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고를 때 절대 '한 눈에 반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음...아니었다. 물론 책 제목을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맞지만, 항상 목차를 보거나 그 내용이 뭔지 파악한 후에야 손에 드는 편이다......음...편이었다.
그런데 최근 몇 개월 사이에 난 '한 눈에 반하는' 책 몇 권을 만났다. 평소의 나 답지 않게 목차도 보지 않았고, 내용도 전혀 몰랐고,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작가가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순전히 '책의 제목'만 보고 말이다. 그것도 제목을 보고 반하여 '읽고 싶다' 라는 욕구가 생긴 것이 아니라 '갖고 싶다'라는 마음이 생긴 건, 나란 사람에겐 참 생소한 경험이다.
그러니까...나이가 들어가서 변하고 있는건지, 봄이 다가와서 변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느낌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20대 때에도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한 눈에 보아도 매력적인 누군가를 만났을 때도, 난 운명적인 느낌이란 없는거다. 라고 단정짓고는 그저 인상이 좋았던 누군가로 기억할 뿐이었다. 뭐든 첫 눈엔 알 수 없는 법이다. 오래 겪어봐야 진짜다. 오히려 어렸을 때엔 그렇게 진중하게 고르고 가리고 외면했었는데 말이다. 바뀌고 있는건진 알 수 없지만, 조금씩 낯설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있는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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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아마 이 책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가끔 연애하는 드라마에서 사랑하는 대상에게 흔히 하던 말들 중 하나가 바로 '아프지 마라'였던게 생각났다. '사랑한다'는 말 보다 더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말. 잘 생긴 남자 주인공이 예쁜 여자 주인공에게 무심한 듯 툭 던지던 그 한마디에 아마 나도 설레였지 않았나 싶다. 그건 그랬던 것 같다. 오랜 친구가 건네는 '보고 싶었어'란 말보다 '아프진 않니?'란 말이 더 좋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난 참 건강한 체질이라는거다. 벌써 몇 년째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잘 지내고 있다. 힘 쓰는 일도 잘 하고 잘 아프지도 않는 건강 체질. 심지어는 많이 아파도 얼굴에 티가 잘 안나는 손해 보는 스타일이라 가끔 야속할 때도 있을만큼. 아...그래서 섭섭할 때가 있었다. 난 정말 많이 아픈데, 열도 나고 목도 아프고 몸도 쑤시고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아픈데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때, 괜히 스스로 아프다 아프다 말 하기 싫었던 그 날. 누구에게도 아프니? 괜찮은거니? 라는 말을 듣지 못했던 기억들이 난다. 엄살 피우기도 싫고 아쉬운 소리도 하기 싫은 성격이면서도 참 못되게 누군가는 알아서 챙겨주길, 알아서 알아주길 바라는 못된 마음. 그게 시작이었나...여하튼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한 마디에 마음이 저릿해졌다. 당신이 물어 주는 '어디 아픈데 없니?'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내가 느꼈던 바로 그 느낌이었을거야......
이 책이 여행 에세이란건 이 책을 얻고 나서도 한참 기다리다 펼쳐 보고야 알았다. 이런 책은 목차 부분을 일부러 넘겨 버리고 무작정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것이 훨씬 더 제목의 느낌을 잘 전달하는 것 같아서다.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물어보는 당신 같은 에세이. 아프지만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기운을 전해 주는 신비로운 도시의 감성. 읽어내려 가며 내가 느낀 그 느낌을 그대로 얻기는 힘들었지만 시인의 감성으로 엮인 문장들이 위로를 주는 책이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가장 큰 위로를 주는 건 역시 제목. 책꽂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약간 덜 집어 넣은 상태로, 스쳐 지나가다가도 가장 눈에 잘 띄일 수 있게 꽂아 놓았다. 아픈 날, 혹은 아프지 않지만 쓸쓸한 날, 분명 나에게 위로가 되어줄 것이므로...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그리고 두 번째로 꽂혔던 제목.
이건 내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 '아무도 필요치 않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참으로 내 마음이 그랬으니까 정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제목이 나에게 콕 박히고 나서는 조금은 혼란스럽다.
소설인 줄 알았는데 거짓말처럼 쓸쓸한 사진이 잔뜩 있는 여행 에세이였다. 이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던 작가를 만나 그의 여행에 잠시 동참하는 기분. 그는 이 여행을 <누군가를 그리워 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라고 했다. 철저하게 고독하고 자유롭게 혼자 떠난 여행에서 그는 무수히 많은 이들을 그리워한다. 스스로 떠난 사람이 남겨진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서성이며 떠도는 그의 흔적들을 보고 있노라니 정체모를 그리움에 휩싸이기도 한다. 하지만 난 여전히 그리움이란 감정 앞에선 낯선 이다.
그만큼 지나간 인연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살았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치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잘 하지 못했다. 끊어내려고 의도한건 아닌데 그렇게 잊고 살았다. 중학교 동창을 만났을 때, 그녀가 나와 친했던 사이인지 아닌지조차 기억해 내지 못할 정도다. 가끔 병적이지 않나 싶을 정도로 그리워하지 않고 살았다. 바빴다고, 여유가 없었다고 말하기에 난 너무 차갑다.
거짓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덮으며. 그토록 그리워했다 믿었던 선생님과의 영원한 이별 앞에서 한동안 참으로 괴로워하며 나에게 그리움이란 허상이며 거짓일 뿐이었다고 자책했던 그 시간이 자꾸 아프게 기억된다.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얼마나 공허하게 헛도는 말인가. 그리워할 뿐 사랑하지도 보듬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면 그건 거짓말이 아닌가. 내 그리움은 어느 시간에도 전달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감정의 찌끄러기일 뿐 아닌가. 차라리 아무도 그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기나긴 하루>
쓸쓸했던 날 한 눈에 들어 왔던 제목은 또 있었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하루 중 날 가장 감성적이게 하는 때는 해 질 무렵. 굳이 석양이 비치지 않더라도 막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할 무렵.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로등 불이 일제히 탁! 하고 들어오는 바로 그 시간.
도서관에 꽂혀 있던 이 책의 제목에 눈이 가 메모를 해 놓고도, 한참을 되뇌이기만 하고 손에 넣지 못하고 지나쳤었는데 참으로 신기한 곳에서 이 제목을 다시 만났다.
<기나긴 하루>도 역시나 제목 때문에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아침부터 아이들 픽업에 아침밥 준비에 수업 준비와 강의, 또 시작되는 픽업에 하루가 정신없었던 어느 날이었는데 그렇게 하루가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어, 하루가 이렇게 가버리네' 했을 만한 날이었음에도. 참으로 길고 길게만 느껴졌던 그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만난 제목.
게다가 박완서님의 책이라니 하며 당장 손에 들었는데 글쎄 이 책 속 에서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를 만나고 말았다. 그 때의 내 느낌이란...이것이 박완서님의 단편이란 걸 알게 된 것이 놀라웠다기 보다는 참으로 마음에 콕 박혀 되뇌였던 제목이 낯선 곳에서 발견된 그 놀라움이 더 컸다.
<기나긴 하루>를 보내고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처럼 이 두 이야기는 인생을 참으로 고단하게 산 주인공들의 회한의 독백같은 이야기들이다. 어찌보면 이제 막 40년을 산 내가 감히 입에 담을 만한 문장은 아닐지도 모른다.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의 그 느낌보다 훨씬 더 묵중한 인생의 이야기들이니까. <기나긴 하루>앞에는 <갱년기>가 붙어 있다. 인생이 황혼에 접어들기 시작하는 그녀의 길고 긴 하루가, 참으로 고단한 하루가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다.
나의 기나긴 하루는 어떻게 마감하게 될까. 내 인생의 석양 빛을 등지고 서서 나는 과연 어떤 그림자를 보게 될까. 기나긴 하루들이 모여 만든 그림자는 어떤 모양일까. 어떤 모양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까. 살짝 두렵다. 이렇게 긴 한숨으로 겨우 살아내는 하루가 모여 모래처럼 바스라지지는 않을까 싶어서다. 기나긴 하루들을 꾹꾹 눌러 담아 단단한 그림자로 서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할까봐. 하루하루 내 깊은 한숨에 하루를 날려 보내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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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약간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다. '한 눈에 반한다'는 것이 내가 생각해 온 만큼 의미 없지는 않다는 걸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경험이 이성에게 꽂히면 안되겠지만~무언가에 반한다는 것이 주는 새롭고 낯선 느낌이 나쁘지는 않다. 뭐든 논리적으로 따지고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엔 손도 대지 않던 내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다. 아직 꽃은 필 생각도 하지 않지만 '한 눈에 반하고' '즉각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나에게 봄과 같다. 긴 하루를 사는 내가 과연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래서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