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나를 버리다 - 더 큰 나를 위해
박지성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지성의 '두 번째' 자서전이 나왔을 때 나는 기대하기보다는 자못 실망스러웠다. 그의 '첫 번째' 자서전 <멈추지 않는 도전>이 나온 지 4년 여. 4년이면 강산이 변할 만큼은 아니어도 대략 냇가와 언덕 정도는 변할 시간이 된다고 항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4년은 이미 '첫 번째' 자서전을 낸 사람이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들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다. 그 사람이 아직 한창 때의 젊은이이고, 여전히 앞으로의 의미 있는 행보가 기대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물론 한편으로는 2008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출전명단에서 완전히 제외되었던 사건에서 시작되는 그의 이야기들이 흥미를 끌고, 4년간의 새로운 이야기에 목말라하던 팬들에게 그의 이야기가 반가운 건 분명하다. 앞에서 두 번째 '자서전'이라고 했지만, 어쩐지 다소 책임감을 지녀야 할 것처럼 보이는 '자서전'이라는 분류 대신 상대적으로 가벼운 느낌의 '에세이'로 이 책을 분류하자면 받아들이기가 한결 수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말하자면, 이건 '자서전'은커녕 '에세이'로도 민망한 수준이다.

 

박지성의 첫 번째 자서전에서는 세련되지는 않을지라도 박지성이 스스로 그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조곤조곤, 남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그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듯 그저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차분히 꺼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그런 꾸미지 않는 솔직함에서 조금 감동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책에서는 꾸며내는 듯한 느낌이 너무 많다. 새로 겪었던 에피소드들과 거기에서 느꼈던 감정을 담백하게 복기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어떻게든 교훈이나 유명선수들의 명언을 엮어내려는 모습은 가히 안쓰러울 지경이다. 지난 자서전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이나, 또는 어디서 이미 들어본 이야기들을 종종 접하게 되는 것도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다.

 

만약이지만, 이 책을 좀 더 담백하게, 그저 박지성 그 자신만의 이야기로만 채우고 그로부터 받는 느낌을 오로지 독자의 몫으로만 남겨두었다면 이 책은 훨씬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270여 페이지에 불과한 이 책의 부피는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며, 결국 그게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박지성이 자신의 안에서 쌓이고 쌓인 이야기를 '풀어낸다'기보다는 월드컵에 즈음하여 기획으로 '만들어낸다'는 느낌이 강하고, 결국 아직 쌓이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박지성이 아닌, 출판사의 과제일 테니까. 물론 남의 '자서전'을 자신의 '과제'로 바꾸는 출판사의 의도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고.

 

끝으로 이 책의 띠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비교하지마, 흔들리지마. 나를 위해, 동료를 위해, 꿈을 위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던지면 세상은 너를 향해 웃어줄거야!" 좋은 말인 것도, 그리고 내가 꽤 냉소적이라는 것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역시나 이걸 박지성이 그대로 말한다고 생각하면 손발이 다 오그라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아무쪼록, 이제는 리그 1위 팀에서 꼴찌 팀으로 옮겨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박지성이 그 자신 안에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 흘러넘칠 때, 비로소 그의 이야기를 꾸미지 않고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의 이야기에서 기대하는 건 현란한 수사나 넘치는 은유가 아니라, 그저 그의 삶 자체일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럽 축구에 길을 묻다 - 장원재의 한국 축구 산업화 제안 SERI 연구에세이 73
장원재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CU@K리그'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의 최종전을 장식했던 이 카드섹션의 문구는, 그러나 월드컵이 끝나고서 공허한 메아리로만 남았다.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도 모자라 거리 곳곳을 채웠던 수많은 팬들은 월드컵이 끝남과 함께 일상으로 복귀했고, 그 일상에 K리그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또 다시 맞이한 남아공 월드컵. 태생적인 속성상 충성스런 팬들을 보유하지 못해 텅비기 일쑤인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는 스크린에 펼쳐진 대표팀의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모처럼 수만의 관중이 몰렸고, 전국의 거리 곳곳에도 다시 붉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찼다. 축구를 향한 조촐하고 썰렁하던 응원은 순식간에 다시 장엄하고도 열정적인 응원으로 바뀌어 버렸다.

물론,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축구팬은 아니고, 또한 그들이 모두 축구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아님은 자명하다. 국가 대항전이라는 월드컵의 특성상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이들은 그저 '대한민국'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표팀을 응원하기도 하고, 더욱이 그것이 지구촌 축제라는 점에서 기꺼이 동참하여 즐기기를 원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함께 같은 장소에서 같은 화면을 보며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응원한 신명났던 경험이 사람들을 더욱 불러 모으는 원동력으로 기능한다. 사람들이 바라고 응원하는 건 축구 그 이상의 것이고, 이것은 K리그에서는 얻을 수 없는, 단지 월드컵에서나 가능한 것들이라고 종종 사람들은 단정하곤 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K리그와 월드컵이 같은 '축구'를 전제로 하는 것이 명백한 이상, 그러한 섣부른 단정에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꽉 찬 관중석과 열정적인 응원, 팀이 이기고 짐에 따라 극단적으로 갈리는 환희와 슬픔, 상대에 대한 적대적 반응과 경기에 대한 순수한 찬탄, 기실 이 모든 것들이야말로 바로 축구를 묘사하는 '모든 것'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같은 유럽의 일부 축구리그에서는 그러한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요컨대, 축구를 향한 열정적인 응원과 열광은 결코 월드컵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K리그의 과제는 분명해지고, 아울러 유럽리그 중에서도 특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모델로 하여 K리그 발전의 길을 모색하는 이 책의 작업도 의의를 지닌다. 많은 사람들을 울고 웃게 만들 수 있는 콘텐츠인 축구. 산업화에 따라 하나의 상품으로 기능하는 축구. 이러한 축구를 좀 더 예쁘고 매력적으로 포장하고 거기에 '드라마'라는 소스를 더하여 축구팬들을 만족시키고, 나아가 축구 그 이상의 것을 원하는 잠재적인 '구매자'에게도 어필해야 한다는 건, 월드컵에서 펼쳐졌던 축구 그 이상의 아름다움이 여전히 선연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한 당연한 수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년에 고작 한 달뿐인 그 특별한 환희를 일상으로 끌어오려는 노력이 한국축구의 당면과제이자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것들을 모두가 잘 '알고만' 있다는 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른바 '선순환'의 구조를 마련하여 열정을 '일상화'하는 것이 중요한 일임을 알지만, 막상 그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면 여기저기서 난관과 맞닥뜨리게 마련이다. 마냥 유럽의 열정적인 리그를 모델로 하고자 하여도 많은 해법들이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하기에 섣불리 시도하기가 만만치 않다. 가령, 대기업에 기생하는 형태인 현 '기업' 프로팀은 시민을 기반으로 자생하는 '지역' 프로팀으로 가는 것이 백 번 옳겠지만, 매년 적지 않은 적자를 감수하는 각 팀들이 기업의 품에서 벗어나는 순간 재정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한 몇년 전 거의 모든 내셔널리그 팀들이 K리그로의 승격이 불가하다고 밝힌 데서 보듯, 승강제는 강등하는 팀과 승격하는 팀 모두에게 현실적으로 '부담'이기만 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이 책의 제안도 특별히 새삼스러울 것은 없고, 더욱이 '현실적'이라고 하기에도 사실 무리가 있다. 동남아의 선수를 영입해 K리그의 시장을 아시아로 확대하자거나, 대학팀들을 리그로 끌어들여서 K리그와 N리그를 각각 16-16 혹은 그 이상의 숫자로 편제하자는 제안들은 일견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과연 현실적으로 동남아의 선수들이 K리그에서 선호되는 남미와 동유럽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란 회의적이고, 또 16-16 이란 편제는 단지 숫자에 불과할 뿐 그것이 곧 K리그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우리와는 제반환경이 사뭇 이질적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거의 유일한 모델로 삼은 것도 '현실적인 취사선택'의 범위를 좁히는 요인 중 하나로 지적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언급한 몇몇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논의들은 그 시도 자체로 반가운 내용임에는 틀림이 없다. 비록 이 책이 한국축구가 나아갈 '길'을 명확히 제시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내용 자체도 소략한 편이지만, 적어도 월드컵의 열광만을 기대하며 가능성이 희박한 월드컵 단독 개최를 위해 눈먼 돈을 쓰려는 한국축구협회나 혹은 단발성 이벤트에 대한 환호만을 기대하며 K리그의 일정까지도 바꿔주며 유럽의 유명팀과의 친선경기를 환영하는 프로축구연맹에 비하면, 이 책의 제안은 차라리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이라고 할 법도 하다. 무엇보다도 4년마다 온탕과 냉탕을 왕복하는 한국축구의 미래를 위한 진지한 고민이라는 점에서, 저자의 노력만큼은 박수를 받아 마땅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월드컵 1930-2010
헤르만 악셀 일러스트 / ODbooks(오디북스) / 2010년 4월
절판


1930년에 우루과이에서 열린 제1회 월드컵부터 지난 2006년 독일에서 열린 제18회 월드컵까지 모두 아우른 이 책은 일러스트의 향연으로 무엇보다도 눈이 즐거운 책이다. 각 선수들의 특징을 묘사해내는 캐리커처나 각 대회의 주요사항을 포착하는 시선은 재미있으면서 독특하고, 주요 경기의 골 장면이나 특정 선수의 플레이를 재현해낸 일러스트는 치밀하면서도 재기가 넘친다. 책의 어떤 페이지를 펼치든 월드컵의 특별한 순간이 펼쳐지면서 독자가 월드컵의 묘미를 만끽하도록 만든다.

월드컵의 첫 대회는 우루과이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우루과이로 향하는 각국의 여정이 만만치 않았고, 그 긴 여정과 치열한 승부의 끝에는 월드컵 창시자인 줄 리메의 이름을 딴 줄리메 컵이 기다리고 있었다.

1954년 월드컵은 스위스에서 열렸다. 당시 독일이 헝가리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사건은 '베른의 기적'으로 회자되는데, 여기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한 것이 바로 베른에 내린 비와 최초로 나사식 뽕을 장착한 아디다스의 축구화였다. 독일은 조별예선에서 그들에게 대패를 안겼던 헝가리에 3대2로 승리를 거두었다.

1966년 월드컵을 자국에서 치렀던 잉글랜드는 드디어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며 축구 종주국으로서의 체면을 살렸다. 자국을 위한 몇몇 특혜 문제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들은 우승을 할 자격이 있는 팀이었다. 한편,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오른 게 바로 이 대회이기도 했다.

1974년 서독 월드컵과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는 연이어 준우승에 그쳤지만, 이 두 대회를 거치는 동안 크루이프는 세계 최고의 선수로 떠올랐다. 물론, 1978년 대회의 경우 크루이프는 대회에 불참했지만, 그가 네덜란드 축구에, 그리고 세계 축구에 끼친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토탈 풋볼'로 대변되는 새로운 전술의 선구자였으며, 또한 '크루이프 턴'의 창시자였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은 마라도나의, 마라도나에 의한, 마라도나를 위한 월드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라도나는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손으로 골을 성공시키는 비신사적인 짓을 저질렀지만, 곧바로 세기의 골로 꼽히는 환상적인 골을 성공시킴으로써 그의 능력을 입증해 보였다. 결국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는 우승을 차지했고, 핸드볼 파울 논란은 '신의 손'으로 남았다.

지난 2002년 FIFA의 인터넷 투표를 통해 '세기의 골'로 선정되었다는 마라도나의 골을 헤르만 악셀은 위와 같이 묘사해 놓고 있다. 여러 차례 본 골 장면이지만, 이렇게 보니 또 색다르면서 재미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출전했던 카메룬의 로저 밀러는 38세의 나이로 4골을 기록하면서 카메룬의 8강행의 1등 공신이 되었고, 그의 세레머니는 축구팬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놀랍게도 그는 42세의 나이로 1994년 미국 월드컵에도 출전했는데, 더욱 놀랍게도 또 다시 골을 기록하며 월드컵의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선명히 새겼다.

브라질이 우승했지만, 그보다는 이탈리아 로베르토 바조의 승부차기 실축으로 기억되는 1994년 미국 월드컵. 물론, 당시에 실축을 했던 건 바조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에 공을 허공으로 날린 건 꽤나 강렬했고, 무엇보다도 토너먼트에서 놀라운 활약을 선보인 그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다.

몇 번을 되풀이해봐도 감동적이고 놀라운,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안정환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넣은 골든골 장면이다. 그림의 오른쪽 편을 보면 이탈리아의 왼쪽 풀백 코코가 붕대를 감고 있는 게 눈에 띄는데, 그 묘사 하나만으로도 악셀이 얼마나 충실하게 그림을 그렸는지를 알 수 있다. 단, 골대 뒤편 걸개의 글씨는 차마 한글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의 우승팀은 이탈리아였지만, 이 대회의 주인공은 단연코 지네딘 지단이다. 지단은 이 대회 직전에 이미 은퇴를 밝혔기에 이 대회는 지단이 마지막으로 축구 인생을 마무리하는 무대였고, 과연 그는 이 대회를 끝으로 그라운드 위를 떠났다. 물론, 그의 '박치기'는 영웅의 퇴장 장면으로 삼기에 그리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그는 마지막까지 인상적이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과 관련해서, 이 책은 본선 32개국의 주요선수 한 명씩의 캐리커처를 수록해 놓고 있다. 당연히 한국의 선수는 박지성. 우리와 같은 조에 속한 국가의 선수로는 아르헨티나의 메시와 나이지리아의 카누 그리고 그리스의 카라구니스가 선정되었다. 캐리커처의 얼굴 크기로만 따지면 아르헨티나와 한국의 16강 진출이 확실하다.


지난 월드컵의 역사를 모두 다루는 이 책은, 기실 그렇게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재치 넘치는 일러스트가 이 책의 내용을 특별하게 바꾸어 놓았다. 글로 묘사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들이 그림 덕택에 생동감을 찾았고, 특히 각 대회의 특징들을 직관적으로 포착하는 그림에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수록된 500여 컷 중 어느 하나 버릴 게 없었고, 그래서 책을 들여다 보는 일이 무척 즐거웠다. 게다가 도판의 크기는 시원시원해서 소장의 가치도 한껏 높여준다. 한 마디로 단언컨대, 가히 축구팬들의 보물이 될 만한 책이다.


덧.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이 책에서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건 선수들의 이름 표기다. 기본적으로 이 책에 나오는 선수들의 이름 표기는 영어식 발음을 토대로 하는데, 그로 인해 실제 우리가 아는 선수의 이름 표기와는 사뭇 달라졌다. 가령, 월드컵 역사상 한 대회 최다골의 주인공인 프랑스의 쥐스트 퐁텐이 폰태인으로, 네덜란드 선수인 레이카르트가 리지카드로, 그리고 독일 선수인 게르트 뮬러와 루디 펠러가 각각 거드 뮬러와 루디 볼러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잉글랜드 선수인 리네커는 라인커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물론, 다양한 국적을 지닌 선수들의 이름을 일관되고 정확하게 표기하기란 어렵지만, 약간의 감수만 거쳤더라도 좀 더 나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축구공 위의 수학자
강석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축구와 야구와 농구는 물론이고 미식축구와 마라톤과 복싱 등, 스포츠라면 딱히 종목을 가리지 않고 두루 섭렵한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스포츠의 순간 순간들을 독자에게 아낌없이 펼쳐 놓는다. 마라도나의 '신의 손'이 현현한 1986년 월드컵의 순간과 최동원이 불멸의 투구를 선보였던 1984년 한국시리즈의 순간, '농구 천재' 허재가 다시 부활한 94-95 농구대잔치 결승전의 순간과 박시헌이 부끄럽지만 안타까운 금메달을 따냈던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싱경기의 순간 등, 저자는 독자들도 기억할 만한 순간이나 혹은 독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을 놀라운 기억력으로 복원해내며, 그 순간의 감동과 위대함과 슬픔과 분노와 부끄러움과 안타까움과 추함 등의 감정들을 함께 되살려 낸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감정들이 넘쳐났던 스포츠의 순간들을 통해 스포츠의 세계를 예찬하는 한편, 그 속에서 우리 삶에 도움이 될 만한 가치들을 은근슬쩍 일러준다. 내용이 짧게 끊겨 있어서 아쉬운 점이 있지만 대신 속도감 있게 읽히고, 기본적으로 흥미로운 책이다.

* ps.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특히 대중의 무책임한 기대를 비판한 대목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이 대목은 최근 2009 로마 수영선수권 대회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박태환에게 쏟아진 비판과 충고(?)에 대한 준엄한 반론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여긴다. 그와 관련된 부분을 인용해 놓는다.

도쿄 올림픽 마라톤에서 일본의 츠브라야는 예상을 뒤엎고 동메달을 목에 거는 이변을 연출했다. 일본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서구 문화에 대한 뿌리깊은 열등감을 감추지 못했던 일본이 한 마라톤 선수의 동메달로 어깨를 쭉 펼 수 있게 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여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아름다운 열매를 수확해낸 것이 츠브라야에게는 비극이었다. 일본 매스컴은 도쿄 올림픽이 끝나기도 전에 '멕시코 올림픽의 금메달을 향하여' 따위의 전형적인 기사를 연일 터뜨리며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다. 츠브라야는 자신의 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일본 국민들의 기대를 어깨에 얹고 그 나름으로는 그 기대를 실현시켜보려고 몸부림치다가 결국에는 할복 자살이라는 극한적인 방식으로 그가 도저히 그러한 일을 이루어낼 수 없음을 일본 국민들에게 사과하며 짧은 생애를 끝맺고 말았다. 나는 위와 같은 일은 한 인간에 대한 대중의 무책임한 린치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p140-1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리미어리그로 떠나다 - 앙니와 룬희의 거침없는 EPL 축구기행, 2007~2008 개정판
최성욱 외 지음 / 엠에스디미디어(미래를소유한사람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프리미어리그로 떠나다'라는, 축구팬이 감히 외면하기 어려운 매력 넘치는 제목과 달리, 책 내용은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이 책은 앙니(남자)와 룬희(여자)라는 가공의 인물을 등장시켜서 그들이 대학생 명예기자로 선정되어 프리미어리그를 취재하러 떠난다,를 기본적인 설정으로 취하고 있는데, 그럼으로써 '떠남'과 '여행'과 '축구'가 한 데 어우러질 때 기대함직한,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함은 확연히 사라져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서 과연 제 역할을 하는 것일까, 하고 룬희가 의문을 표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앙니가 박지성 선수에 대한 맨유 선수들 혹은 관계자들의 호평을 알려 준다거나, 또는 설기현 선수를 만나러 갈 때 설기현 선수가 직접 차로 마중을 나와 준다거나 하는 등의 일들이 이미 잘 알려져 있거나 혹은 기사화된 일들을 다만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행동으로 재구성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물론, 이때 재구성되는 대화나 사건들은 4명의 공저자가 실제로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하기는 했겠지만, 아무래도 생동감 넘치는 프리미어리그의 매력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결코 환영받기 어려운 방식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룬희와 앙니가 아옹다옹하는 모습은 종종 읽는 내가 민망할 만큼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게다 룬희와 앙니의 어설픈 러브 스토리까지!). 

전체적으로 어린 아이들을 위한 프리미어리그 소개 만화를 만든다면 딱 이런 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미어리그에 대해 제법 알지만 조금 덤벙대고 잘 까부는 앙니와 상대적으로 프리미어리그에 대해 조금 알지만 침착하고 예리한 면이 있는 룬희가 때맞춰 등장하는 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프리미어리그에 대해 비교적 쉽고 재미있게(하려는 의도이지만 불행히도 꼭 그렇지는 않은 방식으로) 풀어 나가는 건, 대체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면서 약간의 교육적 효과를 더하고자 하는 만화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문제라면 이 책은 실제로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설픈 등장인물들의 작위적인 대화와 행동을 남발하여 가장 큰 장점이 될 수 있었을 '생생함'을 과감히 포기해버렸다는 것이고(물론, 어린이들이라고 해서 꼭 어설픈 등장인물들과 작위적인 대화를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로 인해 얻는 장점이라면 실제로는 적은 분량을 대화로 구성하면서 늘릴 수 있었다는 것 외에는 딱히 찾지 못하겠다(그런데도 정말로 '사족'에 불과한 'part5. 프리미어리그에 사족달기'를 제외하면 고작 200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다). 솔직히 이래서야 굳이 왜 프리미어리그로 떠났는지 모르겠다. 미안한 말이지만, 근사한 제목과 책값(13500원)이 많이 아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