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GO! FC 오렌지 1
나우다 타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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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GO! GO! FC 오렌지>는 여타의 축구만화와는 꽤나 차별성을 보여준다. 대다수의 축구만화들이 영웅적인 능력을 선보이는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워 그의 화려한 축구 여정을 그리는 것과는 달리, <GO! GO! FC 오렌지>는 '난요 오렌지'라는 한 축구팀이 한 시즌을 치러내는 동안의 희로애락에 주목한다. 그래서 일본의 2부리그인 'F2'에 소속한 난요 오렌지가 팀의 존속이 위태로운 절체정명의 상황 속에서 1부리그인 'F1'으로의 승격을 향한 대 분투기를 펼치는 것이 바로 이 만화의 중심 줄거리가 된다. 

물론, 비범한 능력을 지닌 영웅적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은 이 만화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16세의 나이로 일본 F2의 꼴찌 팀 난요 오렌지의 구세주로 떠오르는 와카마츠 무사시의 능력은 여느 다른 축구만화 주인공들의 능력에 비해 한 치의 모자람도 없다. 하지만 그런 대단한 재능을 지닌 무사시라고 할지라도 '난요 오렌지'라는 '팀'에서 그는 여전히 한 명의 팀원일 뿐이다. 그 당연하지만 종종 간과되는 중요한 현실을 이 만화는 결코 예사로 여기지 않는다. 

하나의 팀으로서 난요 오렌지가 처한 상황은 여러모로 절망적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난요 오렌지에 모여든 팀원들이 서서히 융합되면서 난요 오렌지를 만년 꼴찌 팀에서 승격을 노리는 팀으로 탈바꿈 시킨다. 재정적인 곤란에서 비롯되는 많은 악조건들과 무사시의 대표팀 차출과 관련한 논쟁, 그리고 선수들의 부상과 경고 누적으로 인한 어려움 등, 승격을 위한 난요 오렌지의 한 시즌은 매우 처절하면서도 현실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고난을 조금씩 극복해 나가는 난요 오렌지의 행보는 자못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더욱이 작가는 경쟁하는 라이벌 팀들을 넘어야 할 적으로서만이 아니라 모두 각자의 이유로 '승격'이라는 꿈을 지니는 박력 넘치는 팀으로 묘사하고, 또한 '승격'이라는 최고의 목표를 위해 선수들과 구단은 물론이고, 서포터와 지역 주민들의 노력과 염원이 합쳐지는 지점까지도 예리하게 포착하면서 만화의 감동을 한층 배가 시킨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독자들을 난요 오렌지의 서포터인 '오렌지 맨'의 하나로 동참시키고, 나아가 '오레 오레 오렌지'라는 꽤나 우스꽝스러운 응원구호에도 의외의 감동을 받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이 만화가 지니는 힘이다.

총 13권인 이 만화의 분량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 그러나 스페인에서의 어린 시절 중, 전(前) 난요 오렌지의 구단주와 난요 오렌지를 세계적인 클럽으로 만들겠다는, 장난 같은 약속 하나를 위해 일본으로 돌아온 무사시가 난요 오렌지를 세계적인 클럽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모두 담기에 역시 13권은 터무니없이 적은 분량이다. 작가는 무리하지 않고 13권으로 할 수 있는 만큼의 이야기만 한다. 여전히 난요 오렌지의 시즌은 계속되고, 그것은 1부리그로 '승격'을 이루든 혹은 2부리그에 '잔류'하든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어쨌거나 힘겨운 도전이 계속될 것이라는 것. 작가는 딱 여기까지 이야기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이 산뜻하면서도 여운 있는 마무리는 독자에게도 역시 만족스럽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 <GO! GO! FC 오렌지>는 '승격'으로 대변되는 '클럽의 꿈'을 주제로 한 독특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축구만화'다. 몇몇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축구팬에게는 분명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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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놀 청소년문학 28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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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읽으며 누나에게 넌지시 '개를 훔치는 방법'을 묻자, 이내 충분히 예상 가능한 대답이 맥없이 따라 나온다. "개를 찾는다. 개와 친해진다. 개를 훔친다." 재미없게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을 따라한 게 명명백백한 이 대답은, 그러나 또 재미없게도 틀린 대답이 아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개를 훔칠 수 있단 말인가. 11살의 초등학생인, 이 책의 주인공 조지나의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녀가 자신의 보라색 노트에 직접 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이렇게 시작한다. "1단계: 적당한 개를 찾는다." 이 정도면 '완벽한 방법'의 1단계로서 역시 부족함이 없다.

조지나가 하필 개를 훔치려고 하는 데에는 물론 이유가 있다. 어느 날 고물차 한 대만 남기고 훌쩍 떠나버린 아빠 때문에 조지나가 집도 없이 고물차에서 생활하게 되었다는 게 그 근본적인 이유다. 맥도널드에서 씻고 학교에 갔다가 다시 고물차로 돌아와야 하는 삶을 사는 초등학생의 고뇌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법. 그런 힘겨운 나날이 계속되던 중, 개를 찾아주면 500달러를 사례금으로 주겠다는 오래된 전단지 하나가 조지나의 눈에 띈다. 500달러라면 집을 얻을 수 있는 돈이다(라고 조지나는 믿는다). 그래서 조지나가 당장 그 개를 찾아 나서게 되었느냐? 천만의 말씀. 이미 11살에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저술하는 조지나의 비상한 머리는 '전단지를 보고 개를 찾는다.'의 순서를 살짝 바꾼다. 즉, '미리 개를 찾고(훔치고) 곧 나올 전단지를 발견한다.'는 것으로. 그러니까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탄생배경이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방법'도 현실에서 실행하다보면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가령, 고작 3단계로 이루어져 있을 뿐인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만 해도 실제로 실행한다고 가정하면, 우선 코끼리의 크기에 맞는 냉장고가 있어야 하고,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는 인력 혹은 장비가 필요하다. 게다가, 어쩌면 코끼리에게 미리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은 물론, 불가피하게 코끼리 몸의 일부를 절단해야 한다면 당연히 신체포기각서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조지나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무려 9단계로 이루어져 있으니 그 어려움이 오죽하겠는가. 더군다나 나도 어렸을 때 뭔가를 훔쳐봐서 아는 바지만, 어린 나이에 뭔가를 훔친다는 건 정말로 쉽지 않다. 그러니까 개를 훔친다는 것은, 냉장고 문을 열어 코끼리를 집어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셈이다.

그러나, 그래서 결국 조지나가 '완벽한 방법'을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후반부에 슬쩍 등장하여 함축적인 대사를 별로 상관없다는 듯 툭툭 내뱉는 무키 아저씨의 말을 빌자면, "때로는 뒤에 남긴 삶의 자취가 앞에 놓인 길보다 중요한 법"이고, "휘저으면 휘저을수록 더 고약한 냄새가 나는 법"이다. 조지나가 '완벽한 방법'을 실행하는 와중에 드러나는 이런저런 문제점들은 계속해서 세부적인 '규칙'들로 보완되지만, 그렇게 '완벽한 방법'에 다가가면 갈수록 조지나는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할 뿐이다. 할 수만 있다면 아직 고약한 냄새가 나는 자취를 남기지 않았던, 마구 휘저어대지 않았던, 그녀가 개를 훔칠 마음이 없었던 그때로. 그리하여 마침내 조지나의 명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9단계: 절대로 개를 훔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라도 결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어렸을 때 괴도 루팡을 동경했던 나로서는, 이 책이 조지나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바탕으로 "절도는 계획적으로"라는 주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내주고, 더하여 조지나가 세계적인 대도(大盜)로 성장까지 한다면 더욱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이 책이 결국 이른바 '바른생활' 버전으로 끝날 것이라는 건 책 뒤표지에 언급된 몇몇 이력, 예컨대 '무슨 무슨 대학 올해의 책'이라거나 '미국 학부모 및 교사 단체 선정 올해의 책' 등을 보면 일찌감치 짐작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그 당연한 '바른생활' 이야기를 오로지 바르게만 이끌어 가지 않는 과정에 있다. 어느 누구도 도덕 선생님처럼 "개를 훔쳐서는 안 된다."고 설교하지 않고, 엄마나 친구들도 조지나에게 마냥 따뜻하고 친절한 조언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조금은 영악하면서도 착한 조지나가 무키 아저씨의 따뜻한 배려 아래 스스로 '바른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이 책은 기발한 착상으로, 퍽이나 유쾌하면서도 흥미롭게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딱히 흠을 잡기 어려운 이 책에서 다소의 아쉬움을 느끼는 건 분량이 약간 적은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의 주 타깃 층에 내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순전히 비유를 들어 말하기 위해 아이들과 아이를 둔 부모를 '개'로 상정하자면(맹세하건대 이때의 '개'에는 전혀 나쁜 의미가 없다), 이 책은 '개'의 마음에 들 만한 '거의' 완벽한 책이긴 한데, 다만 내가 '개'가 아니라고나 할까. 물론, 나도 언젠가는 '개'를 둔 '개'가 될 확률이 높으니 그때쯤에는 이 따뜻하고 바른 이야기를 좀 더 마음에 들어 할지도 모르겠으나, 불행히도 지금은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까지는 '괴도 조지나' 쪽이 좀 더 마음에 들고, '완벽한 방법'으로 훔치려던 건 '개'였을 뿐이고, 나는 그저 '늑대'였을 뿐이고. 뭐, 그렇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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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3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3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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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터넷에서 '스티븐 제라드 빌딩'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내용인즉슨, 두바이에 세워지는 주거 전용 빌딩에 리버풀의 세계적인 축구선수 스티븐 제라드가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기로 했고, 그 대가로 고급 아파트 한 채를 받기로 했다는 것. 뭐, 고작 닳지도 않는 이름을 빌려주는 대가가 아파트 한 채라는 게 꽤나 부럽고, 제법 레어 축에 끼는 내 이름은 아무도 빌려가지 않는 현실이 유감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큰 불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스티븐 제라드라는 이름 자체는 별 게 아니라지만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결코 간단한 게 아니고, 무엇보다도 스티븐 제라드는 내가 좋아하는 축구선수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기사를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조금씩 읽어오던 <지식e-시즌3>에서 '두바이의 꿈' 편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런 문구가 씌어져 있었다.

"이곳이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악몽입니다. 사람들은 과연 누가 이 건물을 지었는지 기억이나 할까요?" (p264)

물론, 이런 문구를 보고 새삼스레 '스티븐 제라드 빌딩'이라는 이름이 터무니없이 잘못되었다거나, 혹은 정작 그 건물을 짓느라 고생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못내 궁금해졌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냉정한 현실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아니 최소한 나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팍팍한 삶보다는 이름 있는 어떤 특정한 사람의 화려하고 부유한 삶을 접하게 되는 쪽을 차라리 더 선호하고, 이는 비록 가닿을 수는 없을지언정 여전히 꾸고 싶은 '꿈'의 한 자락을, 이른바 '스티븐 제라드 빌딩'이 펼쳐 보이고 있기 때문일 터다. 그렇지만 적어도,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가는 초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두바이의 꿈' 속에, 힘든 노동을 기꺼이 감내하면서 그저 소박한 바람만을 가질 뿐인 '노동자의 꿈'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제 알아야만 했다. 3일에 1층씩 올리는 '버즈 두바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의 하루 평균임금은 4달러. 그들은 각자의 소박한 '꿈'을 좇아 '두바이의 꿈'에 동참하기 위해 빚을 내어 '기회의 땅' 두바이를 찾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참담한 현실과 냉혹한 무관심일 뿐이었다. 그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그저 누구나 마다하고 싶은 '악몽'에 다름 아니었으리라.

소위 '기사'라는 건 기본적으로 읽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에 '기사'는 모든 '사실'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는 것만을 다루려는 경향이 있는 한편, 때로는 사람들에게 읽혀지기 위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사실'을 드러내는 듯하면서도 '진실'을 교묘히 가리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지식e>는 그러한 '기사'와는 대척점에 서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즉, 설령 누구나 읽기를 원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아야만 할 '사실'에, 오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사실'에 <지식e>는 천착하는 것이다. 예컨대 <지식e-시즌3>에서라면, 누구나 바라는 '꿈'이라 할 수 있는 '스티븐 제라드 빌딩'이 아니라 이름 없는 누군가의 소박한 '꿈'이 '악몽'으로 변하는 현실을, 권위와 명성을 자랑하는 '노벨상'이 아니라 풍자와 철학이 담긴 '이그노벨상'을, 자랑스러운 한국인 리더인 UN사무총장 반기문의 삶이 아니라 '아시아의 슈바이처'라 불린 WHO사무총장 이종욱의 삶을 담담히 보여주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지식e>는 언제나 '진실'을 지향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 1권과 2권을 읽었을 때도 그러했던 것처럼, <지식e-시즌3>에서 드러내주는 '진실'들을 접하면 어쩐지 나와는 어울리지 않게 사뭇 감상적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감정일 터이고, 그렇기에 "이 시대의 아방가르드와 함께 나이를 먹고, 몇 달에 한 번씩 출간되는 발간물을 보는 재미가 최소한 환갑까지는 갔으면 좋겠다."는 우석훈의 이 책에 대한 '찬미'처럼, 나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저 이런 책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렇다면 아주 조금쯤은 '진실'을 외면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인터넷에서 넘치는 '기사'의 홍수가 가져다주지 못하는 <지식e>의 진실한 '아픔'과 '슬픔'과 '분노'가, 그래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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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오늘 새벽 5시30분(한국시각)에는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더비 경기인 '엘 클라시코'가 벌어졌다. 막강한 공격력으로 리그 1위를 질주하는 바르셀로나와 달리, 갈지자 행보로 더비 직전에 감독교체의 강수를 둔 레알 마드리드의 사정으로 인해 더비의 긴장감은 한층 줄어들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역시, 축구팬이라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경기가 바로 '엘 클라시코'인 것이다.

그런데, 이 경기를 생중계 해주는 KBS스포츠 채널의 편성표를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을 이내 발견할 수 있다. 일요일 새벽 5시30분에 경기가 생중계 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그 다음 재방송이 월요일 새벽 5시라는 건 대체 뭐란 말인가. 설마하니, 일요일 새벽 생중계를 못보는 사람이 월요일 새벽 재방송을 볼 수 있다고 믿는단 말인가!

최근 몇년 간, 한국에서 방송되는 축구리그 중에서 이른바 '대세'라고 할 수 있는 건 단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다. 이는 프리미어리그가 한국 선수들이 많이 진출한 곳이고, 빠른 경기템포가 매력적인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더 대자면, 방송시간의 편리함도 한몫 한다고 볼 수 있다. 대체로 프리미어리그는 토요일 저녁 9시30분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저 "프리미어리그가 최고다."라고 말해버린다면 당연히 안 된다. 그것은 적어도, 프리미어리그와 경쟁적 관계에 있는 리그를 방송해주는 방송사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물론, 박주영의 소속팀인 AS모나코의 경기도 독점으로 방송하는 KBS스포츠 채널의 경우, 이미 축구팬을 매혹시킬 충분한 '자원'을 손에 넣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박주영은 성공적으로 팀에 적응하며 주전자리를 완전히 꿰찼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세련된 경기력의 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까 말이다. 다만 간과할 수 없는 한가지 문제는, 대체로 박주영의 경기는 새벽 1시쯤, 프리메라리가는 새벽3시 이후에나 방송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KBS스포츠 채널은 일요일 낮 혹은 다음날 오후에 도무지 재방송을 보내주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당장 오늘만 해도, 오늘 새벽 2시20분에 벌어진 맨유와 토트넘의 경기는 MBC ESPN을 통해 생중계는 물론이고, 낮12시와 저녁10시에 재방송 일정이 잡혀 있지만, '엘 클라시코'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 KBS스포츠 채널은 시청자, 특히 축구팬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말했듯, KBS스포츠 채널이 가진 '자원'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최근 박지성을 제외하면 딱히 두드러진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다른 프리미어리거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특히나 그렇다. 더욱이 최근 개봉한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를 통해 '엘 클라시코'의 이름이 일반에 들리는 호재를 고려하면, KBS스포츠 채널의 한심한 편성표는(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축구팬의 경우일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대한 모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주 보는 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에 더욱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프리미어리그가 '대세'인 데에는 프리미어리그의 경기방식에 익숙해지고, 그들의 카메라 뷰에 적응하고, 그럼으로써 더욱 거기에 관심을 갖게 되는 '선순환'이 알게 모르게 작용한다. KBS스포츠 채널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저 막연히 팬들이 '불편한' 시간의 생중계를 기꺼이 감수하기를 바라지만 말고, 최대한 팬들이 적당한 시간에 경기를 재방송으로나마 접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프리메라리가 혹은 박주영 경기에 대한 '익숙함'과 '관심'과 '애정'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KBS스포츠 채널의 분발을 촉구한다.

그러니까, '엘 클라시코' 좀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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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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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에게 "하루씩 걸러서 다녀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아버지가 있다면, 나는 우리 아버지와 바꾸자고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일 텐데, 정작 그런 아버지를 둔 초딩 우에하라 지로에게 아버지는 그리 달가운 존재가 아니다. 물론, 프리라이터랍시고 집에서 빈둥거리기만 한다거나, 케첩과 미제국주의를 '주적'으로 간주하며 요란을 떤다거나, 가끔 우악스러운 힘으로 레슬링 기술을 걸어오는 것쯤은 차라리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연금독촉을 나온 세무 공무원에게 국민연금 따위는 못 내겠다고 동네가 떠나가라 큰소리로 항변한다거나, 가정방문을 온 담임선생님에게 국기에 대한 경례와 기미가요 제창의 부당함을 지적한다거나, 심지어 국민 따위는 관두겠다고 말하는 아버지란 확실히 초딩이 쉽게 감당할 만한 아버지가 아닌 것이다.

아니, 어디 초딩뿐이겠는가. 과거 혁공동(아시아 혁명 공산주의 동맹)의 전설적인 투사였으며, 좌익 진영의 내홍에 염증을 느껴 홀연히 동맹을 빠져 나온 이후에는 좌익과 우익 모두 탐탁지 않게 여기고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는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는, 심지어 국가가 감당하기에도 결코 만만치 않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체제에 빌붙은" 공무원을 보면 도무지 그냥 지나칠 줄을 모르고, 특히나 경찰을 향해서는 "국가의 개들"이라며 노골적인 적개심을 감추지 않으며, 더욱이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지르겠다."는 발언조차도 서슴지 않는 그는, 그러니까 한 마디로 위험천만한 인물인 셈이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두고서도 달리 어찌할 수 없는 초딩의 무기력함은, 실은 반국가,반자본주의를 맹렬히 주창하는 우에하라 이치로가 국가와 자본주의의 거대함 앞에서 느끼는 무기력함과 사뭇 닮아있다. 대단한 소설을 내겠다는 그의 야심은 우익의 압력에 가로 막히고, 185cm에 이르는 당당한 체격과 가라데 능력도 모든 경찰을 제압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걸핏하면 "남쪽으로 가겠다."는 말을 내뱉지만 '남쪽'에 가는 것도 그리 쉽지 않아 보이거니와, 설사 간다고 하더라도 과연 '남쪽'이 '이곳'과 얼마나 다를지 그저 의심스럽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실제로 지로네 가족이 '남쪽'으로 떠나게 되면서 상황은 일변한다. 여느 아이들의 아버지와 같은 평범한 아버지를 원하는 지로의 바람과 여느 국민들과는 달리 국가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치로의 바람은, 급작스럽게 떠나서 안착한 '남쪽의 섬'인 이리오모테 섬에서 잠시 충족되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남쪽 섬에 도착했지만, 그곳에는 빈 집의 수리를 도와주고 가재도구와 음식을 나누어주는 등,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로 넘쳐나서 살아가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이것은 지역 유지인 상라 어른과의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외국인 베니의 존재는 '국가'와 '자본주의'라는 두 거대한 축이 한 '개인의 삶'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님을 여실히 증명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국가와 자본주의의 거대하고 교묘한 시스템은 평화롭고 여유로운 남쪽의 섬조차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잠시나마 평온한 생활을 영위하는 듯하던 지로네 가족의 삶은, 이리오모테 섬에 리조트를 건설하려는 건설회사와 맞부딪치면서 다시 급격하게 요동친다. 국가와 자본주의를 등에 업고 법과 규칙을 주장하는 건설회사의 횡포에 우에하라 이치로는 분연히 맞서고자 하지만, 그것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은 우에하라 이치로 자신은 물론, 초딩인 지로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이길 수 없는 싸움에 기꺼이 나서며, 우에하라 이치로는 이렇게 말한다.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 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p245)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정책과 제도를 끊임없이 밀어붙이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미친 소'를 먹이기 위해 광고조차 마다하지 않으며, 심지어 하고 싶은 말까지도 통제하려는 '국가'를 현실에서 수시로 마주하는 게 일상이고 보면 "나도 남쪽으로 튀고 싶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지만, 실은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은 '남쪽'으로 가는 방법을 몰라서도, '남쪽'이 결단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 지어서도 아니다. 기실 그것은 어쩌면 이미 어린 시절, 일찍 일어나고 서로 돕는 '새나라의 어린이' 따위는 기필코 마다하고 싶어 하면서도, 여전히 '헌나라의 어린이'가 아닌 '새나라의 어린이'로 남을 때 느꼈던, 그러한 '안도감'의 연장선 위에서 이루어지는 '두려움' 혹은 '체념'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사회란 건 싸우지 않는 사람들을 위안해줄 뿐이야."라는 지로의 엄마 사쿠라의 말은, 그래서 '위안'으로 족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위안'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이 책의 작가인 오쿠다 히데오는 우에하라 이치로라는 과격한 인물을 등장시켜서 '국가'와 '자본주의'를 비롯한 사회체제에 대해 다분히 비판적 면모를 보여주고, 더하여 마치 일찍 일어나고 서로 돕고 거짓말을 안 하고 쌈을 하지 않고 몸은 튼튼한 '새나라의 어린이'처럼,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애국가를 부르며 국가와 자본주의에 '긴박'된 삶을 살면서 '안도'하는 사람들을 향한 비판도 잊지 않지만, 오로지 우에하라 이치로만이 '정의'가 아님은 초딩인 우에하라 지로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에하라 이치로의 거침없는 행보가 의미하는 바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삶'에 대한 가능성과 신뢰 그 자체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의문을 품었거나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잊지 말고 가슴 속에 간직해주세요. 그리고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머리로 판단하여 정의의 편에 서는 사람이 되어주세요."라는 교장 선생님의 말에서 드러나듯, 그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 각 '개인'의 선택에 대해 지지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뿐이다. 그러니까, 오직 '새나라'만이 유일한 선택은 아니고, 반드시 '새나라의 어린이'여야 할 필요도 없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헌나라의 어린이'라도 괜찮다고.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라는 우에하라 이치로의 말을 곱씹으며 문득 생각해보았다. 만약 이런 사람이 내 아버지였다면 나는 과연 '헌나라의 어린이'가 될 수 있었을까? 글쎄,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랬다면 적어도, '초등학교 6년 개근상' 따위를 받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뭐, 꼭 '개근상'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6년 내내 단 한 번도 학교를 빼먹은 일이 없는 '초딩의 삶'이란 꽤나 재미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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