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 한국사 :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 - 조선 1 민음 한국사 1
문중양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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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논란은 해마다 불거져 나오지만 늘 제자리걸음이다. 교학사에서  집필한 한국사 교과서가 근현대사를 왜곡된 서술과 편향된 시각으로 작성했다는 비난이 하루이틀 일이 아니듯이 우리나라 역사책은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끊임없는 논란 가운데 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도 있어왔지만, 학자들 역시 설왕설래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사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같은 역사를 배우고 자랐어도 인식에 대한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바로 역사인식의 한계에 있다. 그런 위기 상황에 역사가 필수과목이 아닌 선택과목이라는 사실은 우리나라가 심각한 역사불감증에 빠져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한다. 아닌게 아니라 작금의 논란은  근현대사를 관통하여 현재까지 계속된 논란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마치 첫 단추의 구멍을 바로 잡지 않은 채 계속 궤어내려온 역사처럼, 우리에게 역사인식은 바로 이 잘못 궤어진 첫 단추구멍을 찾는 일이나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역사논란은 못  된 역사인식을 바로잡지 않은 채 흘러온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나라의 역사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과 진배없다. 20세기에 끊이지 않았던 논쟁들이 매듭을 짓지 못하자 21세기에도 여전히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로 정초부터 동북아의 관계가  긴장으로 고조되었고 일본의 침략에 대한 반성과 위안부 보상 문제는 여전히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한 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극우파들의 교과서 왜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역사 역시도 왜곡과 편향의 시점에 치우쳐 심각한 역사관에 문제의식을 던져주고 있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라고, 미래를 바로 쓰기 위해서는 과거 역사부터 바르게 세워야 한다.

 

 

 

 

 

역사 바로 세우기의 첫 걸음으로 민음한국사 시리즈의 첫 걸음은 <15세기>로 시작된다.  한국사에서 15세기가 지닌 의미는  전통사회가 붕괴되기 전의 근대로서  바로 전근대’인 조선왕조 500년이 지니고 있는 역사의 무한한 가치와 미래로 향하는 희망의 열쇠가 숨겨져 있는 시대이다. 민음사 창립 50주년인 2016년 까지 완간하는 것을 목표로 순차적으로 시리즈를 출간하여 16권을 기획하고 있는 한국민음사는 바른 인식의 출발선을 15세기로 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민음한국사의  첫 권인 15세기-조선의 때이른 절정》의 공저자들은 역사학계 뿐만 아니라 비역사학계의 학자들까지 참여하여 한국사를 보다 객관적이고 시각적으로 그리기 위해 인포그래픽을 시도하고 있고, 세계화에 발맞추어 세계속의 한국사에 포커스를 맞추어 다각적이면서 다원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다.

 

  15세기 조선의 세계관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한반도가 실제보다 큰 사이즈로 그려져 있고, 일본은 비교적 작게 그려져 있다. 15세기 조선의 크기는 바로 스스로가 인지하고 있는 문화적 크기나 다름없는데 오래전부터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려 문화적으로 중국과 동등하다는 자존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가장 큰 의의를 짚어주고 있는데 바로 아프리카의 온전한 모습을 그린 최초의 지도라는 점이다. (기존의 역사책에서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세계의 지도들과 비교설명되어 15세기의 세계정세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조선의 건국과 중국의 태종이야기를 통해 군주의 조건을 살펴보며, 조선의 정치와 사회와 문화를 살펴봄에 있어 다양한 자료와 사진들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역사책이다.

 

 

15세기의 세계는 몽골 세계제국의 유산위에서 전개되고 있었고 개방적이고 다원적이던 14세기 중국 사회는 배타적이고 일원적인 사회로 탈바꿈을 하였다. 이런 사회를 먹여 살리는 것은 무역의 이익이 아니라 안정된 농업으로, 농업을 천하의 근본으로 삼은 고려에서  성리학을 진리의 절대 원천으로 삼는 조선으로 바뀌었다. 반대로 몽골 제국의 또 다른 중심이었던 이슬람 세계와 변두리이던 유럽은 동아시아와는 반대로 움직였다. 유럽과 이슬람 제국은 나침반, 화약, 인쇄술이 그들을 들썩이게 했고, 인도와 중국을 찾아 목숨을 건 항해를 하도록 부추겼다. 이러한 변화의 파장은 16세기부터 서서히 나타나 17세기이후 동아시아에도 가져왔다. 15세기 조선은 변화의 조짐과는 무관하게 차분하고 견고한 시작을 하고 있었다. 세종으로부터 성종으로 이어지는 15세기 '조선 문화 개화'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루어졌다. 태조 이성계의 조선의 건국과 태종 이방원의 왕위쟁탈전과 더불어 당태종의 권력쟁탈전을 통해 보는 권력의 속성과  훈민정음 창제를 둘러싼 찬반 논쟁과 세종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역사평가를, 세조의 집권부터 성종의 치세에 이르는 기간동안 일어난 계유정난과 경국대전의 완성을 통해 보는 왕위계승의 변천사까지, 서서히 왕조의 골격을 완성해가는 조선의 표정이 바로 15세기의 밑그림이다. 이러한 밑그림을 통해 15세기에서 16세기로 변화되는 조선을 이해하도록 하며 왕조 개창이라는 가장 중요한 변화를 시작으로 하여 그 왕조를 단단하게 하기 위한 주춧돌은 바로 '성리학'이다. 성리학에 따른 유교문화와 성리학을 떠받치던 농업을 근간으로 한 조선의 문화는 《16세기-성리학의 유토피아》로 이어진다. 역사는 과거의 미래, 조선의 15세기에도 우리나라의 현재가 생생히 펼쳐지고 있었다. 신권주의와 왕권주의의 대립, 지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대립은 오늘내일일이 아닌, 권력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해 현재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매우 탁월한 편집과 구성이다. 역시 민음사다.<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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