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야기의 메신저, 전기수

 

‘도토리 소설가’라 불리는 꼬마 ‘전기수’
 
 

그가 네 살 때인 1909년 겨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다섯 살이 되자 어머니는 호구지책을 찾아 떠돌아다니던 끝에 황해도 장연군에 정착했다. 어머니는 환갑이 넘은 최 도감의 후처로 들어갔지만, 거의 몸종이나 다름없었다. 최 도감에게는 전처소생의 아들과 딸이 있었고, 그들의 온갖 구박을 견디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가 집에 있을 때는 그나마 견딜 만했다. 하지만 가끔 어머니가 일 때문에 외출을 할 때면 집에 있기가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럴 때면 뒷산에 올라 망연히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서럽고 외로운 나날들이었다. 그때마다 소설을 읽었다. 최 도감이 보던 것인지 아니면 전처소생의 아들이 보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집에는 한글로 쓰인 〈춘향전〉이 있었다. 그는〈춘향전〉을 탐독하며 한글을 겨우 깨쳤다. 이때가 여덟 살이었다. 그 뒤 옛 소설 읽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비록 시골이라고는 하나 여차여차한 경로를 통해 〈삼국지〉니 〈옥루몽〉이니 하는 소설들을 접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품과 같이 옛 이야기는 외로운 소녀의 마음을 따스하게 위무해주었다. 책 읽기는 날로 풍성해져갔다. 옛 소설을 열심히 읽던 그는 낭독 솜씨 또한 뛰어났다. 조그만 어린 여자애의 소설 읽는 솜씨가 일품이라는 소문이 마을에 파다했고 동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듣고자 어린 소녀를 찾았다. ‘도토리 소설장이’. 어른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는 매일 밤 이 집 저 집 불려 다니며 고운 목소리로 어른들에게 소설을 읽어줬다. 이야기가 끝나면 인심 좋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에게 과자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옛 소설을 맛깔스럽게 낭독했던 소녀는 커서 정말 소설가가 됐다. 그의 이름은 강경애, 장편 〈인간문제〉와 단편 <소금>을 쓴 식민지 조선의 대표적인 소설가였다.   

 

 

동네 어른들에게 옛 소설을 읽어주며 외로움을 떨치고 조금이나마 삶의 기쁨을 찾던 강경애는 전문적인 이야기꾼이나 낭독자는 아니었다. 전문적으로 소설책이나 이야기책을 읽어주었던 사람을 전기수(傳奇叟) 혹은 강독사(講讀師)라 불렀다.

이야기꾼과 전기수 그리고 강독사는 엄밀히 말하면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야기꾼은 일종의 구전된 이야기, 야담 따위나 스스로 창작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나가는 재담(才談)의 달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이야기꾼의 이야기 레퍼토리 안에는 다양한 소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이야기꾼을 문학계에서는 강담사(講談師)라 부른다. 일종의 ‘스토리텔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기수’라는 한자를 풀이하면 ‘이야기책 읽어주는 노인’이라는 뜻인데, 전문적인 직업명은 아니다. 이는 강독사(講讀師)라 부른다. 또한 판소리의 소리 광대를 강창사(講唱師)라고 부른다.

이야기를 풀어나가거나 구연하는 방식에 따라 강담사, 강독사, 강창사로 나뉘기는 하지만 이들의 공통분모는 이야기를 구연, 혹은 연행(演行)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사람을 ‘전기수’라고 부르고 있기에 여기서도 강독사라는 낯선 용어 대신에 우리에게 익숙한 전기수라는 명칭을 계속 쓰려 한다.

전기수의 등장은 소설, 혹은 이야기책의 대중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문화적 풍토와도 관계가 깊다. 오늘의 주제는 전기수라는 직업을 통해 옛날의 독서 문화를 살펴보는 것이다.


 

담뱃가게 살인 사건 

 

정조 14년, 1790년 8월의 일이었다. 장흥에 거주하는 신여척(申汝倜)이란 사람이 이웃집 형제가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참다못해 발로 차서 죽였다. 어처구니없는 살인 사건이었다. 형조로부터 이 사건을 들은 정조는 느닷없이 담뱃가게 살인 사건을 얘기했다. 

 

   
 

옛날 한 남자가 종로거리 담뱃가게에서 소설책 읽는 것을 듣다가 영웅이 뜻을 이루지 못한 대목에 이르렀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침을 뱉더니 담배 써는 칼을 잡아 소설책 읽는 사람[讀史人]을 쳐서 그 자리에서 죽였다. 이따금 이처럼 맹랑하게 죽는 일과 우스운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정조실록〉, 정조 14년 8월 10일; 안대회,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한겨레출판사, 2010

 
   

 

정조가 신여척의 살인 사건을 듣고 담뱃가게 살인 사건을 얘기한 것은 살인 사건의 ‘우발성’에 대한 경계 때문은 아니었다. 정조가 말한 사건의 핵심은 담뱃가게에서 소설책을 읽어주던 사람이 살해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바로 ‘소설책’이었다.

정조는 ‘호학(好學)’의 군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폭군 연산군에 대비되는 ‘성군’으로 칭송받는 정조는 개혁 군주라는 호평과 함께 조선의 역대 군주 중에서 한국인들이 호의를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하여 학문을 통해 국가를 통치하려 했으며, 보지 않은 책이 없을 정도로 독서광이기도 했다. 그런 정조였지만, 패관잡기의 일부였던 소설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통제를 가했다. 정조는 개혁 군주였지만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감성’을 억압했던 군주이기도 했던 것이다. 정조는 학문을 권장했지만, 그 학문이란 오직 ‘주자학’을 뜻했다. 정조는 주자학의 범주에서 빠져나가려는 학풍에 대해서 철저하게 단속했다. 그가 일으킨 문체반정(文體反正, 1792년) 역시 주자학적 문체에서 벗어난, 즉 제도적 글쓰기의 그물에서 빠져나간 ‘자유로운 글쓰기’에 대한 일종의 탄압이었다.

여기 문체반정의 그물에 걸려 유배를 떠났던 자들 중 유일하게 경화세족이 아닌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던 이옥(李鈺)의 글을 보자.   

 

   
 

천지만물(天地萬物)은 천지만물의 성(性)이 있고, 천지만물의 상(象)이 있고, 천지만물의 색(色)이 있고, 천지만물의 성(聲)이 있다. 총괄하여 살펴보면 천지만물은 하나의 천지만물이고, 나누어 말하면 천지만물은 각각의 천지만물이다. 바람 부는 숲에 떨어진 꽃은 비 오는 모양처럼 어지럽게 흐트러져 쌓여 있는데, 이를 변별하여 살펴보면 붉은 꽃은 붉고 흰 꽃은 희다. 그리고 균천광악(鈞天廣樂-천상의 음악)이 우레처럼 웅장하게 울리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현악(絃樂)은 현악이고 관악(管樂)은 관악이다. 각각 자기의 색을 그 색으로 하고 각각 자기의 음을 그 음으로 한다. (……) 대체로 논하여 보건대 만물이란 만 가지 물건이니 진실로 하나로 할 수 없거니와, 하나의 하늘이라 해도 하루도 서로 같은 하늘이 없고, 하나의 땅이라 해도 한 곳도 서로 같은 땅이 없다. 마치 천만 사람이 각자 천만 가지의 성명을 가졌고, 삼백 일에는 또한 스스로 삼백 가지의 하는 일[事]이 있음과 같다. 오직 그와 같을 뿐이다.
―이옥 지음, ‘일난(一難)’, “이언(俚諺)”, 〈완역 이옥전집 2〉,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엮음, 휴머니스트, 2009

 
   

 

이옥은 세상의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오직 ‘다름’만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옥의 생각이었다. 주자학을 절대적인 ‘진리’이자 보편적인 지배 이데올로기로 믿었던 정조에게 이옥의 상대적이고 개별적인 사유는 곧 이단의 학풍이나 마찬가지였다. 연암 박지원도 그랬다. 그의 문체, 특히 〈열하일기〉의 문체는 ‘소품체’라는 이유로 정조의 노여움을 샀다. 문체는 작가의 정신이자 혼이자 정체성이다. 정조는 문체를 단속함으로써 지식인들의 뇌수까지 뜻대로 지배하고 길들이려고 했던 것이다.  

 



정조는 서학, 고증학, 소품, 소설을 배척했다. 신여척의 살인 사건을 판결하면서 예로 든 담뱃가게 살인 사건의 핵심은 정조가 그토록 탐탁하지 않아 하던 소설이 백성들 사이에 널리 읽히고 있음을 문제 삼은 것이다. 어이없는 살인 사건의 주범은 인간이라기보다 그 인간의 감정을 추동하는 ‘소설’이라고 정조는 믿었다. 따라서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고 본능적인 욕망을 뛰놀도록 추동하는 소설의 내용은 주자학을 신봉했던 정조에게는 철저하게 ‘불경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사도세자가 〈금병매〉와 〈육포단〉 같은 애정 소설을 탐독하고 즐겼던 전과(?)가 있어, 정조의 소설에 대한 배척이 더욱 완강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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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nffjr 2010-11-28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도토리 소설가! 하핫, 재밌네요 ㅋㅋ

자음과모음 2010-11-29 09:56   좋아요 0 | URL
이야기에 위로받고 또 이야기로 사람들을 위로하던 작은 소녀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상상되는 별명이에요! ㅎㅎ

이승원 2010-11-3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늘 아이패드가 출시되었는데, 책을 읽어준다고 하더군요ㅠㅠ^^

자음과모음 2010-12-01 11:08   좋아요 0 | URL
아이패드가 책도 읽어주는군요! 재밌는 아이디어네요. 읽는 것과 듣는 것은 전혀 다르니까요-

비로그인 2011-04-07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으로 읽는 책과 귀로 듣는 책에는 차이가 있어요. 읽는 이의 감정이 개입되서 작가의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지 않더군요. 똑같은 책을 여자가 읽을 때와 남자가 읽을 때가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