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고쳐야 할 삶의 태도와 1퍼센트 변화 행동에 집중해보자

 

몇 년 전 집에서 키우던 화분의 고목나무가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주말 부부로 생활하는 동안 나 혼자 키운 탓이다. 누군가 화분에 물을 주면서 꽃이나 나무와 대화를 나누며 사랑도 듬뿍 주라고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솔직히 말하는 그 사람의 정신 상태를 좀 의심했었다.

 

하지만 점점 한쪽으로 치우쳐 자라는 고목나무를 보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무에게 말 건네기를 시도해본 적도 있다. 그런데 혼자말하기가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다.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소 고차원적인 정신세계에 있는 분들에게나 자연스러울 일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나무에게 애정을 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성을 다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씩 삐뚤어져 자라던 나무가 어느새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여져 버렸다. 해를 향해 놓으면 나무가 바로 선다는 말을 듣고는 해를 향해 화분을 이리저리 놓아도 봤다. 그럼에도 나무는 더욱 삐뚤어져갔다. 거의 포기 상태가 되었다. 물만 간간이 주었다. 이사 갈 즈음에는 나무가 볼썽사납기까지 했다. 아내에게 버리고 가자고 말했다. 이미 쓸모없는 화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가지고 가자고 했다.

 

이사하고는 그 화분을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분의 나무가 똑바로 섰다면서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놀라서 물었더니, 아버지가 바로 세웠다고 한다. 매일 조금씩 바로 세웠다는 것이다. 일직선으로 똑바로 서 있는 나무를 보고 정말 많이 놀랐다.

 

 

 

모든 변화는 1%의 작은 시도로부터

 

나는 내 손으로 바로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만일 내가 그런 결심을 했다면 뿌리 채 뽑아 강제로 똑바로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나무는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무를 단번에 바로세우지 않고 매일 조금씩 바르게 세워줬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거짓말처럼 똑바로 서게 된 것이다. 너무 기울어져 포기했던 그 고목나무가 똑바로 서게 된 기적이 놀라웠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잘못된 습관을 단번에 고치려고 하지만, 결심은 작심삼일로 끝나고 갈수록 삐뚤어지는 자신에 실망하곤 한다. 그래서 결국 노력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나는 안 돼, 이게 운명이야’, ‘나는 이제 끝났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어’라고.

 

한 번에 모든 것이 바뀌는 기적만을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똑바로 선 모습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자신이 향하고 있는 잘못된 방향을 하루에 1퍼센트씩만이라도 고쳐나간다면 화분이 바로 선 것처럼 우리도 반듯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이런 노력 없이 단기간에 성과를 내겠다는 욕심을 부렸다가는 무모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이는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삶의 태도 바로 세우기 전략

 

인생에서 무엇인가 거창하게 큰 것을 바꿀 필요는 없다! 똑바로 선 나무를 보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한 번에 변해보겠다!', ‘한 방에 끝내겠다', ‘완벽해지겠다'라는 욕심으로 세상을 살아오지는 않았나 하는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 시작은 아주 작아 보이는 1퍼센트의 작은 변화에서 비롯한다. 삶의 방향을 조금만 더 가치 있는 쪽으로 살짝 틀어보자.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작은 목표를 하나씩 하나씩 꾸준하게 실행에 옮겨보자.

 

 

 

 

삐뚤어진 내 인생을 탓만 할 게 아니라, 당장 고쳐야 할 삶의 태도와 1퍼센트 변화 행동에 집중해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택시를 타다 보면 기본요금 거리여서 여러 명이 우르르 타기가 민망할 때가 있다. 한번은 “아저씨, 가까운 거리에요. 바로 요 앞인데요. 사람이 많은데 괜찮을까요?” 하며 택시 타기 전에 양해의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기사 아저씨가 흔쾌히 “물론이죠. 괜찮습니다. 승객이 원한다면 어디든 갑니다. 짧은 거리면 뭐 어떻습니까”하고 즐겁게 응답한다. “아저씨는 정말 즐겁게 일하시는군요”라고 말하며 택시에 올랐다.

 

그러자 이 택시 기사 분은 “왜 즐겁지 않겠습니까. 즐겁기만 한 걸요”라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낡은 방명록을 꺼내 자랑한다. 택시를 탄 승객에게서 받는 방명록이란다. 그런데 다소 특별하다. 외국인에게만 사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도 웬만큼 알려진 사람이니 사인해주겠다고 농담을 건넸는데, 한국인은 불가능하단다.

 

외국인에게 사인을 받는 방명록 노트 첫 장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Welcome!

Please give me your autograph?

Thank you.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콩글리시인 ‘사인(sign)’라고 하지 않고 ‘서명(autograph)’이라고 정확히 표현해서 놀랐다. 들쳐보니 외국인의 서명이 수없이 적혀 있다. 이 방명록에 사인하는 외국인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적어도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지 않았을까!

 

그러고 나서 보니 실내도 좀 다르다. 작은 정성이긴 하지만 재활용품을 이용해 꽃도 한 송이 걸어뒀다. 택시 안에 향이 은은하다 싶었더니 천연방향제로 모과까지 활용하고 있었다.

 

이 기사 분은 친절한 기사로 관광공사 포상도 받고, 시장 표창도 받고, 일본 MK 택시 연수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멋진 프로필이 담긴 명함까지 건네준다.

 

사진을 찍어도 좋으냐고 물었다. 얼마든지 찍으라고 흔쾌히 허락했다. 몇 컷을 찍어서 기사 아저씨와의 만남을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신체적으로 외적 장애가 있는 듯 보였다. 입 주위에 장애가 있었다. 그래도 말하는 연습을 많이 했는지 말씀은 잘했다. 자신의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하는 기사 아저씨에게서 작은 행복의 모습을 엿보았다.

 

기본요금밖에 나오지 않는 짧은 구간임에도 아저씨와 나눈 따뜻한 대화 덕분에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짜증내고 투덜대는 택시기사들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왜 다들 이렇게 간단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외면하고 불평불만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나 자신도 반성했다.

 

블로그에 올린 내 글을 본 한 기업에서 이 택시기사 분을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외국 바이어가 오는데 이 분 택시를 렌트해서 자신들의 정성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역시 어디가나 프로 직장인은 사랑받기 마련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이 크록(Ray Kroc)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기업을 대면 누구인지 대번에 알 수 있다.

바로 맥도날드다. 레이 크록은 세계적 패스트푸드 업체인 맥도날드의 창업자다.

 

 

 



 

전 세계 패스트푸드 시장은 현재 두 기업이 지배하고 있다. 하나는 KFC이고, 또 하나는 레이 크록이 창업한 맥도날드다. 1954년 이미 52세였던 레이 크록은 패스트푸드점을 개업하기로 결심했다. 30년 동안 세일즈맨으로 일한 그는 미 전역 열일곱 개 주를 돌며 수많은 식당에 가보았고, 그러면서 패스트푸드점 경영 노하우를 발견했다. 그는 직접 패스트푸드점을 열면 세일즈맨일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직감했다. 그는 외식업으로 성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저렴한 가격과 깔끔하고 위생적인 서비스를 꼽았다. 또한 생활리듬이 빨라지는 시대에는 일반 식당보다 패스트푸드점이 낫다고 판단했다.

 

레이 크록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는 외식업의 특징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찾아낸 것이다. 마침내 그는 캘리포니아 주에 햄버거와 밀크셰이크를 파는 식당을 개업했다. 그의 식당은 대성공이었고 몇 년 만에 크게 유명해졌다.

 

 

 

 



 

 

창업 후 고속 성장을 지속하던 맥도날드의 매출액이 1961년 적자로 돌아섰다. 게다가 규모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레이 크록은 면밀한 조사를 거쳐 원인을 찾아냈다. 각 부서의 관리자들이 나태하고 비효율적으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안락한 가죽의자에 앉아 직원에게 지시만 내렸다. 각 부서는 계획을 세웠지만, 한 번도 제대로 이행한 적이 없었다. 곳곳에서 낭비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모두 못 본 척 했다. 바로 그것이 승승장구하던 맥도날드를 적자 기업으로 만든 원인이었다.

 

레이 크록은 결국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부서 관리자들이 사용하는 의자 등받이를 모두 톱으로 자른 것이다. 임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심지어 몇몇 임원은 대놓고 “미친 사장!”이라고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레이 크록은 굴하지 않았고, 결국 자신이 바라던 결과를 얻었다. 회사 임원들이 사무실에서 나와 직접 매장을 돌며 관리하고 문제점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 전체에 만연했던 ‘낭비’는 효과적으로 해결됐고, 매출액도 예전 수준을 회복한 것은 물론이고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

 

 

 



 

 

1963년 맥도날드의 모든 매장 앞에 ‘햄버거 1억 개 판매 달성’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렸고, 그로부터 5년 후에는 미국 전역의 맥도날드 매장이 1천 개를 돌파했다. 그 후 40여 년 동안 맥도날드는 미국 시장을 넘어 전 세계 114개국에 진출했다. 그리고 미국 패스트푸드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50년 넘도록 고속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지만 창업자 레이 크록이 세운 경영이념, 즉 “고객의 시간을 절약해주는 패스트푸드점이 성공한다. 남의 시간을 1분 낭비할 때마다 나의 수익이 1달러씩 준다”는 신념은 지금도 변함없이 맥도날드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자 진리다.

 

 

 





- 낭비를 이익으로 변화시키는 '디테일 경영'(왕중추 지음 허유영 옮김) 중에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확장형 시대’에는 누구든 과감하게 뛰어들기만 해도 고수익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판재 한 장을 팔면 30위안은 고사하고 1위안도 남지 않는다. 이렇게 큰 변화가 나타난 원인은 ‘확장형 시대’가 끝나고 ‘집약형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확장형 시대’가 지나가고 ‘집약형 시대’로 들어선 지금 기업들은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고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해답은 절약에 있다. 절약은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창의력을 향상시키는 비결이다. 절약이야말로 기업이 ‘집약형 시대’에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건이다. (중략)

 

 

때는 바야흐로 집약형 시대로 접어들었다. 확장형 시대에 성장한 기업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의 경영전략을 계속 유지하는 기업은 머지않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확장형 전략에 주력하는 기업은 서둘러 집약형으로 전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어떻게 해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집약형 기업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첫째, 생산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새로운 방식을 적극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 방식만 고집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생산기술을 개선하고 관리의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품질이 좋아지고 생산 방식이 더 효과적으로 변해야 한다. 그래야 전체적인 생산수준이 올라가고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제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만으로 모든 게 끝나는 과거 방식으로는 집약형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제는 제품을 판매하는 동시에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집약형 시대에는 소비자들에게 인정받는 기업만이 계속 발전할 수 있다.

 

둘째, 기업 구조가 개선돼야 한다. 기업의 구조 개선은 단순히 과거의 생산방식을 바꾸고, 생산설비를 신형으로 교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기업문화를 세우고 앞선 경영방식을 도입하는 한편,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기술과 방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포함한다.

 

셋째, 직원들의 자질이 높아져야 한다. 집약형 시대에는 인간중심적인 발전전략이 필요하다. 직원 개개인이 회사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래야 정신적이고 기술적으로 완전한 변화가 가능하다. 경영진은 직원이 변해야 기업이 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직원 교육에 힘써야 한다. 물론 직원 교육에도 효율성이 중요하다. 최소의 시간과 물자로 직원들을 신속하게 변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구조전환에 막강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 낭비를 이익으로 변화시키는 '디테일 경영'(왕중추 지음 허유영 옮김) 중에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은 1873년 발표된 이래 전 세계 수많은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마지막 수업》은 프랑스의 알자스 지방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프랑스어로 하는 마지막 수업이라고 말한다. 프랑스가 전쟁에 패하자 알자스 지방의 프랑스어 수업을 금지하고 대신 독일어를 가르치게 한 것이다.

 

이 소설만 보면 알자스 지방이 본래 프랑스 영토이고 독일이 그것을 빼앗은 침략자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자스-로렌 지역은 중세 이래로 줄곧 독일어 사용 지역에 속했다. 현재도 알자스 지방 사람들은 독일어와 매우 유사한 알레만어를 유지하고 있다. 아마 훗날 프랑스가 알자스-로렌 지방을 되찾았을 때도 《마지막 수업》과 비슷한 장면이 또 다시 연출되었을 것이다. 더 이상 독일어를 배울 수 없게 된 학생들이 비통한 심정으로 독일어 선생님과 작별하는 뒤바뀐 상황으로 말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영토소유권을 놓고 무수히 많은 전쟁을 치렀는데, 그 중 양국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지역이 바로 알자스-로렌 지방이다. 이 두 지역에 프랑스와 독일의 역사적 은원 관계가 농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년전쟁(1618~1648년)이 끝나고 체결된 베스트팔렌조약에 따라 패전한 독일은 알자스-로렌 지방이 프랑스의 소유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1870년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고 프랑스가 패배하면서 알자스-로렌 지방이 다시 독일에 귀속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알자스-로렌 지방의 시련은 계속되었다. 1919년 베르사유조약으로 다시 프랑스로 귀속되었다가 1940년에 히틀러에 의해 독일에 합병되었으며, 1945년에 프랑스가 두 지역에 대한 주권을 회복해 현재에 이르렀다. 지금 이 지역은 뫼즈, 모젤, 뫼르트에모젤, 보주 네 주로 나뉘어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왜 그토록 알자스-로렌 지방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걸까?

알자스-로렌 지방을 사이에 두고 왜 그토록 분쟁이 끊이지 않은 걸까?


 

 



 

알자스와 로렌은 유럽의 젖줄인 라인 강의 서쪽 기슭에 위치한다. 프랑스가 이곳을 점령하면 라인 강과 아르덴 고원이 프랑스 동쪽을 방어하는 천혜의 장벽이 될 뿐 아니라 라인 강을 관통하는 독일의 교통로를 단절시켜 전략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독일의 입장에서는 알자스와 로렌을 점령하면 라인 강을 통해 직접 대서양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런데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자 이 두 지역에 지리적 가치 외에 더욱 중요한 가치가 더해졌다. 바로 풍부한 석탄 자원이 매장되어 있고 석탄과 관련된 산업이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프랑스든 독일이든 이 두 지역을 확보할 경우 경제적으로 큰 도약을 이룰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두 나라 중에서도 프랑스에게 더 절실하게 필요했다. 본토에도 석탄 자원이 풍부한 독일로서는 이곳을 잃는 것이 다리 한 쪽을 잃는 것과 같지만, 석탄 등 천연자원이 넉넉지 못한 프랑스로서는 이 지역을 빼앗기면 경제 전체의 성장이 둔화돼 새의 날개가 잘려나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산업혁명 이후 이 두 지역은 독일과 프랑스의 존망 자체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되었고, 실제로도 양국의 흥망성쇠가 이 지역을 얻었는지 여부에 의해 좌우되었다.


 

  - 저탄소의 음모(거우홍양 지음, 허유영 옮김) 중에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