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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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want to be a poet

 

metaphor.(매타포)

 

고기잡이로 살아야 하는 칠레의 작은 섬에서 나고 자란 마리오에게 국민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존재는 신적인 존재다.  파블로 네루다 앞으로 매일 같이 오는 몇 킬로그램의 편지들을 매고 배달을 하던 우체부가  꼽추가 되어 퇴직하게 되자,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로 취직하게 된 마리오는 네루다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매일 아침 휘파람을 불며 일어난다.  네루다의 전용 배달부이기에 다른 우체부의 절반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음에도 첫월급을 타자 마리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일상 송가>를 사는 것이었다.  두 번째 월급을 탔을 때에는 <신新 일상 송가>를 산다.  파블로의 사인을 받을 생각에 매일을 꿈처럼 보내지만  시인 앞에만 서면 존경과 경외심으로 입 한번 움짤거리지 못한다. 

 

노벨상 후보로 선정되었다는 편지를 네루다에게 전해 주던 어느 날, 드디어 마리오는 파블로 네루다에게 대화를 건넨다.  지나친 경외감을 가득 안고   '시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마리오를 보며 네루다는  메타포’를 생각하라 말한다.

 

 

뭐라고요?”

메타포라고!”

그게 뭐죠?”

대충 설명하자면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서 말하는 방법이지.”

예를 하나만 들어주세요.”

좋아. 하늘이 울고 있다고 말하면 무슨 뜻일까?”

참 쉽군요. 비가 온다는 거잖아요.”

옳거니, 그게 메타포야.” 

 

해변에 가면 메타포를 얻을 수 있다는 네루다의 조언을 듣고 해변에 가지만, 한 개의 메타포도 떠올리지 못한 마리오는 좌절감을 가득 안은 채 해변가 주점에 들어가고 ,  그곳에서 두 치수는 작아 보이는 블라우스가 터질 듯한 젖가슴을 가진 소녀를 보고 수없이 많은 메타포를 쏟아낸다.

 

사랑에 빠진 마리오는 소녀에게 사랑의 시를 한 편 써달라고 조르지만  네루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시를 쓸 수 없다며 거절한다. 거절하는 네루다에게 간단한 시 한수 쓰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노벨상을 받을 수 있겠냐는 당돌한 말을 하는 마리오를 보며 펼친 전보에는 대통령 후보로 나가라는 당추천서가 쓰여있었다.  절망하는 네루다에게 하늘이 무너져도 선생님을 찍을 테니 후보로 나가라는 마리오를 이끌고  해변가 주점에 가는 두 사람.  두사람의 우정은 이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정치인이자 시인인 네루다가 해변가 주점에 우편배달부와 함께 포도주를 마시러 나타나자, 마리오는 네루다의 벗이자 지지자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또한 네루다에게 시를 배우는 제자로 보여지기도 하였다.  좌파 대통령 후보로 이슬라 네그리를 떠난 네루다 대신 시인 마리오가 네루다의 든든한 후원자로 섬을 지킨다. 한 개의 메타포도 떠올리지 못하는 , 설 익은 과일처럼 떫고 서툴러 보였던 소년 마리오는 네루다의 빈자리를 지킬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따님에게 무슨 말을 했는데요?”

메타포요.”

그런데요?”

네루다 씨, 메타포로 제 딸을 용광로보다 더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니까요!”

지금은 겨울입니다. 부인.”

불쌍한 베아트리스는 그 우체부 때문에 완전히 맛이 가고 있단 말입니다. 가진 것이라곤 알량한 무좀균뿐인 작자 때문에 말입니다. 발은 병균으로 득실거리는 주제에 주둥아리만 살아서 나불대죠. 주둥아리도 그냥 주둥아리가 아니라 칡넝쿨처럼 얽혀오죠. 가장 심각한 것은 뻔뻔스럽게도 제 딸을 꼬드기는 데 쓰는 메타포들이 당신 책에서 베낀 거라는 사실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동안 이슬라 네그리에서 날라 온 편지에는 자신의 딸을 농락하기 위해 네루다의 시를 베낀 마리오를 벌해달라는 분노가 쓰여있었고,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아내를 위한 시를 소녀에게 쓰는 것은 잘못된 행위라 지적한다. 허나,  마리오는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 라는 말로 되려 네루다를 설득한다. 마리오의 정신적인 성장 부분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읽는 사람의 것' , 네루다의 시가 만인의 시라는 것을 인정함과 동시에 시를 읽는 사람의 애정까지 더한 마리오의 말은 네루다의 마음을 움직이고  결국 네루다는 둘의 사랑을 연결해 주는 메신저가 되어  베아트리스 어머니를 설득하러 다시 또 해변가 주점으로 향한다.

 

이후 후보 단일화로 대통령 후보에서 물러났으나, 주프랑스 대사가 되어 이슬라 네그리를 떠난 네루다는 건강이 좋지 않다며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와 갈매기 소리, 밤하늘의 침묵까지도 이슬라 네그리의 모든 소리들을 녹음하여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낸다.  파도와 별, 벌꿀의 소리를 녹음하는 동안 마리오 2세가 태어나고 그해 네루다는 노벨상 수상자가 된다.  네루다를 만나지 못해 애통하는 나날을 보내는 동안 칠레에는 내전이 일어난다. 아옌데 대통령이 피살되고 전립선암에 걸려 네그리 저택에 투병중이던 네루다 앞으로 망명령이 떨어진다.

 

중간중간의 재치있는 표현들과 해학이 넘치는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책이다. 신분과 나이, 직업, 성별,  사회에서 규정짓고 있는 모든 규범을 초월하는 관계가 있다면, 마리오와 네루다의 관계가 아닐까. 까마득한 옛말같은 누군가를 아낌없이 사랑하고 , 누군가를 아낌없이 존경하고, 누군가를 아낌없이 기다려주는 이 아름다운 모습이 마치 우리네 삭막한 세상에서 그려내야 할 메타포라는 듯 작가는 유려하게 관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메타포(은유)가 될 때 , 시인이 될 수 있다는 네루다의 표현은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던 모든 문학의 정의였다.  모든 문학은 매타포이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파블로 네루다의 성품에 반해 소탈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시인 네루다 자체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가난한 우편배달부에게 시를 가르쳐주고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시인으로서 파블로 네루다는 문학의 메타포로 부활한다.

 마리오가 처음 메타포를 배우는 날의 대화는 그래서 잊혀지지 않는다. 메타포를 알려달라는 마리오에게 시를 들려주자 꿈을 꾸듯 마리오가 내뱉던 말들 '시를 낭송하셨을 때 단어들이 이리저리 움직였어요,' 라든지 ' 바다처럼 움직였어요!',' 선생님 말들 사이로 넘실거리는 배' 를 보았다는  마리오의 표현은  이제 막 껍질을 깨고 나온 아기새의 눈에 보인 문학의 메타포(은유)들이었다.  누군가를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는 순수와 시를 향한 열정,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타포(은유)’는 모든 문학의 정의라 할 수 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는 칠레의 영원한 시인 네루다와 함께, 시인 마리오가 삶에서 건져 올리는 문학의 메타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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