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놀 청소년문학 28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읽으며 누나에게 넌지시 '개를 훔치는 방법'을 묻자, 이내 충분히 예상 가능한 대답이 맥없이 따라 나온다. "개를 찾는다. 개와 친해진다. 개를 훔친다." 재미없게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을 따라한 게 명명백백한 이 대답은, 그러나 또 재미없게도 틀린 대답이 아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개를 훔칠 수 있단 말인가. 11살의 초등학생인, 이 책의 주인공 조지나의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녀가 자신의 보라색 노트에 직접 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이렇게 시작한다. "1단계: 적당한 개를 찾는다." 이 정도면 '완벽한 방법'의 1단계로서 역시 부족함이 없다.

조지나가 하필 개를 훔치려고 하는 데에는 물론 이유가 있다. 어느 날 고물차 한 대만 남기고 훌쩍 떠나버린 아빠 때문에 조지나가 집도 없이 고물차에서 생활하게 되었다는 게 그 근본적인 이유다. 맥도널드에서 씻고 학교에 갔다가 다시 고물차로 돌아와야 하는 삶을 사는 초등학생의 고뇌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법. 그런 힘겨운 나날이 계속되던 중, 개를 찾아주면 500달러를 사례금으로 주겠다는 오래된 전단지 하나가 조지나의 눈에 띈다. 500달러라면 집을 얻을 수 있는 돈이다(라고 조지나는 믿는다). 그래서 조지나가 당장 그 개를 찾아 나서게 되었느냐? 천만의 말씀. 이미 11살에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저술하는 조지나의 비상한 머리는 '전단지를 보고 개를 찾는다.'의 순서를 살짝 바꾼다. 즉, '미리 개를 찾고(훔치고) 곧 나올 전단지를 발견한다.'는 것으로. 그러니까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탄생배경이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방법'도 현실에서 실행하다보면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가령, 고작 3단계로 이루어져 있을 뿐인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만 해도 실제로 실행한다고 가정하면, 우선 코끼리의 크기에 맞는 냉장고가 있어야 하고,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는 인력 혹은 장비가 필요하다. 게다가, 어쩌면 코끼리에게 미리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은 물론, 불가피하게 코끼리 몸의 일부를 절단해야 한다면 당연히 신체포기각서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조지나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무려 9단계로 이루어져 있으니 그 어려움이 오죽하겠는가. 더군다나 나도 어렸을 때 뭔가를 훔쳐봐서 아는 바지만, 어린 나이에 뭔가를 훔친다는 건 정말로 쉽지 않다. 그러니까 개를 훔친다는 것은, 냉장고 문을 열어 코끼리를 집어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셈이다.

그러나, 그래서 결국 조지나가 '완벽한 방법'을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후반부에 슬쩍 등장하여 함축적인 대사를 별로 상관없다는 듯 툭툭 내뱉는 무키 아저씨의 말을 빌자면, "때로는 뒤에 남긴 삶의 자취가 앞에 놓인 길보다 중요한 법"이고, "휘저으면 휘저을수록 더 고약한 냄새가 나는 법"이다. 조지나가 '완벽한 방법'을 실행하는 와중에 드러나는 이런저런 문제점들은 계속해서 세부적인 '규칙'들로 보완되지만, 그렇게 '완벽한 방법'에 다가가면 갈수록 조지나는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할 뿐이다. 할 수만 있다면 아직 고약한 냄새가 나는 자취를 남기지 않았던, 마구 휘저어대지 않았던, 그녀가 개를 훔칠 마음이 없었던 그때로. 그리하여 마침내 조지나의 명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9단계: 절대로 개를 훔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라도 결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어렸을 때 괴도 루팡을 동경했던 나로서는, 이 책이 조지나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바탕으로 "절도는 계획적으로"라는 주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내주고, 더하여 조지나가 세계적인 대도(大盜)로 성장까지 한다면 더욱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이 책이 결국 이른바 '바른생활' 버전으로 끝날 것이라는 건 책 뒤표지에 언급된 몇몇 이력, 예컨대 '무슨 무슨 대학 올해의 책'이라거나 '미국 학부모 및 교사 단체 선정 올해의 책' 등을 보면 일찌감치 짐작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그 당연한 '바른생활' 이야기를 오로지 바르게만 이끌어 가지 않는 과정에 있다. 어느 누구도 도덕 선생님처럼 "개를 훔쳐서는 안 된다."고 설교하지 않고, 엄마나 친구들도 조지나에게 마냥 따뜻하고 친절한 조언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조금은 영악하면서도 착한 조지나가 무키 아저씨의 따뜻한 배려 아래 스스로 '바른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이 책은 기발한 착상으로, 퍽이나 유쾌하면서도 흥미롭게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딱히 흠을 잡기 어려운 이 책에서 다소의 아쉬움을 느끼는 건 분량이 약간 적은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의 주 타깃 층에 내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순전히 비유를 들어 말하기 위해 아이들과 아이를 둔 부모를 '개'로 상정하자면(맹세하건대 이때의 '개'에는 전혀 나쁜 의미가 없다), 이 책은 '개'의 마음에 들 만한 '거의' 완벽한 책이긴 한데, 다만 내가 '개'가 아니라고나 할까. 물론, 나도 언젠가는 '개'를 둔 '개'가 될 확률이 높으니 그때쯤에는 이 따뜻하고 바른 이야기를 좀 더 마음에 들어 할지도 모르겠으나, 불행히도 지금은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까지는 '괴도 조지나' 쪽이 좀 더 마음에 들고, '완벽한 방법'으로 훔치려던 건 '개'였을 뿐이고, 나는 그저 '늑대'였을 뿐이고. 뭐, 그렇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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