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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책을품은삶 > 뜨겁게 안녕, 좋거나 혹은 슬프거나...

김현진

건재하도다. 이 씩씩한 언니.

어디선가 사회적 약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언니.

나, 김현진 팬! 새로 출간한 《뜨겁게 안녕》 독자만남. 응모했고 뽑혔다.

홍대의 커피하우스, 살롱드팩토리. 사실, 이곳의 커피는 내겐 별로지만. 

 

그녀, 여전히 멋있고, 아름답다.

알코올 의존은 여전한 듯하며, 수줍고 여리고 참 약하면서도, 그래서 강한 여성.

 

뭣보다 김현진은 김현진이다. 다른 어떤 설명도, 사실 필요없다.

그녀는 그녀로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으로.

그래서 스스로를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포장도 않는다. 거듭, 멋있다.

 

10여 년 전부터 기사나 글을 통해 보아온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산다. 온전하게.

당연, 인간적인 결함 있(을 것이)다. 변덕도 죽 끓으며, 우울도 달고 산다.

그래서 술은 그녀에게 좋은 친구다. 그게 뭐 어쨌다고!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사람들, 그녀를 향해 수근거린다.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김현진, 상처 입었고, 상처 입는다고 솔직히 말한다.

 

그녀는 '자기마음주의자'.

많은 우리는 남들이 하는 뒷담화나 수근거림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사나.

그래서 끊임없이 포장하고 분장하고 변장하기 바쁘다. 마음도 성형을 하는 세상.

그녀는 자신의 본질을 숨기지 않는다. 가리지 않는다. 포장하지 않는다. 그냥 직구.

자신의 두 발로 또박또박 앞으로 나간다. 덤벼라, 세상아.

 

그녀(의 글)를 보면,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온전하게 나로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타인 아닌 내 인생을 누리고 있는가.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있는 많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 '진짜' 삶을 살고 있니?"

 

물론, 그녀는 그런 것, 의도하지 않는다.

김현진은 그저 자신으로서 살아가고, 마음 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길 뿐이니까.

 

아마도 그녀, 헤밍웨이의 이 말을 체화하고 있다.

"내가 아닌 것으로 사랑받느니, 나 자신으로 미움받겠다."

우리는 얼마나 내가 아닌 것으로 사랑받고자 원하는가 말이다. 미친 듯이.

 

우산도 없이 빗속에 뛰어드는 마냥, '진짜' 삶으로 뛰어드는 그녀, 김현진 스타일.

쩐다! 간디작살. 아름다운 '김꽃두레'양 표현을 빌자면, 마~돈나 섹시해.

 

소설을 쓰고 싶은 그녀, 언제고 소설을 낼 것이고, 꼭 그러길 바란다.

그 소설, 대중을 자극하든 아니든, 나는 그것이 한 인간의 기록임을 기억할 것이다.

'한 인간'을 벗어나 대중이 된, 지금의 인간에게 그녀는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왜? 김현진이니까!

 

김갑수 선생님이 피아니스트 리히터(리흐테르)를 경배하며 하신 말씀 인용하자면,

"대중의 사랑과 선망으로 높낮이가 구분되는 '인기'와는 다른 영역"에 김현진은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녀는 '비주류'가 아니라, 대중 아닌 '한 인간'으로 존재한다.

다시 김갑수 선생님의 표현을 빌자면, '인간의 깊이, 인간의 크기'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녀의 애정, 서울과 술. 그것과 함께 영원하길.

2009년 내가 그녀에게 했던 말, 여전히 유효하다.

 

이 자리가 더 좋았던 이유.
내 이십대 민무늬 정신에 주름을 남긴 고종석 선생님이 오셨고,

(나는 고샘 팬클럽 멤버다! 고샘은 김현진의 아버지다. 문화적 DNA를 물려준 아버지. 부럽다!)

내 사랑하는 <씨네21>의 초대편집장이자 소설가 조선희 선생님도 오셨다.

(씨네21에 싸인을 받았다. 소설이 완성됐다고 들었다. 기대한다고 말씀드렸다.^^)

 

이 훈훈한 공기하곤.

나는, 남의 시선에 포박당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오늘, 그것을 확실히 느꼈다.

고종석 선생님도, 조선희 선생님도 그래서 좋아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니 다행이다.

 

언젠가는, '뜨겁게 안녕'할지라도. 

 

 

슬픔

그 어느 해의 마지막 날.

나는 한 커플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

그들은 이별을 택하기로 했고, 12월31일을 거사일로 택했다.

 

헌데, 그들은 증언자(?)로 나를 택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내게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그날부로 헤어지기로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당시 애인이 한국 아닌 먼 곳에 있던 나.

함께하자는 제안에 고맙다며 굽신굽신, 종각에서 폭죽을 함께 즐기고 쏘다녔다.

뉴이어는 그렇게 밝아왔건만.

 

그리고 그들, 헤어졌다.

내 대학시절 참 좋은 파트너였던 녀석은 다음날에야 그것을 실토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글쎄, 정확한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단 하나의 이유도 아닐 것이다.

다만, 내 어설픈 기억으로 당시 녀석의 집안형편이 큰 걸림돌이 됐다.

그렇게 죽자사자 붙어다니던 그들이었다. 나는 그것이 늘 보기 좋았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놈, 그렇게 허술한 것일까? 아니, 사랑이 아니었던 걸까?

 

녀석은 상처가 깊었다.

녀석은 오랫동안 그녈 잊지 못했고, 그 사이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그런 한편으로 녀석의 여자에 대한 불신도 깊었다.

일반화 하지 말라고 했지만, 녀석의 상처는 오래 갔고,

다른 여자와의 관계는 서툴기만 했다.

 

그런 녀석이 한 달 뒤 결혼(식)날짜를 잡았다고 연락을 했다.

갑자기 그렇게 됐다고. 어어어~ 하다가 얼렁뚱땅 결혼하게 됐다고.

 

글쎄, 지금 여자와 녀석의 관계. 잘은 모른다.

다만 녀석의 말이 슬펐다.

"형, 결혼한 친구들 말 들어보니, 다 그렇게 어어~하다가 결혼하는 거라더라. 다 그리 한다 하더라. 뭐, 나도 그리 됐네. 하하."

 

내가 알던 녀석은 자신만의 생각과 삶을 살았던, '비주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녀석은 '주류'가 됐다.

축복해야 하는데, 축하를 하면서도 나는 한켠으로 슬펐다. 녀석이 아팠다.

결혼이 아프고 슬픈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에 자신을 대입시킨 녀석이 슬프고 아팠다.

 

그래, 오해겠지만,

녀석은, 아직 그 상처에 휘둘리는 것 같아서, 그것이 나는 슬프다.

부디, 잘 살아라. SJ야. 그래도 나는 늘 네가 고마우니까.

너와 함께 꿈꾸던 그 시절을 나는 잊지 못하니까. 그건 내게 아직 유효한 꿈이니까.

 

그래, 뜨겁게 안녕.

너와 나, 우리의 뜨거웠던 청춘 1막은 그렇게 접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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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오늘 부르진 못하였으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클래식>, 일정부분 그의 목소리에도 기대고 있다.

그리고 내 청춘도. 그 청춘, 얼마나 그의 노래에 빚을 지고 있는지. 물론 지금도 여전히.  

 

김광석이다. 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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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도 마틴을 그리워한다. 커피잔을 볼 때마다 멋진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마틴은 'e'가 두 개인 커피(coffee)를 하나의 'e'로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바로 L-O-V-E, 즉 사랑이었다.     

                                                                                     - 루스 코 챔버스

 
   
  

월요일, 밤 9시가 지났다. 

그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올 시간이다. 가을이 온 뒤, 매주 월요일 밤 9시가 넘은 시간이면 늘 커피를 마시러 오는 남자다. 무슨 이유일까. 처음 들어온 순간부터 그 남자의 표정, 가을빛이었다. 

가을빛? 그게 무슨 소리냐고? 글쎄, 그건 그 남자의 표정을 봐야 설명할 수 있다. 그 남자의 표정을 보면, 아 저기 가을이 내려앉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커피 마시고 싶어요." 

그 남자의 첫 마디였다. 무슨무슨 커피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커피를 마시고 싶다? 그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자니, 그 남자, 어떤 커피든 달라고 했다. 그리고 가을 어둠이 묵직하게 내려앉은 구석자리 창가에 앉았다.  

그 가을빛 때문이었다. 그 표정,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한길 사람속, 심연을 알 수는 없지만, 때론 말보다 표정이 더 절실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더구나 어떤 커피가 아니라, 무턱대고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말을 던지는 남자라면.  

졸졸졸,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섞었고, 고노를 택했다. 여러 구멍으로 새나가선 안 됐다. 하나의 구멍으로 가을을 내렸다. 가을빛이 따라내렸다.  

그리곤 월요일 그 시간, 남자는 꼬박 문을 열었다. 가을빛이 내린 표정을 하고선, 커피 마시고 싶다는 한 마디. 자리를 차지한 다른 손님이 없으면 늘 같은 자리에 앉았고, 책을 보거나 드라마를 봤다. 나는 다른 말 없이 가을빛 흘러내린 커피를 내놨다. 그 남자 역시 아무말 없이 커피를 들이켰다. 아주 살짝 보이락말락한 미소를 띠고.  

며칠 전 월요일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커피를 마시던 이 남자가 느닷없이 오더니, 이렇게 말한다. 

"커피 마실까?"

눈을 땡그랗게 뜨고 바라봤더니, "아저씨, 이 말 참 슬퍼요, 그죠?"  

역시 멍한 표정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남자, 곧 말을 잇는다.  

"<천일의 약속>이라는 드라마 보세요? 음, 이 드라마, 기억을 잃어가는 한 여자와 그녈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긴데요..."   

남자가 풀어놓은 드라마 이야기는 그랬다. 

서연(수애)와 지형(김래원)의 사랑이 시작된 우연의 만남. 서연이 영화 같다고 말했다는 만남이었다. 사촌 오빠의 친구로, 친구의 사촌동생으로 처음 만났단다. 그리곤 미술관에서 우연히, 8년하고도 반년만에 마주친, 혹은 3년 전 여의도 63층에서 사촌오빠 혹은 친구를 끼고 식사를 했다는 두 사람.  

"커피 마실까?"

"지형이 서연에게 그렇게 말해요. 잠시 다른 곳을 보고 있던 서연이 지형의 말을 듣곤, 표정이 말해요. 오랫동안 기다려왔다고. 왜 이제야 그 말을 꺼내냐고. 그토록 환하게 바뀌는 서연의 표정이 참 많은 말을 해요."

나는 안다. '커피 마실까?'라는 말에 들어간 수많은 함의.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의 귀를 자극하고, 머리와 심장에 도달한 울림. 아울러, 그 남자가 말하는 서연과 지형의 관계를 재배치했을 커피. 오랜만이라는 시간을 한순간에 건너뛴 커피의 마성. 사랑의 시작을 창조하는 마성적 커피.  

"서연이, 참 예뻐요." 잠시 뜸을 들이던 그 남자, 다시 말을 잇는다.  

"해롭다고 그래서, 오래 살아야 한다며 설탕을 넣지 않는 서연이를 향해 지형이 눈을 못 떼요. 아저씨도 사랑에 빠진 남자의 표정, 알죠? 그 순간, 지형이의 눈이 딱 그래요. 오로지 한곳에 박혀선 다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런 눈, 있잖아요. 눈에는 온통 하트가 그려져 있는 게 빤히 보이는..."   

커피에서 시작한 지형의 수작(?)은 "점심 먹을까?"로 이어지고, "저녁 먹을까?"로 이어진다고 했다. 커피 한 잔이 새끼를 친 셈이다. 얘길 들으니, 서연이라고 다르지 않았나보다. 커피에서 저녁으로 이어지는 논스톱 약속잡기 행렬에, 스스로 싸구려라면서 가두행진에 기꺼이 동참한다니.         

"커피로 시작한 만남이 하루를 몽땅 그들만의 것으로 만들어요. 손도 잡고요. 천년 전부터 기다렸다는 느낌이라며,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나요." 

데자뷰니, 전생의 기억이니, 오글거리는 이야기의 드라마 같은데, 이 남자, 태연하게 얘기한다. 꼭 자기 이야기처럼. 볼이 살짝 상기된 것을 보니, 뭔가 사연이 있구나 싶다. 그럴 땐, 굳이 물어보는 게 아니다. 커피 한 잔 더, 졸졸졸 흘러내려준다. 옛소, 기분이오. 

"똑같이 말했었어요. '커피 마실까?' 커피, 참 좋아하던 사람이었거든요. 그게 우리의 사랑이 시작된 말이기도 했죠. 저들처럼이요. 그때 알았어요. 커피 마시자는 말이 얼마나 많은 뜻을 품을 수 있는지. 그 말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3년을 사귀었다고 했다.  

천일이 넘은 시간. 약속했던 것을 지키지 못한 것이 있어서 가슴 아프다고 했다. <천일의 약속>이 아픈 이유라고 했다. 월요일마다 아이패드로 뭔가 보는가 싶더니, 그게 <천일의 약속>이었던 거다.   

"음, 얼마 전 헤어졌어요. 그녀때문에 이젠 커피중독자가 됐는데... 제가 월요일마다 오는 것, 아시죠? 월요일이 그녀가 쉬는 날이어서 커피 참 많이 마셨거든요. 커피순례 다니고 그랬어요. 전 지금, 월요커피병 환자에요." 

그녀 때문에 커피까지 배웠다고 했다. 내가 내려주는 커피가 뭔가 독특하다고 했다.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게 마음에 들었고, 처음왔을 때, 어떤 커피인지 말하지 않은 건, 어떤 커피가 나오는지 궁금했다고 했다. 다음에도 같은 커피가 나올지 궁금해서 말을 않았고, 계속 같은 커피가 나와서 참 좋았단다. 

커피 한 잔을 더 따랐다.  

환자에겐 계속 주는 수밖에 없다. 내가 줄 수 있는 처방약이자 위로니까. 한동안 이 남자, <천일의 약속> 때문에 마음으로 앓고 눈물로 말할 것 같다. 가을빛을 띤 이유가 있었구만. 커피로 시작한 사랑과 이별, 커피로 씻어야지. 

이 가을빛 남자에게 내가 처방한 커피는, 알싸한 신맛과 장점인 에티오피아 리무와 멕시코 치아파스, 도미니카 바라오나를 블렌딩했다. 이 남자의 가을빛이 알려준 레시피였다.  

월요일, <천일의 약속>이 방영되는 날이다. 이 남자, 또 오겠군. 커피를 준비해야겠다. 나는, 이 남자의 커피가 아프다. 가을이 아픈 이유가 있었구먼. 이 남자의 커피를 볶는데, 소리가 난다. 파파, 아파. 아... 파파, 팍.  

나도 기억을 잃어가는 여자와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졌다. 뭐, 딴 이유가 있을 이유가 있나. 수애. 그 이름 하나만으로 충분한 거지. 아, 수애 같은 여자가 오면, 참 예쁜 커피를 내려줄텐데...  

나도 수애씨한테 이 말부터. "커피 마실까?"

허허, 커피 만드는 노총각이 별 깜찍한 상상을 다 한다.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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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츠하이머를 앓는 여자가 아메리칸 커피를 시킨 이유
    from 맺고,따고,볶고,내리고,느끼고,사랑하라! 2011-11-09 03:44 
    사실, 거의 모든 커다란 위기 때 우리의 심장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따스한 한 잔의 커피인 것 같다. - 알렉산더 왕(?) 밤 9시, 늦은 시간이다. 커피를 마시기엔. 물론, 커피 마시면 잠 못잔다고 징징대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다. 누군가에겐 밤 9시가 깨어나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정신이
 
 
 

미안하다, 영욱아. 넌 늘 까불거렸지만, 그건 어쩌면 외피에 불과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너의 마음엔 늘 외로움이 웅크리고 있었고, 네 이야길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겠지. 가끔은 어떤 추억들을 꺼내 그것으로 널 희화화하면서도 그것을 공유하길 바랬다는 것, 그땐 몰랐다. 영욱이 네가 그렇게 외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 그시절처럼 노닥거리고 치고받는 정도는 아니었더라도, 좀더 너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그땐 그것을 왜 몰랐을까, 라고 나는 후회하지만, 글쎄, 변명을 하자면, 그 당시 나의 한계이자 현실이었을 것이다. 고향을 떠난 나로서는, 그 전만큼 너와 붙어다닐 시간도 없었을 뿐더러, 삶의 환경과 주변 모든 것이 바뀌었으니까. 그러나, 어쨌든 나는 네게 미안하다. 좀더 네 이야길 들어주지 못해서, 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나는 그냥 네 소식을 들었을때, 날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영욱아... 그때 그시절엔, 너와 보낸 시간이 내 세계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음에도... 미안하다, 혼자 널 내버려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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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대꿘'(대선)의 계절이야. '대꿘 is All Around'지. 물론, 재미 없다. 감동도 없다. 그래도 많은 이들의 촉각은 그곳으로 향하기 마련이지. 과연. 그래서 대꿘 함 쥐어보려고 저 지랄들인가보군. 대꿘이 '남아대장부'의 로망? 남자라면, 힐러리처럼? 하하, 농담이야. '남아대장부' 따위의 근엄한 코멘트엔 코웃음 픽픽. 그래, 난 남아소장부다.^^; 대꿘은 언감생심. 취꿘이 어울릴 남아. 남아당자약!
 
명함이 무릅팍팍 늘어나. OO위원회, OO본부니, 알지? 대꿘용! 알던 양반들이 그렇게 새 명함을 돌려대. 타이틀 늘어난게지. 어제도 그랬어. 송년회 자리에 빠지면 안되지. 홍보홍보. 뭐 굳이 필요없는디, 새 명함을 건네 주시더군. 넙죽 받았지. 뭐 글타고 크게 거부감도 없어. 개의치 않는게지. 줄테면 주라지~ 걍 받고 말지~ 쨌든 퉁~

근데 그 대꿘. 크긴 크다. 그래서 소외 받고 있지. 바로, '인권'. 사실 한끗 차이인데. 어쩌다보니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네. 완전히 묻힌 거 같애. 잘난 '대꿘' 덕분이지. 그래, 오늘 12일. 조영래 변호사의 17주기야. 그 이름이 낯설다면, <<전태일 평전>>. 알겠지? 수배생활 중 집필했던 이 책.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첫 제목. 조영래 변호사는 알려준거야. 넓혀준거야. 이 세계의 어떤 작동원리를.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어. 어른들도 알려주지 않았어. 전태일을. 그리고 노동자들의 핍박과 억압을. 그것이 또한 이 세계가 돌아가는 한 축임을. 몰랐었지. 그리고 놀랐지. 조영래 변호사는 그렇게 빨간약을 준거야. 나처럼 누군가는, 안게야. 조영래 변호사를 통해 전태일을, 혹은 세상의 한 단면을. 양심의 흔들림도 느끼기도 했겠지.
☞ 전태일,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은 그 사람...



맞아. 조영래 변호사는 이른바 '인권변호사'야. 근데, 웃기지 않아? 원래 변호사는 인권을 수호하는 직업군이었던거 아냐? 그게 우리가 어릴 때 배운 거 아니었어? 그런 변호사 앞에 왜 '인권'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돼? 허허. 인권은 어느 때부터인가 변호사 몸뚱아리에서 빠져나왔나봐. 영혼이 빠진게지. '인권아~ 빠이빠이'했나봐. 인권이 라이프~ 얼마전 실형을 선고받은 우리 전인권 형은 잘 있으려나.^^;

그만큼 그는 독특한 위치였었지. 오늘날보다는 덜 자본과 몸을 섞었을 당시의 변호사 바닥에서도 말이야. 조영래 변호사는 약자 역시 인권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려줬어. 쉽지 않았을거야. 그 당시 분위기로선. 그리고 약자를 위해 자신을 모든 것을 바치고 투쟁했던. 부천서 성고문 사건도 알지? 조영래 변호사는 국가를 상대로도 치받았어. 공권력의 타락상을 폭로하고. 부도덕한 정권과도 정면승부를 택했던 검객.

12월1일부터 12일까지. 혼자 정해본 인권기간. 1일 세계에이즈의 날(감염인 인권의 날), 우리의 편견에 메스를 들이대고. 8일, 평화와 공존의 사절단, 존 레논이 구름의 저편에 다다른 날. 반전과 인권을 부르짖던 로맨티스트, 존의 'imagine'. 나도 바라고 있어. 천국도, 지옥도, 국가도, 종교분쟁도, 소유도, 배고픔도 없는. 오로지 우리 위에 하늘만 있어서, 모든 사람이 '오늘'을 위해 사는.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며, 오직 인간에 대한 사랑만 존재하는 그런 세상. 바로, 존 레논이 'imagine'하던. 그 세상에선 전혀 인권이를 부를 필요가 없을테지. 그냥 녹아있으니까.

그리고 이어진 10일. 세계인권선언일. 올해 59주년. UN에서 세계인권선언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날. 내년이면 환갑인데, 너무 기력이 딸려. 그러면서 점점 빨라져. 노화가. 더구나 올해는 이가 빠졌어. 그것도 앞니가. 바로, '인권 콘서트'. 지난해까지 열여덟번째 행사를 가졌던. 그러면 드뎌 이 땅에 인권이 완성된 것? 이 행사가 열렸다는 건, 이 땅의 인권현실이 열악함을 방증했으니까. 그러나 그것일리는 없고. 무슨 일일까. 아픈 걸까. 이젠 중병으로 진화된 걸까. 응급실에 나자빠진 것?

음 아마, 대꿘이 탓도 약간은 있겠지. 1989년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으로 시작됐던 인권콘설. 12월10일 즈음이면 꼬박 찾아왔었는데. 행사를 주최하던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홈페이지에 가도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다. 자유게시판의 짧은 글 하나가, 아프다. "아직 소식이 없네요. 올해 인권콘서트 언제 하나요? 인권...아직 멀었는데... " 인권 현실을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소통의 장이 증발한 것일까. 혹시 유괴? <세븐 데이즈>의 김윤진을 불러라. 무죄를 만들어라. 정신없이 소중한 우리 박희순 오빠도 도와줘~

나는 작년에 이 행사가 없어졌음 좋겠다고 했어. 그러나 이런 식은 아냐아냐. 인권이 제대로 박혀있다면,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이 일상화되지 않은 사회라면,이라는 전제가 있었는데. 제길 어케 된거야. 콘설 앞에 '인권'이라는 말을 붙여야할만큼 우리는 너무 많은 인권침해와 박탈 속에 살아가고 있었던건데... 아예, 포기한걸까, 인권. 후, 자신의 인권현실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인데. 인권이도 지칠만해.

그날, 그러니까 그저께. 우연찮게 난 폭격을 맞았지. "나 사실은 에이즈야"라는 결정적 한마디. 그건,  연극 <뷰티풀 선데이>의 대사. 외로운 사람들, 배제된 사람들, 그들의 아름다운 일요일. '세계인권선언일'과는 전혀 상관없었어. 의도하지 않은 관람이었다규. 그런데도, 나는 그들의 아름다운 일요일에 감동먹었어. 재미까지. 너에게 추천해줄께.
☞ 맞잡은 손이, AIDS를 예방한다

그건 그렇고. 대꿘이 삼켜버린 인권은 어디서 건져내야지? 수렁에서 내 딸은 건졌는데, 인권이는 도대체 어디서. 지금의 세밑 풍경은 그래서 우울해. 좀더 이 세계의 현실을 생각케 만들지 못해. 대꿘이의 방해공작 때문이겠지. 오늘, 우리만이라도 다시 생각해보자. 이랜드-뉴코아 조합원들, 몸을 불사른 동지를 잃었음에도 달라진 것 없다던 전기공 노동자들, 지자체의 폭력적 단속에 내몰린 노점상인, 2년여 거리 투쟁을 하고 있는 KTX의 씩씩한 언니들, 자꾸만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이 사회의 또 다른 이름의 신분, 비정규직, 그리고 모든 약자와 소수자들...

그건 곧 우리야. 울림은 때론 흐느낌. 계속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할텐데. 소수자와 약자들의 인권을 향한 노래를, 우리의 양심에 호소하는 이야기에. 나도 때론 두려워. 휙~하고 휩쓸릴까봐. 그래서 이런 발악이라도 하는지도 모르지. 그래, 당신이나 나나, 약간의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 세계의 인권과 약자들을 생각해보자규. 인간으로서의 내 권리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도.

인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 그 인권.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님에도 세계는 점점 더 엄혹해져. 많은 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계급성을 배반하고. '대꿘'이 불알만 만져대. '대꿘'이는 밀접해야 할 인권이와 그닥 친하질 않아. 어쩌다 이름이 불려도 찬바람 휘잉~ 지금 대꿘이는 경제, 아니 정확하게는 '자본'과 아삼육인거 같애. 계는 없고, 색만 있어.ㅋ

마흔 셋의 나이에 눈을 감은 조영래 변호사. 과거 인권탄압을 고발했던 그는, 지금 살아있다면 어떤 이야길 들려줄까. 문득 궁금해지는 하루.

사실, 몸이 힘드네. 헥헥. 머리도 안 돌아. 역시 한해를 보내는 일이 마냥 쉽지만은 않아.^^; 뭐긴 뭐겠어. 술술. 역시, 환락의 밤은 짧고 숙취의 낮은 길어. 역시 난 취꿘이 어울려. ^^;;;;;;;;;;;;;;;;;;
  
글고, 아직 술독이 남아있는 것을 빌어,
대꿘, 특히 인권과 가장 거리가 먼 작자에게 한마디.
                   
조까라마이싱!
캠프에서 엉뚱한 전화질 하지 마라. 짱난다, 이 계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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