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06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서양이 ‘아시아적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는 언론보도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부심을 드높였던 때가 기억난다. 그 때 나는 세상 돌아가는 바를 거의 몰랐기 때문에 대학입학 수시1차 선발에 논술문제로 나오지 않을까 싶어 한 번 들여다보는 정도에 그쳤지만 돌이켜보건대 ‘아시아적 가치’에 대해서는 지금도 잘 모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진중권, 박노자, 강준만 등의 글을 읽고, 더불어 홍세화의 ‘서구 對 우리나라’의 비교를 읽으면 그 가치의 테두리가 얼핏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책을 덮고 나면 그 모든 가치들을 역사의 유전으로 물려받은 내가 객관적인 입장에 서기란 참으로 어렵다.


  서양미술을 공부할 때에는 서구의 사고 발전과정에 주목하면서 특히 모더니즘의 파격이 현대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예상한 적도 있다. 바깥 것을 보다보면 늘 나의 것이 모자라 보이는 법이리라. 그런데 또 다른 면에서는 아시아적 가치를 추종하곤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다큐멘터리인 <차마고도>는 KBS의 ‘인사이트 아시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것인데, 이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때마침 서양이 동양을 주목하는 추세에 맞물려) 아시아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취지를 갖고 있다. 유교와 불교는 물론이고, 아시아에서 발원한 국수의 문화, 잃어버린 옛 가치들과 대안적 의미들을 발견하고자 했던 차마고도의 험준한 세계 등을 비춰준 적이 있고, 유독 관심을 많이 받았던 <차마고도>는 작년 12월에 영등위로부터 다큐멘터리 부문 “좋은 영상물”상을 받기도 했다.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보자면, ‘인사이트 아시아’ 프로젝트는 <차마고도> 외에도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를 제작해서 큰 인기를 누렸지만 그 이후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웹사이트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아시안 트리(가족 관계)’, ‘아시안 비트(장단)’, 불교(같은 주제로는 작년 말에 팔만대장경과 대안적 불교 관련 다큐멘터리인 <다르마>가 있었는데, 이는 인사이트 아시아 프로젝트가 아니다.)와 같은 아시아적 중심 주제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루 빨리 계획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결국 나는 ‘아시아적 가치’ 속에서 서양을 바라보고 이따금 제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는 연어와 같은 존재인 셈이었다. 우리는, 특히 우리와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발전에 있어 민주주의가 반드시 서양의 노선을 밟을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곤 했고, 그 중심에는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가 있었다. 이에 민주주의를 앞세워야 한다고 반박한 故김대중氏의 주장이 우리나라와 싱가포르 사이의 사상적 차이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일부 병폐로 기억되고 있는 가치를 애써 지키려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 가치는 경제발전을 가져왔고, ‘아버지’상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대중들에게 심어놨으며, 무엇보다도 옛것을 생각했을 때 연장자들이 느끼는 ‘따뜻함’의 촉각적 가치들로 비약되기도 했다.


  민주주의가 대중에게 있어 소중한 가치라는 오랜 생각에 수긍한다면 우리는 소위 ‘박통’시대로 대변되는 낮은 수준의 인권에 강한 부정을 해야 하는데, 아직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다. 다행이도 우리나라는 젱하스가 말한 단계를 잘 수행하고 있는 듯하다. 반(反)식민지주의의 상태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휘어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를 요구한다. 독일에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도 같다. 그 과정에서 지도자들은 국가의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무시할 수밖에 없는데, 이 시기의 이데올로기는 상흔으로 남지만 겉으로 보기에 국가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다. 그 과정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대중들에게는 ‘평등’, ‘민주’라는 가치들이 주목받는다. 평등과 민주의 형태는 서양이 백년은 훨씬 더 걸린 오랜 시간동안 고통과 갈등을 통해 도출해낸 것으로, 그것과 비슷한 수준이 막 경제발전을 이룩한 신흥 근대화 국가에게도 요구된다. 우리나라로 이를테면 7~80년대이다. 그 이전의 항쟁도 세계사적으로 보자면 매우 고무적인 사건이다. 알다시피 서양과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은 매우 다르다. 문민정부, 참여정부 이후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상당부분 진행되었는데, 아직 상흔을 자랑스럽게 기억하는 이들, 가진 것으로 내리 누르려는 이들, 본래 민주화는 갈등의 연속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전체주의적 성향을 내비치는 상황이라 누구나 만족할 만한 수준의 상태에는 이르지 못했다. 요컨대, 우리나라는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의 소통부재도 큰 문제 중 하나이다. (마침 소통과 관련해서 좋은 다큐멘터리가 KBS 일요스페셜로 방영 중에 있다. SBS에서도 저번 주에 차두리氏와 북한 정대세氏가 함께 출연한 소통 관련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바 있다.)

 

 

 

 

 

중국의 한 미팅 TV 프로그램

 

 

  젱하스에 따르면 아시아적 가치는 이런 것들과 유사하다. 아나톨리적 가치, 슈바벤적 가치, 롬바르디아적 가치(슈바벤과 롬바르디아는 지명으로 전자는 독일이고, 후자는 이탈리아이다. 그런데 아나톨리는 무엇인지 찾아내지 못했다. 생각해보건대 이들은 개인보다는 전체를 강조하는 우리의 가치판단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곳일 것이다.), 이슬람적 가치, 실존사회주의적 가치, 신권주의적 가치, 사회주의-조합주의적 가치 등과 말이다. 몇 년 간 미술사를 공부했기에 이 독일 석학의 비유에 내가 아는 것 하나를 덧붙여보자면, 반(反)종교개혁적 가치도 어울릴 것이다. 이런 가치들은 서구적 민주주의와는 흔히 상반되는 것이라 불리지만 지역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양상들은 모두 다르다. 다만 수구적 성향이라는 것에서는 모두 동일하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가치들에 대해 저항하는 가치들이다. 그러나 아시아적 가치는 탁월한 경제발전의 덕을 봤다는 점에 있어서 상기 가치들과는 달리 성공 사례 중 하나로 서양의 관심을 받은 것이다. 이슬람과 실존사회주의, 신권주의는 큰 실패를 맛봤고, 경제발전의 단기적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에는 온갖 부정과 비리들이 드러나게 마련이며, 그리하여 그들이 겪은 병폐는 오히려 그들의 가치를 더욱 철저하게 지키고자 하는 보수적 성향을 키우게 된다. 이들은 사상과 종교로써 세속과 저항하려고도 한다.


  이런 저항적 사상과 관련해 나는 최근 중국을 주목했는데, 학자가 아니라 체계적인 분석은 하지 못했지만 최근 중국의 태도는 과거와는 다르다. 작년 말일에 에드워드 웡(Edward Wong)이 뉴욕타임스紙에 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기사는 매우 흥미로웠다. 웡이 주목한 것은 중국의 각 방송국들이 ‘변화하는 중국’, ‘소통하는 중국’을 모토로 해서 얼마간 소위 ‘된장남’과 ‘된장녀’를 연상케 하는 젊은 남녀들의 미팅 프로그램을 방송한 것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케이블 TV에서도 이런 것들을 많이 해주니, 새삼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 프로그램들은 중국 CCTV의 저녁 뉴스가 기록하는 높은 시청률을 조금씩 나눠갈 만큼 큰 주목을 받았다. 프로그램을 대충 살펴보면 ‘막장’에 가깝다. 어떤 여자는 “나와 손잡고 싶으면 거액을 줘야 할 거에요.”라고 콧대를 세운다. 사회자가 왜 그러냐고 묻자, 그녀는 “나의 남자친구가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반문한다. 남자도 막장이긴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중국 젊은이들의 ‘아시아적 가치’를 희석시켰고, 급기야 정부가 나서 그 프로그램들을 폐지하거나, 혹은 벌금을 부과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나 역시 채널을 돌리다보면 일부 케이블방송 프로그램들이 대중의 다양성, 정신적 가치, 혹은 한국적인 것들을 강하게 부정하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가치가 위협받으면 자연스럽게 그 프로그램에 대한 반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즉물적 가치들의 선정성과 공격성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는 우리 역시 겪어봐서 다 알고 있다. 중국 방송계가 처한 상황은 지금의 우리와 진배없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가치의 두둔과 강조를 넘어선 ‘제한’이 중국인들을 옭아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뉴스와 신문에서는 중국의 신흥 갑부들이 중국정부의 강력한 경제압박을 피해 이민을 선택한다는 보도를 한 적이 있다. 이 현상은 중국에게 큰 골칫거리이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을 압박하며 소위 ‘차이메리카’의 시대를 열기 위해 국제 석유시장을 요모조모 공략하고 있고, 항공모함을 건조하여 미국의 태평양 라인을 경계해 베트남, 필리핀 등과의 남중국해 권력 다툼에서 우위를 보이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정작 안방이 문제인 셈이다. 돈을 가진 이들이 나가버리면 이미 흉흉해진 내부 경제가 얼어붙거나 흔들리게 될 것이 뻔한데, 막상 중국정부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고, 그들의 출혈만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재작년으로 기억한다. 중국정부가 대대적인 공자(孔子) 알리기에 나섰을 때였을 것이다. 그 무렵 우리는 유교적 가치에 대해 재고하고자 했고, 인문학계에서도 열렬한 반응을 했었다. 작년 베스트셀러 중 하나가 <관중과 공자>였으니 사상적 조류는 지속된다고 하겠다. 하지만 정작 중국정부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자율적 시장의 동향이 아시아적 가치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말해주는데, 다만 중국의 아시아적 가치는 우리나라나 싱가포르와는 달리 실존사회주의적 가치의 맥락에서 진행되는 것이므로 앞으로 그들이 시장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기게 될지를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서구에서는 중국의 문이 열리는 것을 두려워하겠지만.


  젱하스가 결국 ‘아시아적 가치’를 논하는 짧은 장에서 하고자 했던 말은 그것을 맥락 없이 의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한 일일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나는 이 경고가 섬뜩하게 들린다. 까닭은 이렇다.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아시아적 가치’라는 말은 별로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다양한 소통 매체를 활용할 수 있고, 이미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사상의 이동과 변화가 이전 세대보다는 더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물론 모두 그렇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나, 유연성이 더 강화된 세대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본다. 그런 세대들이 점차 사회를 주도하는 시대에 접어들어 세계경제의 급랭이 큰 문제로 떠올랐고, 지난 가치들을 전복시키려는 사상적 움직임들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다시 말해, 병폐의 타파를 위해서라면 이 유연한 세대들은 어떤 것이든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면 예전의, 폐단이라 불린 가치들이 어떤 대안으로 급부상하는 것을 사회가 막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독일의 젊은이들 중에서 히틀러를 추종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젊은 극우세력의 등장은 우리에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의 극우세력이 커지고 있는 상태에서 압박을 받는 것은 우리와 중국이다.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감은 전 세계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가 헛것을 쫓았다는 것이다. 이 갈등 상황을 중재해 줄 수 있는 소통이 부재하게 된다면, 물론 그것은 사회적 역량에 따라 달라지므로 나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수준에 많은 기대를 걸게 되는데, 우리는 옛 유물들을 끄집어내 왕을 세우고 독재자를 세우는 일도 가능하다.


  한편으로는 독재자가 무너지는 곳도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가 그러한데,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일련 사건들이 아직 꽃을 피우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긍정적 미래를 예단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그러고 보니, 그 꽃은 피를 자양분으로 발화하는 것이라 우리의 것과 매우 닮았는데, 상황은 결코 닮은 것이 아니다. 그들의 경제적 수준은 자국의 기대치를 만족시켜줄 만큼 준수하지 못하다. 그곳의 독재자들과 박정희의 차이도 그렇다. (이것이 소위 ‘박통주의자’들이 그의 동상 앞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이유이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등의 이권 문제도 놓여 있기 때문에 석유를 놓고 벌어지는 살벌한 싸움 속에서 민주화 과정이 더욱 진행되어야 한다. 결국 그곳 사람들은 리더의 자격을 꼼꼼하게 따질 것이고, 부족국가가 대부분인 북아프리카에서는 빈번한 유혈사태가 불가피할 것이다. 젱하스도 동아시아의 민주화 과정은 ‘아시아적 가치’를 딛고 일어설 수 있다고 긍정했지만 이슬람 사회에 대해서는 긍정하지 않았다.


  마지막 결론의 장에 앞서 젱하스가 ‘아시아적 가치’를 논하는 이유는 소위 ‘대항 프로젝트’의 세계적 사례들 중 거의 유일하게 민주화 과정으로 이어진 것이 바로 우리나라와 싱가포르의 그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와 반대되는 사례들은 이미 역사의 뒤안길에 있고, 일부 이슬람과 북한이 서로 사상과 형태는 다르나 대항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중국은 대단히 애매한 태도를 지니고 있어 ‘중국적 가치’라 따로 불러야하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이런 과정들이 부단히 진행되는 중에 발생하는 각종 갈등들은 헌팅턴의 표현처럼 ‘문화 충돌’이라 부를 수만은 없는 일이다. 각 사례들을 젱하스가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라, 독자들이 그들 나름의 사례찾기를 해야 하는 장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남은 이야기는 하나, 바로 중재이다. 과연 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젱하스는 어떤 고견을 내놓을 수 있을까?

 

 

 

 

- <문명 내의 충돌> 총 리뷰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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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30

 

 

 

 

 

 

 

   젱하스는 헌팅턴의 실책을 두 가지로 나눠본다. 거시적 차원의 실책은 우리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유교 문화의 축을 중국과 북한으로 보고, 이슬람 문화의 축을 파키스탄, 이란,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알제리 등으로 보는 그의 시선은 두 문화를 굳이 대비하려는 서구적 편견에서 비롯된, 보편화의 오류를 범한 통찰이다. 보편화의 오류는 우리에게는 일상과도 같다. 일부 여성들의 사치를 보도한 인터넷의 선정적인 기사들도 이와 다르지 않은 논리를 갖고 있다. 보수적 남성들은 이런 기사들을 접한 뒤 “모든 여성들이 그럴 것이다.”라고 거의 결론짓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어떤 정보를 흡수할 때, 우리는 의외로 편견과 착각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이는 저명한 학계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다. 특히 문화 간 비교를 필요로 하는 학문인 경우에 그러하다. 종교도 대표적인 예이다. 문명을 논하는 젱하스가 이 책의 대부분을 종교에 대한 면밀한 분석으로 채운 것도 사실 그 때문이다. 보편화의 오류는 대부분 상대방에 대해 거의 모를 때가 일어난다. 다시 말해 상대방의 일부만 보고 그것을 전체인 듯 여기는 것이다. 새삼스러운 말일 수도 있으니, 이에 대해 거듭 언급하진 않겠다.


  ‘문명의 충돌’을 테제로 놓고 봤을 때, 헌팅턴이 위와 같은 오류를 범한 까닭은, 젱하스가 지적한 것처럼 정치적인 현상 때문이다. 경제적 이해관계도 이에 포함된다 하겠다. 저들이 서구와 충돌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때론 문화를 무시한 경향을 목격하곤 한다. 문화적 가치가 시대에 따라 잘못 발현(여기서 “잘못”이란 후대의 평가이다.)되는 까닭의 대부분은 정치와 경제 때문임을 우리가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니다. 헌팅턴처럼 북한을 유교문화의 대표적인 축으로 본다면 북한과 중국 사이의 문화 차이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우리는 별 어려움 없이 “체제의 차이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라고 답할 것이다. 체제는 깊이 내재되어 있는 문화정신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하게 하는 일종의 감시망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문화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시각이, 흔히 당연하다 여겨왔던 그 시각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의심받게 된다. 이에 젱하스가 말한다. “모든 방면에서 문화주의적 논지를 가져오는 첩경”은 다름 아닌 문화 분석의 부족이라고 말이다.


  두 번째 오류는 미시적 차원에서 일어났는데, 여기서 ‘미시(微示)’란 큰 문화가 작은 지역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이 차원의 오류는 위의 것만큼이나 자명하다. 젱하스는 소수민족의 문제를 예로 든다. 소수민족은 거대한 중앙정치집단으로 구성된 세력들에 의해 주변부로 밀려났기에 그런 명칭으로 불린다. 그런데 전 세계가 근대화의 조류에 휩쓸리고, 그 흐름을 소수민족들 역시 경험하다보니 그들의 요구수준이 높아졌다. 이윽고 독립의 문제가 온갖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외교적 문제와 부딪히며 전 세계에 보도될 정도의 핫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헌팅턴은 이 과정 내에 문화적 요인들이 있음을 지적했고, 젱하스도 그것은 옳다고 본다. 하지만 젱하스는 헌팅턴과는 달리 문화는 거의 하는 일이 없다고 주장한다. 문제가 부각되고 진행되는, 이른바 ‘갈등의 단계’에서 문화는 종속적 위치에 머문다. 후대가 평가하기를, 다만 이 모든 것이 끝났을 때에야 비로소 문화가 제 몫을 했노라고 술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긴 그다지 어렵지 않다. 문화를 유기체로 보는 시각에 머문다고 하더라도 문화가 갈등보다 덜 역동적이라는 것은 자명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갈등이란, 젱하스는 ‘단절선’이라 말하는데, 그에 따르면 “구조적으로 형성된 체계적 차별과 특권의 형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문제”이다. 문화가 정치적 슬로건으로 변질된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이해는 헌팅턴의 것보다 더 세련되게 다가온다.


  헌팅턴도 <문명의 충돌>에서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의 분석보다는 결론 부분의 주장이 사람들에게 훨씬 많이 알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 <문명의 충돌>은, 사람들이 열광했던 정도의 좋은 책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문명의 갈등과 충돌을 분석하는 대목에서 결론을 뒷받침할만한 긍정적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풀어 말해보면 이렇다.


  헌팅턴은 젱하스가 상기 언급한 두 가지 문제, 즉 거시와 미시의 문제를 거론하고서도 결론에 이르러서는 “비간섭과 방관의 원칙”, 그리고 “공동 중재의 원칙”을 제시했다. 이는 쉽게 말해 서구적 가치를 비서구에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재는 있어야 하기에 서구적 가치보다 더 도덕적일 수 있는 도덕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얇은 도덕’이다. 이는 ‘긴밀한 도덕’의 반대개념이다. ‘긴밀한 도덕’은, 가령 국가 간의 1:1 갈등 상황(혹은 다자간도 괜찮다.)에서 서로의 도덕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오히려 도덕 사이에서 갈등만 야기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 사이의 도덕이 상황마다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그 규모가 커지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얇은 도덕’이다. 이해하기 쉽게 풀자면 “뜬구름 같은 도덕”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런 도덕에 기초하여, 스위스의 가톨릭 신학자인 한스 큉의 ‘세계윤리’와 같은 것이 정립될 수도 있다. ‘얇은 도덕’은 야만적인 것들을 교정할 수 있는 문명적인 것이다. 이 문명은 오랜 역사의 고통을 대가로 치러 ‘얇은 도덕’을 만들어냈기에 그것이 반드시 서구적이라는 편견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론의 주장은 헌팅턴의 책에서 독자들이 반드시 체득해야 하는 정보였으나, 헌팅턴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의 논의를 하기보다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문화적 비교만을 펼쳤고, 젱하스는 그것을 “옳은 결론을 이끌어낸 잘못된 분석”이라는 식으로 비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젱하스는 과연 어떤 ‘방법’을 우리에게 내놓을 수 있을까? 다음 장에서 그는 <문명의 충돌>에 대한 대안적 시각을 내놓겠다고 선언한다.

 

 

 

 

 

 

 

 

 

 

  8장의 시작은 놀랍기만 하다. 나는 잠시 독서하기를 멈추고, “이런 말은 수전 손택 정도 되는 사람이나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허공에 질문을 했는데, 흔히 종교 간 차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냉철한 판단으로 무장한 학자들처럼 젱하스 역시 깊은 혜안을 갖고 있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는 미국이 유럽적 가치로부터 독립하려고 했던 오래 전의 ‘연방 정신’을 인용문으로 언급하며 그 ‘미국’을 ‘이슬람’으로 바꿔 표현해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패러디도 이와 동일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데, 사실 이는 문화 갈등과 종교 갈등 사이의 무의미한 구분을 꼬집는 젱하스의 비판인 것이었다.


  유럽이 구세계가 되고, 막 신세계로 떠오른 미국은 그들의 가치를 찾고자 부단히 노력했었다. 나는 미술을 공부했으므로 그것을 예로 들어보건대, 20세기 초반에 들어 뉴욕이 세계미술시장의 중심이 된 것도, 잭슨 폴록이 미국 최초의 “월드 아티스트”가 된 것도 다 이와 같은 노력 때문이었고, 그 부단함은 이따금 파격을 만나며 21세기를 대비한 새로운 정신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워홀, 로스코, 라우셴버그 등의 스타급 작가들뿐만 아니라, 마크 트웨인, 마이클 잭슨, 할리우드, 오프라 윈프리, <아메리칸 아이돌>, 디즈니, 픽사,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스티브 잡스 등이 바로 20세기를 선도한 문화코드임은 우리가 직접 체험해서 잘 알고 있다.


  항간의 말마따나 20세기는 진정한 미국의 시대였다. 그들이 보잘 것 없는 나라 중 하나로 취급되었을 때, 그들의 “방어 자세, 반헤게모니적 정신, 혹은 저항적 태도” 등은 매우 포괄적으로 일어난 하나의 현상이었다. 이것은 정치적이다. 따라서 젱하스는 단호하게 말했을 때, “문화는 곧 정치적 문화이다.”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런데 그 아메리카가 언제부터인가 별로 행복하지 않은 신세계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정점에 올랐을 때, 그들은 오히려 저항 받는 이들이 되었다. 오늘날 그들을 비난하는, 괄시하는, 혹은 (실제로 일상에서 그럴 수는 없겠지만) 거의 무시하려는 경향이 주류인 까닭이다. 요컨대 우리는 대부분 반(反)미국적 가치로부터 대안을 찾으려는 중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미국은 굉장히 성공한 경우이다. 역사상 그들의 독립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성공적이었다.


  아프리카는 어떨까? 혹은 남미와 아시아도 좋은 예이다. 최근 읽기 시작한 엘리자 그리즈월드의 <위도 10도>라든지, 개인적으로 가장 몰입해서 읽은 소설인 나이폴의 <미겔 스트리트>를 보면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의 원인은 비정상적인 독립이었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함께 사실상 아프리카 권력의 대부분을 지닌 나라이다. 인구도 많고, 유전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외부의 세력이 개입하여 갈등을 조장하거나 중재함으로써 그들의 이득을 취하기 안성맞춤인 나라이다. 남부의 기독교와 북부의 이슬람교의 싸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구글이나 위키피디아에서 그들의 싸움을 검색해본다면 혀를 내두르게 될 것이다. 그들의 불완전한 민주주의(1999년 군사독재 이후 설립된 민주주의 정부는 거의 과거 바이마르 공화국의 유아적 수준과 비견된다 하겠다.)는 그 어떤 종교적 중재도 해내지 못했고, 더 나아가 자생 경제발전의 계획도 수립하지 못했다. 개인의 정체성이 종교로써 성립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문제는 집단에 있다. 집단의 정체성이 과자 부스러기처럼 흩어졌을 때, 정부는 통제력을 거의 잃는다. 반면, 미국은 경제발전과 종교중재를 훌륭하게 해내면서 현대판 제국의 힘을 얻었다.


  이번에는 동구이다. 그들은 서구와는 달랐고, 아프리카와도 물론 달랐다. 아프리카가 어느 정도 서구식 개발을 모토로 삼았다가 처절한 실패를 맛봐오는 중인 것과는 다르게 동구는 사회주의적 집단주의를 통해 갈등을 애당초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오로지 그것을 억압으로써 막아보려고 안간힘을 써왔다. 북한도 한창 그런 중이다. 문제는 실존사회주의가 완벽한 실패로 돌아갔을 때부터 일어났는데, 그들이 택한 노선은 자연스럽게 반제국주의적인 저항정신이었다. 명목상 그들의 적(敵)은 미국이다. 그러나 미국은 “무장한 서구”의 대변인에 지나지 않았다. 단, 미국이 그들의 대변인이 아닌 ‘최강자’임을 자처했기에 동구의 국가들은 한사코 그들의 간섭을 용납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실존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자명하다. 문화가 복합적으로 양성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나마 막아보려고 한 것이다. 갈등 없는 사회.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만은 사실 그보다는 지금 우리의 사회, 즉 근대화의 추진력이 만들어놓은 결과물이 “괴기스럽지만 자연스러운” 것이다. 누군가는 구조적으로 종속되고, 다른 누군가는 지배한다. 종속과 지배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전쟁으로 번진다.


  이런 세계의 조류에 대응하기 위한 일차적인 움직임은 아무래도 민족주의이다. 최근 들어 광신적 근본주의가 극우주의와 함께 날카로운 칼날을 세우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고, 히틀러의 주장과 일부 종교의 선민사상이 대단히 매력적인 시대 이데올로기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가볍게 듣고 넘길 문제가 아니다. 지금 독일 사람들은 극우파가 정당을 서서히 장악해가는 과정을 목도하고 있고, 일본은 군비 경쟁에 다시 뛰어들기 위해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게는 무기를 수출하지 않았던 과거의 법을 유연하게 만들고 있으며, 대부분의 종교전쟁이 일어나는 ‘위도 10도’에서는 여전히 테러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김정일 위원장 사망 시 위로를 하려는 일부 사람들과 천안함 사건, 연평도 사건을 기억하자는 격렬한 반북주의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터넷 총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국력이 이상한 방향으로 낭비된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성장을 이룩하면서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의 살아 있는 전설로 회자되는 동방사룡(東方四龍) 중 하나인 우리나라는 그나마 극단적 사건을 몸소 체험하는 일이 드물다. 그러나 이를 다행이라 여기는 것은 매우 안이한 태도이다.


  상기 언급한 위의 모든 문제들을 ‘문화’라는 차원에서 취급한다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어떤 해결책도 마련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부분의 갈등을 문화를 중심으로 읽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젱하스의 구절을 하나 인용하는 것이 빠른 이해를 도울 수 있을듯하다.
  “문화 갈등은 또한 동원될 수 있는 권력의 원천이 빈곤한 상태에서 언어, 종교, 그리고 역사가 억지로 동원되고 도구화되어서 생기는 것이다. 이런 경우, 문화를 원천으로 내세우는 것은 문화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권력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그 문화적 원천을 해석하는 것은 문구 해석에 충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욕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서구의 문화가 ‘우리’에게 유입되어 온갖 문제를 야기했다고 보는 시각에는 일견 부당함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젱하스의 서구문화 두둔이 아니다. (이 책은 도저히 그렇게 읽히지도 않는다!) 탈식민지 역사를 겪은 거의 모든 나라들의 역사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서구가 근대화를 겪은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순전히 서구를 “도구”로써 사용했을 뿐이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서구식’으로 변해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 서구에서는 위계질서에 따른 서열의 병폐가 드물다. 우리나라에서는 ‘윗사람’이라고 하면 ‘아랫사람’의 생사를 결정할 만큼의 권력이 주어진 의미의 언어로 용인된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온갖 정치적 비리들이 서구에서 온 것일까? 호남과 영남의 지역주의도? 박노자, 진중권, 강준만, 유시민 등이 우리나라를 뒤집는 발언으로 끄집어낸 병폐들이 모두 서구에서 온 것일까? “그렇다.”며 자랑스럽게 자위(自慰)할 수 있는 우리나라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더 넓게 봤을 때, 서구와 이슬람 사이의 갈등에도 해당된다. 우리가 부정적으로 회자하곤 하는 “이슬람”이라는 것은 사실 없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정치적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 중 일부 근본주의자들이 테러와 학살, 착취 등으로 문제를 만들 뿐이지, 대다수의 무슬림들은 <꾸란>에 적혀 있는 문구를 가지고 정치적으로 크게 확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발언을 하는 이들을 골라 편집해 보도하는 대다수의 방송사들은 그들의 서구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정치적 방영을 한 것일 뿐이다. 우리나라도 그렇다. 이슬람은 문제될 때만 언급된다. 그들이 메카에서 위대한 종교행사를 연다거나, 자선축구경기를 열어도 보도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슬람 내부에도 수많은 종파들이 존재한다. 터키에서는 수피 교도들이 신비한 춤을 추지만 이라크에서는 우리가 잊을 수 없는 ‘후세인’이라는 이름이 교파를 이유로 엄청난 학살을 벌여 결국 미국으로부터 ‘축출’당했다. 이슬람 국가들의 민주화 바람 때문에 세계의 봄이 찾아왔다고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 표현은 결코 어울리지 않았음을 우리는 회상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경제적 기반, 제도적 장치 없이, 아마 그들이 만들려고는 할 것이지만 결코 달성하기 힘들 그런 것들의 도움 없이 탈식민주의의 노선을 밟았던 상기 아프리카, 아시아, 혹은 동구의 퇴보한 민주주의를 경험할 것이라는 예측은 거의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젱하스의 구절들을 읽으며 우리가 직접 들어왔던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확장 해석할 수 있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는 꾸준히, 그가 서문에서부터 주장했던 것처럼 헌팅턴의 테제를 반박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서구를 문화 투쟁의 대상으로 여기는 오늘날 전 세계적인 세태 역시 ‘서구’라는 문화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무지로부터 출발한, 창피한 역사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견지이다. 여기에는 큰 지혜가 존재한다. 문화를 가장한 권력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정치화된 문화 갈등’의 원인을 지목다면 우리는 무지몽매한 간에 타인을 보편화시켜 쓸데없는 싸움을 일으키려고 않을 것이다. 현실은 권력이 움직인다.

 

  ‘문화’란 없다. 오로지 충돌을 조장하는 권력만이 있을 뿐이다. 이 낯선 시각에 익숙해져야 우리는 비로소 전 세계의 문제를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장에서 젱하스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할 어떤 가치에 대해서 말한다.

 

 

 

 

- 4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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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30  

 

  그렇다면 이슬람은 어떠할까? 브루스 링컨의 <거룩한 테러>에 따르면 이슬람 세계는 현존하는 최고의 ‘종교최대주의 국가’들로 이뤄져 있다. 최근 들어 ‘아랍의 봄’ 분위기 속에서 신정국가의 민주주의 대열 합류가 본격화되고 있으나, 그들이 몰아내고자 하는 것은 ‘독재’일뿐, 그들의 ‘이슬람적 이성’이 아니다. 미국, 프랑스, 영국, NATO 등의 도움을 받았지만 특히 이슬람 국가들의 대부분이 적대시하는 미국은 개입을 꺼려했고, 여전히 반미정서는 강하며, ‘아랍의 봄’을 이끈 사람들은 그들의 힘으로 공화정을 세우고자 한다. 이는 서구의 학자들이 바라는 이슬람의 개방이 아닌, ‘민주주의의 이슬람화’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젱하스는 이슬람의 개방을 논하는 챕터에서 유럽의 다원성과 이슬람의 문화적 유산이 어떻게 서로 조우할 수 있는지 여러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그의 주장은 10년 전에 제기된 것이다. 

  젱하스는 이슬람 속에도 다양한 이념이 있었다며, 근본적으로 이슬람이 다원성을 추구하지 않는 종교로 보는 시선은 잘못된 것이라 진단했다. 시아파, 수니파, 신비주의적 수피교단 등 우리나라에도 비교적 잘 알려진 종파가 있으며, 7세기에는 상이한 <코란> 해석이 존재했었다. 이라크는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에서 일어난 비극적 역사의 무대였다. 알다시피 이 국가는 정통파인 수니파를 믿는 대다수의 아랍 국가와는 다르게 분파인 시아파를 지지(국민의 약 80%)하는데, 수니파에서 지도자가 나와 나머지 국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바로 사담 후세인이다. 이로써 시아파를 국교로 하는 이란은 이라크와 사이가 극렬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는 서로 다른 이념적 가치가 빚어낸 참극인데, 견고한 듯 보이는 이슬람이 지닌 최대의 단점이기도 하다. 이 단점은 상이한 교리를 서로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경우에만 극복된다. 

  이슬람의 세속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뤄졌고, 터키의 경우에는 프랑스를 롤모델로 1929년부터 개혁의 박차를 가했다. 종교의 교조주의가 허락지 않는 범위의 세속화가 아랍 세계에 밀려 들어왔고, 지금은 차도르 착용을 놓고 그들 스스로가 상반되는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아이들이 서구의 문화를 접하지 못하도록 여러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런 차단은 미미한 수준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슬람 사람들은 세속화의 직접적인 경험자이다. 중동이 지닌 최고의 자본수단인 석유가 세계 각지로 유통되면서 엄청난 자본이 중동으로 들어갔으며, 자본주의의 주류 국가가 된 그들은 오늘날 수많은 초국가적 기업의 도움으로 놀라울 정도의 ‘유럽화’를 이뤄내고 있다. 이런 상황의 한편에서 더욱 강력해지는 것은 근본주의인데, 이것이 아랍을 둘로 나누고 있다. 이토록 이슬람이 빠르게 서구화될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의 추세로 보자면 매우 놀랍기도 하다. 하지만 이슬람 학자들 중 일부는 그렇게 진단하지 않는다. 바로 <코란> 자체가 항상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서구의 물질화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코란>과 그들의 합리적 정신에 입각해 서구의 합리주의와 민주주의를 그들에게 알맞도록 수용해왔다는 것이다. 

  <코란>의 두 텍스트인 메카본과 메디나본은 서로 특징이 다르다. 메디나본이 더 배타적이다. 이는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이 가능한데, 마호메트의 이동과 관련된 내용은 매우 길기 때문에 언급하진 않으나, 이는 두 텍스트가 현대적 상황에 맞는 새로운 해석으로 재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슬람의 종교법인 샤리아가 현대의 이슬람에게 맞지 않다는 것에 착안한 이슬람의 개방주의자들은 이슬람 내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경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경전 그 자체로써 해석할 것인가를 놓고 봤을 때, 천 년은 더 전에 만들어진 텍스트로 지금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주장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종교는 사회의 한 기능만을 맡을 뿐, 종교가 사회를 온전히 규정하진 못한다. 즉, 위에서 말한 ‘종교 최대주의의 국가’들이 주를 이루는 아랍이 ‘종교 최소주의의 국가’들로 이뤄져 있는 서구와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길을 걸어온 서구의 역사에서 이슬람도 배울 점이 있다고 젱하스는 강조한다. 이슬람이 서구를 비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세속화’라는 정신적 독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젱하스는 “갈등을 통해 점점 강하되는 다원성을 위한 적절한 표현방식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진단한다. 결과적으로 근본주의는 이슬람 그들 자신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 챕터에서 젱하스는 불교를 언급한다. 최근 불교 관련 서적들은 베스트셀러의 자리에서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 법정 스님, 법륜 스님 등 일상의 지혜를 알려주는 책을 쓴 고승들에게 사람들은 열광하며, 특히 최근 법륜 스님의 정치관련 발언은 불교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 외에도 틱낫한, 달라이 라마, 코이케 류노스케 등 불교적 삶을 일상에서 실천하도록 격려하는 타국의 스님들에게도 많은 관심이 쏠려 있다. 칼 야스퍼스도 불교를 일컬어 “아시아의 온화한 빛”이라고 불렀다. 서양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불교는 거의 혁신적인 대안 종교이다. 그들이 티벳 불교를 바라보는 눈은 순수한 아이와도 같은데, 불교의 무상, 윤회, 극락, 무소유 등 진리에 이르는 정신(이와 관련된 책으로는 임현담氏의 <히말라야 있거나 혹은 없거나>를 추천한다.)들은 유일신이 규정한 세계 속에서 살았던 그들에게 매우 독특하면서도 위안을 주는 개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젱하스는 불교의 곱지 않은 역사를 예로 들며 불교의 특성상 그것이 정치화되는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한다. 물론 그의 지적은 옳으나, 세계 주요 종교들의 분쟁사를 통계(나는 이와 관련된 강의에서 실측 자료를 본 적이 있는데)해 보면 불교의 폭력은 힌두교와 함께 가장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젱하스는 불교의 사상을 현대사회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묻는다. 승가(僧家)공동체는 과연 현대사회에 적합한 롤모델이 될 수 있을까? 일단 젱하스는 불교의 사상을 종합해본다. 먼저, 불교는 본래 이곳의 생을 고통 그 자체라 말한다. 그리고 묻는다. “왜 고통스러운가?” 그것을 붓다는 욕망과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즉, 극락(니르바나)으로 가는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하며, 내가 ‘나’가 아닌 것을 알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불교는 인식의 그물망을 친다.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 (이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로는 KBS가 지난 10월 15일부터 방영한 4부작 <다르마>를 추천한다. 제작취지는 대장경 기념이지만 주로 ‘치유’의 관점에서 제작된 만큼 현대인인 우리에게 호소하는 바가 크다.) 순수한 의지가 드리운 신비한 장막을 우리가 거둬낼 수 있다면, 그리하여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불교적 삶은 가장 이상적인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하지만 불교의 한계가 여기에서 드러난다. “순수한 개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불교적 해탈의 교리를 따르게 되면 이러한 사회(현대사회)를 다룰 수가 없다.”는 것이 젱하스의 진단이다. 그리고 한 학자(Sulak Sivaraksa)의 진단도 소개한다. “사회가 훨씬 복잡해지면 윤리적 규범에 대한 그런 단순한 해석은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능성을 아주 배제하진 않으며,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젱하스가 지적한 것과 같이 불교는 매우 개방적인 종교이고, 단순하지만 ‘바람직함’을 추구하는 민주적 절차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불교와 현대사회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정신적으로 도덕적인 사회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모든 이가 불교적 삶을 따라야 하겠으나, 이러한 정신의 “각성과 해방이 공공 영역의 목표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문제로 거론되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른바 세속화된 ‘사회의 틈’이 불교의 호소력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기는 해도 호소력이 그 틈을 충분히 채워주기에는 세계의 규모가 너무 크다. 

  마지막으로 젱하스는 힌두교를 언급하나, 사실 힌두교는 종교라 할 수 없다. ‘힌두교’라는 말 자체가 서양인들이 만든 것이고, “자연 상태에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힌두교는 수많은 지역종교와 이념의 종합이고, 여러 경전과 여러 진리의 종합이다. 따라서 이 종교에서는 금욕주의자부터 ‘쾌락’주의자에 이르는 다채로운 종교인들이 있다. <리그베다>에도 이것이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진리는 하나이지만 그것을 현자들이 다양하게 이름 붙인 것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힌두교는 그 어떤 ‘종교’보다도 영적 다원성을 지녀 항상 관대하고, 거의 모든 ‘세계윤리’를 추출해낼 수 있는 진리의 밭이기도 하다. 하지만 힌두교에도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아니, 힌두교를 믿는 곳에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었다. 바로 카스트이다. (이것을 ‘문제’라고 볼 수 있는 시각은 현대문명의 것이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시험문제를 풀기 위해 한 번 쯤 학창시절 외워봤을 단어들이다. 카스트는 위에서 아래로의 포용을 포함한 그와 상반되는 계급별 배제의 원리로 이뤄져 있는 인도 특유의 위계질서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 가지 오해를 한다. 힌두교를 믿기 위해서는 카스트에 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잘못된 사고이다. 힌두교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베다>를 믿는 것, 영혼이 죽지 않음을 믿는 것, 업보를 믿는 것, 해탈의 가능성을 믿는 것 등”을 충족시키면 될 뿐, 굳이 카스트를 옹호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힌두교의 현대적 해석이다. 그러나 인도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매우 개방적인 힌두교조차 카스트를 언급할 때에는 상당히 폐쇄적이다. 그리고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인도는 본래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를 포함한 지역이었다. 이들의 분할을 막으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간디이다. 인도 내의 이슬람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로, 그리고 불교는 스리랑카로 나뉘었다. 하지만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인도 내의 시크교, 이슬람, 불교, (선교의 목적으로 들어왔던) 그리스도교 등 교조적 집단들이 종교의 독립을 원하고 있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는 지역주의를 만들어 서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대량학살의 전염병이 이곳에서도 번지게 했다. 특히 힌두교 근본주의자인 이른바 ‘우월주의자’들은 독립 이후 세속화된 인도 정부를 공격하면서 카스트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데, 그들이 교조적 집단의 독립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를 젱하스는 ‘힌두교의 패러독스’라 부른다. 그리고 이의 해결을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물론 이론적인 제안이다. 

  한 학자(Arvind Sharma)의 제안을 인용한 그는 그것이 현실성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않았다. 그 학자의 제안이란 이런 것이다. 힌두교의 윤회 개념은 카스트를 방어한다. 그것을 현대적 삶에 적용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의 삶은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안에 네 개의 카스트가 모두 존재한다.”고 믿으면서 윤회의 개념을 한 사람의 일생으로 축소시킨다. 쉽게 말해 긴 윤회를 우리의 일생으로 줄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평생 브라만도, 크샤트리아도, 바이샤도, 그리고 수드라도 될 수 있다. 이를 학자는 경전을 읽고, 의식을 치르는 것(브라만),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크샤트리아), 직업을 갖는 것(바이샤), 그리고 서비스를 하는 것(수드라) 등으로 해석했다. 대단히 혁신적인 사상이기는 하나 현실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위에서부터 살펴봤으나, 이슬람과 불교, 그리고 힌두교를 앞에 두고 젱하스가 갖는 기본적인 태도는 일관적이다. 소위 말하는 ‘대세’이다. 아니, ‘현실부합론’이라 해야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가령 이런 대목들이다. “서구의 경험에서 이슬람 사회도 본질적인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불교 신자들도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의 틀에서 살고 있다. 여기에서는 시민이 아닌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카스트 제도가 없는 힌두교에 대한 이념은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오늘의 현실에 부합하는 것이다.” 즉, 젱하스는 세계의 ‘유럽화’가 어쩔 수 없이 진행된다고 본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것에 반대되는 행위가 바로 근본주의이다. 

  젱하스는 ‘도덕의 황금률’은 지극히 단순한 것이고, 이것이 정치의 선택을 받아 극단적으로 나뉜다고 했다. “궁지에 몰리는 상황에서 전통주의와 정통파에 의해 규정된 유산과 경전의 ‘텍스트’에 모든 것을 고착시키는 경향이 강화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유사한 상황에 빠진 모든 문화권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이번 챕터에서 여러 종교의 본질적 특성과 현실 상황을 대비해 어떤 방향으로 현대사회와 그들이 조우할 수 있는가를 주목했다면 다음 챕터에서는 그 현실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두 가지의 시선을 소개한다. 바로 ‘문화전쟁’을 바라보는 제 3자, 즉 우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의 시선과 그 전쟁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시선이다. 이로써 우리는 ‘문명 내의 충돌’이라는 테제를 보다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3편으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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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7 



 

 

 

 

 

 

  디터 젱하스의 <문명 내의 충돌>은 지난 계절학기에 들은 종교관련 강의 레포트를 위해 참조했던 것이다. 비록 요한 갈퉁과 강인철 교수의 책을 기반으로 써야 한 레포트였지만 사실 몇 주 간의 심각한 고민에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은 디터였다. 그가 문화에 대해 깊게 알고자 하는 신중한 독자들에게 준 메시지의 중요성은 상당히 크다. 언젠가 제대로 복기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긴 호흡으로 그의 책을 샅샅이 파헤쳐보고자 한다. 몇 편에 걸쳐 긴 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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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터는 문화의 불연속성과 투쟁에 대해 꼼꼼하게 역설하고 있는데, 그와 반대되는 테제는 그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의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이었다. 새뮤얼의 테제는 문명 간의 갈등이 심각한 현대사회의 단면을 밝혀내는데 주력하고 있다. 요한 갈퉁 역시 이에 동조하여 비폭력 평화주의를 역설했다. 하지만 같은 평화주의자로써 디터는 문명충돌의 세계적 현상을 다르게 바라본다. 그가 보기에 문화는 명백한 실체가 아니다. 문화는 카테고리로써 규정할 수 없다. 여기서 디터는 한 학자(Dirk Baecker)의 문장을 빌린다. 문화란 “가치를 둘러싸고 벌인 투쟁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투쟁’이라는 단어에 집중한다면 유럽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유독 동양에서는 고전적 성격을 띤 민족국가와 대제국이 자주 출현했으나, 유럽은 그렇지 못했다. 독자적인 자율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세력도 쉽게 유럽을 ‘통째로’ 소유하지 못했던 것인데, 이것이 바로 유럽의 ‘빗나간 권력집중현상’을 수 세기동안 진행시켰다. 이의 중요한 예로써 디터는 영국의 <대헌장(1215년)>의 취지, 즉 ‘통제와 균형’을 상기시킨다. 유럽의 역사는 이후 불연속과 혁신이 주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근대화했을 때, 제국주의가 등장했으며, 그들의 정치적 야욕 앞에 비유럽의 문화가 위기에 놓이게 된다. 이런 경우 대체로(디터는 분명히 나뉜다고 하진 않았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대략적인 분류는 해놓았다.) 비유럽의 문화는 서구화 정책, 폐쇄정책, 둘의 적절한 혼합, 혹은 아주 드물게 대단위의 혁신을 이룩하는데, 이 과정 속에서 전통사회는 유례없는 ‘유동성’ 탓에 혼란기를 겪는다. 이것이 바로 문명 내의 문화충돌이며, 디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이다. 혼란기를 잘 극복하고 서구화를 이룩한 지역은 대체로 동아시아이고, 여전히 극복하지 못해 숱한 내전과 만성적 개발위기를 겪는 지역은 이슬람이다. 하지만 둘의 문화적 결과는 동일하다. 전통문화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문화는 분화된다. 

  분화된 문화가 일률적으로 서구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근대화가 진행될수록 “전통사회의 가치관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즉, 근대화를 통해 개조된 가치관이 해당 문화를 거의 독점하게 되는데, 이는 유럽이나 비유럽이나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 유럽은 근대화의 시작과 함께 각종 사회적 병폐들을 떠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인권’, ‘민주적’, ‘사회적’, ‘법치(法治)’ 등의 제도적 완충장치가 마련되게 된다. 이는 철학적으로 정당해서가 아니라, 역사적 과정 중 그들의 선택에 의해 확보된 가치관으로써 어떠한 역사적 보편성도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보편화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세계가 마치 그리스도교 對 이슬람교로 확연히 구분되는 것처럼 ‘보도’되는 편향적인 현상에 사람들이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서구의 가치관은 비유럽의 전통문화를 파괴시킨다. 다만 유럽이 천천히 계몽된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비유럽에서는 서구화의 압력과 제국주의의 압제, 혹은 스스로의 개혁의지가 빠르게 박차를 가했다는 점에서 유럽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곤 했다. 우리나라가 이와 같은 상황의 대표적 국가이다. 서구화가 상당히 진행된 것처럼 보이나, 그 과정이 너무 빨랐고, 정신적 가치들이 전통문화와 거의 강제적으로 충돌하면서도 제대로 흡수되지 않은 채, 혹은 왜곡된 채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각종 사회적 병폐들이 ‘치유’되지 못한 선진국이 된 것이다. (우리는 너무 빨랐기 때문에 디터의 말에 따르면 “그에 대한 방어로서 더욱 강렬하게 기존의 문화, 그리고 일상적 혹은 상상된 전통을 찾게 되는” 현상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진단은 우리 사회를 비판적으로 견지하려는 수많은 국내도서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디터는 1장에 들어가기 전, 생소한 용어 하나를 제시한다. “문화 상호 간의 비교를 새로운 과제로 인식한 철학”이라는 뜻의 ‘간문화적 철학(Interkulturelle Philosophie)’이다. 용어는 낯설지 모르나, 개념은 익숙하다. 디터의 글이 완성된 때는 21세기가 아니었다. 당시 우리는 세계화, 지구촌, “세계는 하나”와 같은, 나름 ‘트렌디’한 용어들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체감할 수 있을까? 지금은 과연 어떠한가? 21세기에 접어들어 이 시대의 철학자들에게는 새삼스러운 과제가 하나 주어졌다. 전례 없었던 세계화를 철학하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전통사회를 기반으로 했던 역대 유명 철학자들의 원대한 사고와는 전혀 다른 차원을 요구하는 철학이었다. 

  세계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는 매년 발행되는 각국의 미래보고서를 통해 수 있고, 우리는 과거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많이 사회가 ‘개조’되었는지를 진단해볼 수 있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를 읽을 때에도 느낀 것이지만 라다크 사회의 개조는 우리가 흔히 각 분야라 여기는 ‘사회’와 ‘정치’가 서로 얽히면서 일어난 충돌과 투쟁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 결과는 안타까웠으나, 라다크가 예외일수는 없었다. 문화개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 “코카콜라”나 “나이키”, 혹은 “켈빈 클라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라다크의 티벳 불교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이야 서양인들에게 재조명되고 있으나, 소위 ‘문명화’된 사회에서 티벳 불교와 같은 ‘우주중심적’인 전통철학은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전통철학이 유지해오던 사회의 유기적인 모습은 산산조각난다. 라다크 사람들은 갈등이라는 것을 거의 몰랐었다. 하지만 서구화되는 동안 양산된 각종 갈등둘이 그들을 시시각각 괴롭혔고, 결국 그들은 열등감에 빠져 남의 손을 빌리는 처지로 내몰렸다. 

  반면, 서구에서 진행된 이 갈등들, 혼돈과 카오스의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 답을 내놓은 지역은 역시 서구였다. 담론, 규율, 기능적 분화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역할 분화, 민주적 참여 요구, 분배의 정의와 공정에 대한 논란, 그리고 이를 모두 합친 바로 ‘정치문화’이다. 디터는 이를 “문명화의 육면체”라 부른다. 그러나 이것들의 실체는 사실 임시이자, 강제였다. 결과는 어떠한가? 분배의 정의와 공정을 위해 부르짖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항상 참패를 맞이해야 했다. 오히려 그것은 갈등을 드러내기만 했다. 어떠한가? 우리가 저지르는 온갖 병폐와 비리가 자연스러운가? 아니면 그것을 방지하고 처벌하는 제도들이 자연스러운가? 디터는 전자라고 답한다. 전자가 선행한다. 즉, 문명화는 전통사회에 대한 투쟁이다. 따라서 ‘문화 본질주의’라는 단어는 성립하지 않는다. 문화에는 본질이 없다. 그것은 DNA도 없고, 상속도 없다. 문화 본질주의는 때론 우생학적 궤변(에드문트 후설)으로 잘못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유럽은 대단히 힘든 역사를 거쳐 만든 가치로써 병폐와 맞서고자 했고, 때론 운이 따르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 성립된 유럽 내의 ‘서구화’는 국제적 표준안이 된 듯 큰 권력을 행사했고, 비유럽이 그 권력 앞에 놓였다. 이는 유럽이 스스로 받았던 힘보다 더 큰 힘이 된다. (유럽이 열광했던 오리엔탈리즘, 시느와즈리, 우키요에, 유교 유입, 러시아 문화 유입, 최근 티벳 불교에의 관심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힘은 다양한 현상을 낳는다. 중국처럼 최근에 들어서도 전통문화를 대체할 서구적 사상들 중 하나를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 국가가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처럼 비교적 명확하게 서구화된 나라도 있다. 반대로 이를 저지하는 움직임으로 디터는 간디를 예로 든다. 절반만 추구하려는 움직임에서는 다소 민족주의적 경향(독일의 경우)을 발견할 수도 있다. 정신을 그대로 두는 쪽에는 오늘날 상당한 문제가 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도 있다. 최근 KBS, NHK, CCTV, 대만TV 등을 비롯한 아시아 유수의 방송들이 “아시아적 가치”를 모토로 한 여러 다큐멘터리, 가령 <차마고도>, <누들로드>, <아시안 트리> 등을 기획하는 것도 이런 정신을 대변한다고 하겠다. 앞서 말한 네 번째 경우인 혁신에는 서아프리카의 철학자들이 포함(이들의 사상에 대해서 나는 거의 모른다.)된다고 하나, 이는 대안적 인식론일 뿐 어떠한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 혁신이란 대체로 전통사회와 서구화 사이의 문제점을 깨닫고 사회 전체의 질적 변화, 소위 ‘점프’를 요하는 것인데, 한 사회가 전적으로 완전히 개방되리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디터는 위의 과정을 거치는 유럽적 경험들이 반복될 자명한 현상, 즉 세계화는 앞으로 수 십 년은 지속될 것이라 예견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슬람의 ‘봄’을 거의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 

  디터는 이어 중국의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에 등장한 대표적인 다섯 가지 사상을 예로 들면서 그곳으로부터 현재의 우리가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필요한 교훈 몇 가지를 끌어낸다. 이 부분은 특별히 정리하지 않아도 중국역사를 잘 알고 있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공자, 맹자, 순자, 한비자, 묵자, 양주, 그리고 도교 등의 사상은 유명하다. 그리고 이들의 사상이 모두 역사적 혼돈기에 사회의 질서를 구비하고자 나타난 것임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디터는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이들이 모두 현대적 사상을 설파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아주 명료하다. 우리는 흔히 공자를 수직사회의 병폐를 야기한 인물로 보나, 실제 공자가 내놓은 패러다임은 “지배자의 정당성 문제를 사회적 복지와 관련”해 생각했다는 점에서 탁월했다. 맹자가 이에 근거해 역성혁명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디터는 도교의 ‘문명저항’적 이미지에 대해 갖는 편견을 반박하며 “공적 질서의 형성을 위한 하나의 기본 입장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법을 모두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패러다임을 설파한 한비자, 자율적 윤리(사랑)에 호소하는 묵자, 자기중심적 삶의 영위를 주장한 양주 역시 현대적 인물들이라 주장한다. 

  이런 사상들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상호보완적 특성을 지닌다.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중국이 현대적 사상을 내놓을 수 있었던 까닭을 디터는 유럽의 근대화와 맞닿아 설명한다. 즉, 유럽의 근대화는 전통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이룩되었는데, 중국의 백가쟁명 역시 그러했다는 것이다. 이를 디터는 “전통을 비판하는 전통”이라 부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오늘날의 중국이 그 전통을 다시 한 번 상기하도록 우리가 격려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이는 “중국이 틀리니 미국이 옳다.”고 말한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의 견해와는 다르다. 디터는 중국의 과거에서 다양성의 긍정을 보고 고무되었던 것이다. 현 중국정부의 체제와 이를 비교해봤을 때, 분명 디터의 주장은 실효성이 적어 보이기는 하나, 중국의 올바른 근대화를 이끌기 위해서 중국이 반드시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중국은 중국 나름의 중앙체제적 발전방법이 있다고 말한 싱가포르의 국부(國父) 리콴유의 옹호에도 일견 타당한 면이 있으나, 그런 개발이 준 폐해는 서양이 지적해온 바대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양의 폐단도 늘 상기되기 때문에 故 김대중氏가 리콴유의 ‘아시아적 가치’에 반대해 서로 다른 가치의 융합인 “지구적 민주주의”를 말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민주주의만이 유일한 결론이라고 봤다.)    

 



- 2편으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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