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만 거짓말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은 잔뜩 흐리고 무척 쌀쌀하였다. 

어제 게으름 피우느라고 군불을 때지 않았다가  

새벽에 식어가는 방바닥에서 허리, 팔, 다리 온갖 관절이 뻣뻣해지는 걸 느끼며 무척 후회한터라 

(그 와중에 7년을 같이 산 남편이라는 사람은 이불을 돌돌 말아가서는 혼자 드르렁거렸다. 

출산한지 만 5개월도 되지 않은 마누라 이불 깃을 여며 덮어줘도 시원찮을 판국에 !!!)

그래서 출근시키자마자 서둘러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그리고 들어와 인터넷 뱅킹을 하고 있는데 눈 앞에 통유리창 너머로 희끗희끗한 것이 날린다. 

눈이다.  

목련 꽃 그늘 아래여야  할 4월 하늘에 눈이 펑펑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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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1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열흘 정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사이사이 비도 내렸는데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아서 어디가 새는구나 했지만 

어딘지 찾을 수가 없어서 불편한 나날이었다. 

물독에 길어다주는 물을 퍼서 설겆이도 하고 밥을 하려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번거로워서 아무 일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미니아빠는 아침마다 고양이 세수만 하고 집을 나서 목욕탕에 들러 씻고 출근을 했다. 

미니는 사촌언니들과 목욕을 가서 눈이랑 코랑 귀랑 물이 들어가서 힘들었어도  

머리도 감고 한 번 씻고 왔지만 나머지 세 모자는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이상고온을 견디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새는 곳을 찾아내어 물이 나오던 날 정말 천국이 따로 없었다. 

설겆이도 금새 끝나고 무엇보다 그릇이 깨끗하게 다 씻기는 느낌이어서 개운했다. 

물이 나오니 나도 에너지가 넘치는 기분이어서  

아침 나절에 위 아래 두 아궁이에 불 때고 재민이 씻기고 나니 땀이 나는데다 

태민이도 마당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들어왔길래 내친 김에 모두 씻었다. 

그런데 우리 집 삼식이는 아무리 반찬이 없어도 꼭 점심을 먹으러 들어오는터라 

시간 맞추느라고 어찌나 서둘렀는지 막 다 씻고 대야의 물을 버리고 있는데 집안으로 들어섰다.  

출퇴근 길에 빨래바구니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물 열 통 떠다 나르지 않으니 삼식이도 좋단다.

부랴부랴 챙겨 먹여 보내고 나니 오후엔 세상 모르고 셋 다 잠이 들었다.  

 

그런데 어제는 주문한 진공청소기가 왔다. 

언제든 살 수 있었는데 미루다가 7년 만에 산 것이다.  

청소기도 있는데 자주 청소하지 않을 나 자신에게 더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서 미루고 미루었지만

막상 문 턱이며 창 틈, 그 밖의 온갖 틈새에 쌓인 먼지를 빨아들이고  

요며 이불도 따로 흡입기가 있어서 속 시원히 털어내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묵혀두고 쳐다만 보던 짐들을 대충 정리하고 나니

방들이 환한 것이 역시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 사이에도 물론 삼식이 점심 차려내고 

이불 하나랑 큰 바구니 하나 가득 빨래 널고 개고 하다보니 역시 넉 다운! 

 

재민이는 이 모든 일을 하는 동안 젖 먹이고 기저귀만 갈아주면  

마냥 누워있거나 뒤집으면서 놀거나 잠을 잤다. 

아기가 어릴 때는 아이가 일을 다 한다더니 덕분에 빨리 끝냈다.

천국이 따로 없는 것도 좋고 

평소에 불만인 게으른 내 모습을 청산하고 부지런히 움직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요령껏 일을 나누어 하지 않고 몰아서 하게 되니 늙어가는 몸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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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3-27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자랐던 충청도 시골에선 마당에 펌프가 있어도 물을 아껴썼어요.
우린 너무 물을 낭비하고 살아요. 물부족 국가로 분류되었어도 홍보가 안돼서 그런지...
천국이라고 느끼는 그 마음에 축복을

miony 2009-03-29 16:36   좋아요 0 | URL
물이 나오지 않아서 고생을 하고나서야 아껴쓰게 되네요.
그래도 아랫마을에서 가져다 쓸 수 있어서 그저 불편한 정도였는데
요즘 물이 많이 부족하다는 태백에 사시는 분들은 어찌 지내시나 걱정이 됩니다.
 

저녁을 먹다가 뜬금없이 뒤에 앉은 엄마를 돌아보며  

"아무리 혼날 일이라도 솔직하게 말할께요!" 

이건 뭐 <그래, 결심했어>하는 분위기로 비장한 표정이다. 

" 오늘 초롱이네 집에 가는 길에 향원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어요!"  

 

일요일 어린이 법회가 끝나고 유치원,1학년,2학년 아이들 6명이 초롱이네 놀러가는 길에 

몇몇 아이들이 가진 돈을 모아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는 것이다. 

미니 말로는 1학년 서연이와 2학년 수연이가 모아서 셈을 치렀다고 하고 

2400원인데 돈이 모자라서 아줌마가 20원을 깎아주었단다.  

그래서 4000원을 냈다나? 

(이거 원 무슨 말인지...  

나중에 혼자 생각하니 요즘 아이스크림이 적어도 700원은 하는 것 같고 

6개에 4200원인데 200원 모자라는 것을 깎아주신 듯 하다.  

어쩐지 20원이라는 것도 이상했다.ㅎㅎ) 

 

자기는 나무 언니가 맛있는 걸로 골라주는 걸 먹었는데 

" 돼지바 저~엉말 맛있어요!" 

였고 생전 처음으로 친구들끼리 군것질을 한 것이 무척 흥분되는 모양이었다. 

결론은 혼이 나더라도 맛있는 것을 사 먹은 일을 자랑하고 싶었던 거다. 

정말 미니답다. ㅋㅋ

 

엄마는 그래서 결국 아이스크림을 사 준 친구가 누구며 고맙다는 말이라도 했느냐고 물었지만 

그런건 전혀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이럴 때 너도 다음엔 친구들에게 아이스크림 하나 사 주어라 하면서 용돈을 주어야 하는 것인지 

계속 얻어 먹고 다니게 그냥 놔 두는 것이 좋은지 고민이다. 

용돈을 주게 되면 군것질이 버릇이 되고, 돈의 가치를 알아서(?) 욕심을 내게 될까 걱정스럽고 

앞으로 늘 어울려 다니게 될 친구들인데 마냥 받기만 해도 안 될 것 같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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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6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03-27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나도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어요.
귀여운 미니~~ 정말 솔직하네요.^^

>>sunny 2009-03-28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ㅋㅋㅋ
그냥 친구들을 사주라고 돈을 주시면 어떨까요?
벌써 용돈은...ㅋㅋ
 

아무리 불러도 들은 척도 하지 않던 오랜 나날이 지나고 

밖에서 놀고 있을 때 이름을 크게 두어 번 부르면 드디어 대답을 한다. 

" 어- !"  

짧고 단호한 소리에 메아리가 뒤따른다.  

전에는 눈에 띌 때까지 종종거리며 찾아다녔는데  

그 한 마디에 할아버지 댁 마당에 있는지, 닭장 옆에 있는지, 마을 길에 내려가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 편하다. 

그런데 집안에서는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뭏든 조금씩이지만 자라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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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9-03-24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한 번 아이들 보러 가고 싶어요.
남편이 돌아오고 시험보고 7월쯤에나 가능하려나...

2009-03-24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맹이 2009-03-25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다행이다! 축하해..

2009-03-26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nny 2009-03-28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무럭무럭 자라라!!!
 

드디어 마지막 팔을 빼내는 데도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자연스럽게 뒤집는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서 놀 때는 뒤집는 일로 시간을 다 보낸다. 

그런데 문제는 뒤집기달인이라는 것! 

아직 다시 제자리로 돌아눕는 것을 잘 못한다. 

팔꿈치로 버티며 고개를 들고 휘휘 둘러보는 시간이 자꾸 길어지고는 있지만 

결국 이마를 바닥에 박고 끙끙 응응 괴로워한다. 

돌려놓아주면 또 뒤집고 끙끙, 돌려놓아주면 또 뒤집어서 앙앙  

어쩌다 혼자서도 다시 돌아눕곤 하는데 그러면 한 바퀴를 구르는 셈이어서 

작은 아기 요 밖 맨 방바닥에 머리를 콩 찧는 일이 생긴다. 

어제부터 방바닥 전체에 요를 쫙 깔아놓고 열심히 뒤집고 가끔 구르고 있다. 

 그러다 지치면 젖 먹고 다시 한숨 푹!  

이렇게 하루가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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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2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03-22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뒤집기'만' 달인이라굽쇼?
곧 뒤접었다 엎었다 할 날이 멀지 않았군요.
잘 자라고 있는 또민이~~ 고맙네요.^^

>>sunny 2009-03-24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러러러럴///ㅎ_ㅎ
왠지 상상이 안가...
난 또민이의 그 가만히 누워있는 순진한(?)아니
세상물정모르는 순수한 모습이 더 생각나는건 왤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