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창비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이기적이다. 이 말은 인간이 악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치중립적인 표현이다. 인간은 자기 중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세상의 중심에 자신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인간들은 자연히 살아가면서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이기적이다'란 명제가 진리라면 인간의 삶은 홉스의 표현대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약간의 분쟁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인간의 삶은 원활히 돌아간다. 무엇 때문일까? 난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이기적인 면을 가장 잘 이용한 시스템, 바로 자본주의다. 아담스미스 할아버지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자본주의의 동력은 인간의 이기심임이 자명하다.

 

현대 자본주의는 욕망을 만들어낸다. 생산이 아닌, 소비가 계급을 결정하는 오늘 날, 자본주의는 생존을 위해 인간의 이기심을 극대화 해야 했다. 인간들은 그 욕망으로 인해 서로 경쟁하고 짓밟는다. 게다가 자본주의는 모든 인간을 교환가치로 인식한다. 인간들은 자본주의 속에서 경쟁하고 짓밟히는 동시에 자신의 가치를 한 낱 물건의 수준으로 전락시켰다. 이기심을 통제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 자본주의는 그렇게 다시 인간을 욕망의 덩어리로 바꿔버렸다.  결국 자본주의 구조는 인간의 이기심을 적절히 이용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인간들의 이기심을 극대화하여 인간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결국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기심을 세련된 박스 안에 담았을 뿐이다. 인간은 자본주의 안에서 더욱 교묘하고 세련되게 자신의 이기심을 추구한다. 여기에 어떤 연대는 없어 보인다.

 

이런 쓸데 없는 내용으로 책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도 김영하의 소설에는 자본주의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이기심과 추한 욕망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김영하는 냉소적으로, 아니 무덤덤하게 이를 드러내 보인다. 난 <오빠가 돌아왔다>에 실린 소설들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소설 마다 그 키워드가 적용되는 방식은 다르다 하더라도 말이다.

 

김영하 소설을 읽고 있으니 김훈이 생각났다. 김훈도 비슷하다. 김훈은 삶이 갖고 있는 무목적성을 자본주의 사회를 통해 종종 보여준다. 다만 김훈은 1인칭 시점을 이용해 한 개인이 차가운 삶의 원칙 아래 살아가고 있음을 깊이있게 보여준다면, 김영하는 3인칭 시점을 이용해 관계에서 오는 인간의 이기심을 무덤덤하게 보여준다. 다시 말해 김훈의 방점이 삶에 있다면 김영하는 인간, 관계에 있는 것이란 말이다.

 

단편 크리스마스 캐럴은 이런 모습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영수, 정식, 중권에게 진숙의 삶은 이 세상 너머에 존재하는 듯 하다. 그들에게 진숙은 욕망의 충족 대상에 다름 아니다. 진숙의 죽음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진숙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들에게 튀길 불똥이 두려울 뿐이다. 진숙과 그들에게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진숙이 독일에서 돌아와 영수에게 과거 영수가 보여준 행동을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그렇다. 진숙이 하는 이야기는 영수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추한 욕망 그 자체였다. 순간 영수는 진숙을 죽이고 싶어한다.

 

(영수는 그 순간 살의를 품었다. 그랬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걸어다니는 비디오테이프였다.  그 테이프 속에는 그의 추악한 과거의 악행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영수는 잔인하게 그녀를 죽이는 상상을 한다. 물론 실행하지는 않는다. 난 영수의 모습이 바로 인간의 모습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욕망을 알고 있는 상대방을 비디오로 생각하는, 그래서 언제든 원하면 파기하고 싶어하는, 그런 존재가 인간이란 의미다. (영수의 아내 숙경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남편이 살해 용의자란 사실을 알게 된 후 가장 먼저 자신이 살인자의 아내로 유명세를 탈 생각을 한다.)

 

보물선에는 자본주의 아래서 나타나는 인간의 이기심이 좀 더 잘 드러난다. 재만은 투기꾼이다. 편법을 이용하여 증권시세를 올리고 큰 수익을 올린 후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재만에게 대학 동창 형식이 나타난다. 하지만 재만에게 중요한 것은 수익일 뿐, 형식이 보여주는 열정은 중요치 않다. 오빠가 돌아왔다 역시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이기심을 보여준다. 가족 구성원에게 가족의 가치는 중요치 않다. 그저 개인에게 이득이 되면 좋을 뿐이다.

 

이번에 처음 김영하의 소설을 읽었다. 예전에 태어났더라면 김영하는 마당판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야기꾼이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말 평범한 상황에서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자연히 독자들은 그의 소설에 쉽게 빠져든다. 정말 재밌다. 하지만 말초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것만도 아니다. 읽고 나면 가슴을 한 대 강하게 맞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사소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오른다. 위에서 언급했듯 난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적응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이기심이란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했다.

 

예전에 김영하가 쓴 <포스트잇>을 읽은 적이 있다. 거기서 김영하는 자신이 너무나 평범한 작가라고 이야기 했다. 자신의 무기는 평범함이라고 했다. 맞는 말 같다. 김영하는 평범하기에 모든 독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그는 평범하기에 인간의 내면에 들어있는 어두움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범인들, 자기만 생각하고 어두운 욕망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지극히 소심한 그런 범인들 말이다. 그래서 더욱 쉽게 김영하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듯 하다. <오빠가 돌아왔다>는 내가 읽은 김영하의 첫 소설이다. 이는 앞으로 읽을 김영하의 소설이 많이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30권짜리 장편 무협지의 1권을 독파한 중학생처럼 설레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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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2 19: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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