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2015년 12월 인문/과학/사회 신간 추천
















① <이슬람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 아얀 히르시 알리 / 추선영 옮김 / 알마


  맞으면 아프긴 하지만 통증, 멍, 상처, 장애 등 우리의 신체를 결정해버린 징표들보다 훨씬 오래 가는 것은 맞아서 '아픈 것'이 아니라, '맞아서' 아픈 것이다. 아픔은 맞음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현상이지만, 나는 왜 맞은 것일까? 왜 누군가가 나를 때렸던 것일까? 때릴 수 있었던 그 환경(체제, 제도 따위)과 내가 맞을 수밖에 없었던 환경(약자, 소수 등)은 결국 하나다. 분리될 수 없는 이 폭력의 전체성이 만연한 사회는 젠더전통, 근본주의 종교, 혹은 전쟁, 경제위기 등 특수 상황을 전면에 내세워 모든 폭력적 상황을 정당화시킨다. 아얀 히르시 알리의 책 번역 제목에는 두 개의 방점이 있다. 이슬람과 여자. 이슬람교와 아랍이 최근 IS 사태로 상당히 왜곡되고 있는 분위기가 안타깝긴 하지만 이 종교적 전통이 여자의 '참여적 태도'를 억압해왔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미국과 네덜란드 국적을 얻어가면서 이슬람에게서 분리된 이 정치인의 목소리는 그런 전통 속에서 희생된 여성 가치의, 아니 인간 가치의 존엄을 날카롭게 관통한다. 국내에 소개된 아얀 히르시 알리의 두 번째 책이며, 앞선 책의 번역을 맡은 추선영 씨가 또 한 번 귀중한 수고를 해주셨다.




















② <쌤통의 심리학> - 리처드 H. 스미스 / 이영아 옮김 / 현암사


  순전히 흥미로울 것 같아 고른 책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건 사실이다. 나는 다른 사람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운 적이 있었다. 물론 죽을 정도로 고통 받는 누군가를 본 적은 없고, 아마 그런 모습을 본다면 비위 약한 내 내장기관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적당한 고통(?)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다수가 공감할 것이다. 저 정도의 고통, 그것이 신체적이든 처지에서 비롯된 정신적인 것이든, 그만한 고통이라면 얼마든지 즐겁게 봐줄 수가 있다. 어두운 내면이다. 부인하지 않는다. 창 틈으로 이 사회의 쇼윈도우 안에 있는 누군가의 고통이 나에게는 쾌락을 준다. 고통은 때론 전시되는 것 같다. 관음증적 변태 환자다. 왜 나는 이런 걸까? 학습된 것일까? 타고난 것일까? 여러 분야에 걸쳐 대답이 나오겠지만 이건 분명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다. 찜찜하다. 그렇다고 나의 쌤통 심리를 정당화할 계획은 없다. 책에서는 정상이라고 말한다고 이미 스포일러가 떴지만. 일단은 되도록 줄여봐야지, 생각하는데 모르겠다. 우선 읽어봐야 할 것 같다.





















③ <모든 것의 역사> - 켄 웰버 / 조효남 옮김 / 김영사


  사실 이 책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이다. 30대에 막 접어든 나에게 정신의 영역은 피상적인 관심과 이따금 발동하는 '멋부리기' 모드로 들여다볼 수 없는 세계임이 명확해졌다. 반성하는 중이다. 세상은 더 어려워졌고, 깊게 들어가려던 예전의 거만한 시도들은 봉쇄시켰다. 나를 둘러싼 정신 사이에서 운신을 줄이는 대신 주변을 둘러본다. 최근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해 다시 항간에 회자되고 있는 생떽쥐뻬리의 <어린 왕자>에는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바로 비밀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건 헤어짐과 죽음 등으로 필히 작별을 경험하게 되는 우리에게 위안을 주려는 말이지만, 실은 인간 정신의 정수를 보여준 종교와 철학의 대가들이 한 목소리로 던진 맑은 조언이기도 하다. 나 같은 사람들은 그런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켄 웰버를 알게 된 건 길희성 씨 덕분이다. 신비사상가라는 점에서 그를 주목하진 않는다. 나는 그가 '범우주적 시선'을 갖고 있다는 것에 매료됐다. 과연 그러할 지는 읽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구분 없이 펼쳐져 있는 이 우주 같은 시선과 그 두 눈에서 쏟아져 나올 사상적 정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12월의 추천 신간을 쓴다고 새해 벽두부터 느릿느릿 찾아본 수많은 책들 중 오랜 시간 붙잡고 모니터 옆에 꽂아두고 싶은 유일한 책이다. 2016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④ <역사교과서 국정화, 왜 문제인가> - 김한종 / 책과함께


  그래도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과서 문제에, 아니 교육 문제에 정치권이 개입해 거국적 좌우 싸움을 벌이고, 안 그래도 선거구 확정 문제 등 다른 정치권 이슈들 때문에 도무지 아물어지지 않는 상처가 이미 오래 됐는데, 나는 뉴스를 볼 때마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위안부 관련 문제도 그렇고 연말에 참으로 속 거북한 소식만 들린다. 송구영신의 기분 뒤로 무겁게 깔리는 구름 같은 걸 걷어낼 수가 없었다. 교육 문제가 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정치권은 늘 그랬듯이 그걸 가지고 싸움을 하지만 지금처럼 우리의 '생각' 자유의 문제가 정치적 카드에 든, 마치 만화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카드들 속 귀여운 몬스터들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서로 공방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아니, 차라리 만화의 몬스터들은 귀엽기라도 했지. 그리고 또 하나 기가 막힌 건 교육의 현장에 있지 않은 이들이 왜 역사 교육이 좌우 편향을 나눠버린다고 예단하고 '피치 못할 결정'을 내리는 분위기를 조성한 뒤 그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시켰냐는 거다. 혹시 어린 학생들이 하나의 팩트로부터 다양한 해석을 내리지 못할 거라는, 혹 그들이 하나의 해석만을 습관적으로 외워 나중에 '그런 어른'이 되어버릴 거라고 지레짐작한 것일까? 만약 그런 거였다면 나는 이만한 국가적 실패도 없을 거라 확언한다. 왜 문제일까? 누가 모르나?





















⑤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 리사 랜들 / 이강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우주/과학 분야를 읽다 보면 정신의 분야를 들여다보는 착각을 한다. 모르는 것이 참 많다. 내가 모르는 것도 많은데, 나보다 훨씬 잘 아는 사람들조차 모르는 것이 많다. 생각하지 못한 것도 있고, 확인하지 못한 것도 있다. 그러니 '우주'라는 단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짐작도 불가능하다. 전문용어, 영단어, 기호, 수학 등, 왜 하필 이런 것들에 그리도 취약할까 싶은데, 지금의 내가 범접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그 세계를 설명하는 기본 요소들인데도 나는 우주를 좋아한다.


  최근에는 새벽에 아파트 사이로 높이 떴다가 시계로 치면 1시에서 2시 사이의 방향으로 지나가버리는 (대략 3시간 정도 걸리는데) 목성 보는 재미가 있다. 저기까지의 거리가 얼마일까? 검색해보면 나오겠지만 그 수를 내가 이해할 방법은 없다. 작정하고 뛰어본 거리로는 10km가 최고고, 근래 맛 들린 자전거로는 42km가 최고였다. 그런데 수 억 km면... 저 행성을 작은 점으로라도 볼 수 있다는 고마운 마음이 '과학적 신비'를 이해할 수 있는 눈이 된다. 나는 과학을 그런 눈으로 읽는다.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작아지고, 안으로 들어가고, 일치와 분리, 재결합을 느낀다. 리사 랜들은 유명한 과학자다. 너무 유명해서 굳이 유명하다고 하지 않아도 알 사람들은 다 안다. 미치오 카쿠, (故) 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 등 과학 분야의 최전선에 서있는 전투적이면서도 사려 깊은 과학자이다. 쉽게 쓴 책이라고는 하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쉽지 않은 내용임을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목을 보라. Knocking on Heaven’s Door. 과학의 시선으로 우리가 들여다보는 건 그다지 딱딱하지 않다. 우주-인간의 관계이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