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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비가 내린다. 장마도 아닌데 장마처럼 줄창 비가 내린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이런 날은 부침개,라고도 하지만 만사 귀찮은 게으름뱅이인 내게는 집에서 라면으로 한끼니 떼우는 낭만이 딱이다. 아니, 이렇게 내뱉고 보니 뭔가 마음이 좀 미안해진다.
사실 어제 출근하는 길에 평소와 같거나 다른 풍경들을 찾아보면서 유난히 두리번거리게 되었는데, 동네 큰길가 건축현장을 들여다봤을 때 아침 끼니를 떼우고 있는 분들을 봤다. 건물의 뼈대만 세워져 있어서 이제 내부를 정리하고 점차 '집'의 형태를 갖추게 될 3층짜리 건축물의 1층 바닥, 공사자재가 쌓여있는 그 틈바구니의 바닥 한가운데 두분이 마주앉아 컵라면을 들고 계셨다. 아침 8시 30분에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먹는 컵라면.
나는 그에 대해 낭만이라고 이야기하면 안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 '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있으려니 자꾸만 나의 그 마음이 떠올라버린다. 그래서 책을 읽다말고 덮어버리고 그래도 읽어야겠기에 다시 꾸역꾸역 읽다가 덮어버리고.
아니,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나는 김훈작가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이미 절판이 된지 오래어 헌책방을 누비며 책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방 책꽂이에 꽂혀있는 그의 책들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 읽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아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그의 책들은 여전히 새 책처럼 간직되고 있는 헌책이 되어버렸을뿐이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집어 든 책이 안타깝게도 절판되었다가 고스란히 복간된 책도 아니고, 새로 씌여진 산문도 아닌 편집된 책이니 작가의 글쓰기에 대해 내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그가 말하는 '돈'의 이야기로 들어가서 나 역시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고, 더 많은 돈을 축적해보고자 서평을 써야한다는 의무하에 책을 공으로 받고 있을 뿐이고, 돈의 가치를 이야기하지만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 돈을 섬기고 있을뿐인 내가 '라면을 끓이며'를 읽다가 중간에 책을 덮고 작가가 이야기하는 맛있는 라면을 끓여먹을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쓸 수 없는 것들을 쓸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헛된 것들을 지껄였다. 간절해서 쓴 것들도 모두 시간에 쓸려서 바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늘 말 밖에 있었다. 지극한 말은, 말의 굴레를 벗어난 곳에서 태어나는 것이리라"(작가의 말)
이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래도 나는 이 책을 읽은 느낌을 조금 많이 뒤로 미뤄둬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작가의 다른 산문집, 그것이 안된다면 소설이라도 읽은 후에 다시 내 안에 남아있는 나의 느낌을 들여다봐야만 하겠다,라는 생각을 떨쳐버릴수가없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과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과 모든, 참혹한 결핍들을 모조리 사랑이라고 부른다.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230)라는 그의 글을 되새겨보게 될 때 나는 무엇을 사랑이라고 하게 될 것인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