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e - 시즌 3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3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인터넷에서 '스티븐 제라드 빌딩'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내용인즉슨, 두바이에 세워지는 주거 전용 빌딩에 리버풀의 세계적인 축구선수 스티븐 제라드가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기로 했고, 그 대가로 고급 아파트 한 채를 받기로 했다는 것. 뭐, 고작 닳지도 않는 이름을 빌려주는 대가가 아파트 한 채라는 게 꽤나 부럽고, 제법 레어 축에 끼는 내 이름은 아무도 빌려가지 않는 현실이 유감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큰 불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스티븐 제라드라는 이름 자체는 별 게 아니라지만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결코 간단한 게 아니고, 무엇보다도 스티븐 제라드는 내가 좋아하는 축구선수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기사를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조금씩 읽어오던 <지식e-시즌3>에서 '두바이의 꿈' 편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런 문구가 씌어져 있었다.

"이곳이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악몽입니다. 사람들은 과연 누가 이 건물을 지었는지 기억이나 할까요?" (p264)

물론, 이런 문구를 보고 새삼스레 '스티븐 제라드 빌딩'이라는 이름이 터무니없이 잘못되었다거나, 혹은 정작 그 건물을 짓느라 고생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못내 궁금해졌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냉정한 현실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아니 최소한 나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팍팍한 삶보다는 이름 있는 어떤 특정한 사람의 화려하고 부유한 삶을 접하게 되는 쪽을 차라리 더 선호하고, 이는 비록 가닿을 수는 없을지언정 여전히 꾸고 싶은 '꿈'의 한 자락을, 이른바 '스티븐 제라드 빌딩'이 펼쳐 보이고 있기 때문일 터다. 그렇지만 적어도,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가는 초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두바이의 꿈' 속에, 힘든 노동을 기꺼이 감내하면서 그저 소박한 바람만을 가질 뿐인 '노동자의 꿈'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제 알아야만 했다. 3일에 1층씩 올리는 '버즈 두바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의 하루 평균임금은 4달러. 그들은 각자의 소박한 '꿈'을 좇아 '두바이의 꿈'에 동참하기 위해 빚을 내어 '기회의 땅' 두바이를 찾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참담한 현실과 냉혹한 무관심일 뿐이었다. 그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그저 누구나 마다하고 싶은 '악몽'에 다름 아니었으리라.

소위 '기사'라는 건 기본적으로 읽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에 '기사'는 모든 '사실'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는 것만을 다루려는 경향이 있는 한편, 때로는 사람들에게 읽혀지기 위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사실'을 드러내는 듯하면서도 '진실'을 교묘히 가리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지식e>는 그러한 '기사'와는 대척점에 서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즉, 설령 누구나 읽기를 원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아야만 할 '사실'에, 오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사실'에 <지식e>는 천착하는 것이다. 예컨대 <지식e-시즌3>에서라면, 누구나 바라는 '꿈'이라 할 수 있는 '스티븐 제라드 빌딩'이 아니라 이름 없는 누군가의 소박한 '꿈'이 '악몽'으로 변하는 현실을, 권위와 명성을 자랑하는 '노벨상'이 아니라 풍자와 철학이 담긴 '이그노벨상'을, 자랑스러운 한국인 리더인 UN사무총장 반기문의 삶이 아니라 '아시아의 슈바이처'라 불린 WHO사무총장 이종욱의 삶을 담담히 보여주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지식e>는 언제나 '진실'을 지향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 1권과 2권을 읽었을 때도 그러했던 것처럼, <지식e-시즌3>에서 드러내주는 '진실'들을 접하면 어쩐지 나와는 어울리지 않게 사뭇 감상적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감정일 터이고, 그렇기에 "이 시대의 아방가르드와 함께 나이를 먹고, 몇 달에 한 번씩 출간되는 발간물을 보는 재미가 최소한 환갑까지는 갔으면 좋겠다."는 우석훈의 이 책에 대한 '찬미'처럼, 나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저 이런 책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렇다면 아주 조금쯤은 '진실'을 외면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인터넷에서 넘치는 '기사'의 홍수가 가져다주지 못하는 <지식e>의 진실한 '아픔'과 '슬픔'과 '분노'가, 그래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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