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 전2권 세트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잘 쓰고 싶은데 잘 모르겠다.
벌써 몇 줄을 다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고,
머릿속은 엉킬대로 엉켜버렸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나는 이 글에 대한 내 작은 소감을
아주, 잘 쓰고 싶다.
왜냐하면 스치듯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이 책을 꺼내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밝히자면, 나는 수필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내가 보기엔 비겁했고, 궁핍한 글쟁이의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누그러진건지 건방진 마음이 조금 풀어진 건지
세상의 이야기들이 이제는 퍽 듣기 좋다.
그리고, 최근 읽은 이 책을 들려 주고 싶다.
어쩌면 아주 간단할 지 모르겠다.
한 의사가 자신이 만났던 환자나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쓰여있는 이 책은
새로울 것도 놀라울 것도 없는 그저 책 한 권에 불과하다.

그래도 이 책을 읽기를 권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금 망설이면서 '겸손하게 삶을 대하는 마음을 얻게 될지도 모르니까'라고 말하고 싶다.

책을 써야 했던 만큼 드라마틱한 사연을 더 골라내야 했을지 모르지만,
삶이란 건 누구에게나 자신만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긴 드라마가 아닐까.
태어나자마자 사투를 벌이는 아기와 그 부모의 전쟁같은 일상이 있고,
예상치못한 사고로 한 쪽다리를 잃고 새 삶을 시작하는 젊은 아가씨도 있고,
동료의 죽음을 막기 위해 함께 싸우는 의사들이 있고,
행복하지 않을 게 분명해 보이는 삶에서 누구보다 많은 사랑을 실천한 모녀가 있고,
어이없는 죽음으로 우리를 분노케 한 사건도 있고,
신념과 싸우는 종교인도 있다.
누구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은 지금 나에겐 꽤 어렵다.
모두의 이야기가 같은 무게로 기억에 남아 있다.

왜냐하면, '삶'과 '죽음'은 우리 인간이 누구나 공평하게 받아 짊어진 복이며 짐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장 안쓰러운 사람은 고를 수 있다.
그건 두말 할 필요도 없이,
나 자신이다.
다른 사람의 백 가지의 어려움보다 내 한 가지의 얄팍한 걱정이 나는 더 중요하고,
누군가를 돕기 보다는 나 자신을 돕는 일이 더 익숙하며,
모든 중심에 나를 놓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더 소중했다.
"다른 누구보다, 혹은 세상에서 가장.."
이라는 수식어가 아닌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
라는 전제로 다른 이들의 삶을 공평하게 바라보고 싶어졌으니까.
나보다 더 소중하진 않을지 몰라도 나만큼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나만 이 곳에서 애를 쓰는 것이아니라 누구라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니까.

그러니.
나는 내 삶을 더 제대로 살아내고 싶어졌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내 삶을 제대로 살자고 마음 먹었다.
이 결심은 작은 문제 앞에서도 고스란히 무너질만큼 야트막할 지라도,
지금의 나는 이렇게 내 삶을 끌어 안는다.
알 수없는 죽음 앞에서, 선택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내가 떳떳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 이 삶을 제대로 책임지는 것 뿐이라는 걸 나는 오늘도 배우고 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6-15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른이 된다는 건, 고장나지 않는 나침반을 갖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디에 있든지 가리키는 방향이 확실해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거라고,
그래서 방황도 없고 혼란도 없고 흔들림도 없는 그런 단단함을 얻게 되는 게 어른일 거라고
...'어리다'는 형용사를 앞에 달고 살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책 안에는 많은 '어른'들이 있다.
그런데 그 어른들은 모두 어딘가 삐걱거린다.
칼을 무서워하는 조폭, 공중그네에서 망설이는 곡예사,  제대로 송구할 수 없는 야구선수,
장인의 가발을 벗기고싶은 충동에 빠진 의사, 매너리즘에 빠진 잘 나가는 소설가.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는 철없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있다.
그들은 모두 이 정신없는 '이라부'의 치료방식에 불신하다가도 어느 순간
모든 걸 벗어나 안정이 되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다섯 편의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고 유쾌하게 그려지며,
흥미롭게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저 소설적인 소재구나라고 생각하며 즐거워한 사이,
굳이 어떤 '메시지'나 '교훈'이라는 말로 얽매지않아도 마음 한 구석이 싸하고 동시에 통쾌하다.
장래에 대한 불안과 사람에 대한 불신, 자신에 대한 나약함과 드러내놓기 위해 만들어 놓은 가면.
좀 더 노련해지며 얻었던 많은 것들과 함께
나이를 얻으며 늘어 버린 수 많은 짐들은 책 속의 그들과 나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그저
아무것도 재지않고 '맨 몸'으로 그 모든 문제들을 대하는 이라부의 모습은
품위없고 철없지만 가슴 속이 후련해진다.

..이제, '어리다'는 형용사를 가진 많은 이들이 나를 '어른'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오늘처럼 내가 생각했던 '이상향'에서 한...십만 광년 쯤 떨어져있다고 느끼는 날은
도대체 날 위한 나침반은 어디있는 건가 생각하며 나 스스로를 굉장히 구박해버리고 만다.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쓸모 없는' 나를 잔뜩 원망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랬다. 이 책이 어리석은 '나이 먹음'을 한탄하기 보다는 좀 더 그 시간들을 의미있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동심과는 반대되는 그 수 많은 것들이 그저 세상의 티끌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아주 사랑스러운 나약함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 책은 이렇게 단단하고 강하고 때론 멋있어야만 하는 '어른'의 모습을
벗어나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그 어른의 모습이 형편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온 자신의 시간들을 조금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될지 모른다고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말이다.
실수하면 어때, 좀 저질러 버리면 어때, 하찮으면 어때..뭐, 어때?
그렇게 어떤 위안 하나를 던져 주면서 말이다.

나는 나이를 먹고 철이 들고 성숙해가는 내 시간들을 사랑하고 싶다.
그 안에서 잔뜩 후회하고 멍청하게 헤매고 그리고 형편없어져도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이 상실감쯤은 벗어 버리자.
...아직 도착하지 못했지만, 나는 걷고 있다. 저 험난한 '어른'의 길로!
준비는, 끝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르네상스의 비밀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201
리처드 스템프 지음, 정지인.신소희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유럽에 갔을 때, 빼놓지 않고 했던 건 단 두 가지. 그 지역 유명 음식을 먹어 보는 것과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보는 것. 이 두 가지로 우리는 배를 채웠고, 유럽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해보려 했으나...실은 전자는 착실히 해냈을 지 몰라도 후자는 상당히 미흡했다.
물론, 책에서나 보던 그 어마어마한 작품들앞에서 놀라거나 감성을 자극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림의 대한 평이 단 3초에서 끝나니 문화와 역사는 커녕 그림 자체를 즐길 여유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오...최후의 만찬이다...생각보다 색이 훼손이 많이 됐네?...저기 소실점이다!
모나리자군...이야...의외로 환하잖아.
.....인류의 보물 앞에서 나의 평은 단순하고 어설펐다.
만약에 내가 조금 더 그것들을 바라보는 눈을 키웠더라면 나는 그 때 얻었던 감동보다 조금 더 한 것을 얻어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 그런 감동을 일깨워주는 화려한 책 한 권이 있다.

르.네.상.스
이름만으로도 찬란한 그 시대의 예술을 설명하는 이 책은 굉장히 친절하다.
르네상스 전반에 관한 철학적인 사상적 기초를 토대로 정치, 경제, 문화를 어우르는 탐구는
나처럼 일반 교양서를 위한 초심자에게 어렵지 않을 만큼의 설명과 구체적인 예를 보여준다.
이 책의 원제는 'the secret language of Renaissance' 즉 비밀보다는 '언어'라는 측면을 돌아본다는데 의의가 있다. 언어란 소통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것, 대화가 가능한 가장 편리하고 기초적인 수단이며 때론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
말하자면, 르네상스 예술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 책이랄까?
저자는 꼼꼼히 그림, 조각 때론 문학 작품을 통해 우리가 그것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를 인도한다.

어린 예수가 왜 사과를 들고 있는지, 그 상징성에 대해서도 알려주며
어째서 성인들의 옷이 붉은 지, 그것이 단지 색채의 미학은 아닌 숨겨진 의미를 찾아 내주며
예술작품을 만들어 낸 가문의 문장을 읽는 법을 가르쳐, 예술과 부에 관한 일반적인 관계를 찾아 낸다.
이런 것들을 살펴 볼 때, 수록되어 있는 그림들은 자세하고 선명해 그 때 그 때 그 작품앞에서 감상하는
것처럼 들뜬 순간을 맛보게 한다. 책이 무겁고 크다는 불편도 이 그림들의 구석구석을 살펴 보는 순간
자연스레 잊혀진다.
그림의 구도를 읽게 되고, 그림의 상징을 읽게 되며 그 그림 속 세상을 자세히 구경하게 하는 이 책은 또한,
작품과 작가와의 관계, 또는 작가와 사회와의 관계로 그 시대를 잠시 돌아보게 하는 여유까지 안겨준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나는 조금씩 르네상스와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간다. 그것이 아주 깊고 견고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내가 르네상스에 관심을 갖고 즐거워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마련해 준다.
그렇게 우리가 막역히 알고 있는 것에 대해 확실한 근거를 통해 일종의 '번역'을 해주는 이 책은, 꽤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도와준다.
물론, 이 책을 읽은 나에게, '그럼 한 번 설명해보지'라고 말한다면 나는 '당연하지. 나 모르는 거 없어.'라고 대답할 만한 교양을 쌓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부족했다기 보다는 단지 내 기억력의 한계일 뿐이다.
그래도 아마, 내가 생생히 기억하는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 그림 앞에 다시 선다면 그 아름다운 선들과 화려한 정경들 앞에서 나는 미의 여신을 통해 그려진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조금 잘난체를 할 지도 모르겠다.
전에는 알지 못했던 알베르티의 메달 앞에서 그는 서자였지만 박학다식한 사람이었다면, 그를 두둔할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르네상스 예술품들을 통해 노골적으로 혹은 숨겨져있던 언어 몇 가지를 익힌 나는 르네상스와의 다음 만남에서 좀더 세련되게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 인사는 아직 어눌하고 부족하겠지만, 그렇게 시작된 만남이 깊은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면 나는 아마 이 책을 꽤 고맙게 여기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칼의 노래 1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 이순신 그 영웅이란 무게
모두들 이 책을 읽고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라든가 내면에서 드러나는 고뇌와 슬픔을 보았다고 말한다. 확실히 그렇다. 아름답고 진중한 작가의 유려한 문체는 전쟁터의 썩은 살냄새에서 전쟁의 허무함을 이야기하며, 저문 노을빛으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보여주기도 하고, 아기내음으로 그리움을 절절히 담아낸다. 역사상 가장 강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한 '장군 이순신'의 호탕하고 강렬한 힘을 드러내기 위해 적군과 부딪치는 칼소리를 내는 대신, 도망친 가엾은 병사의 목을 치는 처연한 칼소리를 선택한 이 글은..온전히 이순신이라는 내 조국의 한 사람을 이야기해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나약한 이순신을 봤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상처에 고통받는 그 밤들에 대한 묘사가 이순신이라는 사람을 나약하게 만들었다고 불평하던 내 지인은 말했다. '이렇게 아프다고 불평했던 사람이 아니잖아. 심약한 사람처럼 그려진 것 같아서 그 점은 좀 불만이다.' 이 책을 읽고 불멸의 이순신이 보고 싶어졌다 말하는 나에게, 자신도 그렇다면서 하지만 그래도 이 한 가지만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오히려, 비겁함을 몰랐던 한 사람을 본 느낌이었다. 그는 내부의 정치적인 전쟁의 희생자였고 외부의 침략전쟁을 막아내야하는 책임이 있었고, 그리고 한 사람이었다. 아슬아슬한 그 곳에서 칼 끝에 발을 대고 움직여야만 했던 그 곳에서 물러섬이 없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냈던 그는, 누가 뭐래도 강하고 또 강한 사람이었다. 정직함으로 응대할 줄 알았으며 지혜롭게 승리할 줄 알았던 그의 내면을 읽으면서, 나는 어느 때보다도 '영웅 이순신'의 모습을 봤다.

둘, 애국심에 대한 짧은 생각
세상 모든 '위인'이란 말에는 어떤 감탄이 들어 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동일한 시간을 아낌없이 살고, 시련을 이겨내고 그리고 결국에는 과거를 지나 미래의 누군가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업적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라는 온 국민이 잘 아는 자랑할 만한 위인이 있다. 그는 열악한 환경을 핑계삼지 않았으며 적군에게 기죽지 않고 승리로서 우리의 바다와 우리의 땅을 지켜낸 인물이다. 하지만 그 이름을 부를 때 우리가 갖는 경외감에는 그가 굉장한 전략가에 다시 없을 전술가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가 지켜낸 이 땅에 내가 살고 있어서다. 죽어가는 이 땅에 피를 토하며, 깊은 애정으로 지켜낸 이 땅을 기억하기 때문에 그를 생각하면 격렬한 감탄과 애잔한 울분을 함께 느낀다.
애국심이라는 말에는 다소 진부하고 시대를 역행하고 또는 폐쇄적인 느낌이 들게 하는 신파가 들어 있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들이, 그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들이 현재의 '나'를 있게 했다. 어디에서도 나를 떠돌이로 만들지 않을 믿음을 주게 했다.
...그리고, 나는 애국자가 되었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이 순수한 에너지와 감정을 가슴에 품어 본 경험을 했다. 이 책을 읽고 말이다.

청동기시대의 유물과 철기시대의 유물을 기억해내고,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에 대한 배경지식을 배우는 것만이 역사를 알아 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없어도 역사를 알 자신이 있어, 라고도 말하지 못한다. 지식이란 세상을 이어주는 몇 안되는 굉장한 보물이니까. 하지만, 나는 국사시간이 끝나고 졸리고 따분한 느낌을 받는 것은 조금 속상하다.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과거를 이해함으로 현재를 좀더 지혜롭게 살아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역사 교육은 과거에서 끝나버리고 만다. 물론 때로는 자랑스럽게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과거의 한 시대로서만. 그리고 지켜내지 못한 역사로 강대국들틈에서 작은 소리도 외치지 못하고 있는 지금. 나는 말한다. 여기 지도의 지명을 교묘하게 바꾸는 걸로 우리의 것을 빼앗는 것은 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이 사람만은 빼앗지 못할 거라고.
이.순.신.
이 세 글자안에는 이 사람과 똑같은 마음으로, 이 역사를 이 나라를 그리고 자신들의 영혼과 정신을 지켜내온 사람들이 들어 있다고 말이다.
역사를 제대로 아는 훈련과 이해하는 노력과 함께 이런 자긍심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면, 나는 이 책을 권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 1
김민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키득거리는 소리에 엄마는 두 어 번쯤 날 이상하게 바라보다 한 말씀 하신다.
"그렇게 재밌냐?"
반쯤은 정말로 궁금해 하시는 것 같았지만, 나머지 반은 '니가 지금 나이가 몇 인데 아직도 만화책을 보면서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웃고 있는 게냐?'라는 공격성 발언이기도 한 이 말에 난 달리 대꾸하지 못했다.
창피해서?
면목없어서?
.....아니, 그저 웃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은 재밌다.
한 나라가 망했다. 살아 남은 유일한 왕족인 왕자 한 명과 시녀, 그리고 왕의 조언자 이 셋은 훗날을 도모하며 숨어 지낸다. 여기까지는 흔히 봐왔던 구조다. 허나, 딱 여기까지만이다.
오버하지 않고도 웃길 수 다는 것과 눈물을 쥐어 짜지 않아도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의
최고의 승부수다. 

우선, 캐릭터들부터가 정형적인듯 인듯...살짝 비켜가버린다.
자세한 설명은 작품을 보며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버리기 때문에 살짝 패스!
게다가 흐지부지 캐릭터들의 성격이 급격하게 변한다거나 혹은 초기의 설정을 뒤로 한 체 정체성을 잃어 버리고 마는 숱한 작품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의 본연의 자세를 잊지 않는 일관성에는
작가의 꼼꼼한 준비성이 엿보인다. 게다가 어찌나 하나 같이 사랑스러운지 원..
누군가를 위해 장식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제 몫을 해내고 있는
기특함까지 한껏 가지고 있다.

스토리는 또 어찌나 대담한지.
주인공을 단련시킨다는 명목하에, 세상 모든 시련을 갖다 붙이고는 '자, 슬프지? 슬프지? 어? 안울어?'라면서
우리를 강요했던 억지스러움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는 '유쾌하고 재치있는 드라마와 개그'는
순간 순간 우리를 긴장시킨다.
아무런 노력없이도 작가가 전해주는 삶의 비애감은 당연하게 받아 들여지고, 그 때문에 펑펑 울어 버리는 대신 담담하게 멀리서 지켜보는 '삶'은 3권의 길지 않는 만화책 속에서 더 진하게 남는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흐름을 갑자기 역류시키는 재주 또한 기발하다.
그 기발함으로 작가의 유머는 끝까지 도도하게 우리를 웃겨 버리고 만다.

훌륭한 드라마와 군더더기 없는 유머, 일관된 전개와 수긍할 만한 주인공들은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
가는 펜선이 오히려 선명도가 높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느낌이기 때문에, 한 눈에 '예쁜 그림'은 아닐지
라도 절대로 지루해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유쾌한 이야기를 시간을 두고 두 번쯤 읽었고, 그 때마다 키득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여러 번 독파한 후에도 자질구레한 다른 재미를 찾았기 때문에
꽤 후회없는 선택이었다고 자신한다.

아마, 올 해 산 만화책 중에 단연 상위권에 랭킹될만하다고나 할까?

작가의 내공 *****
스토리의 탄탄함 ****
등장인물들의 러브리함 *****
그리고 폭소 횟수 *****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hika 2006-07-19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키득거리며 읽었어요. 이 여름 땀 삐질거리며 짜증날 때,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

날개 2006-07-19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신작 <풀의 꽃>도 기대중이어요~^^* 지금 1권만 나왔지만..

기다림으로 2006-07-19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절대 찬성입니다 치카님^^ 게으른 저는 여기서 그저 인사를 해버리고 맙니다만
정말 반가워하는 거 아시죠....? ^^:: 유쾌한 치카님께 짜증날 일이 생기실까 싶어요~
앗, 날개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네. 저도 1권을 읽었습니다. 이번 작품은 스토리 위주 인것 같아요. 여전히 캐릭터들을 독특하지만. 음..어쨌든 기대해보려구요^^ 잘, 지내시죠? 날개님의 활발한 활동은 늘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