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2월 8일) 검은비님의 페이퍼 ‘이런 이야기를 해 줘야 하다니...’를 읽고 마음이 찹찹하였습니다. 제가 결혼하지 않는 여러 가지 변명 중에 하나는 나의 자녀들한테, ‘그래 세상은 살아 볼만한 것이야.’라고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검은비님은 성범죄의 배경에 우리나라 저변에 깔린 포르노 문화를 지적하셨습니다. 저는 이 의견에 동감합니다.
예전에 ‘람보’라는 미국 영화를 보러 갈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거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고편만 보아도 미국 우월주의와 황인종에 대한 인종 차별적 시각이 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대학 졸업 후 직장 동료에게 하니, 깔깔 웃으면서 영화는 그냥 재미있는 영화로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인디아나 존스, 미궁의 사원>를 재미있게 보다가 마지막에 이르니 티벳 사이비 종교 집단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들은 황인입니다. 마치 아시아인들은 미개하고 미신을 믿는다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1>에서도 백인은 정의, 흑인은 악인, 황인은 미개하다는 인상을 주고, 조금 더 예전으로 가면 70년대 TV 영화 <쾌걸 조로>가 있습니다. 영웅도 백인, 악인도 백인, 무능력 황인.
얼마 전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영화가 논쟁 거리였습니다. 알라딘에서도 관련된 몇몇 페이퍼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제가 재미있게 느끼는 것은 그와 같은 논쟁이 몇 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007 어나더데이 Another day>입니다. 진보적 그룹에서는 북한에 대한 왜곡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이유에서 영화를 보지 말자는 운동까지 있었고 그 반대편에서는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거꾸로 진행되었습니다.
일단 영화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영화를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저는 이 의견에도 선뜻 동의하기가 주저됩니다. 논란이 많은 TV 드라마 예를 들면 불륜과 같은 부도덕한 줄거리의 드라마는 논란이 지속되고 시청률이 올라가면 연장 방영을 하고 좋은 드라마라고 하여도 시청률이 떨어지면 조기 종영합니다. 따라서 나쁜 영화나 영상물은 보지 않게 되면 자연히 소멸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술적 좋고 나쁜 것의 판단도 어렵지만, 예술적 면과 흥행적인 면인 일치하지도 않습니다.
사실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만약 사실을 그대로 표현한다고 하면 영화가 아니고 다큐멘터리가 되겠지요. 다큐멘터리도 편집에 따라 왜곡이 될 수 있습니다. 한편 사람의 사고의 개입 없이 사실 그대로 표현은 예술이 아닙니다. 오히려 작가의 왜곡을 통해 예술성을 드러냅니다. 제가 찍은 디지털 카메라 사진보다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이 예술성이 더 있는 이유입니다. 어느 사극 연출가가 시청자로부터 항의전화를 받았는데, 자신의 조상이 실제 사실보다 나쁘게 표현되었다고 시정을 요구하였답니다. 연출가는 그 장면에서는 시청자의 의견이 맞지만 다른 장면에 예정에 없던 사실과 똑같은 조상의 잘못된 장면을 넣겠다고 하니 아무 이야기 없이 전화를 끊었다고 합니다.
만약 일본에서 예술을 핑계로 우리나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저를 포함한)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논제 4) 예술적 감흥에 의한 사실의 왜곡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하고 정당한가?
논제 4-1) 예술과 외설의 차이는? (검은비님 페이퍼에서 나온 따름 논제)
<007 어나더데이>와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저의 상황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007 어나더데이> 에서는 진보(?)적 사람들 중 사실주의가 목소리를 높였고, 표현주의자는 침묵하였다. 그리고 보수(?)적 사람들은 표현주의자가 목소리를 높였고, 사실주의자는 침묵하였다. <그때 그 사람들>은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결론은 ‘예술적 철학보다는 정치적 철학이 중요하다.’ - 이렇게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