때 있었던 일은 60년이 다 되도록 마을을 붙잡아두고 있다.”

한국전쟁에서 사망한 군인의 수는 남북한 합해서 약 44만명, 민간인 사망자의 합은 약 65만명으로 군인보다 민간인의 희생이 훨씬 컸다. 전쟁기간 동안 “이웃한 마을 주민들이, 혹은 한 마을에서 살고 있던 주민들이, 심지어는 한 집안 사람들이 좌우로 갈려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이 벌어”지는 가운데 “처음에는 피해자였던 이들이 나중에는 가해자가 되었고, 처음에는 가해자였던 이들이 나중에는 피해자가 되었다.” “이와 같은 민간인 학살은 궁극적으로는 군이나 경찰 등 국가권력의 지시에 의해 자행된 것이었지만,” 그와 함께 “마을 주민들 내부에 이미 충돌을 가져올 수 있는 갈등요소들이 있었고, 이것이 전쟁을 계기로 폭발했던 것”이었다.

마을의 갈등은 조선사회를 규정해온 신분제가 갑오개혁을 통해 법적으로는 폐지되었지만, 신분의식의 세대 간, 계층 간 균열과 혼란은 해방을 전후하여 더 커지고 있던 상황과 맞물려 있었다. 이러한 시기 한국전쟁의 발발로 인한 “인민군의 진주는 신분제하에서 억눌리면서 갖은 핍박과 설움을 당해오던 이들에게는 신분제를 전복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로 받아들여졌”고, 이로 인하여 신분과 계급에 따라 친족 간에 또는 마을과 마을 사이에 연쇄적인 충돌이 벌어졌다. 종교와 이념 간의 갈등도 커다란 충돌을 불러온 중요한 원인이었는데, “해방 이후 친이승만 노선을 걸어왔고, 일부는 실제 우익단체에 참여하기도 했”던 기독교인들과 “종교는 아편이라는 관점, 그리고 기독교는 우익 편이라는 관점에서 기독교도들을 숙청의 대상으로 간주했”던 인민군과 지방좌익들 사이에 벌어진 충돌은 기독교인, 특히 개신교인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마을을 점령한 인민군은 “인민재판과 (인민군) 철수 시의 학살에 주민들을 동원”하였고, “다시 국군과 경찰이 들어오면서 이번에는 남쪽 국가권력의 묵인하에 민간인들이 개입된 학살이 진행되었다.” 인민군이 철수한 뒤, 부역자들에 대한 색출과 처벌이 진행되면서 “많은 이들이 마을을 떠나 산으로 들어갔고, 또 체포되어 감옥에 갔”으며 “일부 마을에서는 부역자나 그들의 가족에게 추방령을 내렸다.” “인민군과 지방 좌익 세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은 9.28서울수복 이후 가족들이 시신을 모두 찾아가 다른 곳에 묻었지만, 인민군에 부역한 이들의 시신은 경찰의 눈이 무서워 아무도 찾아가지 못했다고” 하며, “추방당한 이들 가운데에는 조상들의 뼈가 묻혀 있는 마을로 돌아오고자 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마을에서는 이들을 절대 받아주지 않았다.”

«마을로 간 한국전쟁»은 “전쟁 이전에 마을에서 벌어진 좌우익 간의 충돌, 인민군이 들어온 이후 시작된 학살, 인민군 철수 시 벌어진 엄청난 학살과 수복 후 벌어진 보복, 그리고 입산한 이들의 최후, 전쟁 이후 좌익 가족들이 겪은 수난 등등”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증언이자 자기고백이다. 이러한 사례들을 분석한 결과, 학살과 보복의 배경에는 신분과 계급 간의 갈등, 친족과 마을 간의 갈등, 종교와 이념 간의 갈등 등이 “복합적 갈등구조”를 형성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 한국전쟁이 끝난지 60여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사회는 이 복합적 갈등구조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크라테스는 대화자들 앞에서 자신의 무지를 선언하고 질문을 던진다. 소크라테스로부터 질문을 받은 대화자는 난문에 빠지고 당혹감을 느끼며 결국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대화자로 하여금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것은 대화자에게 덕과 좋음에 관한 앎에의 열망이 생겨나도록 하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은 아무런 지식도 갖고 있지 않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덕의 정의를 탐구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들을 제공하고” 있으며, 그 자신은 “시종일관 덕의 모델로서 제시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무지의 선언은 “일종의 속임수라고 믿을 만”하다. 소크라테스가 이런 속임수를 쓰는 이유는 “무지를 가장 함으로써 질문자의 자리를 확보”하고 “무지의 선언이 교육적 목적을 위한 일종의 간계로 기능함으로써 … 대화자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대화자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 보이고 또 그것을 인정하도록” 하며, “아울러 철학을 구성하는 지식에 대한 이러한 탐구의 필요성을 그들 스스로 갖게끔” 하려는 것이다.

질문을 통해 “답변자가 동일한 주제에 관해 모순된 주장을 견지하고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그 주장을 논파하는 것을 “논박술(elenchos)”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논박술이 “자기 자신을 아는 데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했다. “영혼이 자기 자신을 깨닫기 위해서는, 즉 자신이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을 가늠하는 명확한 잣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타자와의 관계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영혼이 타자의 중재를 상정한 이상, 이는 소크라테스적 논박술이 개입하는 것을 뜻하고, 내적 성찰의 형식만으로는 자신에 대한 앎을 획득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논박술의 “보살핌을 통해 지적 교만으로부터 정화되고 치유된 영혼은 곧바로 한결 더 신중해지고 현명해진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에 의해 논박을 당한 대화자는 “자신의 무지에 대해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유익한 수치심이며 … 그 수치심이야말로 그를 앎으로, 또 결과적으로는 덕과 행복으로 인도하는 내면의 대화의 첫 단계”인 것이다.

논박술을 통해 이르게 되는 덕에 있어서 소크라테스는 “덕이 하나의 앎이며, 덕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를 획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간주”했다. 그는 “지식이 기술 활동 분야의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처럼 … 지식이 윤리와 정치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성공을 보증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덕은 일종의 지식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그리고 “덕에 대한 앎은 덕에 부합하거나 혹은 반대되는 행위와 처신을 식별케 해주는 하나의 모델을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는 덕의 본성에 관해 무지한 상태로 있는 한 좋은 삶을 영위하리라는 어떠한 보증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악을 자행하는 이는 무지에 의해” 악을 행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좋음과 덕의 진정한 본성을 제대로 배웠다면, 그들은 결코 악을 저지르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윤리학은 엄격하게 주지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에서 언제나 무지를 자처하며 질문자의 자리에 선다. 끝까지 질문을 밀고 나감으로써 결국 대화자의 무지를 드러내는 소크라테스 논박술의 진정한 목적은 대화자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지식과 좋음에 대한 열망이 생겨나도록 만드는 데 있다. 앎에 있어서 주체성을 중시한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항상 대화자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2013년 대한민국에 넘쳐나는 다종다양한 멘토들은 세상의 온갖 질문에 대해 상세하고 친절한 답변들을 쏟아내고 있다. 현명한 멘토들 덕분에 대한민국에서는 굳이 당혹스러움을 느낄 필요도, 이유도 없게 되었다. 참으로 편리하고 실용적인 사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