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업사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업 사회 - 일할 수 없는 청년들의 미래
구도 게이.니시다 료스케 지음, 곽유나.오오쿠사 미노루 옮김 / 펜타그램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성장, 저출산, 취직 빙하기 무업사회

구도 게이, 나시다 료스케 지음, 곽유나, 오오쿠사 미노루 옮김, 펜타그램, 2016.1.

 

무업사회는 일본 청년 지원 기관인 NPO법인 소다테아게넷 이사장인 구도 게이가 쓴 청년 실업에 관한 인류학적 보고서. 청년 무업자들의 사례를 통해 무업이 그들 개인의 문제가 사회 시스템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청년 무업자가 된 원인과 양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 시스템의 필요성, 일을 시작한 청년 무업자들이 말하는 일한다는 것에 대해서 연구한 결과물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실질적인 구체적인 사례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통계 자료에서 읽을 수 없는 삶의 맥락과 의미를 이해하려는 연구자의 자세가 빛난다.

 

저자는 청년무업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문제임을 지적한다. 낙오자, 실패자라는 시선으로 무업자를 바라보는 사회 담론을 해체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청년들이 무업자 상태인 원인과 양태에 대한 질적 연구가 필요하다. 일하지 않는 청년들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동경하던 비전과 괴리된 현장

2. 불합격 메일 100통에 좌절하고 미안하다는 생각에 면저을 볼 수 없어

3. 초보자를 환영한다고 하고는 교육도 휴일도 없더니 갑자기 날아든 퇴직 권고

4. 어려운 세무사 자격을 취득했건만 면접에 서툴러 히키코모리 생활

5. 두 번이나 해고 경험, 무엇보다 망하지 않을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

6. 친구와 회사를 설립했으나 다투고 결별, 자신 있던 재취업에 거듭 실패

7. 꿈도 일할 의욕도 없지만, 사람들과 소통만은 하고 싶다.

 

이 시대 청춘들은 보람 있게 일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님 말씀처럼 착취당하고 싶어도 착취당할 곳이 없다. 고성장 시대가 끝나고, 저성장에 마이너스 성장으로, 베이비붐을 지나 지속되는 출산 하락세, 여기에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AI와 같은 컴퓨터의 발달 등이 일자리를 축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세계관은 사회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한다. 일자리가 없는 이유를 개인의 문제로, 노력이 부족해서, 자기개발이 덜되어서라고 환원한다. 이제 세상에는 공부 중인 젊은이가 가득하다. 도서관은 나이 불문, 청년 무업자의 가장 안전한 장소다. 이상적인 목표와 준비 사이의 간극은 계속해서 벌어지고, 아무리 준비해도 부족한 것은 더욱 많아지고, 늘어나는 나이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갖추어지기 전에 시작하는 법을 더는 알지 못한다. (일본에서는 2010년부터 39세까지 청년으로 보고 있다. 15세에서 39세까지 청년 무업자다. 여기에 고립 무업자는 40대에도 상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어디 일본만 그러하겠는가?)

 

일도, 사랑도, 결혼도 안착할 수 없는 이십대를 두고 가능성의 시기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가혹하다. 여기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를 언급하는 것은 무업 사회와 잠시 무관한 이야기가 될 듯도 하지만, 그 시기 나는 평생 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힘들었다. 철들고 벗어나본 적이 없는 학교를 떠나 세상에 나와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당시 나는 학력에 걸 맞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좋기만 할 수 없었던 그 시기의 불안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이 드라마가 모든 남녀노소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각각의 세대를 공략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십대, 이십대 아이들에게는 밀고 당기는 연애를, 삼십대 이후 세대에게는 추억이라는 강력한 장치가 드라마 성공 요인이지 않을까 싶다. 90년대로 이어지는 각자의 추억이 갖는 보편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들이 있었던 거다. 90년대는 적어도 무업 사회는 아니었지만, 일할 수 없다는 것이 주는 무기력은 정말 컸다. 몇 달 일하지 않는 것이 1년처럼 느껴지는 무게감이었다. 집 밖을 나가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자신감과 자존감은 떨어지고, 대인관계에도 서툴러졌다. 밤낮이 뒤집어 지고, 세상에 대한 피해 의식이 커져 갔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원망의 화살을 겨누었다. 그 시기를 잊는 것은 평생 불가능할 것이다. 아니 잊지 않을 것이다.

 

어쩌다가 운이 좋아서 정규직, 연금 대상자가 된 나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끼며 살아간다. 나의 취업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능력은 필요조건일지 몰라도,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정규직이 되고, 안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자 석사를 시작했다. 도서관에 아는 얼굴이 있을까 싶었으나, 함께 공부했던 동기와 선배들은 여전히 자판기 커피에 의존하며 사법고시가 7급 공무원으로, 7급 공무원을 9급 공무원으로 조절하며 <여고괴담>의 주인공처럼 학교(도서관) 귀신이 되어 가고 있었다.

 

청년 무업자는 국가 차원에서 고려되지 못한 채 가족이 그 문제를 온전히 떠안는다. 무업 상태가 몇 년간 지속되다 보면, 본인의 체념과 가족의 해결책 부재 상태에 이른다. 무업자는 계속해서 노부모의 연금에 기대어 살아간다. 자녀 교육에 목숨 거는 우리 사회 현실을 생각한다면, 노후를 제대로 준비한 노인이 드물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다면 무업자 가족의 상태가 어떨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국가 없는 사회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게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매우 유사하다.

 

일본은 가족을 사회 공동체의 기본 단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상황을 가족의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며, 단지 개인의 일로만 보는 경우가 적다. 유럽의 한 청년 지원 단체 활동가에게 질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선 청년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그 부모가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부모의 경제적 조건과는 상관없이 처한 상황에 따라 누구나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가정이 소득이나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좌우되지 않는 지원 시스템이 잘 정비되어 있는 것이다(106).”

 

 

이 책은 청년 무업자에게 어떤 지원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 특별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지만 말이다. 그 해법을 한권의 책으로 진단할 수 있다면, 그 많은 무업자들을 자살로 내모는 사회가 지속될 이유가 없을 테니 말이다.) 몇 가지 매뉴얼로 무업 사회에서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에 심각한 사회 문제다.

 

청년 무업자를 지원하는 바람직한 사회 시스템(175)이 필요하다. 무업자 지원 기간을 통한 자신감을 확대해야 한다. 지원의 핵심 기조는 포섭성, 연속성, 재도전의 지원(176)이다. 작은 성공 사례를 만들고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 그리고 에코시스템을 만들어(190)야 한다. 청년 무업자의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이라는 의미를 전달하며 각자의 입장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가치를 통해 협조할 수 있는지를 제안(191)해야 한다.

 

청년 무업자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세상 밖으로 내몰리지 않는 것이다. 본인의 의지박약이 문제라고 한다면, 그것은 100% 본인 탓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 뒤집는 것이 태산을 옮기는 것처럼 어려울 때가 있다는 것을 삶의 경험으로 안다. 계속되는 좌절로 낮아진 자존감은 우울증이라는 질병으로 이어진다.

 

일할 수 없는 청년들의 미래에 대한 책무성으로 책을 읽는 내내 힘이 들었다. ‘무업인(無業人)’이 아니라, 무업사회(無業社會)‘라는 점에서 이는 우리 공동체 전체의 문제다. 청년이 무업 상태인 것에 일정한 경향성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한다. 이는 사회 문제가 개인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이들을 지원하는 것은 이해와 포용을 바탕으로 한 사회시스템이어야 한다. 무업 사회는 결코 취업하지 못한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