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국 전문간호사입니다 - 진료하고 처방하는 미국 간호사, NP 되기
김은영.안윤선.정재이 지음 / 푸른향기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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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몇가지를 이야기하자면 대충 이렇다. 의사를 호출하는 간호사, 의사를 도와주는 간호사,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 병원 접수-수납을 도와주는 간호사, 주사를 놔주는 간호사. 주변에 간호사로 일하는 지인이 없더라도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혹은 일상 생활에서 만나는 간호사를 통해 그들의 업무를 간접적으로 접하게 된다. 의사가 주인공이라면 간호사는 조연인 듯 곁에 서서 주인공을 빛내는 역할을 하는 것만 같다. 그런데 미국 간호사는 뭐가 다른가? 궁금한 마음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단 책을 펼치기 무섭게 나의 궁금증은 해소가 됐다. 미국에서는 전문간호사(NP)가 환자 진료도 하고 처방도 한다고 말하던 대학 교수의 한마디에 갓 입학한 간호과 신입생들은 과연 미국의 NP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수많은 질문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내가 책을 읽게 된 계기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NP란 Nurse Practitioner의 약자로, 상급 실무 간호사(Advanced Practice Registered Nurse, APRN)의 한 종류라고 한다. 간단하게는 '의사의 역할이 주어진 간호사', 미국의 몇 개의 주에서는 '의사와 동급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 NP라고 했다. 그러니까 의사가 부재중일때 간호사가 먼저 환자의 상태를 체크는 하지만 의사를 기다려 의사에게 체크한 환자의 상태를 알려주고 의사의 진료와 처방이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NP는 의사를 기다리는 상황없이 환자의 상태를 바로 확인하여 진료와 처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로인해 의사는 업무가 수월해지고 환자는 빨리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대개 동네에 있는 병원에 가면 쉬지않고 밀려오는 환자들을 상대하느라, 그리고 비교적 단순한 질환으로 오는 환자들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의사들은 증상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월등히 많은 비율로 병원에 자리하고 있는 간호사들 중 NP가 있다면 가볍다고 여겨지는 질환이라도 좀더 제대로 진료와 처방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됐다.

책에는 NP가 간호사-의사와 다른점, NP가 하는 일, NP가 생긴 배경, NP의 전망, NP의 월급-연봉, 그 외에도 NP가 되는 방법, NP로 취업하는 방법들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간호사를 꿈꾸는 사람들이나 NP에 관심이 있고 도전하려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길라잡이 책이 되겠다. 물론 간호사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문과 외길 인생인 나조차 관심있게 읽어볼 정도로 흥미로웠지만!



그러면 NP는 간호사가 아닌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NP와 의사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환자에 접근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의사들이 질환과 질병 중심으로 접근한다면, NP는 간호의 배경을 가진 의료인으로서, 그 질환을 가진 ‘사람‘을 중심으로 접근하도록 훈련을 받기 때문이다. 간호학을 배울 때 늘 강조됐던 전인전인 관점과 접근, NP의 핵심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이 접근법이야말로 NP가 간호사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 P169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환자들의 건강과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환자와 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와 존중을 받고, 나 스스로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노력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아가, 끊임없이 진화하는 의료정책에 맞추어 다음 세대의 간호사들을 이끄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NP가 더 많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이유이다. - P182

나는 스스로가 나의 역할과 소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불특정 타인의 시선에서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남들보다 조금 늦게 깨우쳤다. 하지만 한국의 똑똑한 많은 간호사들은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것에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 간호사로서 목소리를 더 크게 내고, 더 큰 꿈을 품고, 나아가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역할에 적극적으로 도전했으면 좋겠다. 또 이렇게 간호사들이 성장할 때, 사회와 제도가 이런 변화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도록 조금씩 변화되기를 기대한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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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 3,500km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걷다
이하늘 지음 / 푸른향기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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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읽었던 <함께, 히말라야>에 이어 대단한 부부가 또 등장했다!!!! 2019년 12월에 만났던 신혼여행으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던 설악 아씨 부부에 이어 2020년 1월에 만난 결혼식 대신 자전거와 하이킹으로 세계여행을 하는 두두부부의 이야기는 어쩌면 그들을 본받아 새해에는 좀 움직여 보라는 신의 계시가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나는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나에게 행복한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한 작가는 그 질문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고 경험하며 자신의 행복한 삶을 찾기 위해 애쓴다. 책에는 147일 동안 3,500km의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AT)을 걷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작가는 산속을 걸으며 매번 스스로에게 나는 지금 행복한가 묻는다. 그렇지 않을 때 과감하게 당장의 진로를 포기하고 잠시 멈춰 서는 작가의 담대함이 좋았다. 이 책을 통해 스스로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던 작가의 말이 좋아서 가볍게 책장을 넘겼다.


산 좋아하는 아빠를 따라 어릴 때부터 동네 뒷산을 자주 올랐다. 그런 덕분에 운동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도 등산은 좋아하는 어른이가 되었는데, 등산이 좋은 이유는 이렇다. 1. 정상이라는 목적이 확실하다, 2. 여러 갈래의 길 앞에서 원하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 3. 자연의 소리(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동물 소리, 흙 밟는 소리 등등) 만으로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 든다. 책을 통해 두두부부와 함께 걸으면서 내가 왜 등산을 좋아하게 됐는지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지만 그저 좋아한다고 해서 그들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길 위에 오르는 일은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나에겐 그런 용기가 없음에, 그들의 걸음에 좀 더 응원의 마음을 담아 책을 읽게 됐다. 오랜 기간 동안 꽤 먼 걸음을 걸어내는 일은 분명 힘든 일 투정일 테다. 먹을 것을 아껴먹는 일이라던가 텐트 생활을 하고 오랫동안 걷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와중에 비를 맞고 쥐를 만나고 히치하이킹을 하는 고난과 역경이 그들을 '행복하지 않은' 길로 안내하여 내려놓은 무언가에 대한 후회의 마음이 생기기도 했을 테다. 그럼에도 그들이 계속 좋은 마음으로 '나 지금 행복한가' 스스로에게 물으며 걸을 수 있었던 것은 AT를 응원하는 지역 주민들의 따뜻한 손길과 함께 걷는 사람들의 다독임, 용기 내어 걷는 그들의 여정을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유독 이 책에서 반가운 것은 '트레일매직'과 '트레일엔젤'이다. 게임 속에서 HP를 채워주는 아이템 상자를 만나거나 귀인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반가움과 기쁨으로 이번에는 어떤 매직과 엔젤이 기다리고 있을까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우리 인생에도 스스로를 알아가고 그 과정에서 겪는 고난과 역경에 지칠 때마다 '트레일매직'이나 '트레일엔젤'을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추구하는 행복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하여 내게 주어진 마법과도 같은 찰나의 시간을 나는 얼마나 제대로 마주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짜릿한 기분이 든다. 새해에는 좀 더 나를 돌아보고, 나는 지금 행복한가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렇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늘 행복한 삶을 추구하면서도 ‘과연 행복한 삶이란 무언인가?‘에 대해 묻곤 했던 나에게 AT는 너무나 쉽게 그 답을 찾아주었다. (중략)

이곳에서 느끼는 행복이 더욱 소중한 이유는, 행복해지는 방법을 내 스스로가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고 있지만, 언제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는지에 대한 답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는 행복한 순간에도 그것을 행복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 길 위에서 그 답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행복은 어떤 것을 희생하거나 큰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행복해지는, 조건부적인 것이 아니다. 행복의 주체는 오롯이 나 자신이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이 여정 자체가 내 삶의 행복임을 실감하고 있다. - P62

이런 상황에서 길을 걷다 보니 배우는 것이 또 생겼다. 행복한 삶이 꼭 100% 만족스러운 환경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조건이 만족감을 주는 삶이라면 바랄 것이 없겠지만, 행복이라는 방향성을 추구하고 있다면 때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어려움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 P90

우산을 쓰지 않고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는 것은 나를 오롯이 바라보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비를 맞는 것이 얼마나 따갑고 힘든 일인지 알게 해주었다. 이슬비부터 폭우, 때로는 우박까지 맞으며 세상에는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비가 있는지 알게 해주었다. 내가 어떤 강도까지 버틸 만한 체력과 정신력을 갖춘 사람인지를 인지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빗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스스로 찾게 만들었다. - P143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공식 트레일을 나타내는 흰색과 사이드 트레일인 하늘색 모두를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흰색이나 하늘색이나 어느 하나 틀린 것은 없다. 대신 여기로 가면 빨리 가는 곳, 이곳은 잠시 딴눈 파는 곳으로 모두 옳은 길일 테다. 잠시 돌아가느냐 마느냐의 차이이고, 속도나 거리의 차이일 뿐. 우리 삶에는 이런 색 구분보다는 그 어떤 것도, 즉 방황이든 직진이든 간에 모두를 옳다고 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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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히말라야 - 설악아씨의 히말라야 횡단 트레킹
문승영 지음 / 푸른향기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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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히말라야란... 20년 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신비의 향을 찾아 떠나는 곳(드라마 <나인>의 이야기이다)으로 유명(?)하다. <함께, 히말라야>라고 하니 휘몰아치는 눈 속에 파묻혀 붙이지 못한 향을 손에 쥐고 죽었던 남자 주인공의 형의 모습만 떠올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비의 향을 구해 20년 전의 나에게 돌아가 충고하고자 네팔로 향할 것도 아닌지라 내 인생의 히말라야는 드라마 속에서 만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트레킹 책을 만나게 됐다. 아무리 산이 좋아도 그렇지 신혼여행으로 히말라야 등반이라니... 앞표지의 밝아 보이는 모습에 속아 히말라야를 꿈꾸기엔 너무 힘든 여정이므로 읽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 자, 숨을 크게 들이쉬고!


사실 히말라야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대자연, 조난, 눈이었던 것 같다. 대자연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 혹은 수습하지 못한 대원들 그런 두려운 일들을 많이 접한 탓도 있어 미지의 세계 이전에 거대한 무서움 같은 것이 있었다. 몇 년 전에 나도 일본의 다테야마라는 해발고도 3000m 남짓의 산에 오른 적이 있는데 트레킹은 아니었고 케이블카-버스를 반복해서 오르는 곳이었다. 갔던 날에 눈이 많이 내렸고 대기는 길었지만 올라갈 수는 있었는데 막상 올라가서 눈 때문에 길이 끊겨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다행히 다른 루트가 있어서 조난이라던가 고립이라던가 하는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지만 다시금 그때를 떠올리면 아찔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하물며 해발고도 3000m~6000m의 히말라야산맥을 따라 트레킹을 하는 루트라니... 책에 실려있는 지도를 보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손이 조금 떨리는 듯했다.

"세상의 모든 길을 함께 걷자" 그렇게 반려자와 신혼여행으로 떠나게 된 히말라야. 이미 챙겨둔 짐을 여러 번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일부터 감정 이입하여 히말라야를 향하여 걷는 모든 걸음의 기쁨과 고난을 느끼며 읽게 됐다. 이미 히말라야로 정해진 순간부터 둘만의 알콩달콩한 신혼여행은 아니었고, 함께 걷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이겨내며 걸어내야 하는 싸움과도 같은 여행길이었다. 이 순간 만약에 나였다면, 그렇게 가정하고 상상하며 읽는 순간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히말라야는 미디어로만 만나는 걸로 다짐했다. 고난 뒤의 달콤한 순간도 물론 있었지만 고난이 너무 감당할 수없이 커서 매번 울상이 되는 나를 발견했으므로.




14-15p 히말라야 횡단 트레일(Great Himallaya Trail, 이하 GHT)은 동서로 뻗어 있는 히말라야산맥을 '가능한 가장 높은 경로'로 횡단하는 것이다. (중략) 보통 GHT라고 하면 네팔의 동쪽 국경에 위치한 칸첸중가 북면 베이스캠프인 팡페마(Pangpema)에서 시작하여 해발고도 3,000m~6,000m의 히말라야산맥을 따라 서쪽 국경인 힐사(Hilsa)까지 이어지는 GHT 하이 루트(High Route)를 의미한다. 16p GHT 하이 루트(Great Himallaya Trail High Route) 약 1,700km의 하이 루트는 높고 험한 고개가 많아 '극한의 루트(Extreme Route)'로 불린다. 루트 상에는 5,000m가 넘는 20여 개의 고개와 기술적인 등반을 필요로 하는 6,100m가 넘는 고개 두 개가 있다. 이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강한 체력과 고산 등반 및 산악 구조 기술, 혹한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일반적인 트레킹 코스와 동떨어져 야행의 지대를 지나야 하는 곳도 있어 노련한 산악 가이드가 필요하고, 반드시 캠핑을 해야 하는 곳도 많이 있다. 하이 루트를 한 번에 완주하기 위해서는 대략 150일 정도가 소요되는데, 날씨와 시간, 체력과 같은 제한이 있는 경우 편의에 따라 구간을 나눠 걸을 수 있다.

나와 함께 하는 이들만큼이라도 아끼고 존중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순수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몰지각한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고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일을 한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하는 것이다. 포터들은 추위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옷가지 하나 없는 남루한 차림이다. 트레커들이 신고 있는 튼튼한 등산화는 꿈도 못 꾼다. 그들에게 신발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늘 슬리퍼가 대신한다. 등산양말은커녕 얇은 양말마저도 없는 이들이 많다. 먹는 것 또한 넉넉지 않다.
알량한 돈 몇 푼으로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포터 일에 기대어 생계를 이어가는 것을 알기에 늘 그들과 함께 했다. 아픈 손가락이었기에 그들에 대한 내 마음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일을 회상하니 눈물이 쏟아졌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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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찾아 산티아고
정효정 지음 / 푸른향기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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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정말 산티아고 책이 넝쿨째 나에게 굴러들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도서와 방송으로 참 많이도 만났다. 올해의 마지막 산티아고 책, 그리고 어쩌면 나에게 마지막 산티아고 책이 될 <남자 찾아 산티아고>를 읽었다. 누군가는 인생을 찾아서 순례길에 오르고, 또 어떤 이는 삶의 방향에 대한 물음을 떠안고 순례길에 오르고, 또 다른 사람은 진정한 나를 찾아 순례길에 올랐다. 그런데 이 작가,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게 남자 찾아 산티아고로 떠난다고 했다. 그래서 반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고 오히려 그런 솔직함이 거창한 이유를 들먹이는 것보다 마음을 흔든 것도 사실이다. 궁금했다. 그래서 남자를 찾았을까? 진짜 산티아고에 괜찮은 남자가 있었나? 여행길의 간지러운 로맨스 같은 것을 기대하며 책을 펼쳐들었다.

산티아고에 가본 적은 없지만 산티아고를 걷는 상상은 수없이 많이 해봤다. 나는 어떤 물음을 안고 길을 걸게 될 것인지, 길 위에서 무엇에 감동하게 될지,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쿨하지 못해 얼마나 괴로울지, 외로울지 같은 것들. 물론 상상의 끝에 답을 얻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길 위에서 매일 외로워 울게 될 것이라는 것은 정확히 알 것 같아 산티아고로 떠나는 일이 늘 무서웠다. 그래서 여전히 물음만 붙잡은 채 누군가의 경험에 의존한다. 여러 사람들의 경험이 내게 얕게 쌓여 반가움과 감동이 밀려와 복잡한 기분이 들지만 책에 나온 곳곳이 낯설지 않아 알은체를 하며 웃었다. '순례길을 걷는다' 똑같은 주제로 어쩜 모두 이렇게 다른 글을 쓰는 것일까. 방송 작가의 좋은 필력도 한몫했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여러 감정이 밀려온 덕분에 향유한 모든 것이 좋았다.

비슷한 나이의, 비슷한 고민을 던지는 우리의 길 끝에 과연 정답은 있을까?

복잡한 미로 속을 열심히 헤매는 이 순간들이 언젠가 정답에 가까운 힌트라도 주긴 하는 것일까?

물음을 끌어안고 순례길을 걷는다. 걷는다고 우리는 모두 끌어안은 모든 것의 정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모두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다. 왜 그렇게까지 걷는지 이해가 되지 않던 순간들이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될 것도 같다. 매일 조금씩 걷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또 걷는다. 때로는 서로를 의지하며,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기도 하며 길을 걷는다. 길 위에서 처음 만나 어쩌면 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들에게 최대한 담백하게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길에 쏟아낸 이야기를 모래 털 듯 툭툭 털어내고 또 걷고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고 또다시 걷기를 반복하는 800km 동안 이미 정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 순례길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했다.


만약 세상 모든 남녀에게 ‘자신만의 바다‘가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연애 상대는 그 바다에 찾아오는 물고기들인 것이다. 연애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물의 온도와 속도 등 바다가 가진 조건과 물고기의 습성이 맞아야 한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나의 바다는 어떤 바다일까?‘ - P13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숫자가 앞으로 전진하는 것 외에는 경우의 수가 없다. - P32

그리고 이 오래된 서사는 오늘날 길을 걷는 순례자에게 녹아들어, 새로운 이야기로 쓰여진다. 빠르고 편한 차를 놔두고 굳이 고집스럽게 이 길을 걷는 평범한 사람들이 쓰는 서사시다. 우연히 만난 피터가 전해준 ‘신은 사랑이지만, 사랑은 신이 아니다.‘라는 말은, 그가 길을 걸으며 쓰고 있던 젊은 날의 서사시 중 한 대목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그 옆을 걷고 있던 내게 전해져 내 인생에 더해진다.

두 번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그 한국인 여행자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냥 걷기만 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천 년 동안 쓰여진 이야기와 앞으로 쓰여질 이야기 사이를 걷는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깊이 속에서 자신만의 서사시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길의 매력은 시대를 뛰어넘는 풍부한 이야기인 것이다. - P68

"인생을 미로라고 생각해봐. 그리고 네가 새라고 생각해봐. 네가 고민한 내용은 위에서 바라봤을 때는 ‘작은 헤맴‘일뿐이야.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네가 원래 어떤 사람이냐는 거야. 어차피 너라는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지금의 너의 마음, 너의 정신, 너의 순수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네가 향하는 길은 하나일 거야." - P158

바다를 마주하고 생각해봤다. 버릴 것이 있는가? 버릴 것은 하나도 없었다. 미련도 없었다. 남자를 찾겠다며 소풍 오듯이 와버린 순례길이었지만, 삶에서 답을 찾고자 이곳에 온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이 내 스승이었다. 원래 의도에서 많이 벗어나긴 했지만, 여행 자체는 이보다 완벽할 순 없었다. - P242

"행복이라는 말에 강박을 느낄 필요 없어. 행복을 찾다가 인생 끝날 일 있어? 그냥 가슴속에서 순간순간 느껴지는 깊은 기쁨(deep joy)에 집중해. 그리고 그때 네가 가슴 떨림을 느낀다면 너에겐 신의 심장(heart of God)이 있다는 거야. 그 신의 심장을 뛰게 해봐. 그걸 놓치지 않는 삶이 진짜 삶이야." - P244

모든 여행은 경계를 넘는 것에서 시작한다. 모든 것이 당연했던 견고한 내 세계를 떠나 이방인이 되면서부터, 우리는 수많은 다름과 부딪힌다. 다름 사이에서 내 기준점을 낮추기도 하고 끌어올리기도 하며, ‘이것이 나‘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기준점을 다시 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낯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떠다니며 나를 증명하는 것이 여행이다. 그리고 새로운 땅을 밟고 돌아가는 이는 기존의 자신이 아니라 기준점을 다시 맞춘 확장된 자신이 된다. 경계를 넘어선 순간 나를 둘러싼 언어는 다시 써지는 것이다. 이렇게 여행은 한 인간이 사유를 지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 - P254

그렇게 우리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누군가를 만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길을 잃었다.

불교에는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인연은 때가 되어 만나고 헤어진다는 뜻이다. 햇볕, 온도, 수분, 토양과 같은 조건이 갖추어져야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듯이, 때가 무르익어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은 꽃처럼 피어나 인생에 향기를 남긴다. 그때야 나는 알게 되는 것이다. 그날 길을 잃은 이유를. 모든 헤맴에는 이유가 있음을.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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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에 한 번은 혼자 살아보고 싶어 - 혼자 살아보고 싶은 이들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이선주 지음 / 푸른향기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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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딱 지금 내 마음 같아서,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좋았던 책.

총 5개의 에피소드로 나눠진 이야기 구성도 좋았지만 혼자 살게 되어 느끼는 감정 변화들,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가는 과정들이 여실히 드러나는 글들이 좋았다. 내가 지금 당장 독립을 한다면 책으로 미리 간접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에피소드1에서부터 5까지에 있었던 모든 시행착오를 경험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상황에선 이렇게 대처해야지, 이런 일이 생기면 이렇게 해야지 같은 머릿속 시나리오는 막상 닥쳐올 미래에 그리 중요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것도 조금 알게 되었다.

부모님이 평생을 일궈둔 집의 보호에서 벗어나 홀로 서기를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오롯이 혼자로 남겨져 삶을 살아가야 할 때, 우리는 어떤 자세로 어떻게 살면 좋을까. 혼자 살아서 외로우면 어쩌지, 여자 혼자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고민들을 책을 읽으며 풀어갈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다. 내가 나로서 성장하기 위해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철저히 혼자가 되는 일. 참 멋진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생각해 봤다.

아빠의 단호한 반대로 불가능하기도 했지만 나 역시 자신이 없어서 시도하지 않았던 것. 독립에 대하여.

독립을 하게 된다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을, 작가가 비밀리스트로 적었던 이상형 적 듯 언젠가는 나와 꼭 맞는 독립이 되길 바라며 적었다. 나도 언젠가 적어둔 것을 잊을 때 쯤이면 나의 이상향에 가까운 방을 만나 독립을 하게 될까. 그런 상상을 하는 일은 언제나 설렘이 앞선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나는 사람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족 간에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삼십이 다 되어서야 깨달았다. 가족과 함께 산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혼자만의 시간은 지금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20대 후반에서야 혼자 끙끙 앓으며 마음을 쓰고 괴로워하던 고통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나 자신에게서 온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고통을 억지로 이겨냈던 상처투성이로 삼십대가 된 나를 위로했다. 결혼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독립을 해야한다. 가족에게서, 관계에서, 그리고 나 자신에게서도.




무언가에 흔들리지 않고 나 자신이 하나하나 생각하고 행동해나가는 삶. 그것이 진정한 자유였다.
내가 하고 싶어서 무언가를 할 때, 이 행동이 과연 정말 나 자신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나를 방치하는 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P26

소확행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불행을 좇는 사람은 불행한 일이 있어도 행복을 생각하고, 행복을 좇는 사람은 불행한 일이 있어도 행복을 생각한다.‘라는 말이 있다. 인생의 CEO인 우리는 행복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 P87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 속에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내가 한 행동은 나도 모르게 합리화하게 되고, 남이 한 행동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 쉽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 탓을 하는 게 내 옳지 못한 행동을 인정하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내 행동을 반성함으로써 오는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인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한번 인정하고 나면 오히려 편안해진다. 잘못을 인정하게 되면 다음부터는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지 않게 된다. 내가 먼저 변화함으로써 타인을 변화시킬 수 있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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