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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 미술잡지에서 본 그로테스크 특집 지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당시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지만 불쾌함보다는 마치 이상한 세계를 보는듯했다. 그러다 이후 영화 <화장터 인부>에서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을 보고 바로 저런 게 미술에서의 그로테스크라고 생각했다. 작품은「천년왕국」중 '쾌락의 정원'이었다. 재미있게도 이 책 겉표지의 그림도 같은 화가의 작품인 「천년왕국」중 '지옥'이다. 

 예술 전반에 걸친 그로테스크의 의미는 각별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미술과 문학이지만 문학 부분이 훨씬 와 닿는다. 아마도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빅토르 위고, 실러, E.T.A 호프만, 포, 카프카를 비롯하여 이름만 들어도 상상이 될 것이다. 게다가 셰익스피어의 작품까지 이어져서 흥미롭다. 특히 애드거 알랜 포는 여름하면 떠오를 정도로 공포와 기괴함으로 대표된다. 셰익스피어는 다소 의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들여다 보면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곧 평범하지 않은 인물을 찾아낼 것이다. 물론 포처럼 기괴한 느낌이 아니지만 말이다. 

 미술도 달리의 그림 등을 보며 느끼는 우리의 감정 속에는 그로테스크를 설명할만한 것들이 꽤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을 보며 작품을 해석하며 달리를 이해해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로테스크의 정의를 단 한마디로 간단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저 우스꽝스럽고 기괴하다는 말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애초에 그렇게 간단한 것이었다면 이렇게 책에서 줄기차게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가기도 어려울 것이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대부분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감탄할만한 것도 있겠지만, 분명히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미적 다양성이란 측면에서는 그것이 자유로운 생각의 폭으로 이어지기에 누구에게는 두렵고 소름끼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것이 색다른 느낌이거나 신선하게 느낄 수도 있다. 사실 나는 그로테스크쪽에 약간의 관심이 있다. 뭐라고 할까. 영감을 준다고 할까. 괴이하지만 슬프기도 하고 내가 배워온 사회에서 인정하는 아름다움과 상반될지라도 다른면을 보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사실 진정으로 그로테스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과연 그것이 어디까지인지도 알수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을 통해서 들여다 보니 훨씬 사고의 폭이 깊어질 것 같다. 

 뒷부분의 19세기 그로테스크 부분에서 헤겔의 해석도 흥미롭다. 그로테스크와 아라베스크를 확실하게 구별하고 그로테스크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가 다양한 영역의 부적절한 혼합, 둘째는 무절제이자 왜곡이며 마지막은 특정 요소의 복제라고 했다. 이후 현대의 그로테스크까지 이어지는 설명을 보며 우리 사회에서 흔히 이슈가 된 지 몇 년이 된 엽기나 새롭고 흥미로운 요소 중 이에 속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즉, 그로테스크는 소외되거나 혐오하는 대상으로 제한되지 않고 책과 미술작품에서 나와 삶 속에 이미 스며 있었다. 본질을 이해하고자 할 때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새로움 앞에서 그로테스크 또한 빠질 수 없는 장르라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의 충격 그 미묘함 사이 어딘가에서 느낄 수 있는 무엇과 맞닿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로테스크가 어떻게 표현되었든 간에 더는 우스꽝스럽고 무시할만한 게 아님을 들려준다. 저자서문이 1957년이라니 그 이후 그로테스크에 대한 정의는 얼마나 발전했을지 의문이다. 그만큼 잘 집대성해서 쉽게 설명한 책이었다.


예술작품은 '상황'을 초월할 능력을 지닌다. 그러나 최후에 예술작품은 '수용된다.' (이 단어는 여기서 일상적인 용법과는 약간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수용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의마상의 변형이 가해지건간에 예술작품은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체험될 수 없다.

 

- 296쪽, 결론 : 그로테스크의 본질 중에서. 


 무시무시한 것, 불합리한 것, 몰취미한 것은 곧 무한성을 의미합니다. (…) 왜냐하면 이런 것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지요. 한계는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만듭니다. 아름다움, 고상함, 자유, 예술과 열정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여기에 초월적이고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곁들여진다는 근거를 들어 이것이 절대적인 것이라 여기지요. (ㅡ중략ㅡ) 인간세계의 것, 아름다운 것, 동물 세계의 것, 뻔뻔스러운 것이 대담하게 뒤섞여 있지 않습니까? 이를 깊이 파고든 후에야 여러분은 진정한 시인이라면 우리 영혼의 기묘하고 불가해한 감정들로부터 무엇을 창조할 수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 143쪽, 3장 낭만주의 시대의 그로테스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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