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만 얼핏 봐서는 하루키의 책이라고 상상도 못할 정도로 이 책의 제목은 독특했다. 처음에 이 제목을 봤을 때 난 <망량의 상자>나 <우부메의 여름>을 지은 쿄고쿠 나츠히코를 떠올렸었다. 적어도 기담은 왠지 하루키와는 멀어보였고, 책의 표지도 기묘한 느낌이 감돌았다랄까. 이 뿐 아니라 책장을 처음 폈을 때 만나는 첫문장인 "나, 무라카미는 이 글을 쓴 사람이다. 이 이야기는 대강 3인칭으로 진행되지만, 화자가 이야기의 첫머리에 얼굴을 드러내게 되었다"는 이게 단편소설집이 맞나 다시 한 번 확인해보게끔 했다. 어쨌거나 다소 하루키스럽지 않다고 생각한 요소들을 가진 책이라는 생각을 하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책장을 넘겨갔다.

  책은 총 5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우연한 여행자, 하나레이 만, 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 시나가와 원숭이' 이 다섯편의 이야기는 제목에 걸맞는 이야기들이다. 즉, 뭔가 좀 기이한 이야기들이라 현실감이 없어보이긴 하지만 또 한 켠으로는 이 세상 어디에선가 일어날 법한 이야기기도 한 그런 이야기들.

  첫 이야기인 우연한 여행자에서는 하루키 자신이 경험한 사소한 우연을 이야기(한 공연에서 자신이 연주해줬으면 하는 두 곡을 연주자가 잇달아 연주한 일)하고 뒤이어 그 이야기를 듣고 지인이 꺼낸 이야기를 소개한다. 서점 카페에서 디킨스의 책을 읽고 있었던 한 피아노 조율사가 마침 옆자리에서 같은 책을 읽은 여자와 알게되고, 그녀와 만나면서 자신의 누나와 같은 자리에 점이 있음을 알게된다. 그녀는 유방암 검진을 받는다는 말을 그에게 하고, 그는 뭔가에 끌려 오랜동안 연락을 끊어왔던 누나에게 연락을 했더니 그녀 또한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다소 극적이긴 하지만 전혀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은 아닌 이야기랄까.

  두번째 이야기인 하나레이만에서는 서핑을 하러 하나레이 만에 갔던 아들을 상어의 습격에 의해 잃게 된 한 여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여자는 이 후 1년에 한 번씩 아들을 떠올리며 그 곳을 방문하고 어느 날 그 곳에서 우연히 일본인 히치하이커를 태우면서 그들의 입에서 기이한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잠시 두 층 아래에 사는 시어머니를 보러 간 남자가 지금 올라가니 팬케이크를 구워달라는 말만 남긴 채 사라져버린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내의 의뢰를 받고 남편의 자취를 찾으려하는 한 남자. 내가 종종 보던 드라마인 Without a trace(미 FBI 실종자 전담반의 이야기)가 왠지 생각나는 그런 이야기. 의뢰를 받은 남자는 남편의 흔적을 찾기 위해 남편이 사라진 계단에서 무언가를 찾는다. 네번째 이야기는 한 소설가의 이야기로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인생에서 진정한 의미의 여자는 단 세 명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 말에 최면에 걸린 것 처럼 빠진 남자는 진정한 의미의 여자를 기다리던 중 한 여자를 만나고 그녀를 통해 신장처럼 생긴 돌이 이동하는 다소 기이한 이야기를 지어내는데... 마지막 이야기인 시나가와 원숭이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종종 기억하지 못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는 데 별 지장은 없지만 나름 불편을 느꼈던 그녀는 우연히 구청에서 하는 상담소를 찾아가게 되고 그 곳에서 이름을 되찾게 된다.

  이렇듯 다섯개의 이야기는 소설의 허구성과 현실의 진실성을 넘나드며 아찔한 곡예를 한다. "에이 그런 일이 어디있어!"라고 치부하기엔 진실성이 있어보이고, 정말 있었던 일이라고 단정해버리기엔 허무맹랑한 이야기. 마치 예전에 즐겨 보던 토요 미스터리가 생각나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도쿄라는 대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배경은 그리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 정도로 이 곳이 도시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랄까. 하루키의 다른 이야기들처럼 존재나 사유에 대한 부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하루키의 이야기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흡입력이나 허구와 진실을 오가는 점들은 변하지 않은 듯 싶다. 그리 무겁지 않은 이야기들이기때문에 하루키에 거리감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쉽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작지만 기묘한 우연들을 떠올리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늘빵 2006-04-16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벌써 보셨네요. 빠르다. ^^

이매지 2006-04-16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안 두꺼워서 금방 봐요^^ 1시간 남짓 걸린듯.

비로그인 2006-04-17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한 시간 남짓 밖에 안걸려요?
책 빨리 읽는 사람들 진정 신기해요...
매지님은 하루에 두세권 읽는 것도 껌이겠어요.
전 님 두,셋 읽을 시간에 겨우 한 권 끝마칠걸요?

이매지 2006-04-1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안 두껍고 그렇게 안 어려운 책이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