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는 미니아빠가 서울에서 술 빚는 거랑 반가음식을 배우느라 새벽에 나가면 한밤중에 돌아온다.

양조장 막걸리는 밀가루와 첨가물이 많이 들어가서 좋지 않다고

쌀로만 빚은 술을 약에 쓰기 위해 시작했는데

술이 익어가면 아니나다를까 절반은 마셔서 없애는 것 같다.

병은 생활로 고쳐야한다고 결국은 모든 것이 먹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요리도 배운단다.

미니아빠가 있으면 아무래도 무슨 일인가 도울 일이 생기고 아이들도 덩달아 일자리 근처에서 놀아야하니

그리하여 금요일은 은연 중에 해방의 나날 분위기가 된다.

졸린 눈을 하고 휘청거리면서 아빠가 보고싶다고 기다리고 앉았길래

오늘 무척 늦으실 것 같으니 먼저 자라고 했다.

- 늦어도 괜찮아. 그러면 아빠가 일도 안 시키고 편~하잖아.

- 엄마는 일을 해도 아빠가 옆에 계시는 게 더 좋은데?

-(믿을 수 없다는 듯 다 아는데 뭘 그러냐는 표정이 역력하게) 엄마도 일 안 하는게 좋으면서!

- 그래도 아빠가 계신 것이 더 좋아.

-(눈이 동그래지며) 그러면 엄마는 아빠를 제일 사랑하는거야?!

- 아빠랑 수민이 태민이를 제일 사랑하지.

- 지난 번에는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두 명이라면서!!! 그럼 거짓말 한거야?

- 그러면 엄마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수민이,태민이라고 하고 그 다음에 아빠라고 할까?

- (표정이 풀어지며) 응!

 

그래놓고도 뭔가 미진했던 모양이다. 아빠 흠집잡기로 마무리^^

- 그런데 아빠는 엄마한테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왜 소리를 지르시는거야, 그지?

어딜 내놓아도 버금가라면 서러울 버럭남편(아주버님들도 마찬가지^^;;;)이라 할 말 없다.

 

어젯 밤에는 약을 좀 싸고 있으려니 아빠한테 따지듯 물었다.

- 아빠, 엄마가 힘드신데 약 싸라고 하면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언제는 유치원 간식 원하는대로 사 주시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더니

여섯 살에 벌써 점점 여성동지가 되어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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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8-01-16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우리집 풍경을 보는 것 같네요.
남편께서 술 만드는 걸 배우러 다니시다니 놀랍네요.
그런 것도 약에 쓰시려고 배우나 봐요.

순오기 2008-01-16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동지가 생겨서 든든하시겠어요.^^
알콩달콩한 님의 삶이 그려져요!

솔랑주 2008-01-16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모가 든든 하시겠어요~^^
이모 혹시 인생극장에 방송되는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miony 2008-01-17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덕분에 요즘 술 빚는 일 돕느라 살짝 귀찮답니다.^^
순오기님, 아빠가 제일 좋다고 할 때도 섭섭치 않고 흐뭇했는데 엄마 역성을 드니 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솔랑주님,아이있는 집 풍경은 다 고만고만 하답니다. 그렇게 따지면 모두가 인생극장 방송감이지요.^^

hsh2886 2008-01-20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수민이 표정이 머리속에 그려져요ㅋㅋㅋㅋㅋㅋ

2008-01-29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엄마, 오리가 꽥꽥거리는 까닭이 뭔지 알아?

생뚱맞은 질문이라 대답도 궁하고 아무래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서

- 넌 어떻게 생각하니?

되물었더니 신나게 준비된 답을 들려준다.

- 응, 그건 물이 많아서 먹다가 토할 것 같아서 꽥꽥하는거야.

 

요즘 색종이로 몸통 따위를 오려붙인데다 나머지를 크레파스로 그려 완성하는 그림에 열심이다.

하루는 네모 난 종이 아랫부분을 공들여 가위로 나란하게 오려왔다.

- 엄마, 이게 열 개인지 좀 세어 줘.

- ... 열 세 개네. 왜, 열 개라야 되니? 그냥 쓰지?

- 안 돼. 오징어 만들건데 다리가 열 개잖아.

세 개를 잘라내 주었는데 금새 어디 두었는지 잃어버렸다며 새로 오려와서 하는 말.

- 사실 이런 거 만들 때는 꼭 열 개가 아니라도 되는데, 그지?

 바닷속에 잠수부와 함께 빨판까지 정성껏 그려놓은 문어 다리는 여덟 개란다.

 

요즘 그리는 그림엔 항상 세 사람이 등장한다.

가운데 치마를 입은 미니와 왼쪽에 강나리(사실, 내 상상 속의 친구란다.), 오른쪽에 태민이다.

자신을 가장 크게 옷의 무늬와 머리카락 등을 공들여서 그리고

하늘에는 구름 모양의 비행기에 조종사(핸들 모양의 조종간을 잡고 있다.)와 네모난 창문을 그린다.

그런데 어제 옆에 서 있는 그 친구의 이름이 바뀌었다.

엄마랑 성이 똑같다는 그 친구의 이름은 바로 <흰정>이란다.

내 이름보다 발음하기 더 어려운 것 같은데

남동생들도 어릴 때 나를 희른정 또는 흰정이라고 불렀다. ㅋㅋ

 

저녁을 짓고 있는데 부엌에 들어오더니 뜬금없이 묻는 말,

- 엄마, 내가 어떻게 여자로 태어났을까?

- 여자로 태어나서 기분이 어떠니?

- 응, 예쁘고 좋아!!!

긍정적인 반응이어서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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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16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한 여성동지 되시겠습니다! ^^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광고가 생각나는 페이퍼!
 

미니아빠는 아이가 셋이면 좋지 않겠느냐고 하고

나는 태민이도 아직 어린데 더 작은 아이를 가져서, 낳아서, 또 사람 비슷하게 키우려면...

상상만 해도 힘이 들어서 절대 반대다.

그러다보니 아빠는 수민이에게 여동생도 있으면 좋겠지? 라는 질문을 자주 하고

나는 나대로 동생이 하나 더 있으면 네가 먹을 것도 양보해야 되고, 돌봐줘야 되고

차에서 내릴 때 졸려도 걸어야 되고 어쩌구 저쩌구 길게 늘어놓곤 한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여동생을 낳아주면 자기가 돌보고 태민이는 엄마가 돌보면 되니까

동생을 하나 더 낳아달라고 조르더니

(또 남동생이 태어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하자 남동생일지 여동생일지 일단 낳아보잔다.^^)

며칠 전에는 엄마와 미니 사이에 자꾸 끼어드는 동생을 보면서

" 어유, 징그럽다, 징그러워! 태민아, 저 쪽으로 좀 가라!"

" 엄마, 동생이 하나 있어도 이렇게 힘드는데 한 명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라고 하길래 드디어 엄마에게 설득당했나 보다 했었는데

오늘은 또 사실은 여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을 바꾼다.

그러더니 동생을 낳으면 엄마가 너무 힘들고

산후조리원에도 다시 가야 되니까(= 미니가 엄마랑 떨어져 지내야 되니까^^)

낳지 말고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나는 흥미진진하여 어떻게 여동생을 만들 것인지 물었다.

" 이 색종이에 여동생을 그려서 가위로 오려서 내일 아침에 반짝이 가루를 뿌리면 되지!"

자신만만하게 대답하고 나서 조금 있다가 덧붙이는 말,

" 그런데 반짝이 가루를 뿌리면 어떻게 살아나게 되는 걸까? 정말 궁금해, 그치?"

 

종이괴물 대소동에서 그림에 반짝이 가루를 뿌리면 괴물과 공룡들이 살아 움직이는데

미니는 어떻게 그 가루를 구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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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2-25 0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아이다운 발상, 너무 귀여워요! 반짝이 가루 구하면 제게도 나눠주세용 ^^
아이가 셋이면 세배로 힘들지만, 기쁨도 행복도 세배로 많답니다~~
저는 둘 둘 자매 형제 다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막내를 서른여섯에 낳다보니... 딸둘 아들 하나로...참았답니다아~~~ ^^

miony 2007-12-25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형제,자매 다 만들어주고 싶지만 둘째를 서른 여섯에 낳다보니 셋째는 엄두가 안난답니다.^^

2007-12-25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7-12-26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게 하면 동생을 만들 수가 있군요.
아, 8년 전 우리 딸 동생 만들어 달라는 말에 덜컥 남동생 낳아주었구만.

miony 2007-12-28 11:12   좋아요 0 | URL
휼륭하십니다. 두 아이가 다 엄마한테 고마워 할 거예요.^^

2008-01-02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쪽을 향해서 자면 가난해진다 하고 북향도 꺼리는 것인데다

방의 남쪽이 동쪽보다 길이가 짧은 탓에 방문이 동쪽으로 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향으로 자는 날이 많다.

어제도 아빠는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일찍 잠이 드셨고

자정이 가까워오자 수민이도 졸리는지 맘에 드는 베개, 이불 챙겨서 잠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아빠와 나란히 자야 엄마랑 동생이 끼어들 자리도 생기는데

북쪽에 머리를 두고 아빠와 <ㅗ>자를 이루며 공간을 도막내고 있어서

안아서 돌려 눕혀주려 했더니 완강히 거절하며 고집을 피운다.

짐짓 겁을 주려고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 죽은 사람들만 북쪽으로 눕는 거래!

- 그래도 북쪽으로 잘 거야!!! 북쪽으로 잔다고 살아있는 사람이 죽는 건 아니잖아, 그치?

- 글쎄, 그런 잘 모르겠는데...

- (느긋하고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그럼 한 번 자 보면 알겠지!

이렇게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왜 북쪽으로 자고 싶은지 계속 캐물었으나 <그냥>이라고만 한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속셈은 동향으로 누운 엄마 배 위에 직각으로 다리를 올려놓고 자고 싶은 것이었다.

기껏 엄마 배 위에 다리 올려놓고 자는 일에 목숨을 한 번 걸어본다는 식이니 웃지 않을 수 없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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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2-11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귀엽네요~~~~ 그런 고집이 아이의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큰 일을 해냅니다!
잘 키우셔용~~~ ^^

조선인 2007-12-12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하핫 정말 귀여워요.

2007-12-21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학창시절 쉬는 날이면 열 두 시도 좋고  두 시도 좋고

어두운 복도 쪽 창 하나가 있으나마나 하던 굴 속 같은 방에서

아침도 굶고 아주 실컷 자곤 했다.

그런 날 눈을 뜨면 두드려 깨우지 않고 재우는 엄마가 얼마나 고맙던지!^^;;

그런데 모전여전인지 미니가 늦잠을 잔다.

도대체 아침 잠이 너무 많아서 일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나도 미니아빠가 흔들어 깨우기 전에는 못 일어나는데 그 때가 일곱시 하고도 30분 언저리이다.

주섬주섬 아침 상을 차리고 어쩌고 저쩌고 어영부영 두 시간이 더 지나도 감감 무소식..

열 시가 가까워 방에 전등불을 밝히고 옆에서 수선을 피워야 눈을 뜬다.

아침마다 늦잠꾸러기 어서 일어나라고 아빠가 장난을 걸어 깨워보지만

너무 졸려요! 라며 짜증 반 응석 반으로 버티고 다시 잠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아침도 대충 생략하게 되곤한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서 뭐 입맛이 당기겠는가? - 나 배 안 고파! 한 마디로 일관한다.

미니아빠는 아침을 거르는 부분을 가장 걱정한다.

얼마 전 키재기 자를 붙여놓은 친구 집에서 재어보니 평균보다 3센티미터나 모자라던데 이대로 계속 재워도 되는건지 나도 걱정이다.

미니를 일찍 재우려고 캄캄하게 불을 꺼놓으면

요즘 낮잠이 늦어지는 까닭에 밤에는 펄펄 나는 태민이가 너무 안쓰럽고, 잠들 분위기도 아니다.

내년 봄에 유치원에 다시 다니면 그 때 쯤이나 좀 나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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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7-12-1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녁에 일찍 재워 보세요. 우리 아이들도 어릴 때는 늦잠을 자기도 했는데 어린이집 다니면서는 고쳐지더라고요. 그리고 늦게 일어나더라도 아침밥은 꼭 먹이세요. 저는 국에 밥을 말아서라도 거르지 않고 먹였어요.

miony 2007-12-11 17:42   좋아요 0 | URL
차려주어도 한 두 숟가락 먹을까 하고는 조금 지나면 간식 타령만 한답니다. 굶기는 것보다 숟가락 들고 따라다니면서라도 먹여야 되는 것인지 고민입니다.

순오기 2007-12-11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3 딸한테 요거 읽어줬더니, "바로 나네!" 하는군요 ^^
글쎄 어릴때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린이로 키워야 하는데...
아침도 꼭 먹여야 하니 대안이 필요하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