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독법 - 나는 오늘도 산을 만나러 간다
최원석 지음 / 한길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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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가기 좋은 계절이다. 무슨 바람이 났는지 생전 산에 가지 않던 친구들조차 산에가서는 단풍사진을 찍어 보낸다. 이곳은 아주 조금 나뭇잎 끝부분이 붉게 물들었을 뿐인데 며칠 전 친구가 보내준 설악산 단풍은 타는 듯한 붉은 물이 들어있었다. 원래 산을 좋아했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도 내가 이렇게 산을 좋아할지는 몰랐다. 하루도 빠짐없이 산을 오른다는 것이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기도 스스로도 대견하고 신기하다. 사실 산이 왜 좋은지는 모르겠다. 조용한 오솔길을 거닐 때의 호젓함이 멀리서 바라보는 산능선들, 매일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는 순간들이 주는 사색의 시간들, 이런 풍경들이 하나의 강한 자석이 되어 나를 끌어당긴다. 똑같은 산인데도 매일 다른 느낌을 주는 산, 늘 그 자리에 있어 지루할 것만 같은 산은 매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산천독법이 책은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을 보다 대중적인 시각으로 쓰여진 책이다. 전작은 워낙 두꺼웠고 전문적인 내용이라 하며 이 책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보다 슬림해진 책이다. 첫장을 펼치자마자 매일 아침 다니는 산이 주산으로 소개되고 있어 반가웠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다니는 산의 반대편이다. 사진의 옆부분이 주로 다니는 등산길이다. 마을의 뒷산이라 하여 주산이라 한다.  ()산은 ()산의 상대되는 말로 주인에게 손님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로 주산도 객산이 있다.  터를 펼치고 있는 뒷산이 주산이라면 그 주산을 마주한 앞산은 객산이 되는 것이다.이렇게 보는 시각을 산을 계통으로 보는 종적 시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70퍼센트가 산이다. 그러다 보니 산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삶의 일부로 자리잡아 왔다. 그런 영향인지 오래 전부터 선조들은 산에도 인간사와 인간관계를 투영하여 해석하려고 했다. 산을 보는 순서 역시도 할아버지와 나의 관계처럼 조산과 주산으로 큰 흐름을 잡고 다음으로 주산과 조산, 다음으로 주산과 조산의 관계에 비추어 크기나 거리의 비례를 평가해 왔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으로 보아왔던 산의 문화를 살펴보는 책이다.

 

내가 사는 곳에도 옥녀봉이 있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 가도 옥녀봉이 존재한다. 작년에 사량도에서 옥녀봉을 보면서도 옥녀봉이 많다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우리나라에 옥녀봉이 알려지지 않는 것까지 합하면 백개가 넘을 정도로 흔한 산이라고 한다. 저자는 옥녀봉과 비슷한 산을 알프스의 융프라우 산으로 꼽는데 둘 다 처녀산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옥녀는 말그대로 옥처럼 마음과 몸이 정결한 여인이라는 뜻으로 산이 젊은 여인으로 의인화 되었다는 것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서의 민간 신앙이 산에 투영된 것이다. 

 

 

마이산에는 한 번도 간 적은 없지만, 서울 가는 길에 항상 마이산을 지난다. 특이하게 생긴 산이기도 하지만 멀리서도 그 형태가 뚜렷해서 항상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기이한 모양의 마이산은 그만큼 긍정과 부정의 이미지가 함께 공존하는 형태의 설화가 구전된다. 산을 의인화 하듯이 산을 동물과 식물에 투영하여 부른 산도 있다. 용산의 대표산인 계룡산과 봉황산 계열의 비봉산, 거북이를 닮아 거북이산, 호랑이를 빼닮은 호랑이산도 있다. 의외의 산은 물고기산이었다.  김해의 어곡산이 그렇고 신어산, 경주의 어래산이 그것이다. 물에서 자유자재로 지내는 물고기는 물을 관장하는 수신으로서 신의 성격도 띤다고 하여 옛사람들에게는 물고기 역시도 신앙의 일부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도 부처를 지키는 신물로 쓰였다.이외에도 有情(유정)물만 아니라 無情(무정)물에게도 산이름이 붙는데 연꽃의 자태로 비유되던 금강산과 ()산 으로  불리운 북한산이 그러하다.

 

저자의 산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산 문화사라 할 수 있다.생활의 일부로 함께 호흡해 왔던 유정의 존재로서 산천은 언제나 삶의 생생한 현장이다. 그런 문화사를 다루다보니 한편으로는 현대판 삼국유사를 읽는 기분도 들었다. 그만큼 산과 향유하며 일구어온 문화를 들여다보는 산천독법은 우리나라의 산이 지닌 유구한 가치를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 저자는 산천독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라는 말처럼, 산천에서 보여지는 문화사는 인간사의 현장이다. 예로부터 산을 가르켜 무자천서라 하였다. 글자는 없지만 하늘이 만든 책이라는 뜻으로 산에서 읽을 수 있는 키워드는 무궁무진하다. 이후로도 산문화사가  지속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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