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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평점 :
봄날 내내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지’는 벚꽃엔딩에 빠져 지냈는데 이제는 눈내리던 겨울밤을 추억하는 계절이 왔다. 언제나 계절은 내가 인지하는 것보다 한 템포 더 빠르게 다가온다. 아직도 봄날과 함께 하였던 감정의 덩어리들을 다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데 시간은 그렇게 빠르게 흘러만 간다. 그 안에서 내가 막연히 기억하고 있는 삶의 희로애락 喜怒愛樂 사이에 수도 없이 많은 감정들의 실체를 나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이성은 시간을 기억하지만 감정은 시간을 담아내지 못한다. 마치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빠져 나가 버리는 감정을 센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랬다. 나는 사실 감정을 담아두지도 감정을 잘 느끼지도 못하는 그저 삶의 쳇바퀴에 끼여 늘 같은 순환을 되풀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안에서 습관처럼 감정을 지우고 버리는 것에만 익숙하였을 뿐, 감정안에 담긴 무수한 삶의 의미를 반추해본 기억이 언제인지 사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강신주(편의상 존칭생략)의 책을 《김수영을 위하여》 이후, 오랜만에 만났다. 감정의 웅숭깊은 스펙트럼을 선보이고 있는 《감정수업》은 철학자로서의 강신주가 늘 강조하듯이 진짜로 살아내기 위한 방법 즉, 타인으로부터 씌워진 화려함의 페르소나가 아닌, 날 것 그대로의 민낯의 ‘나’를 찾기 위한 인문정신을 이번에는 ‘감정’에서 찾고 있다. 김수영이라는 거울을 통해 삶의 맨얼굴을 드러내보였던 그가 <감정수업>에서는 우리의 감정을 마주하고, 감정의 날 것을 통하여 '나'를 만나도록 이끌고 있었다.
감정에 적대적인, 감정을 억압하라고 충고하였던 칸트의 이성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이성 , 억압이 아닌 감정을 긍정하고 감정의 실체를 깨닫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이른 바 ‘스피노자의 이성’ 을 말이다.
우리를 형성하는 감정이라는 것은 길게 보면 내 삶을, 짧게 보면 나 자신을 이루고 있다. '나'를 이루는 본질임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감정을 부당하게 억압하는 방법을 배우고 자란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채 이성만을 강조하다보니 감정표현에 서투른 어른아이가 부쩍 많아졌다.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감정수업 ’ 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강신주는 <감정수업>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삶의 맨얼굴을 마주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강신주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뿐만 아니라 그 각각의 본질을 명확히 규정한 전대미문의 철학자 스피노자의 감정 정의들을 세계 대문호의 문학작품 속에서 찾았다. 작품구분은 가스통 바슐라르를 따라 ‘땅, 물, 불, 바람’ 의 이야기들로 나누어지며 각 챕터의 마지막 부분에 ‘철학자의 어드바이스’를 실어 철학이 삶에 스며들 수 있는 시간을 덤으로 제공하고 있다.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노예의식 [무무]-이반 투르게네프 에서는 스피노자의 비루함의 정의 '비루함이란 슬픔 때문에 자기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것이다.'가 무무의 주인공 게라심이 사랑하는 무무의 목숨을 거두면서 느껴지는 감정으로 분하고, 이 비루함이라는 감정이 지닌 실체가 다름아닌 습관화된 슬픔이기에 지속적인 애정과 칭찬이 있다면, 비루함도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봄 햇살이 겨울 내내 쌓였던 눈을 녹이는 것처럼, 비루함이라는 고질적인 슬픔은 천천히 스며드는 따뜻함이 필요한 감정이다.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에서 주는 '자긍심(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활동 능력을 고찰하는 데서 생기는 기쁨-스피노자)'이라는 감정또한 주인공 샹탈이 자긍심을 잃었을 때 겪는 감정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는 단순한 사실이 얼마나 기적같은 감정을 일으키는지를,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 '박애 (우리가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친절하려고 하는 욕망-스피노자)'가 장발장에게서 발현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삶이 비참하였기 때문에, 비참한 사람이 겪어내는 사람은 박애라는 숭고한 정신을 배울 수 있지만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박애는 막연한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철학자 강신주는 우리에게 막연한 '감정'들을 문학작품 속 주인공들의 감정과 함께 깨닫고 느끼며 감정에 대한 정의를 되새겨준다.
바로 이것이다. 억압이란 본질적으로 감정의 억압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 억압이 작동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행복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감정의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운 분출이 가능하냐의 여부에 달린 것 아닌가.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슬픔을, 쏟아지는 은하수에서 환희를, 친구의 행복에 기쁨을, 말러의 5번 교향곡 4악장에서 비애를, 멋진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시부모의 무례한 행동에 분노를, 주변 사람들의 평판에 치욕을, 번지점프에서 뛰어내리면서 불안을, 이 모든 감정들의 분출로 우리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원하는 감정일 수도 있고, 결코 원하지 않던 감정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감정이든지 간에 그것이 내 안에서 발생하고, 또 나 자신을 감정들의 고유한 색깔로 물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다.
확실히 철학자 강신주가 전달하여 주는 철학과 문학의 웅숭깊은 시선은 달랐다. 워낙 대문호들의 문학작품을 좋아하여 48가지의 감정과 선보이는 문학작품들을 대부분 만나보았다. 강신주의 돋보기로 보게 된 문학들은 한층더 문학의 감동을 물밀듯 밀려오게 하였다. 내가 문학작품에서 미처 깨닫지 못하였던 부분을 되새겨주며 잊었던 감동을 다시 일깨워주며 , 스피노자의 철학을 어렵지 않게 각인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좋았던 책이다. 더군다나 48가지의 감정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그림들은 이 책의 가치를 한층 더 빛나게 해주고 있다. 그림과 글이 한몸이 되어 말을 걸어오는 듯, 유려하다. 강신주의 철학은 민낯의 '나'를 찾는 철학이다. 화려한 페르소나를 벗고 맨얼굴의 나를 찾을 때 우리는 진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제껏 감정을 억압이라는 페르소나를 씌워 살아왔다면, 그 페르소나를 벗고 감정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경험한 후, 그 감정에 대한 외연外延을 넓힐 때, 우리는 우리의 진짜 삶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 강신주와 함께 한 감정수업은 맨얼굴의 나를 연결해주는 가교架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