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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ㅣ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평점 :
어른이 된다는 건, 고장나지 않는 나침반을 갖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디에 있든지 가리키는 방향이 확실해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거라고,
그래서 방황도 없고 혼란도 없고 흔들림도 없는 그런 단단함을 얻게 되는 게 어른일 거라고
...'어리다'는 형용사를 앞에 달고 살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책 안에는 많은 '어른'들이 있다.
그런데 그 어른들은 모두 어딘가 삐걱거린다.
칼을 무서워하는 조폭, 공중그네에서 망설이는 곡예사, 제대로 송구할 수 없는 야구선수,
장인의 가발을 벗기고싶은 충동에 빠진 의사, 매너리즘에 빠진 잘 나가는 소설가.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는 철없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있다.
그들은 모두 이 정신없는 '이라부'의 치료방식에 불신하다가도 어느 순간
모든 걸 벗어나 안정이 되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다섯 편의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고 유쾌하게 그려지며,
흥미롭게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저 소설적인 소재구나라고 생각하며 즐거워한 사이,
굳이 어떤 '메시지'나 '교훈'이라는 말로 얽매지않아도 마음 한 구석이 싸하고 동시에 통쾌하다.
장래에 대한 불안과 사람에 대한 불신, 자신에 대한 나약함과 드러내놓기 위해 만들어 놓은 가면.
좀 더 노련해지며 얻었던 많은 것들과 함께
나이를 얻으며 늘어 버린 수 많은 짐들은 책 속의 그들과 나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그저
아무것도 재지않고 '맨 몸'으로 그 모든 문제들을 대하는 이라부의 모습은
품위없고 철없지만 가슴 속이 후련해진다.
..이제, '어리다'는 형용사를 가진 많은 이들이 나를 '어른'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오늘처럼 내가 생각했던 '이상향'에서 한...십만 광년 쯤 떨어져있다고 느끼는 날은
도대체 날 위한 나침반은 어디있는 건가 생각하며 나 스스로를 굉장히 구박해버리고 만다.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쓸모 없는' 나를 잔뜩 원망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랬다. 이 책이 어리석은 '나이 먹음'을 한탄하기 보다는 좀 더 그 시간들을 의미있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동심과는 반대되는 그 수 많은 것들이 그저 세상의 티끌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아주 사랑스러운 나약함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 책은 이렇게 단단하고 강하고 때론 멋있어야만 하는 '어른'의 모습을
벗어나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그 어른의 모습이 형편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온 자신의 시간들을 조금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될지 모른다고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말이다.
실수하면 어때, 좀 저질러 버리면 어때, 하찮으면 어때..뭐, 어때?
그렇게 어떤 위안 하나를 던져 주면서 말이다.
나는 나이를 먹고 철이 들고 성숙해가는 내 시간들을 사랑하고 싶다.
그 안에서 잔뜩 후회하고 멍청하게 헤매고 그리고 형편없어져도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이 상실감쯤은 벗어 버리자.
...아직 도착하지 못했지만, 나는 걷고 있다. 저 험난한 '어른'의 길로!
준비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