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가 이제 곧 끝나간다. 애당초 책만 읽기는 힘든 짧은 휴가였지만,

이상하게 여름이라는 계절 내내 휴가였던 기분이다.

아마도 여름 내내 멍하기만 했고

일에 대한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획은 세우지만 반만 해도 만족스러웠고

여유는 없었지만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한 편으로는 늙은 느낌이었고 

한 편으로는 지친 느낌이었다.

이상을 버릴 때 늙는다고 하더니

지금까지 쌓아놓았던 것들이 허망하게 느껴져

만약이라는 가정하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내려놓는다면 하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급속도로 늙어버린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되든 안되는 끝까지 지금의 꿈을 붙들기로 마음을 고쳐먹으니

다시 또 희망이라는 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다.

방학동안 큰 딸이 한국사 검정능력시험을 같이 보자고 해서

설민석의 한국사 특강을 사고 나는 '세계사편력'을 구매했다. 



딸에게 들려주는 세계사 이야기인 세계사편력은 총 3권이다. 

간디 이후 인도의 독립운동을 이끈 지도자이면서 초대총리를 지낸 자와할랄 네루의 책이다.

1930년 10월 26일부터 1933년 9월 8일까지 옥중생활을 하면서 196회분의 편지글이 실려있다.

참고서적 하나 없이 딸에게 들려주는 세계사 이야기는 첫 장면부터 몰입하게 된다.

네루가 감옥에 있을 당시에 온 가족이 인도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가 투옥되어 집에는 어린 딸 인디라 간디만 남겨져 있었기에 매일같이 편지를 써야만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절절하게 읽히기도 한다. 아버지의 세계사 편지를 읽고 자란 딸 인디라 간디는 훗날 인도를 이끌어갈 여성 총리가 되었다. 딸아이와 같이 읽으려 선택한 세계사 책으로는 아주 마음에 든다.


좋아하는 작가를 손에 꼽으라하면 열손가락도 부족하겠지만, 좋아하는 책을 꼽으라하면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그 가운데 장석주의 <일상의 인문학>은 정말 좋아하는 책이다. 인문학적 사유가 듬뿍 묻어나는 글도 좋지만, 책과 함께 산책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서 더 좋다. 자연과 더불어 독서하며 사는 삶에서 우러나오는 글의 담백함에 마음이 끌리곤 한다. 깊고 폭 넓은 사유가 바탕이 된 책읽기에서 비롯된 문장은 때론 공경심을 자아내게 한다. 사실 글을 잘 쓰면서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드문데다 인문학적 사유가 버무려진 글쓰기 스타일은 더욱 드물다. 온라인 커뮤니티로 확산으로 인해 개인 창작글이 넘쳐나고 있지만 깊은 사유가 바탕이 되지 않는 글들은 한계점이 금방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스티븐 킹의 책을 별로 안 읽는 사람들이 글을 쓰겠다면서 남들이 자기 글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일이다.’ 라는 말에 십분 공감한다.

 

장석주의 독서 열정과 더불어 글쓰기에 대한 애정은 이 책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 더욱 돋보인다. 책읽기로 시작된 작가의 운명, 이어서 글쓰기의 세계에 인도되어  불투명한 미래와 가망성 없는 미래로 인해 방황하였던 날들은 유명작가들의 공통관문이나 다름없는 허기진 삶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작가 지망생이었을 때  겪었던 재능의 회의, 작가였기에 느껴야  했던 삶의 곤궁함이 결국에는 훌륭한 글감이 되어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는 그 과정들을 자신과 작가들의 경험에서 건져올린다. 그 안에는 헤밍웨이, 김훈, 김연수, 모리스 블랑쇼,파블로 네루다 , 하루키의 글들이 장석주의 사유와 버무려져 있다. 또한 장석주는 온갖 시련과 고통에서 살아남으며 날마다 꾸역꾸역 글을 씀으로 해서 작가로 살아남게 되었다는 말을 들려준다.  

 

예로부터 글을 잘 쓰기 위해서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라는 삼다를 권장해 왔다. 장석주는 그 삼다를 모두 성실하게 하는 작가같다. 읽기 만큼이나 쓰고, 쓰는 것만큼이나 생각하는 것이 글에서 전해질 뿐아니라 그런 모습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책을 읽는 것이나 쓰는 것이나 자신만의 채찍질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책을 읽은지 한참 되었지만 다시 읽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문장들이 다시 눈에 들어와 읽던 부분을 반복적으로  읽고 있다. 장석주 같은 인문학자는 정말 대단하다. 다독보다도 책에서 이끌어내는 명문장들의 향연과 삶의 통찰이, 독서가에게도 내공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한다. 


이 밖에도 많은 책을 구매했다. 휴가는 이제 끝나지만,

좋은 책들이 삶에서 늘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선사해 준다는 것이

지리멸렬한 삶에서 그나마 위로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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