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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김연수, 하면 《스무살》이 떠오릅니다. 그의 첫 소설집이죠. 전반적으로 상당히 관념적이었다는 인상 말고는 특별한 기억이 없습니다. "스무 살 이후"를 살고 있는 지금에 와서 돌아 보면 스무 살, 혹은 스무 살로 명명되는 새파란 청춘은 관념의 시절이었습니다. 어떤 고독도 고통도 거짓말 같던 새빨간 시간들. 《스무살》은 바로 그 시절의 이상한 기억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그림자이며, 그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스무살》 절판 소식은 그 시절과의 단절 같이 느껴져 못내 아쉬웠지요. 그리고 몇 년 뒤에 읽게 된 책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였는데요. 유년의 향수를 애틋하게 풀어내고 있는 이 소설집은 《스무살》과는 다르게 잔잔한 삶의 질감이 살아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하나마나한 이야기인가요. 각설하고, 김연수 작품에 대해 구체적으로 풀어낼 만한 건덕지가 없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소설집 이외 다른 작품은 읽지 못했고, 벌써 오래 전에 읽은 이 단편들이 구체적인 인상을 새기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소설을 읽는 마음이 남달랐습니다. 김연수 장편으로는 처음 만나는 작품이기도 했고요.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김연수는 이 소설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심연을 이야기합니다. 사람 사이의 간극을 뛰어넘는 일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소통에 대한 불가능한 그 꿈이 결과적으로 우리 자신의 뿌리에 이르는 "날개"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요. 1980년대 미국 중산층 가정에 입양된 카밀라 포트만(정희재)이 자신의 생모를 찾아나서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날개"의 상징성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모래알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풀잎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너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정채봉의 시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정채봉의 시에서 차용한 이 문장에서 "날개"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움'입니다.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바로 그리움이에요. 카밀라를 고향으로 이끈 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어머니 얼굴 한 번 보는 것, 그 소박한 바람을 안고 찾은 낯선 한국 땅에서 카밀라를 맞은 것은 어머니의 흔적 뿐입니다. 당시 열일곱 살이던 그녀의 어머니(정지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카밀라가 어머니의 죽음을 확인하는 시점에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날개'의 상징성이 부각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선 죽은 어머니 지은이 화자로 등장합니다. 정지은은 카밀라를 '너'라고 지칭하면서 딸에 대한 그리움을 풀어놓고 있는데요. 죽은 화자의 시점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있어서 다소 혼란스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 혼란은 의도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요. 카밀라 혹은 정희재와 정지은을 뚜렷하게 구분하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 너한테는 날개가 있니?
나는 스티브의 작업실에 보관된 나이키 운동화의 고유 번호를 하나하나 확인했지요. 대부분은 어머니가 나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주겠노라고 호언하던 시절에 만든 운동화들이었어요. 그때 어머니는 건강하고, 나는 꿈에 부풀어 있었죠. 나는 그 신발들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나는 오리건의 해변들을 순례하며 운동화를 찾아다녔는데, 그 일이 저를 구원했습니다. 어쩌면 그 여름 내내 내가 찾고 다녔던 건 운동화가 아니라 지난 꿈의 잔해들일지도 모르지만요. (본문 중에서)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그리움을 안고 있습니다. 신발 공장에 다녔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국의 해변가에 떠내려온 운동화를 찾아다닌 서교수, 사투리 때문에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는 지훈 등, 카밀라의 꿈에 등장하는 "오로라 물고기"처럼 이 세상에는 없는 것, 잡을 수 없는 대상과의 소통 욕망을 품고 있는 이들의 그리움은 불가능한 꿈이고, 희망이고, "희망은 날개 달린 것".
나를 혼잣말하는 고독한 사람으로 만드는 게 바로 그 심연이다. 심연에서, 거기서, 건너가지 못한 채, 그럼에도 뭔가 말할 때, 가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심연 저편의 당신을 향해 말을 걸 때, 그때 내 소설이 시작됐다. (작가의 말 중에서)
당신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간극, 그 심연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작가의 목소리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음. 그래요. 그렇지만 그의 이야기 방식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화자가 계속 바뀌고, 주변 인물들의 사연이 뒤섞여 이야기의 초점이 분산되는 점, 작위적인 설정 등이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소설보다는 두쪽 분량의 작가의 말에서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이거 너무한가 ^ ^;; 근데 사실이 그렇...)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만 봐서는 제 스타일은 아니지만, 또 모르죠. 그의 다른 장편도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