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를 열심히 보고 있다. "명"드라마다. 한가지. 드라마속 경복궁 촬영이 나오는데.. 혹여나 궁을 파괴하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앞선다. 노파심.   
 

세종.. 애민군주? 그렇다. 어쨌든 백성을 위해 한일이 많았을터이니.  그러나 그가 그런 일들을 한 것을 '애민'이라는 너무 추상적 한 단어로 돌리긴 무언가 부족하다. 역시 권력관계를 읽어야 하지 않을까.  

조선정치는 개국초기부터 고종때까지 끊임없는 왕권과 신권(척신들, 외척들, 사림들)의 싸움판이었다. 주로 신권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다면 간간히 신권을 압도했던 왕이 나타나곤 했다. 그들이 바로 태종이고, 세종이며, 세조였으며, 연산군 이었고, 광해군, 정조..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원군이었다. 

왕이 신권을 억누르는 방법은 여러가지였을터. 태종,세조 등이 칼을 이용했다면 세종이 선택한건 바로 "대중노선"이었다. 헤게모니 신권을 타파하기 위해 백성들을 지지를 확보하려 했던 것. 그것이 바로 훈민정음의 창제 이유가 아니었을까. 일종의 포플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 어디에나 그런 전략은 사실 드문게 아니다. 1882년 임오군란도 그 뒤엔 대원군의 대중동원이 있었다. 20세기 중국의 마오쩌둥의 대중노선도 그 전형적 예였으리.. 

 

 

 

 

 

 

 

그렇다. 조선!  

우리의 저 더러운 현대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그것에 맞닿아 있는 조선 오백년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싫어도 그래야 한다. 

<조선의 힘>은 글자 그대로 조선의 힘. 그래도 살맛나는 시절이 아니었겠는가라는 소리다. <망국의 역사>.. 김기협은 조선은 이미 인조반정.. 더 나아가 세조의 왕위찬탈에서 끝났어야 하는 역사로 서술한다.  

누가 옳은가?  

역사에는 정답이 없다(그 어디에 정답이 있겠냐만..) 누가 옳은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결국 "권력"의 문제로 나아간다. 조선이고 나발이고.. 권력은 정당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착한 권력 따윈 없다. 이런 어설픈 생각이 들어서일까. 김연수의 <조선 지식인의 위선>이란 책은 와닿는다. 정말. 저자가 누군진 잘 모르지만..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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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의 핵심은 결국 권력 분석이다. 사회관계의 권력은 자연세계의 중력을 의미한다. 빅뱅이후 어디서나 중력이 작동 했듯 인간의 모든 관계는 결국 권력관계일 수밖에 없다. 권력은 DNA보다 나이가 많다.  

권력은 무엇인가?   

"Matrix is control" 

영화 매트릭스 속 모피어스의 대사.  결국 권력은 매트릭스며, 매트릭스는 권력이다. 통제다.

"배후 디비기!"

푸코의 연구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배후 찾기다. 그 사회적 권력의 배후 디비기. 우리들이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고(아니 수용하라고 강요당하는) 권력관계의 작동 메카니즘을 분석하겠다는 거. 권력에 대한 고고학이고 계보학이다. 

정신병은 순수한 의학적 병리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정치적이다. 사회적 위험인물에 대한 딱지 붙이기. 정신병은 발명된 것이다. 감옥, 학교, 병원.. 건축구조는 동일하다. 소수의 사람이 다수의 사람에 대한 감시를 쉽게 하는 구조. 감시가 있고 훈육이 있으며 처벌이 있다. 그리고 인간을 규율화시키는 또다른 메카니즘.. 신자유주의. 

   

 

 

  

  

 

 

"그러니까 규범은 권력에의 요규를 담고 있다. 규범은 단순히 추상적인 원칙이 아니라 권력의 근거와 합법성을 마련해 주는 거점이다."  (푸코가 캉길렘을 인용하며. 비정상인들 p. 69)  

가끔씩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분석과 가치의 구분을. 경험주의 논리를 갖고 세상을 설명한다고 그가 경험주의자가 되는 건 아니다. 논리와 가치의 구분을 보호해야한다. 꼭 정글속으로 들어가야만 게릴라가 되는 건 아니다. 학적 게릴라는 왜 될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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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평을 쓴다. 방바닥에 굴러다는 책들을 전혀 못따라 잡고 있다. 그러다 한큐에 읽은 책이 있다. 책을 읽다 몇번이고 깔깔깔 웃게만든 책. 킬링타임. 파울 파이어아벤트. 20세기 세계적 과학철학자중의 한명. 인식론적 무정부주의자. 생적 다다이스트. 자유분방. 이성이여 안녕..  

파이어아벤트는 포퍼로부터 배웠다. 그러다 포퍼와 결별하고 포퍼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포퍼의 논리 또한 일종의 교조화가 되기 시작했다고. 과학엔 그런것 없다고. 반증주의도 또다른 물신화일 뿐이라고. 과학의 방법론이 있다면 그건 "무엇이든 괜찮아(Anything goes!)"라고.  

   

 

 

 

 

 

  

 

동의한다. 그런점에서 어쩌면 파이어아벤트는 진정한 포퍼리언이다. "나도 틀릴 수 있다"는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를 누구보다도 성실히 수행한.  

어릴적 과학철학에 빠진적이 있다. 그 어려운걸 어찌 다 이해했겠냐만.. 단지 인간지식의 가장 근원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책꽂이에 꽂아만 놔도 뭔가가 채워지는 기분이 좋았다. 출발은 포퍼였고 언제나 공적은 쿤이였다. 파이어아벤트는 신비의 인물이었다. 분명 포퍼제자였는데 왜 합리성을 비판하지? 또 쿤의 편에 서다가도 또 쿤을 비판하고. 포퍼의 충실한 후계자 라카토슈와는 또 왜 그렇게 죽이 맞아 돌아갔을까? 절친 라카토슈가 일찍 죽고 그와의 서신교환을 책으로 펴낸 For and Against Method(오론쪽책) 표지사진은 범생 합리주의자 라카토슈와 다다이스트 파이어아벤트의 성격을 짐작케한다.  

그러나 이런 건 다 지나가리라. 파이어아벤트가 죽기직전 펴낸 킬링타임의 마지막 구절은 파이어아벤트의 그 어떤 주장보다도 가슴에 와 닿는다.  

"이제 최후의 며칠이 남았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한 순간 한 순간 감내할 것이다. 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마비는 뇌 내부의 출혈 때문에생긴 것이다. 지금 나의 관심은 내가 남길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논문, 철학자로서 마지막 선언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랑이다. 나는 사랑이 남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내가 마지막 떠나는 모습으로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나쁜 추억은 뒤로한 채, 혼수상태처럼 죽음의 고통 없이 평화롭게 가고 싶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라지아와 나, 그리고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지적인 생존이 아니라 사랑의 생존이다." 

지적인 생존이 아니라 사랑의 생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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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어린 이중에 천재가 나올 수 있지만 대가는 나올 수 없다." 

어디선가 들은 얘기입니다. 왜 그럴까. 결국 역사를 아냐 모르냐의 차이가 아닐까요. 신동들이 아는건 논리입니다. 연역적 논리. 전제를 알면 그것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결론을 알수 있습니다. 머리가 컴퓨터라 그런 논리추론 과정은 식은 죽 먹기.  

그러나 역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란건 논리적으로 알 수 있는게 아닙니다. 경험으로, 관찰로, 또 성찰로. 연역적이라기 보다는 귀납적입니다. 아무리 머리가 컴퓨터 같다고 하더라도 "짠밥"을 먹지 않으면..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없으면 기본적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드는 생각은 결국 역사가 중요하다는 것. 이론이란 게 망치라면 역사는 망치질을 당하는 못입니다. 망치 없이 못을 맨손으로 박기가 어렵다면, 못이 없으면 망치란 건 쓸모가 없습니다. 이론 없는 역사는 파편적이며 역사 없는 이론은 뜬구름입니다. 

  

 

 

 

 

 

 

요즘 사놓은 역사책이 방바닥에 뒹굽니다. 다들 꼼꼼한 책들. 파편적 사실관계들은 더더군다나 아닙니다. 이들을 관통하는게 있다면 무얼까. 인간집단간 접촉, 경쟁, 싸움일겁니다. 지적 능력이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신이라는 표현으로 불리우는)가 하늘에서 인간사를 연구한다고 해 보죠. 마치 동물학을 연구하는 인간들처럼. 인간의 역사는 더도 덜로 경쟁의 역사, 진화의 역사일겁니다(다윈의 관점은 결국 신의 관점일테지요) 

로마제국의 붕괴는 훈족의 서진에 밀린 게르만족이 로마로 밀려들어온 결과입니다. 30년 전쟁은 어떻습니까. 신구교간의 종교전쟁으로 덧칠해지긴 했지만 결국 유럽의 헤게모니를 놓고 투쟁한 밥그릇 싸움이었습니다. 제국의 탄생과 시빌라이제이션은 아예 '경쟁'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왜 자본주의가 유럽에서 나왔을까요. 유럽내의 생존경쟁이 가장 치열했기 때문. 진화론! 

경쟁은 모든 인간을 이기적으로 만듭니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자연은 경쟁을 나쁘다고도 또 좋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런 것이기 때문. 거기서 국가가 탄생하고 제국이 탄생하고 문명이 탄생하고 대규모 살육전쟁이 벌어집니다. 인간중심적인 시각에선 가치판단이 되지만, 그걸 떨쳐버리면 가치판단이 어렵습니다. 道可道 非常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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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런 사람들이 멋있어 보인다. '좋은' 집안 태어나 호의호식하다 '변절'한 사람들. 그들은 보통 이런 질문을 하면서 돌아선다. "도대체 뭐지?" 주입된 문제의식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낀 문제의식들. "그래 나는 도대체 뭐지?"  좌파란게 있다면 이런 류의 사람이 진짜 좌파아닐까.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맑스 아저씨한테 미안하다. 

최근에야 톨스토이를 읽는다. 한단어로 그를 정리할 수 있을까. 그래 이렇게 대답하련다. "종교적 자유주의자" 그에게 있어 자유는 육체적 투쟁이 아니라 정신적 투쟁에 의해 쟁취되어야 할 것이다. 물질적 폭력을 통한 자유는 또다른 폭력을 부른다. 그렇다고 폭력에 복종하라는 건 아니다. 단지 폭력을 '감내'하라는 것!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쪽도 내밀라"  왜 예수는 이런말을 했을까. 에너지보존의 법칙, 질량보존의 법칙이다. 폭력을 폭력으로 대항하면 나에게는 승리일 수 있지만 우주 전체적으로 보면 역시 무질서도의 증가일 뿐이다. 에어컨을 틀면 우리집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이 지구가 더워지는 이치와 똑같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온갖 사기꾼들이 득실거리는 사회. 상호협력이 아니라 상호배반을 부추기는 사회. 파레토최적이 아니라 내쉬균형을 추구토록 하는 사회. 역시 인간을 욕해선 안된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구조의 문제일뿐. 누가 그런 사회를 만드는가? 역시 '권력'이다. 좋은 권력 따윈 없다. 권력의 숙주들.. 이젠 자각할때도 되지 않았을까.  

"사상은, 자신의 지능에 의해 얻어졌거나 조금이라도 이미 마음속에 일어난 의문에 대해 답하는 경우에 비로소 인생을 움직인다. 이와 반대로 머리와 기억력만으로 받아들여진 남의 사상은, 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고 거기에 반하는 행위와 태연하게 공존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p.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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