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역사와의 결별 징비록
배상열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했다는 '懲毖錄',“미리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豫其後患)”... 《시경》에서 나온 말이다. 오래전에 '징비록'을 읽으면서 어째서 우리는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통탄을 했었다. 그런데 이 잭의 저자 역시 묻고 있다. 우리에게 위기는 위기였을 뿐인가? 라고. 오죽했으면 눈물과 회한으로 써내려간 글이라고 했을까? 우리에게보다는 일본에서 더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징비록'의 의미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훗날까지 일본에서 조선 연구의 바이블로 각광받았다는 <징비록>의 가치가 놀랍지 않은가? 지금의 우리 현실을 돌아볼 때도 그 옛날과 다르지 않음을 볼 수가 있다. 어째서 우리는 우리것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며 살지 못하는 것일까? 전혀 자부심을 가지기는커녕 어떻게든지 현대에 맞게 뜯어고치려고만 하는 모습을 볼 때는 어쩔수 없이 화가 나기도 한다.

 

작금의 현실은 '징비록'이 쓰여지게 만들었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당파싸움에 저희들끼리 패를 나누고, 거기서 또 뜻이 안맞으면 또다시 패를 나누는 형국이 나라를 망치게 했던 그 시절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 무엇이겠는가? 역사를 보고 배워야 할 것은 배우지 않고 못된 것만 배운 나쁜 아이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저자의 말처럼 부검 당하는 '징비록'의 속살은 처참하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그 시대의 상황이 전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와 새로운 느낌을 내게 전해주었다. 그 시대를 만들었던 한중일의 형국이 마치 한장의 그림처럼 보여져 아하, 그랬던거구나! 싶었던 장면이 많아 새삼스러웠다.

 

지금까지 몇 번을 말한 것이지만 나는 조선사를 통틀어 선조와 인조가 가장 싫다. 그들로 인해 조선이 잃어야했던 것이 너무도 많은 까닭이다. 현재의 우리에게 이렇다할 이름으로 기억되어지는 그 좋은 인력을 가지고도 그렇게밖에 살지 못했던 선조를 어찌 좋아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이산해와 정언신에 의해 '불차채용'으로 추천되었다는 이순신의 이야기가 시선을 붙잡았다. '不次採用'이란 현재의 관직과 서열을 일체 따지지 않고 인재를 천거한다는 의미인데 이순신의 면모를 알게 해주는 일화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한심한 시절, 전쟁은 이렇게 예정되었다'를 시작으로 소제목으로 등장하는 한줄의 글귀만 읽어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미루어 짐작할만 하지만 각장마다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더라도 저자가 신립을 변호한 것에는 결코 공감할 수 없다. 저자의 말처럼 그정도의 무장이었다면 그런 실수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역사의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시대에 어떤 사람이 했는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어쩌면 저자의 <징비록> 부검하기는 엄청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조목조목 들여다보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여정이 나쁘지 않았다.

 

역사속에서 군역에 대한 제도의 보완을 이야기했던 사람은 많았다. 이이도 그랬고, 허균도 그랬고... 류성룡이 주장했다는 '제승방략'과 '진관제'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문득 임진왜란때 포로로 잡혀갔던 강항의 <간양록>이 떠올랐다. <간양록>은 강항이 돌아와 선조에게 올렸던 글이다. 강항이 일본인과의 교류를 통해 일본의 실정을 기록한 글로 일본의 지리 및 지세, 관호, 군제, 형세 등 임란 당시의 일본 정세가 상세히 담겨 있다. 그렇게 생생하고도 세세한 글이 우리에게 전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그것은 그저 책일 뿐이었으니 더 말해 무얼할까 싶기도 하고... 솔직히 말해 책을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달래며 읽어야했다. 책이 무슨 죄가 있다고.... 잘못 끼워진 단추하나로 인해 옷전체가 비틀어진 꼴이라니! 역사는 반복되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 책속에서도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어진 우리의 역사와 만나게 된다. 어쩌면 그리도 똑같은지.... 그런 의미에서 보니 이 책의 제목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비열한 역사와의 결별... 징비록을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숙제는 아닐런지. 류성룡의 시대와 지금의 우리는 무엇이 다른가?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모두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