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화요란
오카베 에츠 지음, 최나연 옮김 / ㈜소미미디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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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잔화요란 -결혼에 관한 세 가지 시선 


여성을 꽃에 비유한다면 어떤 시기를 의미하는 걸까. 잔화요란은 꽃이 떨어지기 전의 가장 아름답게 만개한 모습의 꽃을 말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성에게는 어떤 시기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 일까?  나의 삶에서도 꽃이 활짝 피던 시절이 있었던가를 떠올려보니 결혼하기 전이 그래도 가장 빛나던 날들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안그래도 책에는 결혼 전후의 여성 세명이 등장하여 결혼에 대한 세 가지 시선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세 명의  전혀 다른 결혼관을 통해서 현대여성들의 파편적이면서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비혼의 시대' 결혼보다는 일을 선택하고 있는 여성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에서 소설에 등장하는 세 여인에게도 결혼에 대한 행복의 환상이 느껴지기보다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주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고민이 내용의 주를 이룬다. 이제 막 결혼을 하는 예비신부 리카를 기준으로 하여 리카를 도와 결혼준비를 하는 두 여성 이즈미와 마키는 서예교실에서 만난 동료이다.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는 리카는 예비신부치고는 차분하고 조용하며 사랑해서 결혼한다기보다는 현실도피적인 느낌이 든다. 그것은 그녀에게는 말 못할 비밀이 있었는데 상사 카와사기와 내연관계라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카와사기의 아내 미츠코는 조카나 다름없는 케이치와 중신을 서고 리카와 케이치는 첫 만남이후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결혼을 진행하게 된 상태이다. 리카는 카와사기와의 불륜관계를 통해 관계의 불안을 느껴왔고 케이치를 만나면서  결혼이라는 안정된 피난처를 택하게 된 것이다. 주체적이지도 독립적이진 못하지만 사회에서 바라는 순종적인 여성상에 가장 가까운 여성이 바로 리카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인지 리카는 케이치가 결혼전 서예교실 동료 마키와 섹스 파트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문제삼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결혼이라는 테두리가 하나의 보호막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반대로 마키는 전형적인 여성과는 반대편에 있는 개성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구속보다 섹스파트너로서의 상대를 선택하는 것을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며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이다. 시들지 않는 꽃이 되지 읺기위해 필사적으로 성형시술을 하며 피부관리를 하며 사회에 도태되지 않으려는 커리어우먼이다. 늘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만 케이치가 결혼하고 나서 자신을 한 번도 찾지 않자 눈물을 보이고마는 어쩔 수 없이 고독하고 외로운 현대 여성이다. 두 명의 여성과는 달리 결혼한 여성인 이즈미는 결혼생활의 고단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장 평범하고 가장 무난하게 연애결혼을 해서 만났지만, 불행한 결혼생활로 인해 이혼을 고민하고 있는 여성이다. 아주 작은 균열로 시작된 결혼생활은 이미 별거상태이지만 이혼을 결심하지 못하는 건 이혼으로 인한 현실문제를 감당할 정도로 마음이 모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즈미 앞에 평소 금술이 좋았던 부모님들이 치매에 걸리면서 변하는 모습을 보며 망설이지 않고 이혼을 결심한다. 세 명의 세가지 시선의 결혼관, 자신의 아름다운 시절에 꽃피우는 모습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이제 곧 지려는 꽃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 어쩌면 잔화요란이 의미하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채 져버린 꽃의 슬픔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 여성은 그렇게 슬픈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 미츠코와 미우 

세 명의 여성 외에도 등장하는 두 명의 모녀, 리카와 불륜 관계에 있던 카와사기 상무의 아내 미츠코와 미우에게서 작가의 냉소적인 시각은 더욱 도드라진다. 배우처럼 잘생긴 아버지와 여배우보다 이쁘고 가정일에는 완벽함을 보이는 엄마 아래서 자란 미우에게 결혼은 아름답게만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완벽하다 못해 히스테릭한 엄마가 아버지의 불륜을 알아채고 흥신소에 부탁한 자료를 우연히 엄마의 명품백에서 발견하게 되자 충격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이후 리카의 이름으로 삼류영화에 출연하며 소심한 복수를 하지만 일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의 어긋남을 경험하게 된다. 그 관계의 어긋남이란 사랑과 결혼이라는 간극의 경험이라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리카의 임신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에서 케이치만 빼고 다 아는 아버지 카와사기와 리카의 불륜 자료를 어머니 미츠코 앞에서 태워버리다 큰 사고를 당하고 만다. 

#류코

세 명의 여성과 두 모녀, 이외에 등장하는 또 한 여성이 있다. 류코는 세 명이 다니는 서예교실의 선생이지만, 가장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여성이며 스스로 비혼을 자칭한 여성이다. 사랑에 안주하지도 결혼에 안착하려 하지도 않았던 그녀는 사랑과 결혼보다는 일을 선택한 여성이다.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를 떠나 유학길에 오른 그녀를 부모님은 용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믿음이란 내 안의 의심을 뿌리치는 일일 거예요. 그런데 의심을 나를 지키는 갑옷이죠. 그러니 갑옷을 벗고 무엇을 믿는다는 건 대단히 무방비한 일이에요. 작은 일에도 극심한 상처를 입고 마니까요. 그래도 상대를 믿는 것,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몸부림을 치면서도 그를 믿는 것, 그게 사랑이 아닐까 난 생각해요.'

타인에 대한 의심을 거두어 본적이 없기 때문에 믿음을 가져 본 적이 없다고. 자신에게 있어서 사랑과 결혼은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랑이 한 없이 가벼운 것으로 치부되어 살아가는 현대여성들의 결혼에 대한 시선은 안쓰럽다. 꽃은 그냥 피는 것이 아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위해 소쩍새가 그렇게 몰래 울어야 하고 천둥이 치는 하늘에서 먹구름은 그렇게 또 울어야 꽃은 만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인내와 정성이 깃들여져야 꽃은 아름답게 피어오를 수 있다.아름다운 벚꽃이 만개하기 전에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듯이 사랑 역시 그러하지 않을까. 51세 늦깍이 작가가 보여주는 잔화요란은 그래서 더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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