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2년 레지스탕스였던 스테판 에셀은 분노하라에서 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은 무관심이며 이 무관심의 표현 자체는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 분노하라' 한 단어가 그토록 강렬한 것인지 그때 처음 알았었다.   분노의 표출은 참여로만 증명될 수 있다고 하였던가. 그때 그 책을 읽었을 때만 해도 비장한 결의를 다지며 주먹을 불끈쥐고는 했으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감동은 시간의 썰물에 휩쓸려가 버렸다. 정치란 것이 그런 것 같다. 울분이 쌓이다가도 먹고 사는 일에 잠시 잊고 살아도 괜찮다는 변명을 하게 되는 것.

 

작년 고인이 되신 노장 스테판 에셀보다는 젊은 편에 속하지만, 지혜와 연륜이 바탕이 된 정치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책이다. 미국 현대사를 수놓았던 굵직한 사건들을 온 몸으로 겪었던 사회운동가이자 교육학자인 파머의 아홉번째 책으로 행간에 뿌려져 있는 '민주주의'의 통찰은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할만큼 강렬하다.  

 

이 시대의 정치는 분노의 정치를 넘어선 비통한 자들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

 

스테판 에셀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분노하라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파커J.파머는 비통하라라는 주문을 한다. 이 비통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시대의 정치는 비통한 자 the brokenhearted [직역을 하자면 마음이 부서진 자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의 정치다. 이 표현은 정치학의 분석 용어나 정치적 조직화의 전략적인 수사학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적 온전함의 언어에서 그 표현이 나온다. 오로지 마음만이 이해할 수 있고 마음으로만 전달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

마음이 부서진 자, 저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분노' 의 단계를 넘어서 현 민주주의가 잃어가고 있는 '공화'라는 개념의 민주주의의 회복이 바로 이 '비통'이라는 마음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물결로 위협당하고 있는 개인성과 공동체성, 그리고 합리성과 덕성은 민주주의를 이루는 핵심개념이다.  '무한경쟁의 논리'를 표방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광풍은 자본의 비호아래 빈부 간의 극심한 격차를 가져왔다.  민주주의는 긴장을 끌어안기 위한 제도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표방하고 있는 '소비주의'와 민주주의의 거짓 치료제 역할을 하고 있는 '희생양만들기'를 경계하라한다. 이 두가지를 경계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의 역동을 다룰 줄 아는 건강한 자아를 지니라고 한다. 이러한  건강한 자아를 지닐 수 있는 근원은 우리 사회를 '비통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주어진다. 

 

 저자가 건강한 자아를 위해 권하는 다섯 가지 습관은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이 안에서 모두 함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2, 우리는 다름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3, 우리는 생명을 북돋는 방식으로 긴장을 끌어안는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4, 우리는 개인적인 견해와 주체성에 대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5, 우리는 공동체를 창조하는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민주주의가 지닌 기본이념을 향한 노력은 공론의 장이 될 수 있다. 조용한 논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모순과 갈등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길이 바로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파머는 이 지점을 통해 사람들이 오늘날 정치 세계를 개선하고자 가져야 할 마음의 습관으로 뻔뻔스러움겸손함을 제안한다나에게 표출할 의견이 있고 그것을 발언한 권리가 있음을 아는 것이 뻔뻔스러움이고 내가 아는 진리가 언제나 부분적이고 전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겸손함이다. 이 '뻔뻔스러움'과 '겸손함'은 '찢어진 민주주의의 직물을 다시 짜기 위한' 마음이다. 깨어있는 시민의 참 뜻은 바로 이렇게 자신의 견해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과 함께하는 공화주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무심한 상대주의, 정신을 좀먹는 냉소주의, 전통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경멸, 고통과 죽음에 대한 무관심,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배척과 따돌림을 불사하지 않는 극단주의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현실의 정치문화에서 말할 수 없는 비통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보길 권한다. 비통함의 틈새에서 발견하는 희망이란 , 비록 작을지라도 그 작은 힘이 역사의 물레방아를 돌리는 힘이라는 것을 믿게 된다. 세상의 중심에는 쓰이지 않는 역사가 있다. 그리고 그 쓰이지 않는 역사는 작은 냇물이 모여서 만드는 강물처럼 유구하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자연의 위대한 원리처럼, 사회의 가장 낮고 그늘진 곳, 빼앗기고 궁핍한 곳, 내팽개쳐지고 억눌리고 무시된 곳에 소생과 부활의 봄을 가져다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도정일 교수의 말은 그래서 더 둔중한 울림으로 남는다. 우리의 봄은 어디메쯤 오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공정할 수 있는가? 우리는 너그러울 수 있는가? 우리는 단지 생각으로써가 아니라 전 존재로 경청할 수 있는가?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용기있게, 끊임없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동료 시민을 신뢰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