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 저승편 - 중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살아 생전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못하고 착하게만 살았던 자홍씨. 그가 엄격하기로 유명한 세번째 지옥 대왕 앞에 섰다.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죽은 탓에 부모 가슴에 못 박을 일도 적었던 자홍씨지만, 살아 생전 착하기만 했던 게 더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능력있고 기지 넘치는 진 변호사는 화려한 언변과 설득력으로 엄격한 세번째 지옥마저도 의뢰인을 데리고 무사히 통과한다. 자홍씨, 저승 변호사 복이 있다! 

불효자가 넘치는 세상인지라 일거리에 치이는 송제대왕은 유능한 진기한 변호사에게 판관 자리 스카웃 제의를 한다. 하지만 심판보다는 구원 쪽이 즐겁다고 완곡하게 거절하는 진변호사! 심판보다 구원이 더 좋다고 말을 하는 그에게서 성자의 모습이 보인달까. 자홍 씨가 혹시 '신'이 아니냐고 묻자 화들짝 놀라는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떠본다. 제목이 '신과 함께'가 아닌가. 이 수완 좋은 변호사, 사람 좋은 자홍 씨를 위해 특별히 내려온 어느 '신'이 아닐까. 뭐, 그건 나중에 나오겠지.  

실컷 심각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진지하기만 해서는 이 만화의 진면목을 다 말해줄 수가 없다.  

 

네번째 검수 지옥을 설명하기 위해서 모래 위에 한자를 써본다. 어렵다! 대강 지우고 한글로 써주는 센스! 

이들이 머무는 호텔의 이름을 보시라. 호텔 캘리포니아가 왔다가 울고 갈 명 이름이다.  

다섯 번째 발설 지옥의 염라 대왕은 저승 근대화에 발맞추어 컴퓨터 익히기에 여념이 없다. 검색은 생활화! 구글이 울고 갈 죽을! 기가 막힌 유머 감각이 아닌가! 게다가 업경에 죄를 비춰보는 시간을 영화 감상하는 시간처럼 안락의자와 팝콘 대령! 이 작가를, 이 저승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잠시 이승 얘기를 해보자. 원귀는 자신의 시체를 찾았으니 저승 차사와 함께 저승으로 가야 마땅하지만, 군부대 앞에서 아들을 찾는 제 어미를 보자 폭주하고 만다. 그는 제대를 코앞에 두고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사람이었다. 사고는 덮어졌고, 엄마는 탈영병의 오명을 뒤집어 쓴 아들을 애타게 찾는다. 1인 시위 중인 어머니의 모습에 왈칵 눈물이 난다. 이건 결코 '창작'이지만은 않으니까. 애가 타는 모정과, 그런 어미를 보고 있는 원귀의 설움이 한껏 마음에 와서 부딪힌다. 게다가 이 원귀! 우리의 의뢰인 김자홍 씨만큼이나 착하디 착한 인물이다. 저승강 건너면 똑같이 심판을 받고 죄값을 치른다지만, 이런 억울한 죽음을 만들어낸 사람이 이승에서 계속 활보하고 다녀도 되느냐고 목청껏 외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너무 많은 세상이니... 

다시 돌아가서, 네번째 검수 지옥이 오관 대왕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업칭'이라는 저울로 죄의 무게를 재서 죄가 바윗 덩어리보다 더 무거운 사람은 시퍼런 칼날이 우거진 숲으로 떨어뜨린다. 그가 남긴 명언이 있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 많이 들어봄직한 말이지만, 그것이 저승 대왕의 이야기라면 달리 들린다. 더더욱이 죄의 무게를 재고 있는 저울 위에서라면. 나의 입을 빌려서 나온 말들, 나를 통해서 걸러져 나온 행동들, 그리하여 내 죄의 무게를 상상해 본다. 아찔하다. 역시, 착하게 살아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다섯 번째 '발설지옥'은 우리에게 익숙한 염라대왕이 심판을 관장하는 곳이다. '업경'을 통해 죄인이 살아오며 입으로 지은 죄악을 심판하고, 죄가 무거운 자는 혀를 길게 뽑아 그 위에서 소가 밭을 갈게 하는 형벌을 내린다. 똥거름을 뿌릴 필요도 없이 아주 거름진 혀밭. 얼마나 썩어 있기에 씨만 뿌려도 바로바로 나무가 자랄까. 한라봉을 닮은 기똥찬 맛의 이 과일 이름은 게다가 '염라봉!' 

요즘은 익명성을 무기로 남을 괴롭히는 무서운 댓글도 많이 올라오는 세상이니, 염라대왕은 '손가락'도 뽑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계신다. 다시 한 번 강조! 죄업을 늘리지 말자.  

염라대왕은 무골호인 김자홍을 이승에서는 힘들고 불리한 성격이나 저승에서는 상받을 성격이라고 규정했다. 늘 착하게만 살아서 언제나 손해만 보고 사는 사람에게, 당신의 저승 업경에 비출 모습을 생각하며 너무 억울해하지 말라고 말하면, 혹시 위로가 될까? 손해 보고 살아도 그걸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에 스스로 눌리는 사람이라면 별로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지금 당장, 여기에서의 자신을 더 생각하는 법이니까. 

염라대왕의 소원 질문에 대개의 사람들은 다시 살아나게 해달라거나 모든 지옥 시험을 다 패쓰하고 바로 극락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한단다. 그럴 것 같다. 욕심 없는 우리의 김자홍 씨는 조금 다르겠지만... 죽어 소용없는 재물을 원한다든지. 이미 한줌 흙으로 돌아간 육신의 부활을 의미한다든지, 그렇게 사용할 수 없는 카드를 선택해서 애석하게 멋진 기회를 놓치는 바보는 되지 말아야겠는데, 그럴 자신이 솔직히 없기는 하다. 역시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꽤 유능한 변호사가 필요할 듯! 

작품 말미에는 저승삼차사에 대한 설명과 관련 사진, 그리고 웃음을 살짝 자아내게 하는 4컷 만화가 실려 있다. 혹시 연재 당시에는 없던 보너스 컷 같은 것일까?  

변신(?) 트랙터를 만들어낸 진 변호사, 이제 김자홍 씨를 데리고 다음 관문을 갈 차례다. 하권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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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11-01-23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그림이 바로 만화의 묘미겠지요? 죽을 보다는 주글이라고 했으면 더 재미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마노아 2011-01-23 15:22   좋아요 0 | URL
소소한 곳에서 빵 터지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요. 하권에서는 '스타벅스' 패러디도 나옵니다.ㅎㅎㅎ

무스탕 2011-01-24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염라봉에서 뿜었어요. ㅋㅋ

마노아 2011-01-24 15:36   좋아요 0 | URL
네이밍 센스가 끝내줘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