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평을 쓴다. 방바닥에 굴러다는 책들을 전혀 못따라 잡고 있다. 그러다 한큐에 읽은 책이 있다. 책을 읽다 몇번이고 깔깔깔 웃게만든 책. 킬링타임. 파울 파이어아벤트. 20세기 세계적 과학철학자중의 한명. 인식론적 무정부주의자. 생적 다다이스트. 자유분방. 이성이여 안녕..  

파이어아벤트는 포퍼로부터 배웠다. 그러다 포퍼와 결별하고 포퍼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포퍼의 논리 또한 일종의 교조화가 되기 시작했다고. 과학엔 그런것 없다고. 반증주의도 또다른 물신화일 뿐이라고. 과학의 방법론이 있다면 그건 "무엇이든 괜찮아(Anything goes!)"라고.  

   

 

 

 

 

 

  

 

동의한다. 그런점에서 어쩌면 파이어아벤트는 진정한 포퍼리언이다. "나도 틀릴 수 있다"는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를 누구보다도 성실히 수행한.  

어릴적 과학철학에 빠진적이 있다. 그 어려운걸 어찌 다 이해했겠냐만.. 단지 인간지식의 가장 근원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책꽂이에 꽂아만 놔도 뭔가가 채워지는 기분이 좋았다. 출발은 포퍼였고 언제나 공적은 쿤이였다. 파이어아벤트는 신비의 인물이었다. 분명 포퍼제자였는데 왜 합리성을 비판하지? 또 쿤의 편에 서다가도 또 쿤을 비판하고. 포퍼의 충실한 후계자 라카토슈와는 또 왜 그렇게 죽이 맞아 돌아갔을까? 절친 라카토슈가 일찍 죽고 그와의 서신교환을 책으로 펴낸 For and Against Method(오론쪽책) 표지사진은 범생 합리주의자 라카토슈와 다다이스트 파이어아벤트의 성격을 짐작케한다.  

그러나 이런 건 다 지나가리라. 파이어아벤트가 죽기직전 펴낸 킬링타임의 마지막 구절은 파이어아벤트의 그 어떤 주장보다도 가슴에 와 닿는다.  

"이제 최후의 며칠이 남았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한 순간 한 순간 감내할 것이다. 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마비는 뇌 내부의 출혈 때문에생긴 것이다. 지금 나의 관심은 내가 남길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논문, 철학자로서 마지막 선언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랑이다. 나는 사랑이 남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내가 마지막 떠나는 모습으로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나쁜 추억은 뒤로한 채, 혼수상태처럼 죽음의 고통 없이 평화롭게 가고 싶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라지아와 나, 그리고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지적인 생존이 아니라 사랑의 생존이다." 

지적인 생존이 아니라 사랑의 생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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