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과 매일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도 누군가의 죽음을 수도 없이 전해 듣습니다. 누군가가, 내가 알고 있던 알고 있지 않던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나의 삶은 그들의 죽음과는 상관없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들이 왜 죽었는지 이유조차 기억 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지도 모릅니다. 하루가 지나고, 내일이 찾아온다는 것은 죽음과 점점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저는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시간이 흐를 수록 더해갑니다. 내가 살았다는 것을 기억해주는 것은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니까요.

 

산소 탱크를 어깨에 메고 산소호스를 달고 살아야 하는 헤이즐 그레이스는 열여섯입니다. 폐암 말기이죠. 죽음을 앞둔 이 소녀에게 소녀의 엄마는 매일 찾아오는 '하루'에 언제나 의미를 부여합니다 . “헤이즐, 오늘은 생일 반년 기념일이란다. 헤이즐, 오늘은 소나무에 새순이 나는 날이란다. 헤이즐, 오늘은 콜럼버스가 인디언에게 천연두를 퍼뜨린 날이란다.”하면서요. 소녀의 엄마는 그렇게 소녀의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며 소녀를 기억하는 의식을 하죠. 그렇지 않으면 아마도 견디기 힘들테니까요. 소녀는 그런 엄마가 자신보다 더 불쌍합니다.

 

세상에서 열여섯 나이에 암에 걸리는 것보다 더 지랄 맞은 일이 딱 하나 있는데, 그건 암에 걸린 자식을 갖는 거다 

 

산소 탱크를 달고 오늘도 소녀는 암환자 모임인 서포트 그룹 집회에 나가요. 죽음의 부작용인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죠. 그곳에서 어거스티스라는 남자아이를 사귀게 됩니다. 재치있고 영리하고 활달한 어거스티스와 나눈 대화는 소녀 헤이즐을 흥분시킵니다. 도처에 깔린 친구라고는 암환자들이었고 그들은 모두 시니컬했고 우울했거든요. 하지만, 어거스티스는 달랐어요. 어거스티스는 골육종이라는 암에 걸렸지만, 시종일관 유쾌하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영화주인공과 닮았다는 말을 해주고, 무엇보다 헤이즐의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헤이즐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어거스티스에게 말해줘요.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책에 대해서요. 그 책은 장엄한 고뇌라는 책으로, 그 책의 주인공 안나는 혈액암에 걸렸어요. 헤이즐이 안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안나가 자신의 암을 단지 부작용이라 부르기 때문이죠. 암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나, 암환자를 위해 재단을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은 헤이즐의 표현을 빌리자면 재미대가리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안나에게 매료되었던 것은 아동 암환자에 대한 표현이 마음에 들어서이죠. 지구에 다양한 생명체를 만들어 낸 끊임없는 돌연변이의 부작용이라는 표현 말이죠. 그러나. 책은 안나의 엄마가 결혼하는 것이 끝입니다. 헤이즐은 다음 안나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안나가 죽었는지, 병을 이겨내었는지, 이후의 삶이 궁금한 헤이즐은 출판사 담당에게 편지도 여러 통 보내었지만. 답장을 받은 적은 한번도 없다는 이야기까지 어거스티스 워터스에게 털어놓게 되죠.

 

어거스터스는 헤이즐을 위해 장엄한 고뇌저자의 이메일을 알려 주죠. 그리고 헤이즐은 저자 피터 반 호텐에게 다음 편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요청을 해요. 그러자, 피터는 자신의 열혈독자를 암스트레담으로 초청을 해요. 하지만, 아픈 딸의 뒷바라지 하느라 없는 살림에 여행경비가 있을 리가 없죠. 하나의 희망이 있다면, 암환자의 소원을 들어주는 재단에 마지막 소원을 요청하는 것이었는데 헤이즐은 디즈니랜드에 가기 위해서 이미 소원을 써버렸답니다. 어거스티스는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헤이즐을 위해 씁니다. 그렇게 어렵게 찾아간 작가와의 만남에서 작가의 입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독설과 알콜중독자 특유의 횡설수설을 보고 둘은 실망을 안고 안네 기념 박물관에 갑니다. 그곳에서 둘은 서로를 기억하기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몸짓을 합니다. 그리고 어거스티스의 암이 활발하게 활동을 재개하였다는 사실 또한 기억하게 되죠.

 

사람들이 내가 우는 걸 보면 상처받을 거라고, 내가 그들의 삶에서 슬픔이라는 존재밖에는 되지 못할 거라고, 단순한 슬픔으로 전락할 수 없으니까 울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래요. 어거스티스는 헤즐리보다 먼저 죽습니다. 하지만 어거스티스는 헤이즐을 위해 많은 것을 남겼어요. 매일 하루하루 한정된 죽음속에서 영원을 느끼게 해 주었고, 이제는 자신에게도 누군가를 기억할 수 있는 비극적 결함이 생긴 것에 기뻐하지요.  소설속에 등장하는 작가 피터의 말에 의하면  소녀가 나아지면 소년이 아프고 소녀가 아프면 소년이 나아지는 이런 '교차성'이 별의 본질이라고요. 피터는 이둘의 운명을 비극적 결함이라고 부르죠. 사실 헤이즐이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 소년은 소녀를 보며 소원을 빌었답니다. 소녀보다 자신이 먼저 죽어 자신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고요.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는 이렇게  광활한 우주속에서 짧디 짧은 우리의 생生에  깊고 무한한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피어올립니다.  암환자치고는 능청스럽고 긍정적인 헤즐리의 유머때문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고통을 말할 때는 너무 가여워서 울게 되었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채워간 이들의 용감함에 박수를 쳐주고 싶어요. 비록 고통이 우리를 피폐하게 할지라도 사랑만이 고통을 낫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빛나는 슬픈 사랑이야기라서요.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의 저자 헬렌 스코닝이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거든요.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가을이 여름뒤에 오듯 결혼 이후에는 사별이  기다리고 있듯, 자연의 법칙이라고요. 하지만, 저는 아직 죽음을 이렇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매일 죽음을 느끼면서도 사랑하는데 머뭇거리지 않았으며, 죽음을 자연의 일부로 이해하는 어린 두 주인공을 보며  인간의 생은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이 연결되어 있는 유기체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게도 언젠가는 찾아올 죽음의 한조각을 바라보며, 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사랑하고 기억해주고 싶어요.  내가 이 별에 살았다는 것을, 누군가가 기억해주길 바라면서요. 헤즐리 양,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라는 거.. 알게 해줘서 고마워요.

 

나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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