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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
권호영 지음 / 푸른향기 / 2020년 3월
평점 :
책 제목을 보자마자 즉답한 것은 '커피'였다.
조지아라는 나라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고 조지아는 회사 다닐 때 잠 깨는데 도움을 주던 커피로 인상이 깊었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묻는 조지아에 대체 뭐가 있는지에 대한 답이 커피일리 없지, 피식 웃으며 지도에 조지아를 검색했다. 흑해와 카스피 해를 사이에 둔, 터키와 이라크,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등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나라들로 둘러쌓인 처음 만나는 낯선 나라가 바로 조지아였다. 그동안 살아오며 한 번도 관심가지지 않은 나라, 책으로도, 어떤 매체에서도 만나본 적 없는 나라라서 그런지 나도 묻고 싶었다. 도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길래 책으로 나와 이런 무지한 내게까지 닿게 된 것인지에 대하여. 그렇게 지도 위 미지의 나라에 어떤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조지아라는 나라는 어떤 곳일지,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트빌리시, 카즈베기, 시그나기, 메스티아. 생소한 도시 이름들을 되새기며 여행을 쫓는다.
여행지를 선택하게 된 계기, 조지아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해야하는 일,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방법, 각 도시를 여행하는 방법, 숙소의 장단점, 맛있는 음식을 파는 식당이나 가보면 좋은 카페 등을 여행 일정에 따라 소개하고 있다. 왜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아마 제목 때문일까) 당연히 여행에세이라고 생각하며 읽었지만 이 책은 조지아로 떠난다면 꼭 필요한 정보들을 꼭꼭 눌러 담은 가이드북에 더 가깝다. 아마 내가 만난 가이드북 중에 가장 딱딱하지 않고 말랑거리는 책이 아니었나.
그녀의 여행기를 쫓으며 조지아에 대하여 느낀점을 간단하게 말해보자면,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선한 웃음을 짓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그녀가 만난 조지아 사람들이 하나같이 모두 웃고 있어서 책장을 넘기며 나도 따라 웃은 덕분이기도 하고 착한 아이입니다 표식을 한 강아지들이 사는 곳이기도 한 덕분이다. 으악스러운 일도 그곳에서는 일상처럼 흘러가는 것도 좋았고, 모든 집에서 마시는 술의 이름이 '차차'인 것이 단연 반갑고 좋았다. 어쩐지 책에서 따뜻한 햇살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종종 껴안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또 좋았던 점.
사람마다 여행의 포인트는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맛있었던 여행이 유난히 더 좋은 기억으로 남는 편이라 이 책에 소개되는 다양한 음식들의 자세한 소개가 마음에 들었다. 예를 들면, '양송이버섯에 치즈를 가득 넣고 구운 조지아 전통요리는 짭쪼름하고 고소한 맛이 쫄깃하게 스며들었다.', '손에 들고 쭈욱 찢었을 때 보이는 빵의 결이 일품이다.', '마치 맛있는 고기의 육즙이 터지듯, 토마토를 한 입 크게 베어 물면 상큼한 과즙이 톡 터졌다. 꽃향기가 났다.' 요리왕 비룡이라도 보는 듯한 음식 표현력에 감탄하며 입맛을 다시는 여행기가 좋았다. 여러 음식을 상상하고 음식을 기다리고 먹는 동안 음식점에서 흘러가는 풍경을 떠올리는 것이 좋았다. 아, 물론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도통 알 수 없는 거대한 풍경에 한동안 넋을 놓고 빠지던 일도 좋았다.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나리칼라 요새로 걸어 올라간다면, 도중에 만나는 골목 샛길로 잠시 빠져보면 좋겠다. 예상치 못하게 아름답고 풍요로운 것들을 자꾸자꾸 마주치게 되니까. 푸르른 잎사귀 우거진 비탈길에서 과일 열매를 발견하기도 하고,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울 무렵이면 꿈뻑 잠에 빠져든 개나 고양이를 만나기도 하며, 범퍼가 없는 낡은 자동차를 타고 스릴 넘치는 골목 운전에 능한 운전사들을 만나 박수 칠 일도 있을 테니. - P92
사랑을 하는 그 순간이 행복할 때에도 우리는 이 행복이 무너질까 두려워한다. 이런저런 이분법적인 마음은 왜 사랑을 하는 순결한 시간에도 찾아오는 걸까. 그래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사랑에 빠져 있는 마음을 작은 자물쇠라는 물건에라도 가두고 싶은 걸까. 사랑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는다. - P104
산책은 여행의 일부였다. 자주 걸었지만 조금은 느렸고, 멀리 걸었지만 가끔은 돌아가는 날도 있었다. 산책하는 시간이 누적될수록 여행의 질감을 느끼는 일에 익숙해졌던 것 같다.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에 감사한다. 오감이 파르르 진동한다. ‘여행은 몸으로 읽는 텍스트‘라는 김영하 작가의 말에 공감하며 걸었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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