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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비교하지않으면
자신을보지못하는그대,
자신의기준에맞지않으면
남을소외시키는그대,
그대는과연누구인가    -김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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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6-10-1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제 눈을 밝히는 단상들이네요. 세상을 살면서 비교하는 능력이 성장한 만큼, 비교하지 않는 눈도 키워야 할 거 같아요.

이누아 2006-10-18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재욱이란 분이 메일서명에 저 글을 달아놓으셨더군요. 저한테 하는 말인 줄 알고 좀 놀랐는데(저렇게 직접적으로 지적할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라서) 자신이 보기 위해 서명으로 만들어 두신 듯했어요. 님을 처음 뵌 건 아니지만 제 서재에선 처음이군요. 환영!
 

그대의 욕망을 개입시키지 말고 미래가 오게 놔두라. 미래는 저절로 올 것이다. 미래는 그대의 욕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냥 오게 놔두라. 미래에 관해 아무 것도 요구하지 말라. 이것이 무욕의 의미다. 무욕은 세상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버리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저 지켜본다는 자세로 기다려라. 이렇게 아무 욕망 없이 기다릴 수 있다면 모든 일이 가능하다. 이 일은 우주 전체, 신 자체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러나 바라고 욕구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건 모두 그대를 통해 일어난 일이 될 것이다. 이때 그대는 자기 자신 안에 갇혀 버린다. 존재계가 그대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그대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쇼, 서양의 붓다,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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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고 계획하는 삶.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삶이 어때서?라고 할지 모르나 난 그 헤아림이 싫었다. 이곳을 벗어나면 그런 삶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까...여러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해 봄, 산에 갔다. 산에서는 준비하고 계획하는 삶이 없으리라. 그러나 내가 닿기도 전에 그 삶은 이미 산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 삶이란 본래 이런 거구나, 이런 게 삶이었구나....이런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 삶이 문제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토록 어리석을 수 있었을까. 장소를 떠나면 삶을 떠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일까. 장소는 그저 이 방과 저 방 같은 것이었다. 안방에는 침대가 있고, 이 방에는 책상이 있다. 그런다고 삶이 바뀌진 않는다. 준비하고 계획하는 삶이 지긋지긋하다고 여겼던 그해 봄...

옛 어른이 마음이 맑은 사람은 과거를 후회하지 않으며, 현재를 깊이 근심하지 않으며, 미래를 헤아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마음이 흐렸던 게다. 삶이 준비와 계획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미래를 헤아리는 마음이, 욕망이 그것을 필요로 했던 게다. 준비하고 계획하는 삶은, 순간을 무시한 삶은 나를 통해 일어난 일이다. 그리하여 갇혔구나, 그리하여 그토록 답답했구나.

습관은 얼마나 놀라운 것이냐. 이렇게 드러난 진실 앞에서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누아, 계절을 혹은 자연을 따르게. 무엇이나 제철이 있지 않은가. 혹여 아직도 그해 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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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10-14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 어른이 마음이 맑은 사람은 과거를 후회하지 않으며, 현재를 깊이 근심하지 않으며, 미래를 헤아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무엇이나 제철이 있지 않은가. 혹여 아직도 그해 봄인가..."
님의 고민의 정체를 다는 알 수 없지만 님의 지향점은 느끼게 됩니다.
쓸쓸하면서도 청아한 님의 목소리가 제 가슴에도 울려 퍼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때가 끼어가는 정신, 때가 끼는 욕망... 청명한 가을 하늘 한 자락 마음에 담고 싶은 비자림 올림

이누아 2006-10-1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이라뇨? 오랜만에 자정을 넘긴 시간에 깨어 손에 닿는대로 집어든 책을 보다 떠오른 거예요. 밖을 보니 정말 청명한 가을 하늘이에요. 가을 따라 놀아요.

혜덕화 2006-10-16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이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이들어 갈수록 체험하게 됩니다. 오늘 아침 밥상머리에서 아들과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냥 이렇게 건강하게 함께 밥 먹고 사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너희들이 건강한 것고 감사하고, 엄마 아빠 건강한 것도 감사한 일이니 공부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잘 자라는 것만으로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구요.
가을 햇살이 참 좋습니다. 생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 하루에 한번이라도 환하게 웃는 것, 걱정으로 한치의 키도 자라게 할 수 없으니 그저 현재현재 내 마음 자리 그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고 인생이 아닌가 싶네요. _()_

이누아 2006-10-18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건강하게 밥 먹고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걸, 그저 그냥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걸 매일 느낍니다. 그 느낌은 감사도 아니고, 그저 익숙하지 않은 그런 것입니다. 조금 피로한 저녁입니다. 님의 이야기, 가만히 읽고 또 읽다 물 한 잔 마십니다. 늘 고맙습니다.
 
서양의 붓다 - 헤라클레이토스 강론 21세기를 사는 지혜의 서 23
오쇼 라즈니쉬 지음, 손민규 옮김 / 태일출판사 / 1999년 12월
구판절판


명심하라. 어떤 목적을 추구하면 삶 전체를 잃을 것이다. 삶에는 아무 목적도 없다. 삶은 목적 없는 놀이다. 삶은 아무 데로도 가지 않는다. 그저 삶 자체를 즐길 뿐이다.
이것은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 인간의 마음은 수학적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삶의 목적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삶에는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다. 마음은 즉각 "삶에 아무 의미도 없다면 왜 사는가? 왜 자살하지 않는가?"하고 반문한다. 그러나 보라. 의미가 있으면 모든 것이 추해진다. 삶이 사업처럼 된다. 목적이 있으면 삶 자체가 시를 잃어버린다.
.
.
마음은 단순하게 즐기지 못한다. 장래에 성취해야 할 무엇인가 있어야 한다. 도달할 목적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마음이 편안함을 느낀다. 아무것도 성취할 것이 없을 때 마음은 제풀에 지쳐 쓰러진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기울여햐 하는 모든 노력이다. 마음이 쓰러지게 하라.
삶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다. 도달할 목적지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존재계 전체가 즐거움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 그대를 제외한 우주 만물이 축제를 벌이고 있다. 왜 여기에 동참하지 않는가?-201-202쪽

왜 의미를 묻는가? 그대는 해석을 원한다. 언어적으로 규정하고 싶어한다. 그대는 영적인 교섭이 아니라 언어적인 소통을 원한다. 그러나 존재계는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 존재계가 그대 안으로 들어오도록 허용하고 아무 것도 묻지 말라. -320쪽

그러나 바라고 욕구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건 모두 그대를 통해 일어난 일이 될 것이다. 이때 그대는 자기 자신 안에 갇혀 버린다. 존재계가 그대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그대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326쪽

진리는 낯설다. 진리는 어떤 암시도 주지 않고 불쑥 찾아온다. 기대도 없고 기다림도 없을 때 진리가 불쑥 나타난다.
사람들은 명상하고 또 명상한다. 이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진리는 명상 안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을 명심하라.-331쪽

모든 곳이 목적지다. 그대가 할 일은 자연에 자신을 맡기는 것뿐이다. 매순간이 삶의 최절정이다. 그것을 허용하라. 모든 것을 내맡기고 순응하라. 그러면 안심하고 휴식할 수 있다. 모든 것에는 제철이 있는 법이다. -3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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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에서

              -윤중호

 

청도계곡의 득음(得音)도, 선지식의 한 소식도 나는 알 바 없다네.

그저, 먹물 장삼 스치는 소리에 얼굴 붉히는

배롱나무꽃만 바라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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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9-27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속의 '할'은 잠을 자고,
배롱나무 붉은 꽃잎에 미소짓는 얼굴에 '할'이 있구나

이누아 2006-09-28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

혜덕화 2006-09-28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광사의 배롱나무가 생각납니다.
여름 송광사 사찰 연수를 다녀와서도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던 정말 아름다운 그 나무......

반조 2006-09-28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문사 배롱나무, 참 드물게도 하얀꽃 배롱나무이던데,... 시인의 마음은 그 배롱나무마저도 붉게 물들이는군요. 스쳐 지나가는 비구니 스님에게 무얼 그리 크게 들켰을까요.

이누아 2006-09-29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나무 한 그루 지나치지 않고 마음에 담아 두셨다가 이렇게 나눠 주시는군요.^^

우아...반조님, 반가워요. 학문적이라 여겼던 님에게서 하얀 배롱나무의 향을 맡으니 더욱 반가워요. 님이 추천하신 책은 주문해 두었어요. 아마도 추석 연휴 때문에 더디 만날 듯. 고맙습니다.
 

아침 좌선을 거른 지 좀 되었다 싶어 좌복을 깔고 앉았더니 기침이 좀 난다. 따뜻한 걸 마실 생각으로 거실로 나왔더니 하늘, 구름이 보인다. 마실 것은 잊고 거실에 앉는다. 가만히 본다, 구름.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들. 저기 저렇게 있는데, 저기 가면 안개처럼 느껴지겠지. 헤세...구름을 사랑했던 사람. "구름을 나보다 잘 알고, 나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알려다오"라고 했던 페터가 떠오른다. 헤세의 [페터 카멘치트]...지금 내겐 그 책이 없군. 페터의 구름 예찬이 듣고 싶어진다. 아니, 이렇게 구름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해.

가만히 본다. 가만히 보는 것은 얼마나 미세한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냐. 구름이 움직인다.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움직인다. 흰 빛이었다가 검은 빛으로, 위는 희고 아래는 검게...조금도 가만 있지 않고 조금씩 움직인다. 숨쉬는 것만 같아. 햇살 때문에 조금 윗쪽의 구름들이 빛을 내기 시작한다. 저 구름들이 사라질 때까지 이렇게 앉아 하루를 보낼 수도 있겠다.

안녕, 구름들. 그러나 구름은 날 쳐다 보지 않는다. 그런 무심함이 좋아. 무심해도 구름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것 같아. 가만히 가만히 보는 구름에게서 신성을 느껴. 모든 것들에게 그것이 있다더니 가만히 보지 않아서 보지 못했던 걸까? 구름. 구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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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9-24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아침에 왔다가 다시 들렀어요. 님의 글이 참 좋네요.
모든 것에 신성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아요. 님처럼 마음의 눈으로 구름을 볼 수 시간이 내게도 올 수 있을른지..

불쑥 댓글 달고 가옵니다.

이누아 2006-09-25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신성이 어떤 건지는 몰라요. 그런데 신성이란 게 있다면 저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은 구름이었어요. 어제는 정말 내내 구름을 봤어요.

파란여우 2006-09-27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세하면 낙엽과 구름의 시인이죠.
이누아님은 구름 보고 이리 멋진 글을 써 주시니
저는 헤세처럼 낙엽을 모아 낙엽타는 냄새를 맡고 싶어집니다.

이누아 2006-09-28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양이 부족한가 봐요. 헤세는 낯익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헤세와 낙엽에 대해 떠오르는 게 없네요. 아마 전 파란여우와 낙엽을 떠올리게 될 것 같아요. 님의 댓글이 아주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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