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TV 드라마를 보면서 옆지기가 눈물을 펑펑 쏟아낸다. 무슨 드라마를 저리도 슬피 시청할까 의아해 하면서 살짝 보게 된 것이 "천일의 약속"이다. 수애와 김래원이 주연인 전형적인 멜로물인데 실연이 뒷받침된 사랑이야기다. 대부분 등장인물간의 관계을 파악하면 드라마의 설정이 짐작된다. 그때부터 극전개의 흐름에 맡겨서 시청해 보면 줄거리를 알게 된다. 옆지기가 눈물을 훔치면서 시청하는 이 드라마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모든 것을 다 갖춘 부잣집 외동딸 향기(정유미 분)는 결혼식 이틀전에 지형(김래원 분)으로부터 사랑하는 여자가 따로 있기 때문에 결혼할 수 없다는 고백을 듣는다. 향기와 지형은 본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친구지간인 부모님들에 의해 어려서 부터 정혼자로 결정되어 있었고, 20여년을 함께 자랐다. 향기는 파혼하고 떠나는 지형을 끝까지 감싸고 품으면서 오랫동안 간직했던 사랑을 놓아준다.
지형이 사랑하는 여자는 서연(수애 분)이다. 어린시절 부모님을 잃고 남동생과 고단한 삶을 살던 서연은 고모의 손에 의해 자란 후 성년이 되어 남동생과 분가해서 산다. 고종사촌 오빠와 친구인 서형을 만나 사랑이 싹트지만 서형의 집안내력으로 인해 서형의 결혼을 이유로 헤어졌다. 그렇지만 둘사이는 사랑의 깊은 공감이 있다.
사랑을 잃어버린 서연에겐 알츠하이머(치매)라는 병마가 찾아든다. 알츠하이머병을 인정하려하지 않고 오기를 부리지만 매일매일 기억이 조금 씩 끊기는 것을 받아 들이면서 깊은 상실감을 겪는다. 서연의 병명을 알게된 지형이 파혼을 결정하고, 자신 때문에 파혼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서연이 지형에게 급히 전화하려 하지만 그 전화번호조차 생각해내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 매일 다니던 골목길이 어딘 지 몰라 절망한다. 상실감의 극치다. 기억의 사라짐은 결국 사랑했던 추억까지도 모두 삼켜 버릴 태세다.
드라마 전체의 느낌은 못 가진 것이 없는 향기가 단 하나, 사랑을 얻지 못해 비틀거린다면 서연은 많은 것을 잃었지만 다시 돌아온 사랑이 남았다. 사랑을 잃고 오열하는 향기, 기억을 하나씩 잃어버리면서 돌아온 사랑을 마음 껏 받아들일 수 없음에 아파하는 서연. 이들의 가지지 못한 아픈 사랑과 가졌지만 아픈 사랑 사이에서 눈물 샘이 자극되는 원인이다.
이 드라마를 잠시 접하면서 아름 다운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새삼 실감하고 느낀다.
사랑했던 추억까지도 잃게 된다면 더욱 아픈 사랑이 되겠지?
그것도 사랑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랑, 참 아프다. 아퍼.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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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천일의 약속> 8회 대사에 삽입된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