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하는 마음 - 김혜리 영화 산문집
김혜리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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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오래되고 전통있는 영화잡지 ‘씨네21’의 김혜리 기자의 새 책이다. 2017~2020년에 쓴 칼럼과 몇 편의 에세이를 엮었다. 20대 중후반부, 독서 외에 취미를 갖고자 영화관을 뻔질나게 다녀서 영화를 많이 봤다고 생각해 이 책을 폈다. 하지만 중반부에 이르러서 나는 포기를 선언했다. 나는 패션 영화광(광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얄팍하지만…)이었던 것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목차를 가져와본다. 본 영화가 많다면 책을 읽어도 좋다. 반 이하라면… 영화부터 보고 책을 펴야할 것이다. 내가 그랬거든. 목차만 보면 익숙한 제목이 많은데, 실제로 본 영화는 반밖에 안된다. 게다가 너무 오래 전에 본 영화라서 기억에 제대로 남지 않았다. 줄거리를 소개해주는 부분도 거의 없으니, 웬만하면 영화를 보길 권한다.



1. 부치지 못한 헌사

이자벨 위페르 / 베네딕트 컴버배치 / 톰 크루즈 / 폴 러드 / 틸다 스윈튼 


2. 각성하는 영화 

문라이트 / 레이디 버드 / 미성년 / 페르세폴리스 / 스토커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플로리다 프로젝트 


3. 욕망하는 영화 

결혼 이야기 / 내 사랑 / 팬텀 스레드 / 레이디 맥베스 / 엘르 / 매혹당한 사람들 / 조용한 열정 /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4. 근심하는 영화 

옥자 / 퍼스트 리폼드 / 킬링 디어 / 미드소마 / 겟 아웃 / 어스 / 툴리 / 그녀들을 도와줘 


5. 액션과 운동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 존 윅3: 파라벨룸 / 라이프 오브 파이 /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 너는 여기에 없었다 


6. 시간의 조형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패터슨 / 고스트 스토리 / 로마 / 아이리시맨 / 덩케르크 / 토리노의 말 


7. 팽창하는 유니버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2 / 2012년 할리우드 속편들 / 원더우먼 / 조커 / 로건 /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 /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 블랙팬서 / 캡틴 마블 / 어벤져스: 엔드게임 /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 알라딘(실사)



영화를 대하는 태도는 아쉽게도 나와 많이 다르다. 저자는 영화의 재미 측면보다 의미에 힘을 실는 타입이다. 좋게 말하면 평론가라 할 수 있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현학적이라는 의미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가 단적인 예다. 이 영화는 평이 극단적으로 갈린다(평론가에게는 좋은 평을, 팬에게는 나쁜 평을 들었다). 저자는 ‘라스트 제다이’를 지극히 평론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았다.


오래된 시리즈물은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이야기를 발전시켜야 한다. 이 균형을 맞추기란 정말 어려운데, 아쉽게도 ‘라제’는 기존 팬에게는 큰 실망을 남겼다. 시대적 의미를 담느라 기존 시리즈의 큰 줄거리에서 이탈했다. 많은 평론가들은 영화의 의미에 점수를 주지만, 대중은 이와 반대인 경우가 많다. PC가 들어갔다 뭐다 비판하지만, 무엇보다도 영화가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재미, 그래, 상업영화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하자가 있지 않는 한 재미와 완성도가 1순위인 것이다. 이는 저자가 ‘블랙팬서’와 ‘캡틴 마블’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일치한다.


그래도 영화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는 저자의 시각과 스펙트럼을 흡수할 필요가 있다. 나는 엄청나게 편향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옹졸한 시선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과 마주하고 싶다. 무엇보다, 책에서 소개하는 영화를 보고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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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실패 - 정우성 요가 에세이
정우성 지음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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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요가를 배우고 있다. 크로스핏을 하다가 어깨를 다친 후 운동을 그만뒀는데, 결혼 전부터 요가를 해온 와이프를 따라 집에서 간간히 자세를 연습했다. 올해 초부터 주에 두세 번 간단한 요가 시퀀스와 스트레칭을 했다. 가까운 거리에 와이프가 아는 선생님이 계신 요가원으로 일주일에 두번씩 운동하러 간 게 두 달째다.

집에서 요가 동작을 취할 때는 좋았다. 어차피 혼자고, 와이프는 옆에서 항상 독려의 말을 해줬다. 굳은 다짐으로 요가원 등록을 마쳤는데 들어서니 막막하다. 여성의 비율이 높아서 이것 자체로 기가 죽는다. 덩치가 작거나 몸이라도 좋으면 위안이 되겠건만, 뼈가 굵고 요새 살이 오를대로 올라 통통한 내가 거울에 비치면 얼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크로스핏과 런닝용 운동복은 상하의 모두 짧은 편이다. 하의는 OK, 상의는 진짜… 말을 말아야지. 팔이라도 머리 위로 들라치면 짧은 상의는 내 배 중간까지 올라오고, 살이 붙은 배를 거울로 보면 민망함을 감출 수 없다. 같이 수강하는 원생이 많을수록 부끄러움은 배, 아니 제곱, 세제곱이 된다.

> “어떤 수업이든 들어가서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면 돼요. 괜찮아요. 못 하면 어때? 재미있을 거예요.” _25쪽

그래, 비록 몸은 남루해도 엄청난 근력과 유연함으로 요가 동작(아사나)이라도 잘 하면 모르련만 따라하기도 벅차다. 힘을 쓰는 동작은 어떻게든 흉내는 내겠는데, 어깨와 골반이 뻣뻣해 비틀기나 구부리는 동작에는 영 쥐약이다. 아니, 쥐약 수준이 아니다. 엄두를 못내는 수준이다. 오늘은 하타 수업을 들었는데, 할 수 있는 동작이 절반이 안됐다.

책 <단정한 실패>를 읽으면서 위안을 받았던 건, 저자도 나와 비슷한 몸을 가졌기 때문이다. 워커홀릭 매거진 편집자로 일하면서 굳은 몸과 관절. 도톰히 살집이 있는 몸. 다운독(견상자세 또는 아도무카스바아사나)이 요가 동작들 사이 사이 휴식을 주는 자세라는데,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나뿐이 아니었다. 저자가 요가를 접한 초기에 토로했던 어려움을 나도 하나씩 경험하고 있다.

과거에는 요가라면 인도의 기인이 요상한 자세로 묘기를 부린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요가를 처음 접했을 때는 아사나가 전부인줄 알았다. 하지만 요가에서는 완벽한 아사나보다 중요한 것은 아사나를 행하기까지의 중간과정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못하면 어떠리, 할 수 있는 데까지 힘껏 동작을 수행하면 된다. 고통을 느끼는 순간의 현존하는 자신을 자각하는 것. 이게 요가일까.

> 내 수련은 나만 안다. 나한테만 쌓인다. 내가 하는 요가는 나만의 것이다. 누구와 함께 하기 전에 온전한 개인이 되는 일.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이 될 줄 알아야 한다는 정갈한 다짐. 그게 먼저였다. 사랑이 그런 것 처럼. 인생이 결국 그런 것처럼. _84쪽

동작이 잘 안되도 좋다. 옆 사람은 동작을 잘 하네, 자세가 예쁘네 할 것도 없다. 거울에 비치는 내 뱃살과 덩치도 다 버린다. 나는 내 요가를 한다. 요가에는 남이 없다. 수련할 때는 나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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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위로 - 글 쓰는 사람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곽아람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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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이 모범생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90년대 끄트머리 학번인 그에게, 짱돌과 화염병을 들고 가두시위를 하던 386 선배들은 “공부만 하는 대학생은 인생을 모르는 것”이라고 종종 이야기했다. 주변에서 “대학에서 배운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면, 그는 동의하지 않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게 쿨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학을 다니며 수많은 과목을 들으며 공부했다. 그동안 우리는 정말 배운 게 없을까? 그는 대학 입학 성공기를 다룬 많은 책을 뒤로 하고,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한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이 책은 40대 직장여성이 대학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세계를 보낸 20대 초반을 돌아보는 성장기다(11쪽). 그 시절의 지식과 공부가 지금의 자신에게 어떤 자산이 되었는지, 열심히 노력한 시간들이 예술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정립해 주었는지를 말한다.


그의 전공은 고고미술학과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공부했던 과목은 대부분 인문학 - 우리가 흔히 인문교양이라 부르는 수업들이다. 고고학, 미술사(동서양, 심지어 인도까지!), 언어(한문, 중국어, 프랑스어, 라틴어), 문학, 종교학, 심리학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수업을 들었다. 심지어 학부 시절 법학개론을 듣고 지적소유권으로 박사과정까지 밟았다니, 과목의 범위가 넓디도 넓다.


저자에게 교양이란 자신의 세계를 공고히하되 다른 세계가 틈입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10쪽). 남과 같은 것을 보면서도 뻔하지 않은 또 다른 세계를 품을 수 있또록 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62쪽).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은 뻔하지만, 지겹게 생각했던 공부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넓히는 하나의 일환이라 생각하니 새롭게 느껴진다. 어떤 건물을 보고 웅장하다, 아름답다, 이렇게 간단한 느낌만을 말하는데 그치는 나와 달리, 역사와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 건물을 다른 가치로 볼 것이다.


책이 인문학만을 다뤘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공과계열은 그렇다 쳐도, 순수과학분야의 수업은 충분히 교양의 영역인데 말이다. 인문학이 사람과 관계를 다룬 학문이라면, 과학은 세계의 원리에 대한 이야기다. 상대성 원리와 양자역학의 세계가 얼마나 흥미진진한데.  오일러 공식 - 일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식을 다룬 유튜브 영상을 보다보면 과학과 수학도 미술, 건축만큼 아름다운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책을 덮고서 나는 대학에서 뭘 배웠는지 돌아봤다. 대학 4년 동안 전공(화학공학)수업을 듣기도 바빴다. 하루에 두 개씩 전공수업을 듣고, 그날그날 과제를 끝냈으며, 친구들과 피씨방을 가거나 도서관에서 소설을 읽으며 저녁까지 보냈다. 시간도 모자라고 졸업 필수가 아닌 선택 과목인 수업(특히나 교양수업)은 굳이 찾아 듣지 않았다. 여러 과목을 듣고는 싶었으나 단순히 배우고 듣는 차원에 머무르고 싶었지, 암기를 하고 시험을 치기 싫었던 것 같다. 그나마 졸업 필수라 들었던 서너 개의 교양 수업은 나에게 어떻게 의미일까. 지식이 아닌, 그저 낮은 학점으로만 남지 않았을까? 학점마저 가성비로 바라보던 당시의 내가 아쉽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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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아도 마음산책 짧은 소설
최은영 지음,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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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어떻게 될지 아는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해보려는 태도. 너와의 삶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태도.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태도. 세상에 수많은 슬픔, 절망, 좌절이 있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우리는 우리를 믿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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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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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하게 끝나는 이야기가 있는 반면 뒤끝이 습쓸한 채로 끝나는 이야이도 있다. 그렇겠지, 여태가지 살아온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데 일주일의 여행으로 모든 게 뒤바뀌진 않겠지. 끝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등장인물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가 걸어온 길에 손가락질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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